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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층 규제 완화 서울 스카이라인이 바뀐다… 여의도·용산·강남 곳곳 초고층 대변신
입력 : 2023.01.12 13:5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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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최고 높이를 35층으로 제한한 규제를 폐지하는 내용이 담긴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서울플랜)’이 서울시 심의를 최종 통과했다. 재건축·재개발사업의 발목을 잡아온 이른바 ‘35층 룰’이 사라지며 서울 노후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정비사업이 속도를 낼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여의도, 용산, 압구정 등 한강변을 따라 초고층 아파트가 지어져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다양해질지 관심이 모인다.
서울시는 최근 도시계획위원회를 열고 2040 서울플랜을 원안 가결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14년 수립한 ‘2030 서울플랜’은 이로써 8년 만에 대체됐다. 서울플랜은 서울시가 추진할 각종 도시계획의 가이드라인이 되는 최상위 공간계획이다. 향후 20년 동안 서울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성냥갑 대신 다양한 층수 기대가장 눈길을 끄는 건 단연 층고 규제 폐지다. 그동안 서울 일반주거지역에 일률적으로 적용됐던 35층 룰에 대한 내용이 이번 2040 서울플랜에선 삭제됐다. 아파트 최고 높이를 35층 이상으로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으로 구체적인 층수는 정비계획위원회 심의에서 지역별로 다른 여건을 고려해 결정한다.
용적률은 기준을 그대로 유지했다. 용적률은 대지면적에 대한 지상층 연면적의 비율을 일컫는다. 기존에는 높이 규제가 있다 보니 똑같은 15층 아파트를 일자로 쭉 세운 이른바 ‘성냥갑’ 모양으로 면적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층수를 달리해 건물을 세워 면적을 채워도 된다. 한 단지에 다양한 층수의 건물을 조화롭게 배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래미안 첼리투스 35층 룰 폐지의 첫 번째 수혜 단지는 서울 강남구 대치미도아파트(한보미도맨션1~2차)가 될 예정이다. 서울시는 얼마전 대치미도아파트를 최고 높이 50층에 3800가구 대단지로 탈바꿈하는 신속통합기획안(신통기획)을 확정했다. 현재 2436가구 규모인 이 단지는 1983년 준공돼 강남권의 대표적인 노후 단지로 꼽혀왔다.
2017년부터 재건축을 추진했지만 지지부진했고 신통기획 대상지로 선정되며 비로소 사업 추진 동력을 얻었다. 신통기획이란 서울시가 정비사업 초기부터 주민과 함께 계획안을 만들어 심의 시간을 단축하고 통과 가능성을 높이는 제도다. 기획안에 따르면 대치미도아파트는 단지 중심부에 타워형의 최고 50층 주동을 배치할 계획이다. 주변부에는 중저층 아파트가 들어선다. 총 가구 수는 기존보다 약 1300가구 늘어난 3800가구 안팎으로 설계됐다.
서울시는 지역에 필요한 기반시설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기부채납을 받을 예정이다. 학여울역에 단지 방향으로 출입구를 신설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남북 간 통경구간을 따라 대치동 학원가와 은마아파트, 대치미도아파트를 연결하는 중앙공원길도 만든다. 양재천 수변공간을 활용하는 방안도 신통기획안에 담겼다. 서울시는 “공공기여를 활용해 양재천에 보행교를 설치함으로써 단절된 대치생활권과 개포생활권을 연결하겠다”고 했다. 주민 의견 수렴이 원활하게 이뤄지면 정비구역 지정은 2023년 상반기에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여의도 시범, 한양 속도전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도 스카이라인이 달라질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11월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최대 65층·2500가구 규모로 재건축하는 내용을 담은 신통기획안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1584가구 규모 시범아파트는 1971년 준공돼 여의도에서 가장 오래된 단지다. 이곳은 2022년 신통기획 대상지로 선정되며 재건축 사업이 속도를 내게 됐다.
서울시 기획안대로 시범아파트가 재건축되면 63빌딩과 가까운 동은 최고 65층 높이로 세워진다. 한강 석양 조망을 위해 여의도 초·중·고가 위치한 쪽으로는 중저층 단지를 배치한다. 기존 63빌딩(높이 250m)이나 파크원(333m)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200m 내(최고 60~65층)에서 ‘U’자형 스카이라인이 형성되도록 한 것이다. 이대로 65층 아파트가 세워지면 서울시내 재건축 단지 가운데 가장 높은 건축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다른 여의도 노후 아파트 단지도 신통기획을 통해 정비계획안을 마련하는 중이다. 1975년 준공돼 47년간 자리한 여의도 한양아파트가 대표적이다. 서울시와 영등포구청은 최근 ‘한양아파트 재건축사업 주민설명회’를 열고 신속통합기획안 초안을 소개했다. 기획안에는 이곳을 금융 중심지에 걸맞은 특화 단지로 재건축하는 내용이 담겼다. 한양아파트가 여의도 국제금융로 변에 위치해 있어 인근에 금융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다양한 기능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한양아파트 용도지역을 제3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상업지역으로 올려줄 방침이다. 덕분에 용적률을 600%까지 늘릴 수 있어 주민들은 최고 층수를 54층으로 높이기로 했다. 서울시도 높이 200m 이하로는 열려 있는 입장이다.
