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롤러코스트 미국 증시, 월가 “빅테크보다 경기 덜 타는 종목으로”

    입력 : 2025.04.28 11:17:47

  • <사진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지 3개월이 지났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만큼 취임 전부터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덕분에 지난해까지 미국 기업들의 주가는 폭발적으로 올라갔고 S&P(스탠다드앤드푸어스) 500, 다우존스, 나스닥종합지수 등 뉴욕 증시 대표 지수들도 고공행진했다.

    하지만 트럼프 허니문 효과도 잠시,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국 견제와 글로벌 관세전쟁을 시작하면서 증시가 대폭락했다. 높은 관세율이 기업들의 실적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분석과 함께 해외주식 투자자들의 사랑을 받는 애플,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등의 빅테크들도 힘없이 주저앉았다. 하염없는 주가 하락에 공포를 느낀 투자자들은 투매에 나서기도 했다.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미국의 금리 인하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증시 불확실성은 아직 걷히지 않은 상태다. 월가의 ‘공포 지수’로 알려진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 지수(VIX)는 지난 4월 8일 52.33까지 상승하며 5년 내 최고치를 찍었다.

    미국 증시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2월 말부터 하락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적자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상호관세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나오면서부터다. 그러다 4월 4일 국가별 상호관세율이 발표되자 하루만에 6% 가까이 빠지며 최악의 날을 맞이했다.

    사진설명

    한때 5년 만에 최대 낙폭

    S&P 500지수는 직전 거래일보다 5.97% 하락한 5074.08을 기록했는데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확산 공포가 덮쳤던 2020년 3월 16일(-12%) 이후 5년여만에 일간 기준 최대 낙폭을 보인 것이다. 특히 닷컴버블이 터져 폭락 장세가 펼쳐졌던 2000년 4월 일일 낙폭(-5.8%)과 9·11 테러 사건 이후 2001년 9월 일일 낙폭(-4.9%)보다 더 하락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11조달러 넘게 증발했다. 미국 증시 시가총액 1위인 애플의 주가는 20% 넘게 하락했다. 애플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아이폰은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된다.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추가 부과하면 아이폰 판매 수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 1기 행정부 때는 애플의 관세 적용 제외 요청을 받아들인 적이 있지만 이번에 그렇게 될지는 불분명한 상태다.

    다른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 주가는 지난해 최고 주당 488.54달러까지 올랐다. 하지만 현재는 그보다 50% 정도 넘게 하락한 200달러 초중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AI(인공지능) 반도체 리딩 업체로 손꼽히는 엔비디아 주가도 올해 초 150달러를 상회했으나 현재 100달러 수준으로 하락한 상태다.

    월가에선 증시 비관론이 팽배한 상태다. 2023년과 2024년 상승 랠리를 달렸던 미국 증시의 강세장이 이제 끝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마이클 로젠 엔젤레스 인베스트먼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와 무역 정책을 쉽게 포기할 것이라 보이지 않는다”며 “주가 하락은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만을 미칠 나쁘고 일관성 없는 무역 정책에 대한 반응”이라고 했다.

    월가의 대표 기술주 강세론자인 댄 아이브스 웨드부시증권 애널리스트도 “시장은 경제적 아마겟돈을 예상하고 있다”며 “경기침체가 거의 확실하고 이건 모두 스스로 초래한 것으로 워싱턴에서 나온 역사상 최악의 조치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과거 2018년 트럼프 대통령 1기 행정부 당시 미중 무역전쟁이 일어났는데 이때도 오랜기간 조정을 거쳤다. 2018년 1월 세탁기, 태양광 패널 등의 품목에 관세가 시작되면서 증시가 급락했다. 그러다 5월 3일 베이징 무역협상이 시작되면서 증시가 차츰 반등하는가 싶더니 9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S&P500지수 기준으로 약 17% 넘게 하락했다. 거기에 미국 통화정책을 관장하는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중립금리 논의가 더해져 증시 회복이 더뎠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90일간 유예하겠다고 밝혔는데 2018년에도 이와 같은 조치가 있었다. 향후 ‘협상이 좋았다’, ‘(협상이) 곧 마무리 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오며 낙관론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관세를 유예한 지 4개월 만에 돌연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또다시 관세 충격으로 증시가 출렁였다. 국내외 금융투자업계는 2018년과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상향 조치는 높은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다”며 “미국 외 생산지를 가지고 있거나 해외 공급망 의존도가 높고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 그리고 추가 관세가 더해질 경우 저마진 비즈니스의 기업들은 역마진 우려도 높아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S&P500지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 후 7% 가까이 하락했다. <사진 연합뉴스>
    S&P500지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 후 7% 가까이 하락했다. <사진 연합뉴스>

    조연주 NH투자증권 연구원도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 발표 이후 미국 내에선 2025년 실질 GDP 성장률이 기존 2.3%에서 0.8~1.5%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공포 심리가 정점에 달할 것으로 보여 S&P 500지수 기준으로 협상을 감안한 1차 하단은 5350, 협상 없이 보복 대응이 진행될 경우 경기침체를 반영해 5000까지 하단을 열어놓는 전략이 유효하다”고 했다.

