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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자주 가는 사람은 4세대 실손 전환 신중해야
입력 : 2022.02.03 09: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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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의료보험이 또 오른다. 올해 상품별로 8.9~16% 인상될 예정이다. 보통 실손보험 갱신주기가 3~5년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당장 보험료 인상 고지서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올해 5년 갱신주기가 된 고령층 가입자는 그동안의 인상분에 나이 인상분(매년 3%씩 증가)을 합쳐 많게는 2.5배까지 보험료가 오를 수 있다.
실손보험은 3500만 명(단체 가입분까지 합치면 3900만 명)이 가입한 국민보험이다. 매년 연말이면 금융당국과 보험업계는 실손보험 인상률을 놓고 힘겨운 줄다리기를 벌인다. 올해 업계가 ‘손해율이 높다’고 주장하면서 실손보험료 인상을 관철시키자, 소비자들은 손해율이 떨어진 자동차 보험료는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동차보험 역시 2364만 대(2020년 기준)가 가입된 국민보험이다. 실손보험과 자동차보험의 똑똑한 활용법과 올해 달라지는 내용을 살펴본다.
이후 회사별로 제각각이던 보장내역을 표준화한 2세대 실손이 나온다. 2017년 3월까지 가입한 상품이다. 자기부담금이 10~20%지만 여전히 보장내역은 넓은 편이다. 2세대 실손 중 2013년 4월 이전에 가입한 상품은 100세 만기다. 갱신주기는 3년으로 고정됐다. 같은 2세대 중에서도 2013년 4월부터는 갱신주기가 1년으로 줄어들고 보장기간도 15년마다 재가입하는 상품으로 바뀐다.
그럼에도 적자가 이어지자 업계에서는 3세대 실손을 내놨다. 2021년 6월까지 판매된 이 보험은 자기부담금이 10~20%이고 일부 비급여 진료를 특약으로 따로 가입하도록 했다. 갱신주기(1년)와 보장기간(15년)은 그대로다. 2021년 7월 도입되어 현재 판매 중인 4세대 상품은 자기부담금이 20~30%로 높고 모든 비급여를 특약으로 분리했다. 갱신주기는 1년, 재가입 기간도 5년으로 짧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실손도 자동차보험처럼 매년 재가입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사고를 많이 낸 운전자의 보험료가 할증되는 것처럼, 병원에 많이 간 사람의 보험료만 올리기 위해서다. 현재 4세대 실손은 매년 갱신되는데, 비급여 항목을 자주 이용할 경우 보험료가 최대 4배(300%)까지 할증된다. 중복 가입 여부도 체크해보자. 실손보험은 두 개를 가입해도 실제 사용금액만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100만원의 보험료가 책정되면 두 개의 실손보험에서 50만원씩 부담하는 구조다. 나도 모르게 중복 가입한 실손보험을 유지하며 보험료를 더 내고 있을 수 있다.
올해 실손의료보험의 전체 인상률 평균은 약 14.2% 수준으로, 가입 시기에 따라 평균 8.9∼16%로 결정됐다.
그런데도 소비자 반응은 신통찮다. 옛날에 가입한 보험일수록 혜택이 좋다고 생각하는 데다, 앞으로 병원 갈 일이 많아질 텐데 오래 유지한 보험을 갈아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보험료를 50% 감면해준다고는 해도, 4세대 상품 보험료가 1만~2만원대이다보니 받을 수 있는 혜택도 6만~12만원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단 다음 갱신 시기까지 유지하겠다는 고객들이 많다.
문제는 1~3세대 보험료가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실손보험은 1000원을 받아 1400원을 내주는 적자 구조다. 업계는 올해 적자만 3조5000억원에 달하고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구조로는 향후 10년간 112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고스란히 보험사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실손 적자의 주범으로는 일부 의료기관과 가입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꼽힌다.
금융감독원은 이같은 실손보험 누수를 막아보고자 최근 신용정보업 감독업무 시행 세칙을 예고하고 실손보험 가입자 정밀파악에 나서기로 했다. 실손보험 가입자의 현황과 관련한 업무보고서를 신설해 실손보험의 반기별 중복 가입자 수, 지급 보험금 구간별 피보험자 수 등을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보험금 못 타본 선량한 가입자만 억울 선량한 가입자들은 외통수에 몰렸다. 기존 1~3세대 보험을 유지하자니 보험료가 계속 오를 것이 뻔하고, 4세대로 갈아타자니 받은 것도 없이 혜택이 줄어들어서다. 매달 비싼 보험료를 내고 나중에 의료비를 아낄 것인지, 일단 적은 보험료를 내고 나중에 의료비를 추가로 부담할 것인지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과잉 이용자와 의료기관을 제어할 수단이 전무하다. DB손해보험 등 업계가 보험사기가 의심되는 의료기관을 국세청에 신고하는 등 대처에 나섰지만 극히 일부일 뿐이고, 금융당국이 실손 비급여 진료 심사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특히 자기부담금이 없는 1세대 상품과 보장내역이 광범위한 2세대 가입자들은 흡사 ‘오징어 게임’으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다른 1·2세대 가입자들이 보험료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4세대로 갈아타면 남은 사람들이 그들의 보험료까지 나눠서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버틸수록 보험료가 올라간다. 보장 혜택은 좋지만 일부 사기꾼과 의료쇼핑족에게 계속 돈을 뜯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구에 사는 50대 직장인 신 모 씨는 최근 보험사로부터 “내년부터 실손보험료가 3배 가까이 오를 예정이니 4세대로 전환하는 것을 추천한다”는 안내전화를 받았다. 신 씨는 “친구 중에서는 올해부터 부부 실손보험료만 46만원을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보험금을 제대로 타보지도 못했는데 그렇다더라”며 분노했다. 신 씨는 “일단 나는 내년까지는 보험료가 안 오르니까 버텨보려고 하는데, 친구네 부부는 4세대로 갈아타고 남은 돈을 저축해서 의료비에 보태겠다고 한다. 많이 쓴 사람 보험료만 올리면 될 텐데, 왜 애꿎은 사람이 피해를 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책임보상에 함께 가입되어 있다면 실손 전환 시 이 보상이 유지되는지 챙겨봐야 한다. 일상생활책임보상이란 말 그대로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책임을 보장해주는 상품이다. 보험자뿐 아니라 주민등록상 배우자와 자녀, 친족의 책임까지 보상해줘서 인기가 높다.
