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nk] 돈 넣어도 안전한 우량 저축은행 옥석 가리기

    입력 : 2011.06.10 10: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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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으로는 드물게 시중은행 부행장 자리에 오른 A씨. 최근 친구들이 저축은행 투자에 대해 물어오는 일이 부쩍 늘었다. 바쁜 은행 임원 사정을 알면서도 믿을 만한 곳이 없으니 친구들이 무작정 하소연을 하고 나선다는 게 A씨의 전언이다. 이유는 하나. 저축은행의 잇단 도산이다. “강남에서 저축은행 3~4곳에 2억원 안팎의 자금을 맡기지 않은 부자가 없었을 겁니다. 저축은행의 5000만원 예금보장과 은행과 비교해 1%포인트 가량 높은 금리 탓에 저축은행 부실 사태 전까진 은행들의 강남권 소매금융영업이 어려울 지경이었죠.”

    대전저축은행 논현동지점의 텅 빈 사무실
    대전저축은행 논현동지점의 텅 빈 사무실
    또 다른 시중은행 본부장 B씨의 말이다. 저금리 상황에서 높은 이자를 노리던 투자자들의 안식처 역할을 했던 저축은행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 2월17일 대전·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되고 가지급금을 받으려는 투자자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선 모습이 일간지와 TV를 장식하자 아예 저축은행 거래를 끊는 고객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금융권 안팎에선 이번 사태로 약 2조원이 넘는 예치금이 저축은행을 빠져나와 부동자금화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확한 자금이동은 3월 말 1분기 결산이 나와야 알 수 있겠지만 전체 저축은행이 신뢰의 위기에 놓인 것은 확실한 셈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무엇일까. 여전히 저축은행의 높은 금리가 매력적인 투자자라면 어떻게 옥석을 가려야 할까. 전문가들은 저축은행들이 공개하는 재무제표를 면밀히 살피고 평소 영업 분야에 꾸준한 관심을 가진다면 손해볼 이유가 없다고 충고한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브릿지론에 올인 역풍
    대전저축은행 논현동지점을 방문한 한 고객이 영업정지문을 보고 있다.
    대전저축은행 논현동지점을 방문한 한 고객이 영업정지문을 보고 있다.
    저축은행이 대량 부실을 만든 발단은 1997년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31개였던 저축은행은 외환위기 이후 138개가 사라졌다. 정부는 이때 예금자보호제도를 정비하는 데 소홀했다. 1인당 2000만원이던 예금자보호 한도를 외환위기를 전후해 무제한으로 일시 확대한 뒤 제자리로 돌려야 했지만 2001년 1인당 5000만원으로 결과적으로 확대해버린 것이다. 당시 수신 기반이 마땅치 않았고 영세했던 저축은행이 자생력을 가지도록 일종의 인센티브를 준 것이지만 이는 능력이 안 되는 사업자가 쉽게 돈을 끌어들여 위험한 곳에 투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저축은행의 당시 5000만원 예금보호한도는 2001년 1인당 GDP(국내총생산)의 5배 수준으로 살아남은 저축은행으로 계속 예금이 유입되는 계기가 됐다.

    한 전직 금융당국 관계자는 “참고가 된 다른 나라들은 1인당 GDP의 2~3배 수준으로 예금자보호 한도를 결정하고 있었다”며 “시장 불안이 가시지 않아 어느 정도 높은 수준이 필요했지만 지나친 면이 없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금은 계속 유입됐지만 저축은행들은 자금 운용에 큰 제약을 받았다. 예금자들에게 높은 금리를 주면서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대출처를 찾지 못한 것이다. 이후 저축은행들은 조금만 수익이 난다고 하면 업계 전체가 그 쪽으로 쏠리는 무리한 행위를 반복해 왔다.

    2003년 ‘신용대출’ 대란이 대표적이다. 이때 충격을 받은 저축은행들은 한동안 숨고르기를 하다 다시 무리를 하기 시작했다. 현재 위기의 근원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이 그것이다. PF대출은 부동산 바람을 타고 2005~2007년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거품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8년 말 본격화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대거 부실화된 것이다. 업계 전체적으로 PF대출 잔액은 12조원을 넘고 표면적인 연체율은 20%대지만 절반 이상은 부실화될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대출 부실은 결국 저축은행 실적을 악화시키고 두려움에 빠진 예금자들의 예금 이탈을 촉발한다. 그러면 저축은행은 더 이상 정상적인 영업을 하기 어렵게 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금융당국은 영업정지 처분을 내린다. 6개월 정도 문을 닫게 하고 정비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성공률은 극히 낮다. 자체 정상화가 가능했다면 영업정지 상황까지 갈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전체적으로 위기감이 확산되기 전 정부는 대체로 예금보험공사로 하여금 ‘가교저축은행’을 만든 뒤 이 은행으로 영업정지 저축은행의 자산·부채 가운데 일부를 이전시킨 뒤 해당 저축은행을 폐쇄하는 방식으로 정리해 왔다.

