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TF 거래 정지·상장 폐지의 모든 것

    입력 : 2022.03.31 16:21:19

  • 연초 다양한 이슈가 한꺼번에 발생하며 상장지수펀드(ETF) 투자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ETF는 주식처럼 투자자가 실시간으로 매매할 수 있고 수수료도 펀드보다 저렴해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편입한 종목에서 갑자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시장은 큰 혼란에 빠지는 모습을 보였다.

    시장이 좋을 때는 아무 문제도 안 되던 이벤트들이지만 시장 상황이 나쁠 때는 하나하나가 큰 리스크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각종 이벤트 발생으로 투자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ETF 순자산가치 조정, 거래 정지, 상장 폐지 등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경기 상황이 나빠지고 시장에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구간에서는 테마형 ETF 투자에 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0~30개의 압축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테마형 ETF는 시장 테마가 갑자기 바뀌거나 편입한 종목 중 한 종목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ETF 전체 수익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긴축이 본격화될 경우 그동안 미뤄진 기업 구조조정이 다시 활발해질 수 있다는 점도 아주 적은 종목만 편입하는 테마형 ETF 투자의 최대 리스크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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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템임플란트 횡령으로 거래 정지 오스템임플란트는 국내 임플란트 시장 점유율 1위(50%) 기업이다. 거래 정지 전 시가총액은 2조원으로 코스닥 20위권의 큰 종목이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소액주주는 2만 명, 소액주주 지분율은 55.60%에 달한다.

    우량기업으로 알려졌던 오스템임플란트에서 문제가 발생한 건 올해 1월 3일이다. 정확히 말하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날이다. 이날은 2022년 새해 첫 거래일이었다.

    이날 오스템임플란트는 1880억원의 초대형 횡령 사건이 발생했다고 공시했고, 동시에 한국거래소는 오스템임플란트의 주식 거래를 정지시켰다.

    이 회사의 내부통제시스템, 내부회계관리시스템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직원 한 명이 2000억원 넘게 회삿돈을 빼돌렸다가 일부 반환하기도 하는 등 횡령을 했지만 오스템임플란트는 이 사실을 1년 동안 몰랐다.

    오스템임플란트 거래 정지 기간은 길어졌다. 한국거래소는 오스템임플란트가 상장폐지실질심사 대상이 되는지 여부를 1월 24일 결정키로 했다가 2월 17일로 연기했다.

    2월 17일 한국거래소는 결국 오스템임플란트를 상장폐지실질심사 대상으로 결정했다. 상장폐지실질심사 대상이 안 됐다면 2월 18일부터 거래가 재개될 수 있었지만 오스템임플란트 거래 정지는 3월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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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템임플란트 사건 후 펀드와 ETF 투자자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 특히 ETF의 경우 매일 실시간 거래가 되는 상황에서 오스템임플란트를 편입한 경우 순자산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 논란이 불거졌다.

    가장 먼저 나선 곳은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이다. 타임폴리오는 헤지펀드 운용사로 명성을 떨치며 공모펀드에 이어 지난해 ETF 시장에도 진출했다.

    타임폴리오는 1월 25일 집합투자재산평가위원회를 열고 오스템임플란트 주가를 8만6658원으로 다시 평가했다. 1월 3일 거래 정지 전 오스템임플란트의 종가는 14만2700원이다. 상각률은 39.27%에 달한다.

    이에 따라 오스템임플란트를 편입한 타임폴리오 ETF의 순자산가치는 소폭 내려갔다. ETF 내 오스템임플란트 비중도 떨어졌다. ‘타임폴리오(TIMEFOLIO) BBIG액티브 ETF’의 경우 순자산가치가 0.67% 하락했고, 편입 비중도 1.66%에서 1.04%로 내려갔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이보다 늦은 2월 18일 집합투자재산평가위원회를 열고 오스템임플란트 주가를 8만5600원으로 평가했다.

    이에 따라 오스템임플란트를 편입한 미래에셋자산운용 타이거(TIGER) ETF의 순자산가치도 1월 21일부터 일부 하락했다. ETF 중 오스템임플란트 편입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TIGER 헬스케어'의 경우 지난해 말 1.44%였지만 가격 조정으로 비중이 1.08%로 떨어졌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ETF 편입 종목이 거래 정지될 경우 집합투자재산평가위원회를 열어 공정가액을 평가해 ETF의 순자산가치에 반영하게 된다”며 “공정가액 평가는 자체적으로 하기 때문에 운용사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운용사별 오스템임플란트 상각률을 보면 KB자산운용은 31.5%(9만7700원), 한국투자신탁운용 30%(9만9980원), 메리츠자산운용 25%(10만7025원) 등으로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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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사태로 ETF 줄줄이 거래 정지 러시아가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며 전쟁이 발발하자 러시아 관련 ETF 투자자들이 유탄을 맞았다. 발단은 우선 한 탕을 노린 투기 수요의 유입에 있다. 전쟁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고 전쟁이 종료되면 그동안 급락했던 러시아 ETF 주가가 급등할 것이라는 ‘희망회로’에 빠진 투기 수요가 2월 21일부터 눈에 띄게 증가했다.

