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밸류업 새 트렌드 ‘감액배당’ 배당 소득세 ‘제로’…지속 여부 관건

    입력 : 2025.05.16 15:4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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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작한 글로벌 관세 전쟁으로 촉발된 하락장이 시작됐다. 증시 체력이 약하다고 지적받았던 코스피와 코스닥도 여지없이 하락했다. 계속되는 하락에 지친 투자자들은 대선 관련주 등과 같은 반짝 테마주 베팅에만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에서도 본연의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K밸류업(Value Up) 트렌드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IT(정보기술), 중공업, 금융 등 다수의 국내 기업들이 자사주를 매입소각하며 주주환원에 나섰다.

    이제는 ‘감액배당’이 새로운 K밸류업 트렌드로 등장하고 있다. 감액배당은 일반주주뿐 아니라 최대주주에게도 유리한 제도로 불린다. 이에 다수의 기업들이 감액배당과 관련된 안건을 주주총회에 상정했고, 올 상반기 열린 주총에서 관련 안건들이 통과됐다. 이 기업들은 향후 주주들에게 감액배당 형태로 배당을 지급할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투자업계 안팎에선 감액배당을 실시하는 상장사들이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감액배당이 향후 주주환원 시대의 주요 트렌드로 자리잡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주주들이 더욱 똑똑해지면서 주주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가는 주주 행동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실정이라 감액배당이 더욱 주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감액배당 오해와 진실

    감액배당은 어감상 자칫 ‘배당을 줄인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감액배당은 자본준비금을 감액해 이익잉여금으로 옮겨 주주들에게 배분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자본준비금은 주식 발행 시 액면가를 초과한 금액 등으로 구성된 회계상 자본 항목 계정이다. 일반적인 이익잉여금과 다르게 자본금 보호 차원에서 직접 현금으로 유출하거나 배당에 사용할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상장사들이 자본준비금을 배당에 사용하려면 주주총회에서 승인을 거치는 등의 절차를 밟은 후 이익잉여금으로 바꿔야 한다.

    감액배당이 시장에 알려진 건 2023년이다. 메리츠금융지주가 2022 사업연도 결산부터 자본준비금을 이익잉여금으로 바꾸겠다고 했고, 감액배당을 도입한 2023년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하면서 비과세 배당이 지급되자 고액 자산가들의 입소문을 탔다. 덕분에 매수세가 몰리면서 품절주 대열에 합류, 2023년부터 2024년까지 메리츠금융지주의 주가는 140% 넘게 올랐다.

    올해 주주총회에서 자본준비금 감액 등 감액배당과 관련된 안건을 상정한 곳은 126곳이다. 이는 지난해의 2배 수준으로, 우리금융지주, 셀트리온, 대신증권, 엘앤에프, 진에어, 에스디바이오센서, HS효성, KCC글라스 등 다양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들이 관련 안건을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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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금융지주는 은행을 보유한 금융지주 최초로 감액배당을 발표하면서 주식시장에서 화제가 됐다. 지난 3월 26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약 3조 3000억원 규모의 자본준비금 감액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 금액을 이익잉여금으로 전환, 향후 비과세로 배당을 실시할 계획이다.

    그간 국내 금융지주사들은 자사주 매입·소각을 통해 주가를 부양하는 데에 집중했지만 우리금융지주는 거기에 감액배당까지 실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제약·바이오 대장기업으로 불리는 셀트리온은 자본준비금 6200억원을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해 배당에 사용할 예정이다. 지난해 말 별도 기준 셀트리온의 주식발행초과금은 14조 8030억원이다. 이중 6200억원을 먼저 줄이고 향후 약 1조 4000억원의 자본준비금을 추가로 줄일 계획이다.

