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저금리 죽을 맛 은행들 허리띠 죄기

    입력 : 2013.07.15 09: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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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저금리 시대가 도래하면서 시중은행들의 수익성에 빨간 불이 켜졌다. 당장 올해 1분기 시중은행의 영업실적을 보면 당기순이익은 1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조3000억원)보다 반토막이 났다. 가장 큰 원인은 금리가 하락하면서 이자수익이 9000억원가량 감소한 탓이다. 1분기 중 국내은행의 이자이익은 8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조7000억원)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자수익은 계속해서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자수익은 지난 2011년 4분기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이자수익 자산 규모의 증가세가 둔화된 데다 기준금리 하락으로 순이자마진이 계속해서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순이자마진(NIM)은 은행의 수익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그런데 올해 1분기 순이자마진(NIM)은 1.95%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분기(1.91%)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기준금리 인하로 대출 금리가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예대마진이 줄어들자 은행에서는 심지어 고액 예금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금 금리는 고객관리 차원에서도 낮추기가 어렵다”며 “요즘 같은 때 고액 예금이 달갑겠냐”고 말했다.

    경기 불황의 장기화로 부실 자산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지면서 시중은행의 향후 수익성에 비상이 걸렸다. 저금리·저성장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시중은행들은 너도나도 자구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도 취임 후 첫 임원 회의에서 “비이자수익을 늘리라”고 주문했다. 수수료, 투자 수익 등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고 향후 성장에 대비해 장기적인 먹거리를 마련하는 데 주력하라는 얘기였다. 국내 시중은행의 총 이익 중 이자 이익 비중은 88%로 영국(44%) 미국(65%) 일본(69%) 은행들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다. 비이자수익 비중은 10년 전에 비해 2배 늘어났지만 아직도 한참 모자라다.

    이제 은행이 가만히 창구만 지키고 이자만 챙겨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투자 상품, 외환 업무 등 각종 사업 확대를 통해 비이자 수익을 늘리고 새로운 수익 기반을 찾아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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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점·은행원 수 속속 줄여 저금리·저성장 시대를 타개하기 위해 은행들이 당장 꺼내들 수 있는 카드는 몇 장 없다. 가장 쉬운 조치가 인건비 등 비용절감이다. 최근 시중은행들이 점점 애물단지가 되어가는 지점과 소속 은행원 수를 줄이고 있다. 스마트뱅킹이 보편화되면서 지점 방문고객이 점점 줄어들고 지점에 드는 비용은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금리로 은행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지점 구조조정에 대한 압박이 어느 때보다 더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11개 시중은행(지방은행 제외)은 지난해 말 대비 올해 4월까지 39개 지점을 줄였다. 지난해 말 기준 6782개였던 지점 수가 6743개로 줄었다. 지점에 배치된 인력도 7만3578명에서 7만3025명으로 553명 감소했다. 은행별로는 씨티은행이 15개 지점을 줄였고, 신한은행이 12개, NH농협은행이 8개를 줄였다. 지점 인력의 경우 KB국민은행이 493명 감소했고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이 각각 184명, 151명 감소했다.