주거 유형도 도심에 맞게 다양화한다. 아파트 가구 수는 현재 588가구에서 1200가구가량으로 늘어난다. 여기에 오피스텔 200실도 만들어 일반분양할 계획이다. 사무실로도 쓰일 수 있는 변화 가능한 시설을 넣고자 했다고 서울시는 설명했다.
다만 세대 규모는 앞으로 심의 과정에서 변경될 수도 있다. 용적률을 높여주는 대신 받게 된 기부채납의 일부는 공공업무시설로 사용한다. 서울시는 단지 저층부에 가칭 ‘서울핀테크랩’과 ‘서울국제금융오피스’를 만들어 운영할 예정이다. 핀테크 스타트업을 만든 청년 창업가에게 공간을 저렴하게 대여하거나 금융권 종사자에게 넓은 회의공간을 제공하는 등 업무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1975년 세워진 여의도 삼부아파트도 신통기획 대상지로 선정된 바 있다. 여의도 대교아파트(1975년·576가구)와 광장아파트(1978년·744가구)도 신통기획을 신청하고 서울시 심의를 받는 중이다. 대교아파트는 재건축 추진위원회 설립을 목전에 두고 있기도 하다. 이 외에도 공작아파트는 여의도 재건축 사업 가운데 처음으로 지난 8월 정비구역 지정이 완료됐다. 1976년 준공된 이곳은 현재 373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계획안에 따르면 이곳은 앞으로 최고 49층 높이의 582가구 규모 단지로 재건축된다.
공작아파트 역시 여의도의 지역적 특색을 반영해 단지 내 금융업무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시도 여의도 정비사업이 순항할 수 있도록 지구단위계획을 조만간 발표할 방침이다. 한강변에 닿아있는 서울 용산구 이촌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의 노후 아파트 단지들도 고층 건물로 변신을 도모한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이촌동 한강맨션(1971년·660가구)은 12월 들어 용산구청으로부터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았다. 정비사업의 9부 능선을 넘은 것이다. 2021년 9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후 약 1년 2개월 만이다.
현재 계획안에는 한강맨션을 최고 높이 35층, 15개동, 1441가구로 재건축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재건축 조합 측은 최고 높이를 68층으로 변경하는 설계안을 조만간 다시 마련할 계획이다. 만약 68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한강 변 일대 최고층 아파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한강 변 초고층 아파트로는 이촌 래미안첼리투스(56층)와 성수 트리마제(47층) 등이 꼽힌다.
서울 강남의 대표적인 재건축 단지인 대치동 미도아파트가 최고 50층 대단지 아파트로 탈바꿈한다. 서울시의 ‘35층 룰’ 폐지가 처음 적용되는 단지가 될 전망이다. 용산구 원효로에 있는 산호아파트도 최고 높이 47층으로 재건축을 추진한다. 이곳은 현재 재건축 사업의 7부 능선으로 꼽히는 사업시행인가를 눈앞에 두고 있다. 1977년 준공된 산호아파트는 6개 동, 554가구 규모로 구성돼 있다. 일부 동에서 정면으로 한강을 볼 수 있는 조망권을 갖췄다. 서울시가 국제업무지구로 개발을 추진 중인 옛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와 인접해 있기도 하다.
이 밖에도 용산에는 1974년 준공된 왕궁맨션아파트와 1975년 준공된 장미맨션이 자리한다. 서울시가 최근 1970년대 만들어진 ‘아파트지구’ 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지구단위계획’ 구역으로 바꾸겠다고 밝힘에 따라 압구정 일대도 재건축이 쉬워지게 됐다. 현대의 도시관리 기법이 적용되며 높이, 용적률 규제가 완화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현재 압구정 2·3구역은 신속통합기획에 참여해 계획안을 만들고 있기도 하다.
부동산 경기·건설비 상승 변수또한 서울시는 건축위원회에서 한강변 재건축 최대어로 꼽히는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1·2·4주구)를 최고 높이 35층의 5002가구 규모 대단지로 바꾸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인 2700가구가 한강뷰를 누릴 수 있도록 설계돼 주목된다. 단일 단지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한강 조망 가구가 되기 때문이다. 반포주공1단지 조합은 현재 최고 높이를 49층까지 올리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어 향후 층고는 더욱 높아질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초고층 건물이 실제 빠르게 들어설지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단 입장이다. 일단 2040 서울플랜에 한강과 접한 아파트 높이를 15층 이하로 권장하는 내용은 그대로 남아있다. 일각에선 이로 인해 한강변 아파트 단지의 층수가 조합이 원하는 만큼은 올라가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시는 이에 “한강 변 첫 주동 15층 이하는 2015년부터 권장사항으로 강제적 규제 사항이 아니었다”며 “권장은 하되 지역 여건을 고려해 유연하게 조정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공사비 인상도 부담 요인이다. 임병철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건설 원자재 값이 계속 오르는 상황인 데다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도 이어지고 있다”며 “자금 여건이 재건축을 추진하는 데 지연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도 “공사비 급등에 따른 영향도 있을 것이고 집값 하락기인 것도 고려해야 한다”며 “개발은 집값 상향이 전제돼야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남는 게 없는데 무슨 개발이냐는 의견도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가 여전히 정비사업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박 위원은 “층수가 높아질수록 공사비도 많이 들지만 조망권 때문에 개발이익이 꽤 생길 수 있다”며 “재초환이 있으면 빠른 재건축은 쉽지 않아 폐지나 유예를 요청하는 조합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희수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8호 (2023년 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