    주주가 감액배당을 통해 배당금을 받으면 실질적인 배당 수익이 증가한다. 통상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이익잉여금을 재원으로 사용하는 일반배당엔 배당소득세 15.4%가 적용된다. 하지만 자본준비금을 감액해 주는 배당은 자본 거래로 인한 소득으로 잡히기 때문에 비과세다. 가령 일반 배당금으로 주주가 100만원을 받는다면 원천징수 세액을 뗀 84만 6000원을 최종 수령하게 되지만, 감액배당으로 받는다면 100만원을 온전히 손에 쥘 수 있게 된다.

    개미도, 회장님도 모두 ‘윈윈’

    감액배당은 소액주주들에게만 유리한 게 아니다. 상장사의 최대주주 혹은 주요 주주들에게도 이득인 제도다. 연간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초과하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돼 종합소득세 최고세율까지 부담할 수 있다. 10억원을 초과하면 49.5%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데 감액배당은 배당소득으로 인정되지 않아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회사가 대주주에게 100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하면 일반배당으로 했을 때는 원천징수 세액 15억 4000만원과 종합소득세 약 33억 3065만원이 부과된다.

    실질적으로 대주주가 수령하는 금액은 51억 2935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감액배당으로 배당금을 지급받으면 온전히 100억원을 수령할 수 있게 된다.

    세대교체가 예정된 대기업 혹은 중견·중소기업 상장사들의 경우 감액배당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창업주에서 2, 3세 경영자로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려면 먼저 상속세, 증여세 등의 재원이 마련돼야 한다. 과거엔 지분 매각 등의 방법을 통해 이를 마련했지만 이젠 감액배당을 활용, 배당 성향을 높이면서 현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강경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은 기업 승계 시 상속세 및 증여세 부담이 큰 편으로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는 최대주주는 상당한 현금을 필요로 한다”며 “대부분의 오너들이 회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현금 확보가 쉽지 않은데 대주주가 감액배당을 통해 승계를 위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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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 입장에선 감액배당으로 잉여자본을 효율화시킬 수 있기에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인 ROE(자기자본이익률)이 개선되는 효과를 얻는다. 자본준비금을 줄여 이를 이익잉여금으로 전입한 후 배당으로 지급하면 결국 해당 금액만큼 기업의 자기자본이 감소한다. 그렇게 된다면 당기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ROE는 상승하게 되고 자본구조를 최적화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자기자본 감소로 부채비율이 다소 상승할 수 있고 향후 손실 발생 시 결손보전에 사용할 준비금이 줄어들 여지는 있다.

    감액배당의 법적 근거는 2011년 4월 개정된 상법 제461조의 2에 명시돼 있다. 법인은 자본준비금과 이익잉여금의 총액이 자본금의 1.5배를 초과하는 경우 그 초과분에 한해 주주총회 보통결의로 감액할 수 있다. 초과 부분의 자본준비금을 줄이고 배당가능한 이익으로 옮겨 배당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아울러 소득세법 시행령 제26조3에 따르면 자본준비금을 감액해 받는 배당은 과세대상 배당소득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는 감액배당을 실질적으로 투자 원금의 회수로 간주해 새로운 소득 창출이 아닌 기준에 투자한 자본의 일부를 돌려받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상법 또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여러 차례 개정이 되고 있다. 22대 국회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와 주주 또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 등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이 통과가 됐다. 하지만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이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다시 국회로 넘어온 상태다.

    새로운 주주환원 시대 연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자본 효율성이 높아 주주 자본주의가 정착된 곳이 많다. 대만 기업들의 경우 보통이익의 50~60%를 주주들에게 환원한다. 하지만 급속한 산업화와 발전으로 국내 기업들은 주주들을 소홀히 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고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분석한다.

    하지만 이제 감액배당을 실시하는 상장사들이 많아지고 새로운 주주환원 트렌드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이들은 예측한다.

