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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적인 경기 부양책 예고한 중국 단기신중론 우세…해운·석유 관련주 주목
입력 : 2025.01.22 17:3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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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청년 실업률이 17% 대를 넘나들며 고공행진 하는 등 경제 둔화 분위기 속 민심 이탈 위기가 커지자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새해 또 다시 대규모 경기 부양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2024년 신년사를 시작으로 첨단 기술과 제조업 살리기를 강조했지만 경기 침체와 미국발 무역 제재 위험만 커지자 시 주석이 내세운 ‘고품질 발전’보다는 당장 내수 살리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시 주석을 위시한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2024년 12월 11~12일 베이징에서 중앙경제공작회의(中央經濟工作會議)를 열고, 14년만의 대대적인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당분간 경제 회복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공작회의는 매년 12월에 열리는 회의다. 통상 그 다음 해 열리는 ‘중국 최대 정치행사’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앞두고 굵직한 경제 성장 목표와 대응책 등 중국 경제 큰 방향을 결정하는 자리다. 시 주석 등 최고 지도부를 비롯해 중앙·지방 고위 관료, 국영기업 대표 등이 참석한다.
중국 관영매체인 신화통신에 따르면, 경제공작회의에서는 우선 재정정책과 관련해 “재정 적자율이 높아지더라도 더 적극적인 정책을 펴야한다”면서 “초장기 특별국채 발행과 지방정부 특별채권 발행을 늘리고 재정 지출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발언이 오갔다. 또 통화정책과 관련해 “적당히 느슨한 정책을 실시해 지급준비율과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충분히 유지해야 한다”는 발언도 눈길을 끌었다.
앞서 같은 달 9일 시 주석이 주재한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공산당 지도부는 2011년 이후 유지해 온 ‘적극적 재정정책과 온건한 통화정책’ 기조 대신 ‘더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적절히 완화적인 통화정책’으로 바꿨다. 지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대대적으로 사용했던 기준금리 인하 등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다시 동원해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것이다.
중국 새해 큰폭 금리인하 유력중앙은행 격인 중국인민은행이 새해에는 10년 만에 가장 큰 폭의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례로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2024년 12월 보고서를 통해 2025년 중국인민은행이 주요 정책금리를 40bp(=0.4%p) 인하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이대로라면 2015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큰 폭의 금리 인하가 이뤄지는 셈이다. 두 투자은행은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강력한 대중 관세 정책을 실시하는 식으로 중국경제에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경제 떠받치기를 위해 과감한 금리 인하에 나설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호주계 투자사인 맥쿼리 그룹의 래리 후 중국 경제 책임자는 “중국은 이전보다 더 큰 디플레이션 위험에 직면해 있으며, 중국인민은행이 이에 대응하려면 새해 한 해 동안 40bp 금리 인하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40bp인하에 나서는 경우 미국의 대중국 관세 인상에 따른 중국의 경제성장률 0.5%p 하락을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지준율·LPR·역RP 금리 주목주요국 중앙은행의 핵심 정책 금리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통상적인 기준금리를 비롯해 지급준비율과 환매조건부채권(RP·Repo) 금리다. 중국의 정책 금리가 한국 투자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대체적으로 중앙은행 정책 금리 구조가 비슷하고, 중국의 금리인하 여부는 외국인의 아시아 투자심리에 영향을 준다.
일당 독재 체제인 중국은 중앙은행이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하지만 중국인민은행이 사실상 중앙은행으로서 역할을 한다. 중국인민은행이 결정하는 정책 금리 중에서는 사실상 기준 금리로 통하는 것이 바로 대출우대금리(LPR)다.
LPR은 만기에 따라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1년 만기 LPR로 주로 신규·기존 대출에 적용된다. 다른 하나는 5년 만기 LPR 인데 주로 주택 담보 대출 금리에 영향을 준다. 2024년 10월 21일 중국 인민은행은 1년 만기 LPR을 기존 연 3.35%에서 3.10%로 25bp(=0.25%p) 낮췄고, 5년 이상 만기 LPR은 기존 연 3.85%에서 3.60%로 25bp 인하했다.