    신한은행은 지점을 대형화하는 방식으로 지점 수를 줄이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올해 초 지역별로 위치가 겹치거나 고객군이 중복되는 소형 지점의 경우 중대형으로 통합했다”며 “점포 운영비용을 아끼면서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현재 인력 중 30% 정도는 불필요하지만 노조에게 눈치 보여 어찌할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은행 지점당 인력은 4월 말 기준 평균 10.83명. 지점 자체가 많지 않은 산업은행(지점당 14.46명)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곳은 KB국민은행(12.46명)과 외환은행(12.21명)으로 전체 평균보다 1.5명 더 많았다. 현재 주요 시중은행의 평균 연봉은 7500만원으로 일반 대기업보다 높은 수준이다. 앞으로도 은행의 지점과 지점에 배치된 인력은 은행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돼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상업용 부동산 투자에 눈독 저금리 상황이 이어지자 은행들은 금융자산 이외에 부동산, 문화콘텐츠 등 틈새 투자자산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KB국민은행 등 일부 은행들은 수익형 부동산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은행권에서는 처음으로 KB스타오피스사모부동산투자신탁1호를 만들어 지난해 10월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의 이레빌딩에 투자한 바 있다. 펀드 투자기간은 10년으로 운용기간 연평균 배당 수익률이 7~8% 수준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7~10%의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면 투자해볼 만하다는 입장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앞으로도 펀드를 추가 조성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 중소형 빌딩 등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IBK기업은행은 최근 문화콘텐츠 투자로 쏠쏠한 이익을 보고 있다. 문화콘텐츠 투자 여신 부서를 독립부서로 만든 기업은행은 수준 높은 문화콘텐츠를 발굴해 투자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영화 <연가시>에 10억원을 투자해 4억3700만원을 남겨 투자 원금 대비 72%의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으며, 영화 <베를린>에도 10억원을 투자해 3억2000만원의 수익을 냈다. 액수 자체는 크지 않지만 첫 출발로서는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이외에도 문화콘텐츠 관련 중소기업 지원 펀드를 만들어 문화콘텐츠 제작을 지원함과 동시에 수익률을 기대하고 있다. 해외 진출에 속도 내기도 이자마진이 줄자 국내 은행들은 투자 상품과 보험 상품을 판매해 수수료 수입을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수수료 수입에 대한 당국의 규제가 늘면서 이마저도 마땅치 않은 형편이다. 해외 진출을 확대해 외환 관련 수수료 등 비이자 수익을 확대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10여년 전부터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거 진출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 신흥국 시장 개척에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금융 인프라가 미비한 신흥국의 경우 진출이 상대적으로 쉬울 뿐 아니라 향후 국가 성장률도 높게 점쳐지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윤용로 행장은 지난달 초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 참석차 방문한 인도에서 “저금리·저성장 기조에서는 경쟁력 확보가 쉽지 않다”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국내보다 해외진출을 통해 해외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환은행은 지난달 중순 국내 금융사 최초로 터키 이스탄불에 사무소를 개설한 데 이어 올해 말까지 인도네시아 즈룩, 필리핀 클라크, 일본 후쿠오카, 중국 톈진 시칭, 인도 첸나이 등지에 영업망을 추가로 개설할 예정이다.

    아직까지 국내 은행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전체 수익의 평균 1% 남짓에 불과하다. 해외 지점들의 타깃이 한국에서 진출한 수출 기업이나 교민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해외 진출한 은행들이 하나둘씩 늘면서 과도하게 경쟁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앞으로는 누가 먼저 현지화 전략에 성공하느냐가 장기적인 수익성을 향상시키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 관계자는 “장기적인 투자와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바탕으로 현지에 진출한 국내기업뿐 아니라 현지 고객들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INTERVIEW / 틸 슈에르만 올리버와이먼 금융분과 시니어 파트너 은행들, 리스크 에피타이트부터 따져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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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틸 슈에르만 올리버와이먼 시니어 파트너는 저금리·저성장 시대의 생존 전략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스트레스 테스트’(재무건전성 평가)를 적극 활용하라고 개별 은행들에게 조언했다. 그는 “스트레스 시나리오에 따라 개별 은행이 리스크 에피타이트(위험 성향)을 따져보라”며 “자기 회사의 성향을 알아야 향후 거시 경제 지표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성장 전략을 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슈에르만 씨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 FRB 은행감독국 신용리스크 담당 헤드를 역임하면서 대형은행들을 상대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하고 체질을 개선해나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는 “과거에는 위기 해결이 시급했기 때문에 감독 당국이 규제를 위해 스트레스 테스트를 기획해 강제로 실시했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은행들 자발적으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장기적인 성장 전략을 짜는 데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CEO들에게 리스크 성향에 대해 물으면 모호하게 답변하는 경우가 많다”며 “구체적으로 경기 침체로 GDP가 떨어지거나 실업률이 올라갈 때 어느 정도 수준까지 적당하다고 판단하는지, 자기자본비율(BIS)은 어느 선까지 떨어져도 괜찮은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그 결과에 따라 얼마나 공격적인 혹은 보수적인 성향인지를 구체적인 수치로 파악하고 있어야 위기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전략을 짤 수 있다는 얘기다. 슈에르만 씨는 요즘 같이 경기 변동성이 큰 시기에 위기 요인을 사전에 인지하고 그에 대한 대응 전략을 짜는 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영 환경이 나빠질 것으로 예상될수록 스트레스 테스트가 전략 기획에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배미정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4호(2013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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