현재 가입 중인 보험사 상품으로만 전환이 가능하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내가 가입한 보험사에서 4세대 실손을 팔지 않는 경우도 많다. 팔수록 손해가 나다보니 보험사들이 대거 실손보험 판매를 중지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도 가입한 보험사 고객센터에 전화하거나 설계사를 통해 전환 가능한 보험사를 추천받아야 한다.
공황장애 등 정신과 치료를 받은 사람은 4세대 전환이 어려울 수 있다. 기존 1~3세대는 정신과 치료가 보장되지 않았는데, 4세대에서는 정신과 치료까지 보장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4세대 상품 심사에서 ‘유병력자’로 분류되어 가입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가입한 회사에 확인이 필요하다. 자기부담금이 0원인 1세대 가입자 중 도수치료를 자주 받는 사람은 전환해서는 안 된다. 백내장 수술의 경우 1세대와 2세대 일부 보험은 백내장 검사비와 수술비, 다초점렌즈 비용까지 보장해주므로 기존 상품이 유리하다. 당연히 가족력이 있는 경우와 병원에 자주 가는 사람도 4세대 전환에 신중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한 자동차보험료를 인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에 따르면 자동차보험은 2017년 256억원 흑자를 기록했으나 2018년 7237억원 적자로 돌아섰고, 2019년에는 적자 규모가 1조6445억원으로 급증했다. 2020년 1월 보험료를 올리면서 적자 규모가 3799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작년에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거리두기 강화로 이동량이 줄면서 교통사고가 감소해 자동차보험도 2800억원가량 흑자를 볼 것으로 추정된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실손보험료를 올렸으니 자동차보험료를 내리라는 논리는 각 보험 단위로 수지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보험의 원리에 맞지도 않고 보험료 부과의 공정성 면에서도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언제든 작은 사건으로도 올라갈 수 있고, 올해 위드코로나가 시행되면 다시 급격히 올라갈 것이라고 업계는 주장하고 있다.
무면허와 뺑소니 사고의 경우도 대인 피해 사고부담금이 최대 300만원에서 최대 1억5000만원으로, 대물 피해 사고부담금이 최대 1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확대된다. 만일 피해자가 여러 명이라면 사고부담금은 그만큼 더 늘어난다. 예를 들어, 음주·무면허·뺑소니 사고로 10명이 사망했다면, 의무보험 기준으로 현재는 대인 최대 사고부담금인 인당 1000만원, 총 1억원을 부담해야 하지만 내년 7월 말부터는 인당 1억5000만원, 총 15억원을 부담해야 한다.
▶대물배상액 늘리는 게 유리 자동차보험은 매년 갱신된다. 대부분 보험사가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잘 챙겨보면 합리적인 보험료로 똑똑하게 보장받을 수 있다. 보험료를 절약할 첫 번째 관문은 운전자 연령과 범위를 좁히는 것이다. ‘운전자 연령 한정 특약’에 가입하기 위해서다. 차량을 운전할 사람 중 ‘최저 연령자’의 나이가 중요하다.
‘마일리지 특약’을 통한 할인도 있다. 연간 주행거리가 많지 않은 경우에는 연간주행거리 실적에 따라 보험료를 환급받을 수 있다. 삼성화재는 연간 주행거리 실적에 따라 3000~1만2000㎞ 이하 주행 시 9~35%를 할인하는 ‘에코 마일리지 특약’을 운영 중이다. 통상 15~20%가량 저렴한 다이렉트 자동차보험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주행거리가 많지 않다면 디지털보험사 캐롯손해보험이 내놓은 ‘퍼마일자동차보험’ 등도 활용할 만하다.
요즘에는 운전자보험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는 추세다. 운전자보험은 상해로 인한 사망 및 각종 자동차 사고와 관련된 비용손해 등을 보상한다. 특약에 따라 운전자 벌금(대인·대물), 교통사고처리지원금, 변호사선임비용 등을 보장 받을 수 있다. 대물배상한도를 넉넉하게 잡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최근 수입차와 고급차량이 급증하면서 사고 시 한도 초과로 많게는 수천만원씩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자동차상해에 가입하고 대물배상액 한도를 늘린다고 해도 보험료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며 “혹시 모를 경제적 부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도를 여유 있게 가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신찬옥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7호 (2022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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