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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상 기조 막바지 채권 투자 어떻게 하나… 단기채보다 장기채, 만기매칭형 ETF 관심
입력 : 2023.03.07 16: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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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이어져온 글로벌 금리 인상 기조가 올해 막바지에 다다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개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채권 투자 열풍이 불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다소 해소된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및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마무리되면 향후 시장금리가 인하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금리와 채권은 반대로 움직인다. 때문에 금리 상단이 확인되거나 향후 금리 인하 시 채권 가격은 통상 오르는 모습을 보인다. 지난해 고강도 금리 인상으로 ‘채권 대학살’이 발생하며 가격이 급락했지만 올해 들어 가격이 반등세를 보이는 것도 금리 인하 기대감 때문이다. 특히 금리에 따른 가격 변동 폭이 단기채권 대비 상대적으로 큰 장기채권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도가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실제 단기채 대비 장기채 수익률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2월 중순 기준으로 지난해 12월 발행된 한국 국채 10년물을 매수했을 때 평가수익률은 8.18%에 달한다. 표면금리 4.25%로 발행된 해당 장기채의 현재 민평 기준금리는 3.35% 정도인데 현재 금리가 크게 떨어진 만큼 채권 가격이 급격히 오른 것이다.
반면 장기채 대비 단기채의 가격 상승률은 높지 않았다. 지난해 9월 표면금리 3.12%로 발행된 한국 국채 2년물의 현재 기대수익률은 0.78%에 불과했다. 지난해 말부터 채권 시장 금리는 전반적으로 내렸지만 듀레이션(실효 만기·투자금을 회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긴 국채 10년물의 상승 탄력성이 더욱 높았다는 분석이다. 증권사들의 장기채, 단기채 수익률 시뮬레이션 결과를 봐도 장기채 성과가 더 좋았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만기 전 시가평가 기준으로 국채 20년물과 30년물의 보유 기간 투자 수익률은 각각 11.5%, 14.4%였다.
기준금리 수준 사실상 고점올해 들어 장기채 가격이 가파르게 오른 건 기준금리 수준이 사실상 고점에 도달했다는 시장참여자들의 인식 때문이다.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는 채권 가격 특성상 이러한 시장 심리는 채권 가격 상승세로 이어진다. 중요한 건 채권은 듀레이션이 길수록 금리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이다. 만기가 길수록 향후 발생할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므로 보통 장기채가 단기채보다 가격이 저렴한 편(금리가 높은 편)이다. 또 금리가 변할수록 그에 따른 장기채의 가격 변동 폭이 크다. 따라서 현재처럼 금리 하방 압력이 높아진 시기엔 듀레이션이 긴 장기채가 단기채보다 수익성이 뛰어나다.
흔히 채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투자 수익으로 이자 수익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채권도 매매 시점에 따라 주식처럼 매매(자본) 차익을 충분히 거둘 수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해엔 고금리를 바탕으로 단기채를 대거 사들여 이자를 얻는 투자법이 주목받았지만 금리 수준이 고점을 확인하는 올해엔 장기채를 통한 차익 실현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한다.
실제 금리 인하 시기 장기채 성과가 훨씬 좋았다. 한국투자신탁운용에 따르면 과거 금리 인하 시기에 장기채 수익률이 최대 40%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9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금리 인하가 진행될 때 30년물 국채 수익률은 41.4%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10년물 국채 수익률인 23.8%를 크게 웃돈 것이다. 2019년 7월부터 2020년 3월까지 금리 인하 시기 때도 30년물 수익률은 26.6%로 10년물 수익률(11.3%)을 웃돌았다. 이에 따라 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 시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장기채 레버리지 상품을 일부 포트폴리오에 포함하는 투자 전략까지 거론된다.
남용수 한국투자신탁운용 ETF운용본부장은 “금리 인상 사이클이 멈추게 되면 듀레이션이 긴 30년물 채권은 금리 인하에 따른 채권 가격 상승에 유리한 투자 수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증권은 단기채, 장기채의 적절한 조합을 통한 ‘채권 바벨 전략’을 강조한다. 바벨 전략이란 안정성과 리스크라는 두 가지 투자 방법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으로 최근 고액 자산가들이 단기채와 장기채를 동시에 사들이는 모습을 보이자 주목받았다. 단기채 이자 수익으로 일정한 현금 흐름을 확보하고, 장기채 일부를 포트폴리오에 포함해 미래 자본 차익을 노리는 식이다.
특히 고액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올해 초부터 장기채를 사 모으기 위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시행 예정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가 2년 동안 유예되면서 비과세 혜택이 연장된 점도 채권 투자의 호재다. 만약 예정대로 금투세가 시행됐다면 올해부터 채권의 자본 차익은 250만~3억원 구간에는 22%, 3억원 초과 구간에는 27.5% 세율이 적용됐겠지만 2025년까지 비과세가 유지됐다.
