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가 큰손과 국민연금의 매입 종목 살펴보니… 채권 사들이고 초기 단계 기술주는 팔고

    입력 : 2023.04.03 13:57:55

  • 고물가, 고금리 등 매크로(거시경제) 불확실성이 여전한 시기에 ‘큰손’들의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을 파악하는 건 중요하다. 약세장에서도 어떤 섹터 및 테마의 주식이 상승 모멘텀(동력)을 얻을지 투자 고수들의 아이디어와 판단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분기 주요 글로벌 연기금 및 기관투자자들은 금리 인상 사이클이 지속되고 있지만 기술·성장주 저가 매수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헤지펀드계 전설’ 조지 소로스 및 ‘돈나무 누나’ 캐시 우드 등은 미국 전기차 종목 테슬라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가치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종목 TSMC 비중을 3개월 만에 대거 줄이며 단타에 나서 월가의 눈길을 끌었다. 국내의 국민연금공단(NPS)도 테슬라, 엔비디아, 알파벳(구글) 등을 대거 사들였다.

    글로벌 연기금, 헤지펀드, 자산운용사, 투자전문회사 등이 지난해 4분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13F’ 운용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4분기 애플 주식을 31만1717주 추가 매입했다. 이로써 국민연금의 애플 총 보유 주식 수는 2240만7779주(시장가치 약 3조7900억원)로 국민연금이 보유한 미국 기업 주식 중 차지하는 비중은 5.73%에 달한다.

    그 밖에 국민연금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알파벳(클래스A·C 포함), 메타 플랫폼(페이스북) 주식도 각 20만6175주, 3만954주, 30만9824주, 8만2025주 사들였다. 국민연금의 보유 주식 중 이들 미국 빅테크 5개주 비중은 16.23%다. 지난해 말 미국 증시가 조정기를 지속하면서 주가가 하락해 기업가치(밸류에이션)가 저렴해지자 저가 매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싱가포르 국부펀드를 운영하는 투자청(GIC)은 세계 2대 경제체인 중국의 리스크에 대한 심사 강도를 높이면서 민간투자에 제동을 걸었다. <사진 연합뉴스>
    싱가포르 국부펀드를 운영하는 투자청(GIC)은 세계 2대 경제체인 중국의 리스크에 대한 심사 강도를 높이면서 민간투자에 제동을 걸었다. <사진 연합뉴스>

    국민연금은 서학개미들이 선호하는 기술·성장주인 테슬라, 엔비디아 비중도 높였다. 국민연금은 작년 4분기 테슬라는 5만1403주, 엔비디아는 7만7382주 신규 매수했다. 국민연금의 테슬라, 엔비디아 지분율은 각각 0.88%, 1.01%다.

    약세장에서도 주가 방어력이 뛰어난 전통적인 미국 가치주 비중도 늘렸다. 유나이티드헬스그룹, 존슨앤드존슨가 대표적으로 각각 2만6098주, 8만818주 매수했다. 그 밖에 고유가 시대 수익성 향상이 기대되는 엑손 모빌, 셰브론 등 정유 관련주도 지분을 늘렸다.

    추가 매수하진 않았지만 미국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비중은 높게 유지했다. 대표적으로 국민연금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미국 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를 추종하는 ‘인베스코 퓨어베타 MSCI 미국(PBUS)’ 및 ‘아이셰어스 코어 S&P500(IVV)’ ETF를 각각 3.45%, 1.74% 지분 보유 중이다.

    국민연금, 테슬라·엔비디아 비중 높여

    반면 국민연금은 성장 초기 단계의 기업 주식은 대거 판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265만7279주), 로블록스(57만6900주)의 경우 보유했던 주식을 모두 팔았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의 미국 주식 보유 가치는 508억3700만달러(약 66조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직전 분기 보유 가치인 479억2400만달러(약 62조5000억원)에서 6% 증가한 수치다. 다만 2021년 말 기준인 573억2024만달러(약 74조7500억원)와 비교해선 11.3% 감소했다. 국민연금의 주식 회전율은 7.2%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분 상위 10개 종목 보유 비율은 24.47%다.

