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PL] NPL 투자로 재미, 김 사장 지갑이 두둑

    입력 : 2012.02.29 10:58:43

  • #1. 서울 강남의 한 사설 부동산학원. 희끗한 머리의 퇴직자들 사이에 40~50대 주부들이 자리 잡은 이곳에선 부실채권(NPL)경매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8번 강의에 50만원이라는 비싼 수강료에도 50여 석 규모의 강의실에서는 빈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2시간 동안 진행된 강의의 주제는 ‘NPL과 연계한 경매투자’.

    이곳에서 만난 한 수강생은 “금리가 쥐꼬리만 한데다 증시는 불안하고 단순 부동산 매매 시장은 정체돼 NPL투자에 뛰어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2. 주부 김주현(35·가명)씨는 지난해 10월 경매가 진행 중인 수도권 소재 84㎡아파트(감정가 2억3000만원)의 1순위 근저당권을 자산유동화전문회사를 통해 9000만원에 매입했다. 근저당권에 설정된 채권최고가액(경매 낙찰시 근저당권을 가지고 권리 행사를 할 수 있는 최고 금액)은 1억2000만원. 원금과 이자, 연체이자를 합친 금액이 이미 1억2000만원을 넘어버린 NPL이다. 아파트는 1차례 유찰 끝에 1월에 1억5000만원에 법원 경매에서 낙찰됐고 김 씨는 채권 최고가액인 1억2000만원을 챙겼다. 김 씨는 4개월 만에 3000만원의 이득을 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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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손들이 즐기는 NPL 투자방법은? 경제 상황이 악화될 때 불어나는 NPL이 새로운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 정체된 부동산 시장, 낮은 예금 금리, 불확실한 주식시장 등 투자처가 없는 시대의 ‘틈새투자전략’ 대상으로 NPL이 뜨고 있는 것이다.

    NPL투자는 IMF 환란 시절 ‘큰손 투자’로 주목 받던 투자법이다. 당시 원금의 10분의 1가격에 NPL을 사들인 큰손들은 이를 토대로 주요 지역 유망 부동산을 싹쓸이해 엄청난 차익을 냈다. 강남 일대 고급 룸살롱에서 ‘이대로~’라는 건배사가 유행하기도 해 서민들과 위화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NPL이란 은행 등 금융사가 원금이나 이자를 3개월 이상 회수하지 못한 대출을 뜻한다.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무수익여신’이라는 전문용어도 있지만 통상 ‘부실채권’으로 부른다.

    NPL투자는 은행 등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준 대출이 부실화할 경우에 대비해 담보부동산에 설정해 놓은 권리인 ‘근저당권’을 매입하는 방식의 투자를 말한다. 보통은 원금과 이자, 연체 이자를 합한 금액이 대출할 때 근저당권에 설정해놓은 채권최고금액((채권자가 배당 시 행사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을 넘어선 물건이 대부분이다.

    1순위 근저당권이 있으면 경매에서 제3자가 낙찰 받을 때 1순위로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 이때 채권최고액보다 NPL 가격이 싸기 때문에 발생하는 차익이 투자 목표가 된다. 채권최고액만큼을 전액 회수하려면 제3자가 높은 가격으로 낙찰을 받아야 한다.

    NPL투자는 부동산 자체가 아닌 배당금을 노린다는 점에서 경매와는 성격이 다르다. 다만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경매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경매 기초 지식이 있어야 한다. 만일 계속 유찰돼 혹시 투자금 아래로 경매 낙찰가가 내려갈 것 같다면 권리분석을 한 후 직접 낙찰 받는 방법도 있다. 경매 입찰 때 시세 수준의 입찰가를 써내도 근저당권과 상계처리하면 돼 낙찰 때에도 유리하다. 은행은 자산유동화전문회사에 1순위 근저당권을 대량으로 매각하고 자산유동화회사가 개인투자자들에게 물건별로 쪼개서 판다. 은행은 경매가 진행 중인 동안에 곧바로 대금을 회수할 수 있어서 좋고 개인들은 예상 경매 낙찰가보다 낮은 가격에 근저당권을 매입할 수 있으므로 서로 윈윈하는 투자다.

