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발상 투자법 선진국보다 신흥국, 한·중 반도체 주목

    입력 : 2023.02.10 15:46:45

  • 지난해부터 글로벌 투자 시장은 암흑기를 이어오고 있다. 각국 주요 증시는 폭락하고 부동산 시장도 깊은 조정을 거치고 있다.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인 채권 시장 역시 급등락을 반복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암흑기에도 빛을 발한 건 역발상 투자였다.

    지난해 튀르키예·아르헨티나와 같은 일부 국가의 증시 대표 지수는 2배 넘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화폐가치 하락 등 거시경제 불안에도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한 것이다. 물가 급등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는 공통으로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를 단행한 결과다. 투자자들은 불안정한 경제 상황과 화폐가치 하락에 따른 자산가치 하락을 피하려고 증시로 몰렸다.

    그 결과 튀르키예 BIST100지수와 아르헨티나 S&P 메르발 지수는 지난해 각각 197%, 142% 상승했다. 이에 미국에 상장된 ETF 중 레버리지와 인버스 상품을 제외하고 수익률이 가장 높은 ETF로 튀르키예 지수를 추종하는 ‘TUR(iShares MSCI Turkey ETF)’가 꼽혔다. 수익률은 연간 105.8%, 3개월간 68.4%에 달한다. 지수는 197%나 상승했지만 튀르키예 화폐 단위인 리라화의 절하로 수익률은 105.8%에 머물렀다. 리라화 절하를 적용하더라도 다른 ETF를 제치고 독보적인 수익률을 기록한 것이다.

    다만 증권업계는 2023년에 튀르키예와 아르헨티나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추가 투자는 추천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확실성이 커진 시장에서 역발상으로 시장 대비 초과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것을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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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흥국 투자로 선회

    2023년 선진국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경기 침체’다. 인플레이션의 악몽을 떨쳐내기 위해 긴축의 고삐를 당기고 있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경기 침체를 각오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경기 침체 늪의 깊이와 기간에 관심이 쏠리는 형국이다. 블룸버그가 지난해 말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올해 미국 경기 침체 확률은 70%까지 치솟았다. 6개월 전 조사에서의 경기 침체 전망(30% 확률)보다 두 배 이상 뛴 것이다.

    미국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전망치는 0.3%에 그쳤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이 2022년 10월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발표한 2023년 미국 경제성장률 예상치(1%)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올 초 한 인터뷰에서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힘겨운 해가 될 듯하다”라며 “세계 경제의 3분의 1, 유럽연합(EU)은 절반 정도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선진국 시장의 침체 우려와는 반대로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최근 신흥국 증시에 대한 비중 확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EM(신흥국 시장) 지수의 목표치를 1100포인트로 기존보다 10% 상향했다. UBS는 올해 신흥국 지수가 조정받은 뒤 재반등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역시 최근 진행된 글로벌 펀드매니저 설문조사에서 신흥국 비중 확대를 ‘최고의 역발상 전략’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제 연초부터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신흥국 상장지수펀드(ETF)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다. 달러화의 약세 전환과 올 한 해 내수 성장이 기대되는 베트남과 원자재 가격 상승의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되는 인도네시아 증시에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석탄·원유·천연가스·니켈 등 부존자원과 팜유, 고무 커피 등의 농산물을 생산하는 자원 부국이다.

    김찬영 한국투자신탁운용 디지털ETF마케팅본부장은 “베트남 증시는 최근 들어 저가 매력 확대로 외국인 자금 유입세가 강해지고 있고 베트남 정부의 국영기업 민영화 촉진을 위한 결의안 발표 등으로 중장기 투자 매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본부장은 “미국 연준의 고강도 긴축 우려와 러시아발 천연가스 가격 상승 등 유로존 인플레이션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로 글로벌 증시가 힘을 쓰지 못했다”며 “하지만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도네시아 증시에 훈풍이 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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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증시에 투자하는 대표적인 상품으로는 ‘ACE 베트남VN30(합성) ETF’가 있다. 이 상품은 베트남 시장 대표 거래소인 호치민거래소에 상장된 종목 중 시장 대표성과 유동성이 높은 대형주 30종목으로 구성된 VN30 지수를 기초지수로 한다. 공격적인 투자자라면 세계 최초 베트남 레버리지 상품인 ‘ACE 블룸버그베트남VN30선물레버리지(H) ETF’를 활용할 수 있다. 해당 ETF는 VN30 지수 일간 변동률을 2배로 추종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 1월 16일 기준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베트남 펀드(21개)에는 한 달 새 약 216억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그중 ‘ACE 베트남 VN30(합성) ETF’로 유입된 설정액은 약 87억원(40.28%)으로 가장 많았다.

    인도네시아에 투자하는 상품으로는 ‘ACE 인도네시아 MSCI(합성) ETF’가 있다. 이 상품은 인도네시아 시장 내 우량종목(시가총액 및 유동비율 기준)을 선정해 편입하는 ‘MSCI Indonesia Price return Index’를 추종한다. 주로 금융(57.43%), 커뮤니케이션서비스(10.86%), 필수소비재(9.34%), 소재(8.45%), 경기소비재(6.25%), 에너지(5.36%) 등으로 구성돼 있다.