    현재 정부는 저축은행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특별구조조정기금(예보 공동계정), 4대 금융지주 등 금융사 차입, 정부 구조조정기금 등을 추진하고 있다.

    부실 저축은행의 경영 악화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PF대출 부실은 부동산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어떤 저축은행이 추가로 영업정지를 당하거나 위기에 몰릴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저축은행들은 3개월마다 경영정보를 자사 홈페이지와 저축은행 중앙회 홈페이지에 공시한다. 이전에는 6개월마다 공시했지만 저축은행 위기가 닥치면서 ‘급작스런 경영 악화에 투자자들이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지적에 따라 공시주기를 단축했다.

    게재 시점은 결산일로부터 2~3개월 뒤다. 3월 현재 저축은행 홈페이지에는 작년 12월 말 결산 경영공시를 찾을 수 있다. 업데이트된 경영공시가 어느 시점에 올라올지는 정부의 공시 개선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주식시장에 상장된 저축은행 등 20여 곳은 이미 3개월마다 한 번씩 공시를 하고 있다.

    개별 저축은행 사이트에서 자료를 찾아보기 어려울 경우 저축은행중앙회 사이트가 유용하다. 저축은행중앙회 사이트에서 ‘경영공시’를 클릭하면 105개 저축은행별 경영공시에 접근할 수 있다. 해당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방식이어서 아직 비교해 볼 수는 없다. 금융당국은 경영정보를 비교 분석할 수 있는 서비스도 검토 중이다.

    우량 저축은행 판별법… 4가지를 살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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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거래하거나 거래를 원하는 저축은행의 홈페이지를 찾았다면 다음은 재무제표를 살피는 것이다. 무엇을 중점적으로 살펴봐야 할까. 크게 4가지를 들 수 있다.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은행의 자본건전성이다. 대표적인 지표가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BIS)이다. 이는 높을수록 좋다. BIS비율이란 은행이 가진 자기자본(순수한 은행돈)을 대출·지급보증과 같이 은행이 빌려준 돈(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눈 값이다.

    BIS비율이 8%라는 것은 위험가중자산이 100일 때 자기자본이 8이란 뜻이다. 지금까지는 소위 ‘88클럽’의 한 항목으로 BIS비율이 8% 이상이면 우량 저축은행으로 규정했지만 금융당국은 이를 상향해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각에선 일반적인 BIS 기준보다 기본자기자본(Tier1) 비율을 보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다. 이는 후순위채를 제외한 진정한 자기자본 대비 자산의 비율이다. Tier1 비율이 최소 5%를 넘어야 건전한 은행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고정이하 여신(대출) 비율이다. 저축은행의 여신은 건전성이 높은 순서로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총 5단계로 나뉜다. 고정이하 여신 비율은 전체 여신 가운데 연체기간이 3개월 이상인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부실채권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떼일 염려가 큰 돈이므로 BIS비율과 달리 낮을수록 좋다. 금융당국에서는 8% 이하를 권장하고 있다. 부실가능 대출 비율을 살필 때는 ‘요주의’ 이상으로 부실해진 대출이 20%를 넘지 않을 것으로 평가기준을 삼기도 한다.

    세 번째는 유동성 비율이다. 유동성 비율이란 예금을 포함한 부채의 상환요구가 들어왔을 때 해당 저축은행이 보유 중인 자산을 동원해 얼마까지 대응할 수 있는지 가늠하는 지표다. 저축은행 평균(104.19%)에 근접한 100%를 기준으로 높을수록 안전하다.

    마지막으로 순이익을 살펴봐야 한다. 저축은행도 일반 기업처럼 당기순이익이 나와야 좋다. 특히 금융위기인 2008년을 전후해 3~5년간 지속적으로 당기순이익을 냈다면 안심할 만하다.

    저축은행은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와 같이 수익성이 높지만 위험 역시 큰 사업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PF대출 잔액이 적고 대출 비율이 낮을수록 변동 위험이 작다고 볼 수 있다. 또 자산 규모가 클수록 더 안심할 수 있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에서 보듯 자산 규모만 신뢰해선 안 된다. 가능하다면 대주주를 포함한 지배구조가 어떻게 돼 있는지도 살피면 금상첨화다.

    금융당국은 기존의 건전성지표로 활용되던 88클럽 제도의 폐지와 보완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자기자본 비율이 8%를 넘고 고정이하 여신이 8%가 안 되는 것만으로는 우량저축은행이라 단언할 수 없다는 얘기다.

    [김태근 / 매일경제신문 금융부 기자 tgkim@mk.co.kr, 사진 = 매경DB]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7호(2011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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