    지난해 밸류업 기조가 시작되면서 자사주 매입·소각 여력이 있던 금융지주사들이 주목을 받았고, 주가도 상승 곡선을 그렸다. 이젠 감액배당을 진행해 주주환원율을 높이는 다양한 기업들이 시장에서 주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2012년부터 한국투자신탁운용에서 펀드매니저로 근무하며 업계에서 ‘진정한 가치투자자’로 불리는 김기백 한국투자신탁운용 중소가치팀장은 자본준비금을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하는 기업들이지난해 60여 개 정도에 불과했는데 올해는 200여 개 수준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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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팀장은 “배당수익률이 높은 기업일수록 투자 매력이 클텐데, 특히 중견·중소기업 중 1세대 창업주에서 2세대로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는 기업들은 자본 재배치나 배당 확대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NH투자증권은 감액배당을 예고한 기업 중 실적 개선까지 예상되는 곳은 감액배당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시노펙스, 서부T&D, 콜마비앤에이치, 이지바이오, 동인기연, 정다운 등을 후보 기업들로 제시했다.

    아울러 주주환원에 앞장서는 기업들의 변화를 포착해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금융상품들도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일반 투자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는 ETF(상장지수펀드)가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TRUSTON 주주가치액티브, BNK 주주가치액티브, ACE 주주환원가치주액티브 ETF 등이다. 이들은 현재도 코스피200 지수 대비 우수한 수익률을 내고 있다.

    다만 감액배당을 둘러싼 여러 논란 거리들이 있다. 상속이나 재산 분할 등으로 대주주가 막대한 양의 현금이 필요하거나 최대주주의 지분율 자체가 높은 상장사들이 감액배당을 진행하는 경향이 두드러질 수 있다고 업계는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올해 감액배당을 주총 안건으로 올린 HS효성의 경우 최대주주 지분율이 57.7%에 달했고, KCC글라스와 셀트리온의 최대주주 지분율 역시 각각 43.7%, 28.4%다.

    감액배당은 일종의 비과세 배당의 일종으로 대주주의 조세 회피 수단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다. 이에 국가 세수 감소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법인세법에선 법인이 감액배당을 받으면 투자원본을 초과하는 감액에 대해 법인소득세를 부과하도록 돼 있지만, 소득세법에선 여전히 감액배당을 의제배당에 따른 과세 대상으로 해석하지 않고 있어 추가적인 제도적 보완도 필요한 상황이다.

    <잠깐용어> 비과세 배당
    말 그대로 세금이 붙지 않는 배당이다.
    일반적으로 배당에는 15.4%의 적지 않은 배당소득세가 부과된다. 원래 배당은 회사가 영업을 잘해 번 돈(이익잉여금)으로 주는 게 원칙이다. 비과세 배당은 이익잉여금이 아닌, 자본잉여금 중 하나의 항목인 자본준비금을 활용한다. 잉여금은 기업 회계상 회사의 순자산이 법정 자본액을 초과하는 돈이다. 손익 거래에 따른 이익잉여금과 자본 거래에 따른 자본잉여금으로 나뉜다. 자본준비금은 주식 발행 시 액면가를 초과한 금액(주식발행초과금) 등으로 구성되는 회계상 자본 항목 계정이다. 일반적인 이익잉여금과 달리 자본금 보호 차원에서 법적으로 직접 배당이나 현금 유출에는 사용할 수 없다. 다만 상법상 이 자본준비금은 자본금의 1.5배를 초과하면 초과액에 한해 감액할 수 있다. 감액된 자본준비금을 이익잉여금으로 전입할 수 있고, 이를 배당 재원으로 사용하면 세금 없이 주주에게 지급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감액 배당’이라 부르기도 한다.

    유상증자를 진행하고 감액배당을 실시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상증자를 하면 액면가와 발행 가격의 차이만큼 자본준비금이 쌓이게 된다. 감액배당 재원이 되는건 맞지만 추후 이를 활용해 배당을 하면 세금을 받지 못하는 정부와 증자 때 높은 가격으로 주식을 산 주주들은 결과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홍순빈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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