• 외국인 증시 이탈에 맥도 못 춘 방어세력

    입력 : 2013.08.09 16:5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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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은 국내 주식 투자자들에게 악몽과도 같은 한 달이었다. 상반기 상승세를 이어오며 투자자들의 큰 관심을 받은 중·소형주는 물론 대형주마저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코스피는 한 달 동안 6.9%, 코스닥은 무려 10.2% 폭락했다. 5월 말까지 코스피는 모처럼 2000선을 넘어서 회복세를 보였고 코스닥은 몇 년 간 이어온 부진을 떨쳐버리며 투자자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연초부터 지속돼 온 엔저와 북한 위협 등을 뚫고 난 뒤 5월 한국은행의 이례적 금리인하와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 분위기도 좋아졌다. 하지만 한 달 만에 투자자들의 꿈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났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미국에서 통화정책을 총괄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벤 버냉키와 FRB 인사들은 6월 지난해부터 이어온 ‘3차 양적완화(QE3)’ 종료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국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적극적으로 돈을 풀어온 움직임을 멈추겠다는 뜻을 처음 표명한 것이다. 그러자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주식시장이 요동쳤다. 풀린 돈의 힘으로 상승해온 글로벌 증시의 향후 전망이 어두워지자 투자자들이 돈을 빼내기 시작했다.

    한국 증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초 양적완화 정책이 한국에 별다른 도움이 안됐다는 점에서 타격이 제한적일 것이란 예측도 있었지만 외국인 이탈은 예외가 없었다. 6월 한 달 동안 외국인은 코스피시장에서 5조원 가까이 빼내면서 폭락장을 주도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같은 기간 국적별로 미국과 영국 자금이 각각 2조619억원, 1조3339억원 유출돼 가장 많이 한국 주식을 팔아치웠다. 국적이 아닌 지역별로는 영국 등을 포함한 유럽에서 모두 3조3031억원 순매도를 기록했다. 2013년 상반기(1~6월) 코스피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은 10조5000억원에 달했다. 이른바 ‘외국인 엑소더스’에 국내 증시는 속수무책이었다.

    외국인이 털어낸 물량을 받아낼 주체가 사라지면서 국내 투자자들은 떨어지는 지수를 눈 뜨고 지켜봐야만 했다. 6월 한 달간 기관과 개인이 각각 3조원, 2조원 가까이 순매수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일단 외국인이 주식을 팔기 시작하면 속절없이 주가가 떨어지는 모습이 반복해 나타났다. 6월 24일엔 지지선이라 여겨진 코스피 1800선마저 무너졌고 하루 뒤엔 코스닥 500선이 뚫렸다. 미국 악재에 중국의 신용경색 우려가 겹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야말로 한국 증시가 ‘외국인 손아귀’에 들어있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양적완화 출구전략 가능성이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금융시장에 패닉이 찾아왔다”며 “최근 시장에 나타난 충격은 주식을 포함해 채권, 금과 같은 자산이 모두 급락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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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락한 증시 거래대금… 외국인 탈출 막을 세력 없어 무엇보다 외국인의 영향력이 이토록 코스피에서 강해진 것은 급격히 추락한 거래대금에 원인이 있다는 설명이다.

    개인도, 기관도 뚜렷하게 매수 분위기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외국인이 낮은 가격에라도 국내 주식을 팔려고 나서자 주가가 곤두박질쳤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코스피 거래대금은 최악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초부터 지난 6월까지 코스피 일평균 거래대금은 한번도 5조원을 넘기지 못했다. 가장 나빴다는 지난해 1~3월 일평균 거래대금이 5조~6조원 사이를 오간 데 비해서도 한층 추락한 수치다. 지난 2월 기록한 일평균 거래대금 3조6749억원은 2007년 4월 이후 6년여만의 최저치기도 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분명한 매수 주체가 존재해 금융위기 등 충격에도 지수를 방어했다고 본다. 2000년대 중반을 지나 2008년 초까지는 국내에 거세게 분 ‘펀드 투자붐’으로 기관투자가(투신)가 대거 ‘사자’에 나서며 시장을 주도했다.

    2008년 가을 글로벌 금융위기 뒤에는 자문형랩 상품으로 자문사들이 시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올해는 매수 주체가 실종된 반면 외국인이라는 매도 주체만 부각된 상황이다. 실종된 거래 속에서 국내 중대형 증권사 위기설이 불거지는 등 시장 안팎의 위기감도 한층 커졌다.

    외국인 매도세는 양적완화나 일본 증시의 상대적 매력 부각 등 부정적 이슈에 더해 상반기 내내 이어진 뱅가드 펀드의 벤치마크 변경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미국 뮤추얼펀드 운용사 뱅가드는 지난 1월 6개 신흥국 상장지수펀드(ETF) 벤치마크를 ‘모건스탠리 캐피털인터내셔널(MSCI)’에서 ‘푸츠(FTSE)’로 변경했다. 한국은 MSCI와 달리 FTSE에는 선진국으로 분류돼 있다.

