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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연구원 공동기획 / 이슈진단] ④은행 간 성과 차이 바로 이것에 달렸다
입력 : 2012.07.06 17:2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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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BC 경영진의 판단은 선제적 조치의 일환이었다. 대형 금융그룹의 자산 총액은 연결기준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개 1000조원 전후이다.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총자산이익률(ROA) 1%를 달성하면 세계적 금융회사로 손색이 없다. 따라서 10조원 규모의 상각은 한 해 농사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메가톤급 폭탄선언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HSBC의 노력은 보상을 받았다. 여타 금융그룹들과 마찬가지로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지만 적어도 위기의 진원지는 되지 않았다.
HSBC는 어떠한 위기관리 시스템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는가? 여기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리스크관리에 대한 운영체계의 확립과 이를 뒷받침하는 인프라의 구비를 들 수 있다.
리스크관리의 출발은 운영체계의 확립이다
선진금융기법에 왕도는 없다. 다만 외국계 은행들의 경영방식으로 본 금융의 본질은 리스크관리다. 아무리 정교한 리스크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전문 인력을 확보한다 해도 비체계적 리스크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상당 부분 운에 의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크관리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 지배구조다. 벤더(Vendor)가 만들어주는 시스템만 장착했다고 리스크관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대해 사전적으로 또 사후적으로 이를 확인하고 피드백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조직의 말단에서부터 최상층까지 이중삼중 갖춰져 있어야 한다.
리스크관리는 생산된 정보 활용을 통해 완성된다 리스크관리 체계에 대한 경영진의 이해를 높이고 관련 조직 및 시스템을 구축한다 하더라도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면 리스크관리는 실패한다.
자원의존(Resource Dependence) 모델이라는 조직이론이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어떤 조직의 존망(存亡)은 그 조직이 의존하는 핵심 자원의 통제에 의해 결정된다. 즉 기업의 전략적 선택은 사적 정보의 확보를 통한 신속한 대응을 의미한다. 리먼브라더스의 전 CEO 풀드는 미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왜 우리 회사가 망하도록 내버려 뒀는지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실채권을 가장 많이 보유했던 리먼의 최고책임자가 회사사정을 모를 리 없을 텐데 궤변을 늘어놓는 이유가 뭘까. 경쟁사였던 메릴린치와 시티는 신용위기 초기국면에 CEO를 교체하고 부실을 공표하면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리먼은 기존 체제를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풀드가 ‘월스트리트의 고릴라’로 불리며 15년 동안이나 리먼을 이끌던 신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외부 상황에 대한 전략적 조정이 늦어지면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도 리먼에게는 이슈가 돼버렸다.
은행과 정보 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은행의 가장 큰 특징은 고객과의 관계 형성을 통해 정보를 획득하고 그 정보를 모니터링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핵심 고객의 확보나 부실채권 관리, 대출의 결정 등이 모두 이 맥락에서 이뤄진다. 은행의 정보생산 능력은 거래비용을 감소시켜 사회전체의 복지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재무개선 약정만 하더라도 은행의 대리감시(Delegated Monitoring) 기능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데 어떤 기업들은 반발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은행이 마치 ‘갑’인양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결과가 아닌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은행이 은행답기 위해서는 정보의 생산 및 공유 능력이 향상돼야 한다. 정보가 곧 ‘돈’이기 때문이다.
지금 전 세계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후유증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우리나라 은행산업은 어떠한가. 전 세계의 금융혁신은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지도를 크게 변화시켰다. 지난 15년 동안 자산, 당기순이익, 자본금 규모 등 하드웨어 측면의 성과는 괄목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문제는 갑자기 규모가 커짐에 따라 나타나는 캐즘(Chasm)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될 것이다. 우리는 리스크관리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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