    빅테크 무섭다면 유틸리티 업종

    현 상황에서 국내외 투자사들은 투자자들이 보수적으로 접근할 것을 권고한다. 그간 밸류에이션(평가가치)이 높았던 빅테크보다 실적이 개선되고 경기둔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기업과 업종을 선별해서 투자하는 게 유리하다고 조언한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1분기 어닝시즌의 최선호 업종으로 유틸리티, 차선호 업종으로 IT(정보기술), 커뮤니케이션을 꼽았다. 유틸리티는 관세 부담이 커진 1분기에도 실적 눈높이가 개선됐고, 점진적인 국채금리 하락 및 국가 간 갈등 심화에도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IT와 커뮤니케이션 업종의 경우 관세 부담이 반영되며 실적 눈높이는 낮아졌으나 단기 조정이 컸다는 걸 이유로 들었다. 그러면서 듀크, 엑셀론, 버라이즌, 포티넷 등을 주목하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매크로 불확실성을 실적으로 이겨낼 수 있는 기업들도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강조하는 주택공급 증가와 사이버 보안 강화 관련주를 선별해 홈디포와 크라우드스트라이크를 주목하라고 했다. 홈디포는 미국 대표 주택 개량 기업으로 기준금리 인상 가속화 이후 지연됐던 프로젝트들이 진행됨에 따라 실적이 개선되고 있는 업체다. 안정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지속하고 있는 업체인 만큼 배당주로서도 매력이 높다고 설명한다. 크라우드스트라이크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엔드포인트 보안 기술 경쟁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기업이다. 매크로가 불안정한 가운데 기업들의 IT 지출에서 사이버 보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진적으로 높아진다는 걸 긍정적으로 봤다.

    경기 방어력 높은 기업 주목

    하락장에도 방어력이 높은 기업들을 주목할 필요도 있다. S&P 500지수가 하락하는 가운데 코카콜라, 버크셔 해서웨이 등은 주가가 올랐다. 코카콜라는 경기방어적인 필수 소비재 섹터 대장주로 꾸준히 양호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업체다. ‘코카콜라 제로슈거’ 상품을 성공적으로 출시한 덕분이다. 게다가 코카콜라는 1960년대부터 매년 배당금을 증가시켜왔다. 연 3% 내외의 배당금을 꾸준히 지급하고 있는데, 올해 기준 코카콜라의 연간 배당금은 주당 2.04달러로 2024년 1.94달러에서 약 5.2% 증가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외국산 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부과했는데 캐나다에서 알루미늄을 수입해 캔을 생산하는 코카콜라가 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워런 버핏의 투자사인 버크셔 해서웨이도 폭락 피해에서 벗어났다. 시가총액 기준 미국 상장기업 8~9위 권에 머물러 있었지만 지금은 7위를 기록하고 있다. 수년간 이어진 보수적인 자산 운영 전략이 좋은 평가를 받은 덕분이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최근 몇 분기 동안 주식을 처분하고 미국 단기 국채 등 안전자산 등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다. 현금성 자산의 비중도 늘렸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핵심 사업인 보험 부문도 관세 전쟁과의 연관성이 낮고 경기침체 환경에서도 일정한 수익을 낼 수 있는 특징을 갖췄다. 시장에선 이번 증시 조정으로 버크셔 해서웨이가 대규모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점친다. 과거 2008년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성공하기도 했다. 반대로 지금을 하락한 기술주들에 대한 저가매수의 기회로 삼으라는 조언도 나온다. 금리 인하 가능성과 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된다면 상반기보다 올 하반기 증시가 더 나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다. 엔비디아의 경우 지난해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 블랙웰 출하 지연으로 부침을 겪었는데 이제부터 블랙웰 출하량이 본격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엔비디아를 주목해도 괜찮다는 의견이 나온다. 황병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블랙웰 생산량 증가에 따라 엔비디아는 규모의 경제 효과로 실적이 개선될 전망”이라며 “현재 엔비디아의 밸류에이션은 과거 미중 무역분쟁 당시와 유사한 수준”이라고 했다. 테슬라의 경우 전기차 외 ESS(에너지저장장치) 사업이 성장하면서 전체 매출을 방어하고 있는 모습인데 향후 로봇, 자율주행 등 소프트웨어 분야로의 확장성과 장기 성장성 등을 고려했을 때 현 주가는 매력적인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한다. 황 연구원은 “테슬라의 P/CF(주가현금흐름비율)는 역사적 평균 대비 높은 수준이나연평균 현금흐름 증가율이 40%대인 점을 고려하면 P/CF가 그렇게 높다고 볼 순 없다”고 했다. 다만 여전히 변동성이 여전한 상황이기에 무리하게 투자를 진행하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특히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를 피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 판단을 해야 할 때라고 조언한다. 대표적인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 상품으로 나스닥100지수 수익률을 3배 추종하는 TQQQ ETF, 테슬라 주가의 2배를 추종하는 TSLL ETF,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 수익률을 3배 추종하는 SOXL ETF 등이 있다.

    [홍순빈 기자]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