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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1차현대, 2차 안전성 검토 통과… 수직증축 리모델링 길 본격 열리나
입력 : 2022.12.12 10:3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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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대치동 현대아파트가 파일(pile·말뚝) 공법으로 지어진 아파트 중 처음으로 수직증축을 위한 리모델링 안전성 검토를 최종 통과했다. 이 방식은 기술 난도가 높아 지금껏 사업을 추진하는 단지는 많았지만 진행이 지지부진했다. 수직증축 리모델링은 수평증축 방식보다 사업 절차가 상대적으로 까다롭지만 사업성이 좋다고 평가된다. 이번 일을 계기로 리모델링 사업이 확산할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현대 리모델링 주택조합은 강남구로부터 2차 안전성 검토 통과 통보를 받았다. 단지 각 동(棟)에 2~3개 층을 더 올리는 수직증축 리모델링은 ‘조합 설립→안전진단→건축 심의→사업계획 승인(리모델링 허가) 및 1차 안전성 검토→2차 안전성 검토→이주 및 철거→착공’ 순으로 진행된다. 1·2차 안전성 검토 과정이 없는 수평증축 리모델링에 비해 사업 속도는 느리지만 사업성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강남권 재건축 ‘대어’인 은마와 붙어 있는 현대는 지하 1층~지상 15층, 120가구 규모 단지다. 수직증축 리모델링이 완료되면 지하 3층~지상 18층, 138가구 규모 새 아파트로 탈바꿈한다. 현대 조합 관계자는 “리모델링 허가가 떨어지면 곧바로 이주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4년 수직증축 리모델링이 법적으로 허용된 후 지금까지 안전성 검토를 통과한 곳은 송파구 성지아파트(잠실더샵루벤)가 유일하다. 하지만 이 단지는 단단한 암반 위에 지어져 수직증축이 비교적 쉬웠다. 바닥에 말뚝을 박아 하중을 분산하는 일반적인 단지 중에는 대치1차현대가 최초 통과 사례다. 도화구조가 구조 설계를 맡았으며,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한다.
건설업계에서는 “대치1차현대를 기점으로 재건축이 어려운 노후 아파트들의 리모델링 사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재 송파구 가락쌍용1차, 성동구 옥수극동 등이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다.
서울시 송파구 송파동 성지아파트. 2020년 이후 2년 만에 수직증축 2호 단지가 탄생하면서 서울 강남권 노후단지를 중심으로 리모델링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성장하는 아파트 리모델링 시장아파트 리모델링이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3~4년 전부터다. 문재인 정부가 민간 재건축 규제를 강화하면서 반사이익을 누렸기 때문이다. 한국리모델링협회에 따르면 전국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아파트 단지(조합설립인가 완료 기준)는 2021년 12월 말 85곳(6만4340가구)에서 올해 10월 말 기준 132곳(10만6129가구)으로 늘었다. 1년이 조금 넘는 사이 단지의 무려 55.2%가 늘어났다.
시장 규모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올해 리모델링 시장 규모는 19조원으로 작년 9조원 대비 약 2배 이상 확대됐다. 리모델링 사업은 당초 경기 일산, 분당, 중동, 평촌, 산본 등 1기 신도시를 비롯한 서울 경기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했으나, 전국으로 퍼져나가면서 대규모 사업장도 많이 증가했다.
사업비 1조5000억원 규모의 서울 동작구 사당동 우극신(우성2차·우성3차·극동·신동아4차)은 지난 5일 조합설립총회를 개최했다. 리모델링 추진위원회는 이달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하고 내년 상반기까지 시공사 선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 단지는 기존 4397가구에서 리모델링 사업을 통해 5054가구 규모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지방 대규모 리모델링 단지도 사업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경남 창원시 성원토월아파트 리모델링 조합은 최근 그랜드사업단(포스코건설·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코오롱글로벌)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성원토월그랜드타운은 지난 1994년 준공돼 올해 28년이 지난 노후단지다. 이 단지는 기존 25층 42개 동 6252가구에서 수평·별동증축 리모델링을 통해 지상 36층 43개 동 7136가구로 새롭게 변신할 예정이다. 공사비는 약 2조3600억원으로, 국내 최대 규모 리모델링 사업으로 꼽힌다.
강남, 용산 등 서울 핵심지역에서도 리모델링 추진 단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촌동에선 코오롱아파트, 강촌아파트, 한가람아파트 등이 사업을 진행 중이고, 강남권에서도 잠원 동아·잠원 한신로얄 등 상당수 아파트들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재건축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규제리모델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문재인 정부가 민간 재건축 규제를 대폭 강화하면서부터다. 리모델링은 기존 아파트를 완전히 허물고 새로 짓는 재건축과 달리, 골조를 유지하면서 평면을 앞뒤로 늘려 면적을 키우거나 층수를 올려 주택 수를 늘리는 방식이다. 지하주차장을 새로 만들거나 넓힐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리모델링 인기와 재건축 인기는 반비례 관계다. 재건축 규제가 심할수록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리모델링에 관심이 쏠린다. 재건축은 아파트를 지은 지 30년이 넘어야 추진하지만 리모델링은 15년 이상이면 된다. 안전진단 등급도 재건축은 최소 D등급(조건부 허용) 이하를 받아야 하지만 리모델링은 B등급 이상이면 층수를 높이는 수직증축이, C등급 이상이면 수평증축이 가능해진다. 초과이익환수제도 따로 없고 조합 설립 후 아파트를 사고팔 수 있다.