    최근 탈(脫)세계화가 ‘뉴노멀(New Normal)’로 대두되면서, 새로운 경제 거점 국가로 떠오르는 ‘인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면서 새로운 생산기지로 동남아에 이어 인도가 재조명받으면서 한국도 2023년도부터 대(對)인도 수출 확대 및 인프라 구축에 참여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대표적인 상품으로는 미국에 상장된 인도 시장 ETF인 ‘iShares MSCI India ETF(INDA)’가 있다. 이 ETF는 113개의 인도 기업을 담은 MSCI 인도 지수를 추종한다. 이 ETF의 3년 수익률은 11.14%, 5년 수익률은 6.91%에 달한다. 이 상품에는 인도의 IT 컨설팅 기업인 ‘인포시스(Infosys)’, 인도에서 가장 큰 민간 금융 서비스 회사인 ‘HDFC은행’, 인도의 4대 은행 중 하나인 ‘ICICI은행’ 등이 포함돼 있다.

    SKC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3에서 선보인 반도체 글라스 기판.
    SKC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3에서 선보인 반도체 글라스 기판.

    이와 함께 인도 대형기업 위주로 투자하는 ‘Franklin FTSE India ETF’도 있다. 국내에서는 인도 니프티지수에 투자하는 ‘TIGER인도니프티50레버리지(합성) ETF’, ‘KOSEF 인도니프티50(합성) ETF’ 두 가지가 대표적이다. TIGER인도니프티50레버리지 ETF는 지난해 3분기 인도 성장 기대감을 타고 한때 수익률 32%를 달성하면서 국내 ETF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달성하기도 했다.

    KOSEF 인도니프티50(합성) ETF는 이보다 낮은 수익률을 보였지만,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이 나온다. 인도 관련 ETF 투자는 수많은 기업에 분산투자라는 효과가 있다는 점이 최대 강점이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앞으로 인도가 공급망 재편의 중심이 된다면, 한국 전체에서 대인도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금보다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며, 그렇게 돼야 할 것”이라면서 “인도의 정책 방향성에서 1단계에 해당하는 ‘인프라 구축’ 관련 항목들이 한국의 대인도 수출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근거에 힘을 실어주는 이유”라고 밝혔다.

    반도체 침체 사이클이라는데…

    지난해 반도체 시장은 겨울, 특히 메모리 반도체는 한파를 겪었다. D램과 관련된 칩들의 현물과 장기계약 가격 변동을 알려주는 DXI 지수는 지난해 27% 하락한 2만7191pt로 마감됐고, D램 현물가격도 40%대 이상 큰 폭으로 떨어졌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 분석 결과 올해 전 세계 반도체 매출은 -4.1%를 기록하고,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인 메모리 반도체 매출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7.0%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가격이 오르려면 수요가 있어야 하는데 세계적 경기 침체 우려 속에 반도체가 필요한 산업 분야에서 투자와 생산을 줄이고 있어서 메모리 반도체의 수출 증가를 적어도 올 상반기에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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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상반기까지는 부진을 면치 못할 것이란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반도체 기업에 투자하는 상품이 출시했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기업에 함께 투자하는 상품이다.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12월 22일 삼성자산운용의 ‘KODEX 한중반도체(합성)’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한중반도체(합성)’을 출시했다. 기초지수는 우리나라의 메모리 반도체 대표 기업, 중국의 비메모리 반도체 대표 기업 등 양국의 반도체 산업 밸류체인에 속한 종목 중 시가총액 상위 15종목씩 선정해 30종목으로 구성된다.

    설태현 DB투자증권 연구원은 “최초의 한중 연계 상품으로 단일 지수에 투자하는 것보다 동시에 투자하면 국가 위험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며 “국내에서 가장 시가총액 비중이 높은 반도체, 테마 ETF 중에서 가장 많은 총운용자산을 자랑하는 전기차 산업은 한중 모두 주요 국가 산업으로 육성할 의지를 강하게 갖고 있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 관련 테마 ETF는 주간 상승세를 보였다. 글로벌 증시는 기업 실적 호조, 12월 미국 소비자신뢰지수 상승 등에 힘입어 낙폭을 줄여 나가는 움직임이다.

    반도체 사이클이 침체기를 지나고 있지만 역발상 투자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미 어닝쇼크(실적 충격)를 기록한 삼성전자가 대표적이다. KB증권은 지난 1월 9일 삼성전자에 관한 보고서를 내고 올해 1분기부터 주가가 본격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며 역발상 투자 기회라고 분석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연결 기준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4조3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69%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공시한 바 있다. 이는 시장 기대치인 6조원대 영업이익을 크게 밑돈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삼성전자의 주가가 반도체 업황을 6개월가량 선행한다는 점, 실적 저하에 따른 CAPEX (자본적지출) 감소 가능성에 공급 긴장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점, 중화권 모바일 수요 회복과 재고 소진 하향 가능성이 주가에 추진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이미 악재가 먼저 반영된 상태에서 긍정적인 재료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DB금융투자의 경우 이날 보고서를 통해 “이번 반도체 하락 사이클에서 삼성전자도 여유롭지 못하게 됐다”면서도 “그 어느 시절보다 강도 높은 공급 조절로 반도체 업황 반등은 더 가파를 것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삼성전자에 대해 매수를 추천한다”라고 밝혔다.

    박지훈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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