    급증하는 NPL물건 IMF 구제금융 이후 자취를 감췄던 NPL은 지난 2009년 이후 급증추세에 있다. 주로 2006~2007년 부동산이 호황을 누릴 때 대거 집행됐던 대출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실화된 탓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태인에 따르면 전체 경매물건 대비 NPL물건 비중은 각각 2009년 4486건(4.77%), 2010년 6466건(8.03%), 2011년 8283건(11.02%)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특히 올해 경기전망이 악화되면서 금융권의 NPL 매각은 봇물을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은행권에서만 12조원이 넘는 NPL이 매각됐고, 신용카드나 캐피털사 등 여신금융업종에서도 연체율이 일부 상승하면서 물량이 잇따르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1조원대의 NPL이 시장에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NPL이 이처럼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경기 전망이 어둡기 때문이다. NPL 시장은 경기가 나빠질 때 팽창하곤 한다. 지난해 은행들은 올해 들어 경기가 악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NPL을 대거 정리했다. 보유하는 것보다 차라리 매각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또 금융사들이 지난해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을 도입하면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을 높이기 위해 NPL을 털고 있는데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NPL 비율을 1.5%대로 유지할 것을 지시하면서 은행들이 NPL을 줄여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최근 나오는 NPL 물량은 건설업과 조선업 불황에 따른 것이 많다. 이들 산업이 2006~2007년 호황을 누릴 당시 대거 집행됐던 대출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황으로 돌아서면서 NPL로 돌아온 것이다. NPL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은행들이 NPL을 대거 매각하긴 했지만 최근 들어 또다시 회수가 안 되는 채권이 잇따라 나타나면서 올해 들어서도 1조원 대의 물량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나온 NPL은 시장에서 할인가에 매각된다. NPL을 매입한 업체들은 채권을 재매각하거나 추심 등의 과정을 거쳐 수익을 올린다. NPL이 ‘돈이 된다’는 인식이 번지면서 NPL 시장에도 수많은 업체들이 뛰어들고 있다. 2010년까지만 해도 유암코(연합자산관리)나 우리F&I 정도가 시장에서 NPL을 매입해왔지만 지난해부터 메리츠, 미래에셋 등 제2금융권과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이 시장에 앞다퉈 들어왔다. NPL업계 관계자는 “외국계 등을 포함해 NPL 시장에 참여하는 업체들은 10여 군데 정도로 늘었다”며 “최근에는 보험사 등도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부동산 중개업소 / 주택형 상가
    미국 부동산 중개업소 / 주택형 상가
    절세효과가 최대 장점 직장인 조진호(42·가명)씨는 지난해 6월 감정가 5억원짜리 상가(현 시세 4억5000만원)에 설정된 채권최고액 4억7000만원(채권원금 3억6150만원)짜리의 1순위 근저당권을 3억5000만원에 매입했다. 당초 조 씨는 배당 수익을 노렸지만 경매가 2회 유찰되며 최저가가 3억4000만원까지 떨어지자 방어 입찰을 통해 4억1000만원에 직접 낙찰 받았다. 낙찰대금과 근저당권을 상계처리한 조씨는 4억7000만원에 급매로 이 상가를 정리했다. 낙찰 당시 취득가액이 4억1000만원이었기 때문에 6000만원이란 차익을 챙기고도 조 씨는 양도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NPL투자의 최대 장점은 ‘절세효과’다. 위의 사례에서 4억1000만원에 낙찰을 받은 조 씨는 양도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조 씨의 경우 취득가액의 0.5%에 해당하는 취득·등록세는 높아졌지만 1년 미만 보유 시 양도 차익의 50%를 부과하는 양도소득세에 비하면 안 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근저당권을 활용하면 채권원금의 50%선까지 대출이 가능해 실투자금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대출은 매도 이후 갚거나 취득한 부동산을 가지고 또 대출을 받아 갚으면 된다. 배당금을 받을 때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법원은 배당금과 채권매입가 사이의 차익은 비과세 대상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NPL전문가인 이영준 법무법인 덕양 자산관리팀장은 “경매 시장보다 가장 큰 이점은 절세효과”라며 “취득가가 높아질 경우 이에 따른 대출가능 금액도 높아지므로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NPL투자 유의점 ‘원금 보장, 매월 2.5% , 연30% 고수익 지급.’ 지난해 9월 투자자들로부터 투자금 62억원을 가로채 경찰에 붙잡힌 투자업체 대표가 내걸었던 광고 문구다.