    저가 매수에 나섰지만 국민연금의 지난해 말 해외 주식 투자 수익률은 시장 지표에 미치지 못했다. 미국의 기관투자자 분석 매체인 웨일위즈덤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지난해 10월 포트폴리오 수익률은 3.94%로 같은 기간 S&P500 토털리턴(TR) 인덱스 수익률(5.92%)에 못 미쳤다.

    사진설명

    기술·성장주 저가 매수에 나선 건 국민연금뿐만 아니다. 월가의 소로스가 이끄는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는 지난해 4분기 테슬라 주식 25만 주를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보유 주식 수(8만 주)의 3배가량 되는 물량으로 테슬라 주가가 급락하자 대거 저가 매수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는 그 밖에 전기차 전환에 힘쓰고 있는 제너럴모터스(GM) 주식도 50만 주 매입하며 전기차 테마 주식 비중을 늘렸다. 캐시 우드가 운영하는 아크인베스트먼트 또한 테슬라 주식 54만 주를 매입했다. 세계 1위 자산운용사인 블랙록도 테슬라 주식 587만 주를 사들이며 포트폴리오에서 비중을 늘렸다.

    그 밖에 블랙록의 경우 한국 유통 종목인 쿠팡 주식을 4분기 704만 주 대거 사들였다. 해당 지분 가치는 2000억원에 육박한다. 지난해 3분기 첫 흑자를 본 쿠팡이 2개 분기 연속 이익 성장에 나설 것이란 기대감에 추가 매수를 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외 르네상스테크놀로지도 작년 4분기에 쿠팡 292만 주가량을 사들였으며 매사추세츠공대(MIT)도 469만 주를 추가로 더 사들여 2870만 주를 들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캘퍼스)도 쿠팡 주식을 55만 주 더 사들였다. 쿠팡은 실제 2개 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긴 했지만 매출 성장이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서 주가는 하락했다. 블랙록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구글) 등 대표적인 미국 대형 기술주들도 대거 사들였다.

    글로벌 기관투자자 2022년 4분기 해외주식 순매수 규모
    글로벌 기관투자자 2022년 4분기 해외주식 순매수 규모

    저가 매수에 나선 건 헤지펀드, 운용사뿐만 아니라 글로벌 연기금도 마찬가지였다. 캘퍼스는 지난 4분기 애플, 테슬라, 월트 디즈니 주식을 더 사들인 반면 대표적 경기방어주인 월마트 주식은 대거 팔았다. 캘퍼스는 애플 주식 800만 주를 추가로 사들이며 포트폴리오 내 애플 비중을 4300만 주로 늘렸다. 또 테슬라 주식 67만 주를 사들이며 비중을 640만 주로 늘렸다. 밥 아이거가 최고경영자(CEO)로 복귀한 디즈니 주식 수도 기존 410만 주에서 550만 주로 증가했다. 반면 재고 증가 우려가 발생한 월마트 주식은 190만 주 매각했다.

    한편 버핏이 운영하는 투자전문회사이자 미국 증시 상장사인 버크셔해서웨이는 지난해 3분기 사들인 대만의 반도체 종목 TSMC 주식 5176만 주를 처분해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앞서 버크셔해서웨이는 지난해 3분기 TSMC 주식을 41억달러(약 5조2480억원) 규모로 매입한 바 있다. 2022년 9월 말 기준으로 TSMC 주식 6010만 주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한 분기 사이 86%를 팔아치운 것이다. 버핏이 ‘초단타’에 나섰다는 해석에 TSMC 주가는 이후 하락세를 탔다. 월가에서도 “이례적”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워런 버핏은 반도체 수익 실현

    올해 들어 글로벌 반도체 수요 둔화로 TSMC 매출액이 5%가량 감소할 것이란 전망에 버크셔해서웨이가 수익 실현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CFRA리서치에 따르면 버크셔해서웨이는 이번 단타로 3억1080만달러의(약 3977억원) 시세 차익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 <빅쇼트>의 주인공이자 지난 2008년 금융위기를 예견한 인물인 마이클 버리가 운영하는 사이언자산운용은 중국 주식에 베팅했다. 지난해 4분기 징둥닷컴과 알리바바 그룹 홀딩스를 각각 7만5000주, 5만 주 사들였다.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기대감에 따른 중국 기업들의 수익성 강화를 기대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중국 및 홍콩 증시는 ‘정찰 풍선 사태’로 인한 미·중 갈등 재점화로 상승 동력을 좀처럼 얻지 못하고 있다. 홍콩 항셍지수는 3월 중순 기준 2만 선이 깨진 상태다. 최근 중국 당국은 글로벌 4대 회계법인과 감리 계약을 피하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회계 문제가 커질 경우 미국 증시에 상장된 200여 개의 중국 주식들의 상장 폐지 문제가 재차 부각될 가능성도 있다.