    국내 상장된 유일한 러시아 ETF인 한국투자신탁운용 ‘킨덱스(KINDEX) 러시아 MSCI(합성)’의 매매 동향을 보면 이 ETF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4억원이 조금 넘지만 2월 21일부터 거래 정지되기 직전인 3월 4일까지 평균 87억원으로 20배 이상 급증했다. 이 기간 개인 투자자들은 해당 ETF를 280억원어치 집중 순매수했다.

    문제는 3월 3일 발생했다. 이날 오전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러시아를 MSCI 이머징마켓(EM)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MSCI EM에서 러시아 주식이 빠져나가면 그만큼 한국 주식 비중이 늘어날 수 있어 국내 시장에는 호재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이날 오후 상황이 갑자기 바뀌었다. MSCI 측이 모든 지수 내 러시아 주식을 0.00001로 평가한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KINDEX러시아MSCI(합성) ETF의 경우 MSCI EM 지수와 무관한 맞춤형 지수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였지만 MSCI의 갑작스런 통보에 해당 ETF 가치도 순식간에 휴지조각이 될 처지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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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투자신탁운용은 3월 4일 긴급 공지를 통해 “MSCI가 모든 지수 내 러시아 주식에 대해 0.00001 가격 적용을 발표함에 따라 현재 기준 동 상품의 기초지수를 구성하는 러시아 주식의 종가도 3월 9일자로 0.00001 수준으로 평가될 예정”이라며 “이에 따라 동 상품의 3월 10일자 실시간순자산가치(iNAV)는 0원 수준으로 산출된다”고 밝혔다. 그리고 3월 4일 오후 6시 33분 한국거래소는 KINDEX러시아MSCI(합성) ETF 거래가 3월 7일부터 정지된다고 밝혔다. 금융 투자 업계에서는 한국거래소가 거래 정지를 더 빨리 시켰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래소가 일반적인 절차에 따라 투자 유의 종목 ‘적출→지정 예고→지정’ 단계를 밟았는데, 빠르면 전쟁 발발 직후 영업일인 2월 25일, 늦어도 2월 28일에는 투자 유의 종목으로 지정하고 동시에 거래 정지를 시켰어야 했다는 주장이다. 하루라도 빨리 거래를 정지시켜 투기 수요 유입을 막았어야 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국거래소 측은 기존 투자자 보호도 중요하기 때문에 거래 정지 조치가 늦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매매 거래 정지는 투자자에게 거래 기회를 제한하기 때문에 다각도에서 입장을 들어보고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거래소는 꾸준히 시장 상황을 관찰하며 가장 적절한 시점에 거래 정지가 될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시장의 경우에도 3월 4일(현지시간) 정도에 러시아 관련 ETF들의 거래가 정지됐다”며 “비슷한 시기에 우리 시장에서도 거래 정지 조치가 내려졌으니 늦었다고 보기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미국에 상장된 러시아 ETF들도 줄줄이 거래 정지 또는 상장 폐지되고 있다. ‘반에크 러시아 ETF(RSX)’는 3월 4일(현지시간)부터 거래가 정지됐다. ‘아이셰어즈 MSCI 러시아 ETF(ERUS)’도 이날부터 거래가 정지됐다. ‘디렉시온 데일리 러시아 불 2X ETF(RUSL)’는 이보다 앞서 3월 2일 상장 폐지를 발표했다.

    국내 주식 시장에 상장된 유일한 러시아 상장지수펀드(ETF)의 거래가 정지됐다.
    국내 주식 시장에 상장된 유일한 러시아 상장지수펀드(ETF)의 거래가 정지됐다.
    ▶합성복제식 ETF 증권사 망하면 휴지 ETF 상장 폐지는 주식 상장 폐지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주식은 상장 폐지가 되면 사실상 휴지조각이 되지만 ETF는 편입하고 있는 종목의 가치(주가)를 계산해 투자자들에게 돌려준다. 주식, 채권 등 실물자산을 직접 담고 있는 ETF라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상장 폐지와 매도가 크게 다르지 않다.

    ETF가 상장 폐지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흔한 경우는 수요가 거의 없어서 신탁원본총액이 50억원 미만인 상태가 일정 기간 지속되는 경우다. 기초지수를 제대로 못 쫓아가는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도 상장 폐지 요건에 해당한다. ETF의 순자산가치와 주가(가격)의 차이를 의미하는 괴리율이 지나치게 크게, 오래 벌어지면 거래정지 사유에 해당한다. 하지만 괴리율 자체는 상장폐지 사유는 아니다.

    그런데 실물복제형이 아닌 합성복제 방식의 ETF는 정해진 수익률을 주기로 한 증권사가 망하거나 거래 상대방이 투자한 자산이 휴지조각이 돼 상장 폐지되면 해당 ETF 투자자도 투자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여기서 합성 ETF의 치명적인 단점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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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성 ETF가 기초자산을 직접 담지 않고 기초자산 또는 기초지수 수익률을 스와프 계약을 맺은 증권사로부터 보장받는 구조를 가진다. 운용사가 힘들게 기초지수 수익률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 특히 원자재나 신흥국 주식 등 직접 실물을 담기 어려운 경우 합성 ETF는 유용하다.

    하지만 러시아 ETF 사례에서 보듯이 수익률 계약을 맺은 증권사가 투자한 기초자산이 0원이 돼 거래가 정지되고 이후 상장 폐지되면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 상황이 개선돼 MSCI가 러시아 주식 가치를 다시 정상적으로 산정한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다.

    [문지웅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9호 (2022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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