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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계좌도 유리알 지갑 거액자산가들 “어찌할꼬”
입력 : 2013.08.09 16: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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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phole’은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지하경제’쯤 될 것 같다. 시스템의 엉성함을 이용해 빠져나오는 구멍들을 뜻한다. 롬니가 말한 Loophole은 각종 세금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탈세를 하는 사람들을 잡아내서 세원을 넓히겠다는 얘기다. 대선에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됐지만 미국은 미트 롬니가 말한 ‘Loophole’을 메우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대표적인 작업이 해외계좌신고제도(FATCA·Foreign Account Tax Compliance Act)다. FATCA는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뉴스타파’에서 보도하곤 했던 해외 재산 은닉 사례들을 없애기 위해 미국이 자국 세수확보 차원에서 발 벗고 나서는 제도라 할 수 있다.
고액자산가들 비상 그런데 FATCA가 시행된다고 하자 우리나라 사람 또는 미국 국적을 갖고 있는 한국계 거액자산가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반면 세수를 늘려야 하는 우리나라 과세당국은 속으로 기대를 걸고 있다. 과연 이 제도는 어떤 파워와 어떤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먼저 과세 제도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인이 미국 금융기관에 10억원을 예치해서 20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고 해보자.
1979년 맺어진 한미조세협약에 따르면 미국 과세당국은 2000만원의 12%인 240만원을 원천징수한다.
미국 과세당국이 가져가는 세금은 이걸로 끝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엄연한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 법에 따른 이자소득세도 내야 한다. 만일 38%의 소득세 구간에 있는 사람이라면 미국에서 이미 낸 12%를 제하고 남는 26%에 해당하는 520만원을 한국에서 내야 한다.
하지만 한국 국세청이 과연 520만원의 세금을 걷을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한국 국세청은 이 사람의 금융계좌를 들여다볼 수 없다. 자진신고를 하지 않는 한 말이다. 그러나 FATCA가 시행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FATCA란 이 사람의 금융계좌 정보를 미국 과세당국이 일괄적으로 모아서 한국 국세청에 알려줄 수 있도록 하는 협약이다. 35년간 숨어있던 이들의 소득 정보가 투명하게 드러난다는 얘기다.
미국이 FATCA를 실시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미국인인데 한국에 금융계좌를 은닉해 놓은 사람들이 탈세하고 있는 세금을 끄집어내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캐나다 등의 다양한 국가들의 FATCA 협약을 맺고 있다. 사실상 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해외에서 소득세를 탈루하진 못하게끔 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국적포기세라는 것이 있어서 미국 국적을 포기하는 순간, 증식했던 재산에 대해 소득세를 내야 하는데 문제는 상속세처럼 현금이 없는 상태라 하더라도 무조건 내고 봐야 한다는 점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사실상 한국인인데 미국 국적을 갖고 있는 거액자산가들은 국적 포기를 할 만하지만 그럴 경우 더 무서운 세금폭탄이 기다리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의 금융계좌 정보가 상대국에 통보되는 것은 아니다. FATCA는 기본적으로 5만달러 이상의 금융계좌 정보만을 교환하자는 취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 과세당국의 시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해외금융계좌신고제도를 통해 10억원 이상 해외 금융거래가 있는 사람들은 자진 신고하게끔 돼 있다. 미국도 FBAR라는 제도가 있어 1만달러 이상 해외 금융계좌가 있는 이들은 자진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FATCA가 시행되면 약 5000만원, 또는 그보다 낮은 금액을 해외에 보유하고 있는 한국인, 미국인들의 금융정보가 자동적으로 각국 국세청에 보고되므로 훨씬 넓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력한 세금 징수가 시행되는 셈이다. 미국이 FATCA를 적극 밀고 있는 이유다.
FATCA의 한국 적용 시기는 2015년 9월이지만 이때 교환되는 금융정보는 2013년 말 잔액, 2014년 말 잔액이다. 한국은 2014년 7월 말 잔액부터 교환하려는 내용의 협약이 추진되고 있다. 이 잔액들을 기준으로 2015~2016년 국세청과 IRS가 각기 한국인과 미국 영주권자 등에게 세금을 추징하게 된다. 단, 한국인인데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유학생, 연구원, 방문교수, 연수생 등은 제외된다. 한 시중은행 PB센터 소속 세무사는 “미국 해외계좌신고제도(FBAR)에 따라 막대한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고객들은 차라리 은행에서 돈을 모두 빼서 현금으로 보유하는 편이 낫다”고 설명했다.
미국 국세청, 해외계좌신고제(FATCA) 개요 시행:2014년 1월
목적:미국 납세의무자들의 조세 회피 방지
대상:개인 5만달러, 법인 25만달러 초과 계좌 보유, 시민권자·영주권자 외 6개월 이상 미국 체류자
신고의무자:대상자와 거래하는 은행, 보험, 증권사 등 전 금융사
제재:고객 정보 미제공 금융사 최대 30% 부가금 징수
기타:국가간 협약 체결시 과세당국 통해 간접 자료 제공
[신현규 매일경제 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5호(2013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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