    국민연금공단(NPS)이 지난해 4분기 미국 증시에서 애플, 아마존, 알파벳(구글), 테슬라, 엔비디아 등 대형 기술·성장주 비중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연합뉴스>
    국민연금공단(NPS)이 지난해 4분기 미국 증시에서 애플, 아마존, 알파벳(구글), 테슬라, 엔비디아 등 대형 기술·성장주 비중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연합뉴스>

    싱가포르투자청 중국 투자 줄여

    버리와 반대로 미국 뉴욕주 공동퇴직기금(뉴욕연금)은 중국 관련 주식 비중을 대거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분기 뉴욕연금은 알리바바, TSMC에 대한 투자를 중단했다. 공적연금인 만큼 중국의 지정학적, 정치적 리스크를 투자 우려 사항으로 판단했다는 분석이다. 싱가포르의 국부펀드 싱가포르투자청(GIC)도 최근 중국 투자 비중을 줄이고 있다.

    그 밖에 큰손들은 지난해 고강도 금리 인상으로 가격이 대거 떨어진 채권을 사들이는 모습도 보였다. 미국 행동주의펀드 엘리엇은 회사채 상장지수펀드인 ‘아이셰어스 아이복스 미국 하이일드 채권(HYG)’ 및 ‘SPDR 블룸버그 바클레이스 하이일드 채권(JNK)’ ETF를 각각 713만 주, 256만 주 추가 매입했다.

    한편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KIC)가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을 포함해 부실 우려가 발생한 미국 은행의 주식을 1286억원어치(작년 말 기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SVB 파산 사태 이후 이들 종목 주가는 급락해 현재 국민연금, 한국투자공사는 약 790억원의 평가손실을 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SEC에 제출한 문서를 바탕으로 한 직접투자 규모만 해당하는 것으로 위탁운용까지 포함할 경우 손실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분기 기준 국민연금은 SVB 주식 10만795주 외에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FRC), 앨라이 파이낸셜(ALLY) 주식을 각각 25만2427주, 18만5059주 보유 중이다. 한국투자공사도 SVB 2만87주를 포함해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13만7853주), 시그니처 은행(9만1843주), 앨라이 파이낸셜(27만733주) 등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워런 버핏 회장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가 지난해 말 보유하던 대만 TSMC 주식을 대부분 매도했다. <사진 연합뉴스>
    워런 버핏 회장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가 지난해 말 보유하던 대만 TSMC 주식을 대부분 매도했다. <사진 연합뉴스>

    국민연금과 KIC가 보유한 주식을 작년 말 기준으로 계산하면 SVB 368억원,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 629억원, 시그니처 은행 140억원, 앨라이 파이낸셜 149억원 수준이다. 한국투자공사는 지난해 4분기 SVB 비중을 80%가량 줄였지만 국민연금은 오히려 추가 매수했다.

    미국 기관투자자 공시분석 사이트인 웨일위즈덤이 추정한 매수 평균 단가를 활용해 계산해보면 3월 중순 기준 국민연금, 한국투자공사의 이들 주식 투자 수익률은 -38% 수준이다. SVB는 올 들어 10일(현지시간) 거래정지 때까지 주가가 63% 폭락했다. 시그니처 은행,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 앨라이 파이낸셜도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미국 현지 일각에선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사업 비중이 높은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이 제2의 SVB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3월 12일(현지시간) 뉴욕주 금융당국은 시그니처 은행을 폐쇄하고 자산 몰수 절차에 돌입하기도 했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앨라이 파이낸셜은 기타포괄순익 누계(AOCI·실현되지 않은 순이익)가 -40억5900만달러(약 -5조3300억원)에 달하고 있다.

    차창희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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