박경희 삼성증권 채널영업부문장(부사장)은 “슈퍼 리치들의 돈이 단기채에서 장기채로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며 “특히 고액 자산가들의 경우 절세 혜택이 중요한데 채권의 자본 차익은 비과세가 당분간 유지돼 큰손들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고액 자산가 A씨는 “주식이 소위 ‘먹을 건 많아 보인다’는 건 맞지만 리스크 관리도 필수적”이라며 “채권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해 안정성을 높이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증권이 매일경제신문과 자산 규모 10억원 이상 자산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슈퍼 리치들은 채권 투자 관련 국내 고금리 회사채(23.4%)와 한국 국채(22.1%) 상품에 주목했다. 그 뒤로 글로벌 우량기업 회사채(19.5%), 미국 국채(18.2%), 한전채·지방채·공사채(16.9%) 순으로 선호했다.
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디스인플레이션(물가 둔화)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사진 연합뉴스> 장기채 가격 상승 동력 지속증권업계에선 당분간 장기채 가격의 상승 동력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이 금리의 최상단을 확인했다는 분위기가 조성되며 시장 금리 하방 압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올해 1월 이뤄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당시 한은은 기준금리를 3.5%로 25bp(1bp=0.01%포인트) 올리며 성장에 대한 우려를 강조했고 업계에선 “한은의 금리 인상이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지난 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물가상승률을 목표치인 2%대로 낮추려면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한다”면서도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 과정이 시작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고 밝혔다.
여전히 금리가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 시장 채권에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다. 미국채 또한 단기채보다 장기채의 가격 상승률이 높다. 미국 시카고선물거래소(CME)에 따르면 미국채 10년물 가격은 올해 들어 2% 이상 올랐다. 반면 미국채 2년물은 올해 채권 가격 상승률이 0.4~0.5%에 불과했다. 특히 미국채 투자는 환율 영향을 받기에 향후 달러 가치가 오르면 환차익도 거둘 수 있다. 최근 1220원대까지 급등했던 달러당 원홧값은 2월 중순 기준 1250~1260원대까지 재차 하락한 바 있다.
장기채는 단기채 대비 채권 가격 변동성이 커 채권금리 하락 구간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다. <사진 연합뉴스> 채권 직접 투자가 어렵다면 국내 증시에 상장된 채권 ETF를 통해 간접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다. 국내 증시에는 ‘KODEX 장기종합채권(AA-이상) 액티브KAP’, ‘KBSTAR 중장기국공채액티브’, ‘TIGER 중장기국채’, ‘ACE 중장기국공채액티브’ ETF 등 다양한 장기채 상품들이 있다. 그 밖에 ‘KODEX 미국채울트라30년선물’, ‘TIGER 미국채10년선물’ 등 미국 채권에 투자할 수도 있다.
장기채 열풍이 계속되면서 최근 서학개미들은 미국의 3배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를 대거 사들이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세이브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서학개미들은 만기가 20년 이상 남은 미국 장기국채의 수익률을 3배로 추종하는 ‘디렉시온 데일리 20년+ 트레저리 불3X(TMF)’ ETF를 2149만달러(약 276억원) 순매수했다. 다만 레버리지 투자를 지속할 경우 주가가 횡보하거나 하락세가 지속되면 ‘음의 복리’ 효과에 따른 손실이 커질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한편 최근 만기매칭형(존속기한형) 채권 ETF에 개인투자자 매수세가 몰려 주목된다. 만기매칭형 펀드는 만기가 설정된 ETF로 정해진 만기가 지나면 청산 과정을 거쳐 상장 폐지된다. 만기를 설정한 이유는 투자자들이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수익을 더 확실하게 예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고금리 환경 속 지속적인 이자 수익을 얻길 원하는 투자자들은 만기매칭형 채권 ETF 매수로 안정적인 이자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실제 이 같은 수요에 해당 ETF의 순자산 규모는 출시 3개월 만에 3배가량 급증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만기매칭형 채권 ETF 10종의 순자산 잔고는 지난해 11월 상장 당시 8360억원에서 올해 2월 중순 기준 2조4200억원 수준으로 급증했다. 출시 3개월 만에 자산 규모가 3배 성장한 셈이다. 특히 거래량이 많은 ‘KODEX 23-12 은행채(AA+이상) 액티브’ ETF의 경우 자산 규모가 최초 1570억원에서 올해 1월 말 기준 9577억원으로 6배 증가했다.
개인투자자 매수세 이어져만기매칭형 채권 ETF 자산 규모가 급증한 이유는 개인투자자들의 순매수세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이후 올해까지 개인투자자들의 만기매칭형 채권 ETF 순매수액은 1640억원에 달한다. 고금리 환경에서 안정적인 이자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개미들을 중심으로 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만기매칭형 채권 ETF는 매수 후 만기까지 보유할 시 매수 시점에서 예상한 만기수익률(YTM) 수준의 이자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세부적인 수익 구조는 이자 수익과 자본 수익으로 나눠질 수 있다. ETF의 특성상 금리 수준, 채권 가격 변동 폭을 바탕으로 매일 ETF 가격에 반영된다. ‘상장된 은행 정기예금’과 유사한 개념으로 매일 기대수익률만큼 주가가 소폭 상승하는 구조를 띠고 있다. 만기일이 다가오면 상장 폐지돼 현금 청산되며 투자 금액 한도가 없어 소액투자자들에게도 접근성이 높은 상품이다.
특히 만기매칭형 채권 ETF는 퇴직연금 계좌와 더불어 연금저축계좌에서도 100% 투자가 가능해 세액공제 혜택을 기대해볼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자산군을 찾는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만기매칭형 채권 ETF 수요가 지속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차창희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