LPR과 관련해 종종 등장하는 중국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금리는 LPR 선행지표로 통한다. 중국인민은행이 MLF 를 인하하면 시장에서는 조만간 LPR 도 낮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MLF는 중국인민은행이 중국 시중 금융기관에 유동성을 공급해주면서 적용하는 금리이다.
LPR 외에 주로 언급되는 중국 정책금리로는 지급준비율과 7일물 역환매조건부채권(역RP·역레포) 금리가 있다. 지급준비율은 시중 은행이 고객으로부터 받은 예금 중에서 중앙은행에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하는 비율을 말한다. 지급준비율을 낮추면 은행이 굴릴 수 있는 돈이 늘어나기 때문에 시중 유동성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중국인민은행은 2024년 9월 27일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p) 낮춰 현재는 연 6.50% 수준이다. 당시 지급준비율 인하로 시중 유동성이 약 1조위안(189조원) 늘어날 것이라는 추정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7일물 역RP금리를 낮추는 것도 시중 유동성을 늘리는 효과를 낸다. 중국인민은행인 지급준비율 인하를 단행하는 2024년 9월27일 7일물 역RP 금리도 기존 1.85%에서 1.65%로 0.2%p낮췄다. 이에 따라 시중에 2780억위안 규모의 유동성이 풀릴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 바 있다.
RP 금리는 초단기 자금에 적용된다. RP는 단기에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일정 기간 후에 특정 증권을 되사는 것을 조건으로 일단 파는 것을 말한다. 역RP는 RP와 반대로 일정 기간 후에 특정 증권을 되파는 조건으로 일단 사들이는 것을 말한다. 통화정책과 관련해서 보면 RP는 시중 은행이 단기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 중인 국고채나 통화안정증권을 일정 기간 후에 되사는 것을 조건으로 중앙은행에 파는 것을 말한다. 이 일정 기간 동안 적용되는 것이 RP 금리인데 통상 7일 정도로 기간이 짧다. 중국인민은행 외에 한국은행도 시중 유동성을 조절하는 수단으로 RP 매매와 RP 금리를 활용한다.
‘5% 안팎’ 성장 목표 회의적새해 관건은 중국이 올해에도 경제 성장 목표치를 ‘5% 안팎’으로 제시할지 여부다. 글로벌 증권가에서는 이미 회의론이 나온 바 있다.
중국은 일당 독재 정치 구조의 특성상 공산당 지도부가 내건 경제 성장률이 실제와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청년실업률 폭등’ 같이 실제로 경제 통계가 체제에 불리하게 나오는 경우에는 발표를 돌연 중단하고 통계 산정 방식을 바꾸기도 하며, 지도부가 내건 경제 성장률 자체가 선전용 숫자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가운데 중국에서는 ‘5% 미만’ 달성을 시사하는 발언이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2024년만 하더라도 연간 경제성장률 목표인 5% 안팎을 향해 달려왔는데 5%에서 조금 왼쪽(미만)이든 오른쪽(초과)이든 받아들일 수 있다”고 지난 12월 논평을 통해 밝혔다. 경제성장 목표치 5%에 미치지 못할 것에 대비해 중국 당국이 여론 조성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새해에는 ‘5% 안팎’ 목표를 유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중국 SDIC증권의 가오산원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024년 12월 중순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우리는 중국의 실질 성장률 수치와 다른 경제 지표들의 진정한 수치를 모르지만 앞으로 3~5년 중국 경제가 3~4%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적”이라면서 “지난 2~3년간 (성장률) 공식 수치는 연평균 5%에 가깝고 실제 수치는 2% 정도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부동산 침체와 지방 정부 부채 위기로 인해 성장이 계속 타격을 받고 있다”면서 “소비에 활기를 불어넣는 등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지만, 매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공산당 지도부가 새해에도 ‘5% 안팎’을 유지할 것이란 예상도 사라지지는 않고 있다. 2025년은 중국 14차 5개년 계획(2021~2025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해이기 때문에 지도부 입장에선 ‘체제 선전용 숫자’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지난 2020년에, 오는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운 바 있다.