재건축에 비해 장점이 많다 보니 리모델링 시장은 매년 급성장하는 모습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리모델링 시장 규모는 2025년 37조원, 2030년 44조원 수준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리모델링 시장은 당초 쌍용건설과 포스코건설 등이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쌍용건설은 2000년 7월 건설업계 최초로 리모델링 전담팀을 출범한 이래 13개 단지, 9000여 가구의 리모델링 단지를 수주했다. 그동안 서울 도곡동, 방배동, 당산동 일대에 리모델링 단지를 준공했다. 포스코건설은 리모델링 시장에 선제적으로 진출해 지난해 말 기준 26개 리모델링 추진 사업장 중 13곳의 시공권을 따냈다. 또한 아파트 층수를 높이는 수직증축 리모델링 아파트 단지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사업계획 승인도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대형 건설사들이 뛰어들면서 분위기가 바뀌는 양상이다. 현대건설·GS건설·DL이앤씨 등이 잇따라 리모델링 전담 조직을 만들면서 공격적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엔 효성중공업, 호반건설, 코오롱글로벌 등이 시공권을 따내면서 중견 건설사들도 리모델링 시장에 뛰어드는 모습이다.
수평증축보다 사업성 높은 수직증축리모델링은 크게 수평증축과 수직증축, 별동증축으로 나뉜다. 어떤 방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사업 기간과 수익성이 크게 차이가 난다. 수평증축은 기존 아파트 건물 옆에 새 건물을 덧대어 짓는 방식이다. 전용 85㎡ 미만 평형은 전용면적의 40% 이내, 85㎡ 이상은 30% 이내에서 면적을 넓힐 수 있다. 기존 골조를 유지한 채 가구별 면적만 넓히는 것이 특징으로, 국내 노후 단지의 대부분이 이 방식을 채택 중이다. 수직증축보다 절차가 간단하고 규제도 덜해 사업 착수 및 진행이 빠르지만 낮은 사업성이 단점으로 꼽힌다. 가구 수 자체를 늘리는 것에 한계가 있어 일반분양 물량이 적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땅이 여유가 있는 단지의 경우엔 기존 수평증축에 별동증축을 혼합해 세대 수를 늘리기도 한다. 별동증축은 비어 있는 단지 안 땅에 별도의 동을 짓는 방식이다.
반면 수직증축은 기존 아파트 건물 위로 층수를 올리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14층 이하는 최대 2개 층, 15층 이상은 최대 3개 층을 증축할 수 있다. 이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수익성이다. 기존 골조를 유지한 채 가구별 면적만 넓히는 수평증축과 달리 층수를 올려 가구 수 자체가 늘어나기 때문에 더 많은 일반분양 물량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기존 가구 수의 15% 이내로 일반분양 물량이 증가해 조합원들은 부담금을 줄일 수 있다. 건물을 위로 올리는 방식인 만큼 부지 면적의 제한을 받지 않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수직증축은 고난도 기술력을 요구하는 데다 안전진단 기준, 지반 강도 등 규제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안전진단의 경우 수평증축은 1차만 통과하면 되지만 수직증축은 1차 안전진단, 1·2차 안전성 검토, 2차 안전진단 등 4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안전진단 기준도 수평증축은 C등급만 받으면 되지만, 수직증축은 B등급 이상이 필요하다. 건물을 수직으로 올리는 만큼 무게도 증가해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허가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치현대아파트가 고난도 기술로 평가받는 파일 공법 수직증축을 성공하면서 기대감이 확 높아진 것이다.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건설 관계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걸림돌 ‘내력벽’ 문제는 여전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이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활성화하는 데는 아직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업 핵심인 가구 사이의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 결정이 3년 이상 나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물에 들어가는 벽은 크게 내력벽과 비내력벽으로 나뉜다. 내력벽은 아파트 무게를 지탱하는 벽으로, 벽 자체가 기둥 역할을 하고 비내력벽은 공간을 나누는 용도로 쓰인다. 특히 가구 간 내력벽은 가구 안 내력벽보다 두껍고 하중을 더 많이 지탱한다. 이 때문에 가구 안 내력벽 철거는 지금도 가능하지만, 가구 사이 내력벽은 공사 과정에서 건물 붕괴 등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철거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내력벽 철거는 재건축보다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아파트 리모델링 시장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한 핵심 요소다. 리모델링을 통해 아파트를 증축할 때 가구 간 내력벽을 철거하지 못하면 좌우 확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베이(Bay·전면 발코니에 접한 거실 또는 방 숫자)’를 늘리기 어렵다. 옛날 아파트들은 대부분 2베이나 3베이인데 요즘 아파트들은 3베이나 4베이를 많이 쓴다. 리모델링 아파트들은 탄생 시점부터 새 아파트들보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취약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실제로 리모델링 아파트들은 세로로 긴 ‘동굴형’이라 채광 등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 이런 문제로 리모델링 업계는 정부에 ‘안전에 문제가 없는 범위 안에서’ 가구 간 내력벽 철거 허용을 요구해왔다. 정부도 이를 받아들여 2016년 1월엔 아파트 리모델링을 할 때 안전진단 평가 등급(B등급 이상)을 유지하는 범위에서 가구 간 내력벽 ‘일부 철거’를 허용하는 내용의 주택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전성 문제가 다시 제기되자 정부는 2016년 8월 내력벽 철거 문제를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처음엔 2019년 3월까지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고 밝혔으나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이 연구 용역을 수행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작년 9월 초 국토교통부에 검증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국토부가 발표를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손동우 매일경제 부동산·도시계획 전문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7호 (2022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