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포자이도 전세가 10억원 떨어졌다… 싼 전세 넘쳐난다는데 5억에 개포 살아볼까

    입력 : 2023.03.15 16:15:04

  •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세입자도, 아직 안 쓴 세입자도 새 아파트로 이사 간다고 하네요. 2년 전보다 전세금을 낮추고, 새 아파트보다도 더 싸게 해준다는데, 뒤도 안 돌아봅니다. 2년 전에 전세 가격이 워낙 올랐다보니 보증금을 돌려주려면 최소 4억~5억원은 돌려줘야 하는데 집주인들 걱정이 늘고 있어요.”(개포동 A공인중개사무소)

    고금리발 거래 절벽, 입주 물량 증가 등 영향으로 강남권의 전셋값이 크게 하락하고 있다. 서울 수도권 전체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특히 강남권에서 영향이 심하다. 1년 만에 전셋값이 반토막 난 단지부터, 매물이 쌓이는 단지까지 역전세난이 심화되는 모습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서울 강남구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 전용 59㎡(5층)가 5억8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면적이 지난 2021년 9월 11억5000만원에 거래됐던 점을 고려하면 1년 4개월 만에 전셋값이 반토막 난 셈이다. 근처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급전세 매물이라 가격이 다른 매물보다 낮았던 것으로 안다”면서도 “같은 평형 다른 매물도 시세가 6억~7억원에 불과해 많이 내려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현재 강남권 전셋값 하락을 주도하는 곳은 개포동 일대다. 개포자이프레지던스(3375가구) 입주가 2월 시작하면서 전세 매물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에 풀린 개포자이 전세 매물만 1353건(2월 3일 기준)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시기 개포동 전체 전세 매물(946건)을 뛰어넘는 수치다. 이 영향으로 ‘개포래미안포레스트’ 84㎡의 전세금도 지난해 9억5000만원에서 이달 7억원으로 낮아졌고, ‘개포래미안블레스티지’ 84㎡도 같은 기간 9억5000만원에서 8억원까지 하락했다. 2년 전 이들 단지의 같은 주택형 전세금 최고가는 16억~17억원에 달했다.

    강남 개포동 소재 ‘개포자이프레지던스’가 대규모 입주를 예고하면서 일대 전셋값 낙폭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강남 개포동 소재 ‘개포자이프레지던스’가 대규모 입주를 예고하면서 일대 전셋값 낙폭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개포동이 전세 하락세 주도

    개포동 영향은 다른 강남권에도 영향을 주는 모습이다.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84㎡도 이달 전세금이 12억원(10층)까지 떨어졌다. 2년 전인 2021년엔 최고 전세 가격이 22억원까지 올랐던 점을 생각하면 무려 10억원 하락했다. 송파구 잠실동의 상황도 비슷하다. 이달 잠실엘스 전용면적 84㎡도 8억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는데, 2021년 11월 15억원과 비교하면 반토막이다. 2월 현재 매물 대부분이 8억원대에 올라와 있다. 심지어 강남권에서 4억원대에 거래된 전세 매물도 있다. 강남구 개포럭키아파트 전용 79㎡(8층)는 4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송파구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가격이 계속 낮아지는데도 전세 매물을 보러 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경향은 한국부동산원 통계에서도 엿보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1월 1일~2월 13일) 들어 전국 아파트 전세 가격은 5.25%,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은 6.94% 하락했다. 그런데 강남구(-8.49%), 강동구(-7.43%), 서초구(-7.12%) 등은 전세 가격 하락 폭이 서울 전체보다 크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급락하는 것은 대출 금리 부담으로 전세 수요자가 월세를 선호하는 데다, 계약 갱신 거래가 늘면서 전세 매물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1월 24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5만2279건으로 6개월 전(3만1740건)에 비해 65% 늘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급락하면서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 가격 비율)도 연일 하락세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60.2%였던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12월 58.9%로 하락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올해 서울 강남권 입주 물량이 쏟아지면서 당분간 전셋값 하락세는 계속된다는 관측이 나온다는 점이다. 전셋집을 찾는 수요자에겐 희소식이지만, 집주인에게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반포 자이
    반포 자이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 늘어

    직방에 따르면 내년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은 총 30만2075가구(413개 단지)로, 올해(25만6595가구)보다 18%가량 증가한다. 지역별로 수도권은 내년 15만5470가구(183개 단지)로 올해 대비 9%가량 증가한다. 서울은 강남구, 은평구, 서초구 등 순으로 입주 물량이 많다. 대부분 재건축·재개발이 완료된 단지다. 경기는 양주·화성·평택 등 택지지구 입주 물량이 공급되고, 인천은 검단·송도 등에서 4만1917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지방은 올해보다 29% 많은 14만6605가구가 입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도 입주 물량이 많았던 지역을 중심으로 입주가 이어진다. 대구 3만4638가구, 충남 2만1405가구, 부산 2만155가구 등이다.

    이 중 강남권에서만 1만3000여 가구가 쏟아진다. 2022년 강남권 입주량보다 4배 많고, 최근 3~4년간을 돌이켜봐도 볼 수 없었던 물량이다. ‘개포프레지던스자이’를 시작으로 5월 ‘대치푸르지오써밋(489가구)’, 6월 ‘르엘 신반포 파크애비뉴(339가구)’, 8월 서초구 ‘반포 래미안 원베일리(2990가구)’, 11월엔 강남구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6702가구)’가 입주한다. 문제는 2024년까지 넘어갈 강남권 입주 물량도 상당하다는 점이다. 서초 반포에서는 ▲신반포메이플자이 3307가구, 서울 강동에서는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1만2000가구 등이 입주할 계획이다.