    NPL투자가 개인투자자들에게 확산되면서 고수익을 미끼로 투자금을 가로채는 경우도 늘고 있다. 경찰 단속으로 이런 사기가 다소 줄어들었지만 확인 결과 여전히 투자 정보 카페와 인터넷 블로그를 중심으로 유사한 자문업체들이 성행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과도하게 높은 수익률을 제시할 경우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자칫하면 새로운 투자금으로 기존 배당금을 지급하는 ‘폰지식’ 투자업체의 덫에 걸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이영준 법무법인 덕양 자산관리팀장은 “NPL시장이 과열되면서 자문업체들도 수익률 내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높은 수익률만 볼 게 아니라 업체의 신뢰도를 꼼꼼히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잡한 권리분석을 피해 제3자 낙찰을 통해 배당금을 챙기려는 목적을 가졌다면 최근 낙찰가율 하락이 부담이다. NPL투자 열풍으로 채권 가격은 계속 올라가는 반면 수익금 회수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방어 입찰을 하지 않는 경우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다. 경매정보업체 부동산태인에 따르면 새해 1월 전국 아파트 낙찰가율은 전달(81.57%)보다 1.87%p 하락한 79.70%를 나타냈다. 전국 아파트 낙찰가율이 80% 이하로 내려가기는 지난 2010년 9월(78.57%) 이후 1년4개월 만에 처음이다.

    직접 낙찰을 하는 경우에는 일반 경매투자의 위험성을 그대로 안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경매절차가 중간에 정지되거나 지연되는 경우 묶여있는 근저당권을 다시 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중간에 예상하지 못한 유치권 신고에 대한 대비도 해야 한다. 1순위 근저당권이 있더라도 체납국세나 소액임차금보다 후순위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부동산 정보업체 관계자는 “NPL투자가 최근 ‘묻지마 투자’로 변질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은행이 대출금을 회수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판단한 물건들이 대부분인 만큼 면밀한 실사 없이 함부로 투자에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개인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시장에서 좋은 물건을 찾기가 점점 어렵다. 권리관계가 깨끗해 돈을 떼일 염려가 전혀 없는 NPL매물은 비싼 값에 팔려 시장 형성 초기의 수익률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김창학 지지옥션자산운용 고문은 “명도(집 비우기)나 임차인 권리 관계가 풀리지 않는 것들이 많아 깨끗한 물건이 흔치 않다”면서 “수익률을 높이려면 실사와 함께 전문가 상담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NPL투자는 기존 경매투자보다 유리한 점이 많다”면서 “다만 경매투자 위험성이 그대로 있어 정확한 실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의할 점도 있다.부동산 경매업체 관계자는 “1순위 근저당채권자라고 해도 임금채권과, 체납세금, 소액임대차보증금 등에 배당 순위가 밀린다”면서 “정확한 권리분석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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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손들, 경매펀드·미국 NPL로 시선 돌려 지난해 1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다운타운 거리에서 한 버스가 30여 명의 한국인을 태웠다. 얼핏 보면 일반 관광객 같지만 이 버스는 잠시 후 평범한 한 주택 앞에 멈춰섰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이 집을 향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이 버스는 거액 자산가들을 태운 투자 버스다. 한 한인부동산업체가 미국 내 NPL 매물을 소개하기 위해 ‘버스투어’ 행사를 연 것이다. 이 업체 관계자는 “버스 투어를 기획할 때만 해도 걱정이 많았는데 하루 만에 희망자를 다 채웠다”고 말했다.

    개인들이 잇따라 NPL시장에 참여하면서 거액 자산가들은 한국 시장이 아닌 국외로 머리를 돌리고 있다. 미국 부동산 NPL의 경우 한국보다 가격 하락이 더 커 차익이 많고 본인 직접 낙찰 시에는 자녀 유학용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권리관계가 너무 복잡해 풀리지 않는 경매 물건은 시가의 30~40%에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전문가들과 함께 ‘경매펀드’를 직접 만들어 인수하기도 한다. 전문가에게 운용수수료를 줘 권리관계를 풀도록 하고 고수익을 올리자는 것이다.

    부동산 경매펀드 관계자는 “웬만한 경매지식으론 권리관계를 풀 수 없는 물건들이 있다”면서 “경매 전문가들이 며칠간 분석해 문제가 풀리면 투자자 2명 정도의 자금을 모아 물건을 인수한다”고 설명했다.

    ■ NPL(Non-Performing Loan)이란
    대출 이자가 3개월 이상 연체된 무수익 여신을 뜻한다. 이를 유동화시켜 팔고 사게 만든 것이 NPL채권이다. NPL채권에는 아파트, 빌딩, 상가 등 담보가 있는 담보부 NPL채권과 신용대출 등이 부실화된 무담보부NPL채권이 있다. 개인NPL투자는 주로 담보부 NPL채권에 집중돼있다. [정동욱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dwjung@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8호(2012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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