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연구원 공동기획 / 이슈진단] ④은행 간 성과 차이 바로 이것에 달렸다

    입력 : 2012.07.06 17:2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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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초반쯤으로 기억된다. 초대형 금융회사인 HSBC는 10조원에 달하는 부실여신 상각 계획을 발표했다. 위기의 전운조차 감지하기 힘들었던 시점에 나온 발언이다 보니 시장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혼자 너무 튀는 게 아니냐고 빈축을 살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장반응은 근시안적이었다. 1년 만에 글로벌 금융공동체는 미증유의 패닉 상태에 빠지고 만다.

    HSBC 경영진의 판단은 선제적 조치의 일환이었다. 대형 금융그룹의 자산 총액은 연결기준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개 1000조원 전후이다.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총자산이익률(ROA) 1%를 달성하면 세계적 금융회사로 손색이 없다. 따라서 10조원 규모의 상각은 한 해 농사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메가톤급 폭탄선언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HSBC의 노력은 보상을 받았다. 여타 금융그룹들과 마찬가지로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지만 적어도 위기의 진원지는 되지 않았다.

    HSBC는 어떠한 위기관리 시스템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는가? 여기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리스크관리에 대한 운영체계의 확립과 이를 뒷받침하는 인프라의 구비를 들 수 있다.

    리스크관리의 출발은 운영체계의 확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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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쏠림현상(Herd Behavior)은 반복되어 나타난다. 멀리는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투기에서부터 가깝게는 2000년대 초 IT 버블, 최근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까지 다양한 형태로 둔갑해 발생했다. 쏠림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리스크관리다. 그런데 말이 쉽지 리스크관리가 거저 되는 것이 아니다. 2003년 SK사태가 불거졌을 때 모 시중은행 임원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그동안 SK그룹에 수조원의 대출을 했지만 리스크를 감안한 이익규모를 계산해 보니 수십억도 되지 않았다. 그 돈 벌자고 회사의 명운을 벼랑끝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영업 관행이다. 충당금 적립이란 경험손실률에 비춰 부실자산의 일부분을 못 받는 돈으로 미리 규정하는 회계 방식이다. 당연히 당기순이익을 계산하는 데 마이너스 요인이다. 우리나라 은행들과 선진 금융회사를 비교해 보면 이 부분에서 큰 차이가 난다. 우리는 잘 벌다가도 한 방에 몇 년치 이익을 날려버리는 이른바 이익의 변동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미국, 영국 등 선진 금융회사의 이익 변동성은 매우 낮다.

    선진금융기법에 왕도는 없다. 다만 외국계 은행들의 경영방식으로 본 금융의 본질은 리스크관리다. 아무리 정교한 리스크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전문 인력을 확보한다 해도 비체계적 리스크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상당 부분 운에 의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크관리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 지배구조다. 벤더(Vendor)가 만들어주는 시스템만 장착했다고 리스크관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대해 사전적으로 또 사후적으로 이를 확인하고 피드백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조직의 말단에서부터 최상층까지 이중삼중 갖춰져 있어야 한다.

    리스크관리는 생산된 정보 활용을 통해 완성된다 리스크관리 체계에 대한 경영진의 이해를 높이고 관련 조직 및 시스템을 구축한다 하더라도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면 리스크관리는 실패한다.

    자원의존(Resource Dependence) 모델이라는 조직이론이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어떤 조직의 존망(存亡)은 그 조직이 의존하는 핵심 자원의 통제에 의해 결정된다. 즉 기업의 전략적 선택은 사적 정보의 확보를 통한 신속한 대응을 의미한다. 리먼브라더스의 전 CEO 풀드는 미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왜 우리 회사가 망하도록 내버려 뒀는지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실채권을 가장 많이 보유했던 리먼의 최고책임자가 회사사정을 모를 리 없을 텐데 궤변을 늘어놓는 이유가 뭘까. 경쟁사였던 메릴린치와 시티는 신용위기 초기국면에 CEO를 교체하고 부실을 공표하면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리먼은 기존 체제를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풀드가 ‘월스트리트의 고릴라’로 불리며 15년 동안이나 리먼을 이끌던 신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외부 상황에 대한 전략적 조정이 늦어지면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도 리먼에게는 이슈가 돼버렸다.

    은행과 정보 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은행의 가장 큰 특징은 고객과의 관계 형성을 통해 정보를 획득하고 그 정보를 모니터링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핵심 고객의 확보나 부실채권 관리, 대출의 결정 등이 모두 이 맥락에서 이뤄진다. 은행의 정보생산 능력은 거래비용을 감소시켜 사회전체의 복지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재무개선 약정만 하더라도 은행의 대리감시(Delegated Monitoring) 기능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데 어떤 기업들은 반발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은행이 마치 ‘갑’인양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결과가 아닌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은행이 은행답기 위해서는 정보의 생산 및 공유 능력이 향상돼야 한다. 정보가 곧 ‘돈’이기 때문이다.

    지금 전 세계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후유증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우리나라 은행산업은 어떠한가. 전 세계의 금융혁신은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지도를 크게 변화시켰다. 지난 15년 동안 자산, 당기순이익, 자본금 규모 등 하드웨어 측면의 성과는 괄목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문제는 갑자기 규모가 커짐에 따라 나타나는 캐즘(Chasm)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될 것이다. 우리는 리스크관리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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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2호(2012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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