월가 “빅테크보다는 이 것 사라”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경제 띄우기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단기 매매에만 집중하는 분위기다. 2024년의 경우 중국 최대 명절 중 하나인 국경절을 앞두고 지도부가 민심을 의식해 대대적인 부양책을 내면서 주식 시장이 급반등했지만 4분기 들어 오히려 마이너스를 거듭해왔다.
11월 13일까지를 기준으로 홍콩 항셍지수는 지난해 4분기 동안 11% 떨어졌다. 중국 본토 상하이·선전 지수 상장 기업들 주가를 담은 CSI 300 지수 역시 7% 하락했고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중국 주요 기업 100곳의 주가를 따르는 나스닥골든 드래곤차이나지수는 같은 기간 10% 낙폭을 기록했다. 미국 대표 주가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가 같은 시기 6% 오른 점과 대비된다. 중국의 시 주석이 ‘사회주의 현대화’ 비전을 내걸며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냈지만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에 따른 중국 경제 리스크가 새삼 부각됐고 그간 중국 성장 동력으로 꼽히던 빅테크 기업의 매출 둔화가 감지되자 투자자들은 앞다퉈 주식 매도에 나서왔다.
한국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중국 빅테크 기업들이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는 배경은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로는 중국 당국이 2024년 12월 초까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집행 여부에 대해서는 투자자들의 신뢰가 따르지 못한다는 점이다.
네덜란드계 ING 투자은행은 “중국 당국이 2024년 9월 말 이후 동시 다발적으로 많은 부양책을 냈지만 이번 재정 정책은 승수효과가 낮을 것이기 때문에 단기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대부분의 재정이 인프라스트럭처 투자보다는 직면한 부동산·지방 정부 부채 해결과 미분양 주택 재고 해소에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최근 보고서를 통해 지적했다.
두번째로는 빅테크 기업들 실적 둔화다. 2024년 3분기 텐센트와 알리바바 매출은 블룸버그 집계 기준 전문가 기대치 평균을 각각 0.4%, 1.2% 밑돌았고, 징둥닷컴과 바이두는 각각 0.3%, 0.1% 웃도는 데 그쳤다.
다이와캐피털마켓 홍콩의 존 최 연구원은 기술 기업들의 게임·온라인 판매 매출에 대해 “예전처럼 구조적성장을 주도한다기보다 이제는 훨씬 더 경기 순환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미국 투자사 나티시스 글로벌의 알리시아 가르시아 에레로 아태 지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 역시 “중국이 기술 업종을 육성해 미국과 경쟁하려 하지만 기술 업종은 많은 문제를 않고 있다”면서 “지금 중국 경제는 5년 전보다 좋지 않고 특히 코로나 제로 정책을 실시한 2022년보다도 좋지 않다”고 분석했다.
셋째로는 중국 내 기업 환경이 불안정하다는 평가도 따른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레이 달리오 회장은 “최근 중국 당국은 자본주의에 덜 호의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부자가 되는 게 여전히 영광스러운 일일지 의문”이라며 “민간 경제가 활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중국 기술기업들이 AI 시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실리콘밸리 등에서 인재 영입에 힘쓰고 있지만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기 힘든 분위기도 감지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증권가에서는 중국 주식에 대해 단기 신중론이 지배적이다. 영국계 투자사인 스탠다드라이프의 샤오 응 아시아 담당 연구원은 “중국 증시가 2024년 9월 랠리 이전 수준으로는 떨어지지 않을 것 같지만 현재로서는 상승할만한 촉매제가 부족하며 당분간은 횡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모건스탠리 측은 최근 투자 메모를 통해 “미·중 갈등 리스크를 피해갈 만한 종목을 찾는다면 중국 최대 해외 유전 시추회사인 중해유전공사(COSL)나 중국 최대 해운선사인 코스코쉬핑을 주목할 만하다”면서 중국 기술주 외 업종으로 눈돌릴 것을 주문했다.
[김인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