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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보유량 1위 스트래티지 위대한 도전인가 가상자산 뇌관인가
입력 : 2025.10.23 16: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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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8월부터 비트코인을 매입해 온 기업이 있다. 마이클 세일러 회장이 이끄는 스트래티지다. 스트래티지는 전 세계 상장사 중 압도적인 격차로 비트코인 보유량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스트래티지는 지난 1989년 ‘마이크로 스트래티지’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기업이다.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I)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꾸준히 성장해 왔다. 단 세일러 회장의 주도로 지난 2020년부터 비트코인 보유량을 급속도로 늘리더니 올해 초엔 사명까지 스트래티지로 바꿨다. 브랜드 로고 역시 비트코인 로고가 최대한 눈에 들어오도록 바뀌었다.
스트래티지가 보유하고 있는 비트코인은 지난 9월 15일 기준 63만 8460개다. 비트코인 전체 유통량(2100만 개)의 3%가 넘는다. 이날 시세 기준으로 이 비트코인의 가치는 741억 3861만달러에 달한다. 원화로는 약 102조 9489억원 수준이다. 코스피 시가총액 3위인 LG에너지솔루션(약 82조 9530억원)을 사고도 남는 돈이다. 스트래티지는 세일러 회장이나 기업이 보유한 자금으로 비트코인을 매입하지 않는다. 유상증자, 전환사채 발행 등을 통해 외부 자금을 끌어와 비트코인에 투자한다. 즉 남의 돈으로 비트코인을 모으고 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는 성공적 투자얼핏 보면 위험해 보이지만 지금까지 스트래티지의 전략은 성공적으로 먹혀 들어왔다. 비트코인의 가치가 기대 이상으로 상승해줬기 때문이다.
세일러 회장은 비트코인에 직접 투자하는 것보다 스트래티지 주식을 사면 같은 돈을 투자했을 때 더 많은 비트코인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스트래티지가 전략적으로 레버리지를 활용해 주당 비트코인 보유량(BPS)을 꾸준히 늘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트래티지에 따르면 본주(MSTR)의 주가는 비트코인 매입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약 2558% 폭등했다. 같은 기간 엔비디아(1429%)나 비트코인(834%)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상승률이다. 스트래티지가 이 같은 성공을 거두자 비트코인 비축 전략을 따라한 다른 기업들도 우후죽순 등장하기 시작했다.
마이클 세일러 회장 우선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 1위 기업인 테더,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 미국 상무장관 하워드 러트닉의 아들인 브랜든 러트닉이 이끄는 캔터 피츠제럴드가 손잡고 설립한 21캐피털이 대표적이다.
21캐피털은 지난 4월 설립됐지만 단기간에 대규모로 자금을 끌어모으면서 비트코인 보유량 3위(4만3514개)에 올라 있다. 현재 21캐피털은 비트코인 결제 및 렌딩 서비스 기업인 스트라이크의 창업자이기도 한 잭 멀러스가 이끌고 있다.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일가가 운영하는 트럼프 미디어&테크놀로지 그룹(TMTG)도 지난 5월 25억달러를 조달해 비트코인 비축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기존에 TMTG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스트래티지의 성공 사례를 보고 비트코인 비축까지 시작했다. 비트코인 1만 5000개를 보유하고 있는 TMTG는 상장사 보유량 8위에 올라 있다.
아시아에선 메타플래닛이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메타플래닛은 본래 1999년 설립된 CD와 레코드 기획·제작 등을 하는 ‘다이키 사운드 주식회사’가 모체다. 이후 숙박업, 음식업 등 다양한 사업에 진출했다가 철수하는 등 부침을 겪었다.
이후 메타플래닛은 지난해 4월 비트코인 비축 전략을 발표했다. 이때 이후 메타플래닛의 주가는 41배 이상 폭등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비트코인 비축 기업들은 미국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비트코인 보유량 상위 기업 10곳 중 9곳이 미국 기업이다. 유일한 예외가 메타플래닛이다.
이들 비축 기업의 등장은 비트코인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비축 기업의 매력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가 완성됐다. 비축 기업이 비트코인을 매도하면 당연히 해당 기업의 주가 폭락으로 이어진다. 즉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 팔지 않는다는 의미다.
비트코인의 총 유통량은 2100만 개로 고정돼 있다. 이런 가운데 유실된 비트코인이 많아 이미 공급이 부족한 상태다. 여기에 더해 비축 기업들의 등장으로 공급이 더 빠른 속도로 줄어버리는 효과가 나타나게 됐다. 이에 따라 세일러 회장은 더 많은 비트코인을 매입할 수 있는 방안을 구상하게 됐다. 우선주를 발행하는 것이다. 단순히 본주보다 배당을 좀 더 많이 주는 우선주가 아니다. 각 우선주별로 배당 조건과 목표배당률을 세심하게 나눠 투자자들이 금융 상품에 투자하듯 우선주를 고르도록 만들었다. 스트래티지는 올해 STRK, STRF, STRD, STRC 등 4가지의 우선주를 발행하며 대규모로 자금을 조달했다. 비트코인이 장기 우상향하는 만큼 우선주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비트코인을 매입하면 상승한 기업가치만큼 배당금을 지급할 여력이 생기는 구조다.