    이 때문에 뱅가드는 신흥국 펀드에 포함된 한국 증시 투자자금을 지난 1월부터 6월 말까지 매주 4000억원가량 빼왔다. 큰 영향이 없을 거란 당초 분석과 달리 수급 주체 실종 상태 코스피에는 발목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노종원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극도로 위축된 증시에서 뱅가드 이슈는 시장의 방향성을 좌우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남룡 삼성증권 연구원은 “국내 유동자금이 본격적으로 유입되지 않는 분위기에서 외국인 매도세는 증시 상승 족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양적완화 축소 우려에 ‘아베노믹스’로 가까운 나라 일본 증시 매력이 부각됐고 중국의 경착륙 우려가 불거지는 등 글로벌 악재가 지속적으로 돌출됐다. 그러면서 전체 지수뿐만 아니라 개별 종목으로도 작은 악재에 노출된 뒤 외국인 매도로 급락하는 이른바 ‘지뢰밭 장세’가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불안해진 시장… ‘지뢰밭 장세’ 이어져 이 연구원이 묘사한 ‘지뢰밭 장세’의 대표적 사례는 7월 15일 기준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와 7위 SK하이닉스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7일 전거래일보다 6.2%(9만4000원) 크게 하락한 142만7000원에 마감했다. 시총은 224조원에서 210조원으로 하루 새 15조원이 증발했다.

    코스피 초대형 종목답지 않은 폭락에는 외국계 증권사 JP모간의 부정적 실적 전망 보고서와 뒤이은 외국인의 대대적 이탈이 있었다. 이날 삼성전자의 하락폭은 애플과 특허 소송에 진 지난해 8월 -7.5% 이후 최대치였다.

    JP모간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S4 판매량이 빠르게 줄어 3분기 이후 영업이익률이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본 뒤 목표주가도 210만원에 190만원으로 하향조정했다. 실제 지난 7월 5일 발표된 삼성전자의 2분기 잠정 집계 역시 영업이익이 9조5000억원으로 나왔다. 10조원이 넘을 것이라던 국내 증권사와 달리 JP모간(9조7000억원대) 등 외국계 증권사 예측이 맞아떨어지자 삼성전자는 외국인 투매에 3.8% 떨어지며 130만원 선이 무너졌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 학습효과를 겪은 국내 투자자들이 반대로 ‘당한 사례’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상반기 기대 밖 실적(어닝 서프라이즈)으로 시장의 관심을 모으며 시총 상위 종목 가운데 유일하게 독주해 왔다. 그러나 7월 2일 외국계 증권사 크레디리요네(CLSA)가 “디램(D-Ram) 가격이 올여름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며 매도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내자 하루만에 8.72% 급락했다.

    하지만 이날 매도 주체는 외국인이 아니라 국내 기관이었다. 오히려 외국인은 SK하이닉스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삼성전자와 달리 SK하이닉스 주가는 거기서 더 떨어지지 않고 지지선을 형성했다. 외국인의 투매 바람을 성급하게 우려한 국내 기관이 역으로 당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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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건은 매수 주체 부활과 G2 경기 회복 뱅가드 이슈가 끝나고 FRB 주요 구성원들이 연이어 “양적완화를 종료하려면 멀었다”는 발언을 내놓으면서 외국인 엑소더스의 충격은 7월 중순 들어 일단 잦아든 분위기다.

    7월 11일 버냉키 의장은 “상당한 수준의 경기 확장 정책은 당분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과 다음날 코스피엔 외국인이 각각 2900억원, 1408억원 순매수를 보였다. 지수도 7월 11일 하루 동안 무려 53.44포인트(2.93%) 급등했다. 12일 기준 코스피는 1869.98로 마감해 충격에서 한숨을 돌렸고 코스닥도 530선을 넘어 532.47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거래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는 점에서 수급 측면 불안은 여전하다. 7월 초부터 10일까지 코스피 하루 거래대금은 3조원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언제든 외국인이 이탈에 재시동 걸면 지수가 크게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다. 지수방어 역할을 담당해온 국내 연기금도 최근엔 힘을 쓰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국내 증시가 꾸준히 회복세를 이어가려면 결국 외국인에 기대지 않는 안정적 수급여건과 미국과 중국, 즉 ‘G2’의 경기 호전이 있어야 한다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체로 일치한다.

    미국의 국채 금리 등 주요 지표가 안정을 되찾고 경기 회복세를 보이는 한편, 중국 역시 둔화된 성장세를 반전시킬 움직임이 나오느냐가 외국인 귀환의 전제조건이란 얘기다.

    주요 종목들의 실적측면에서도 시총 상위를 점하는 기업들이 대부분 전자·자동차·건설·화학 등 수출주이기 때문에 G2의 움직임은 향후 증시 방향성에서 매우 중요하다.

    김기배 삼성증권 연구원은 “향후 외국인 매수세가 유입되기 위해서는 미국 중국의 불확실성이 완화돼야 한다”면서 “만약 외국인 유동성이 코스피로 다시 들어올 때에는 상반기 보유 비중이 큰 폭으로 줄었던 IT나 유통, 화학 등 업종을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재언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5호(2013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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