    2025~2026년에는 입주 예정 물량 1만8425가구가 또 나올 예정이다. 외국계 자산운용사 채권운용본부에서 크레디트 분석 업무를 하고 있는 배문성 씨는 “강남 3구, 용산구 입주 물량이 가장 적었던 2011년과 2017년은 각각 3000가구 이하였다”며 “2023년부터 강남 3구에서 역대 최대급 물량이 공급되는 만큼, 공급 절벽이 아니라 공급 폭탄을 걱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남권은 고가 전세가 많아 이 지역에서 신축 대단지 입주 물량이 쏟아지면 서울 전체 전세가까지 끌어내릴 수도 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 집값이 장기간 약세가 이어진 데는 2007~2009년 잠실, 반포 등 강남 중심으로 입주가 쏟아졌던 영향이 컸다. 2019년에는 헬리오시티(9510가구) 입주로 서울 전세 가격이 내려앉았다. 특히 많은 사람이 강남권 물량을 주목하지만 서북권 물량도 체크해야 할 포인트다.

    7월부터 은평구·서대문구 생활권인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일대에 입주 물량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서울 은평구 ‘DMC SK뷰 아이파크포레(1464가구)’와 ‘DMC 파인시티자이(1223가구)’ 등이 입주한다. 인천 검단 등 수도권 서남부에 몰려 있는 입주 단지도 만만치 않다.

    향후 3년 강남권 주요 입주 단지
    향후 3년 강남권 주요 입주 단지

    전문가들은 올해 서울·수도권 전세 시장은 ‘역전세(전세 시세가 계약 당시보다 하락하는 상황)’를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집주인들이 경쟁해야 하는 전세가는 2021년 사상 최고가에 체결된 전세 물량이다. 이때는 역사적 저금리, 임대차 2법으로 인한 전세 매물 급감, 반포주공 멸실 이주(3600가구) 등이 겹치면서 전세가가 높았다. 이렇게 최고가로 체결된 전세 계약들이 2년 차를 맞을 때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신축 대단지 입주 물량이 쏟아지면서 역전세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다.

    특히 새 아파트 단지의 경우 입주율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입주할 때 당첨자들이 잔금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하는데 기존 집이 안 팔리거나 세입자를 못 구해 잔금을 못 낼 리스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잔금을 확보 못한 건설사들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실제로 전국 아파트 입주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1월 전국 아파트 입주율은 66.2%로 10월(72.5%)보다 6.3%포인트 하락했다. 주산연은 “고금리와 주택 가격 하락 추세가 지속될 경우 미분양과 계약 해지, 준공 후 미입주에 따른 건설업체와 제2금융권의 연쇄 부도가 우려된다”고 했다.

    이처럼 대규모 신규 물량 및 전세만기, 고금리 등 악재가 겹치며 역전세난이 다수 일어날 경우 갭투자를 통해 아파트를 구매한 임대인들은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어 급매물이 쏟아지며 결국에는 집값 하락을 부채질하는 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갭투자를 통해 서울에 아파트를 매입한 30대 남성 A씨는 “2021년 갭투자를 통해 아파트를 구입했지만 지난해부터 집값과 전세 가격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답답한 속내를 털어놨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전세 가격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게 된다면 자기 자본을 이용한 레버리지의 활용이 불가능해지고 만약 갭투자자가 다주택자라면 급매물을 내놓을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라며 “급매물 자체가 하락 거래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 비중이 높아진다고 한다면 집값 하락 폭 증가 및 장기화의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송파구 한 대형아파트 상가 내 부동산 업소에 전세가가 게시돼 있다. <사진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한 대형아파트 상가 내 부동산 업소에 전세가가 게시돼 있다. <사진 연합뉴스>

    세입자, 갭투자 아파트 주의해야

    물론 지금 상황이 세입자에게 꼭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집값이 계속 떨어지면 전세보증금 자체를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국토연구원은 최근 공개한 연구에서 집값이 매매가보다 20% 떨어질 경우 갭투자로 매매 거래된 주택의 40%가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 중 최대 1만3000가구는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돈을 마련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이는 집값이 전셋값 밑으로 떨어지는 ‘깡통전세’ 수준을 넘어 보유한 현금성 금융자산과 추가대출 가능액, 해당 주택 매매 등을 동원해 자금을 최대한으로 마련해도 보증금을 못 돌려주는 집주인이 최대 1만3000가구가 된다는 의미다. 세부적으로는 집값이 갭투자 시점 대비 15% 하락하면 보증금 반환 불가 주택은 1만 가구, 집값이 27% 하락하면 1만3000가구가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할 것으로 분석됐다.

    국토연구원은 특히 올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주택이 가장 많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연구를 진행한 박진백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자금 조달계획서 제출 의무가 있는 조정대상지역만을 기준으로 한 수치라, 실제로는 더 많은 갭투자 주택이 보증금 미반환 위험에 노출돼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들에게 지급한 대위변제액은 지난 1월에만 1700억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동기(523억원) 대비 3배가 넘는 수치다. 지난해 7월 564억원에서 6개월 연속 증가 추세다.

    손동우 매일경제 부동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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