미국 투자은행(IB) TD 코웬은 최근 보고서에서 “스트래티지가 우선주를 통해 지급해야 하는 배당금과 자금 조달 이후 발생한 가치 상승분을 비교하면 174년간 배당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실제로 스트래티지의 우선주 중 투자자에게 가장 친숙한 ‘전환형 우선주’는 STRK 하나다. 나머지 3개는 배당금에 초점을 두고 있고 MSTR 주식으로 전환할 수도 없다. STRF, STRD, STRC는 주식이지만 오히려 채권과 유사한 투자 성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가장 최근 발행한 STRC는 듀레이션(가중평균만기)가 짧은 하이일드 채권과 유사하다는 설명이다.
STRC는 주식이지만 가치가 100달러에 페깅(고정)되어 있다. 스트래티지는 STRC 보유자에게 연 9%를 목표로 한 월별 변동 배당금을 지급한다. STRC 가격이 101달러를 넘어가면 배당률을 줄이고 추가 발행에 나서는 동시에 99달러 아래로 내려오면 배당률은 높이는 형태로 가치를 고정시킨다는 전략이다. 스트래티지는 매달 15일을 기준으로 배당금을 지급하고, 매달 말일 다음달 배당금을 발표해 STRC의 가격 조정에 나설 계획이다.
이 STRC는 올해 미국 IPO(기업공개) 최대어였다는게 스트래티지의 설명이다. 스트래티지는 STRC를 통해 25억 2100만달러를 조달해 최근 비트코인 2만 1021개를 추가 매입했다. 스트래티지는 STRC로 42억달러까지 추가 조달할 계획이다. STRF와 STRD는 모두 상대적으로 듀레이션이 긴 채권과 유사하다. 둘 모두 기준가(100달러)를 기준으로 10%의 고정 분기 배당을 지급한다. 단 STRF는 가상 우선해 배당금을 지급하며 누적적 우선주다. 배당을 못받으면 그만큼 다음해로 이월해 배당금이 누적된다는 뜻이다. STRD는 배당금 지급 우선순위도 낮고 배당을 못 받을 경우 누적되지도 않는다.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크다는 의미다.
단 STRF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종가 기준 121.20달러로 기준가보다 프리미엄이 붙어 있다. 반면 STRD는 같은날 85.40달러로 할인된 가격에 거래된다. 즉 STRD는 리스크가 있는 만큼 STRF에 비해 배당수익률이 높다. 한편 전환형 우선주인 STRK에는 연 8%의 고정 배당금을 지급한다. 우선주 중 가장 주가 변동성이 높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보유 코인 매도하면 가치도 함께 무너져스트래티지의 우선주별 특징이 다양하기 때문에 투자 수요가 다른 여러 투자자의 참여를 모두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스트래티지가 우선주를 발행할 때 주로 활용하는 ATM(At the Market) 방식이 기관 투자자가 아닌 일반 투자자도 모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큰 매력이 된다. 각자 목표가 다른 기관 및 개인투자자가 취향껏 ‘금융상품 쇼핑’에 나설 수 있게끔 선택지를 다변화한 셈이다.
단 이런 스트래티지를 향한 의구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이유로든 스트래티지가 보유 중인 비트코인을 매도하기 시작하면 스트래티지의 주가뿐 아니라 비트코인의 가치가 함께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스트래티지를 포함한 비트코인 비축 기업들이 가상자산 시장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실제로 최근 스트래티지가 MSTR 추가 발행 원칙을 바꾸고 STRC 가치 유지에도 실패하면서 이 같은 우려가 커졌다. 기존에 스트래티지는 mNAV(MSTR의 기업 가치를 보유중인 비트코인 가치로 나눈 값) 2.5배 아래에선 MSTR을 발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부채 상환을 위한 이자 지급, 우선주(STRK, STRF, STRD, STRC)의 배당금 지급을 위한 자금 조달이 유일한 예외였다. 또 mNAV가 1배 아래까지 떨어지면 부채를 얻어 MSTR을 되산다는 계획이다.
단, 최근 스트래티지는 회사를 위해 이득이 된다고 판단될 때 추가 발행에 나설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추가했다. 이는 언제든 MSTR 발행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며 투자자들의 우려를 키웠다.
이 영향에 한때 2.25배가 넘었던 MSTR의 mNAV는 약 1.53배 수준까지 떨어졌다.
스트래티지가 가장 최근 발행한 우선주인 STRC의 페깅(가치 유지)이 깨진 점도 악재로 꼽힌다. STRC는 지난 7월 30일 상장 후 한 번도 100달러를 기록하지 못했다. 장중 98.49달러까지 오른 것이 최대다.
비트코인 제도권 편입 호재한편 비트코인이 빠르게 제도권에 편입되고 있다는 점은 스트래티지에 호재다. 일례 지난 8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퇴직 연금인 401K를 통해 가상자산을 투자할 수 있게 하라는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하기도 했다.
기존에 미국에서 퇴직 연금을 통한 가상자산 투자는 매우 제한되어 있었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비트코인에 더 풍부한 유동성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지난 2022년 미국 노동부(DOL)는 “401K를 통해 가상자산에 투자할땐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DOL이 특정 투자 전략에 대한 권고를 내놓은 것은 처음이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인 지난 5월 DOL은 이 지침을 철회한다는 내용의 성명문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통해 401K를 통한 가상자산 투자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종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