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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30억 아파텔 완판됐다는데…
입력 : 2022.01.04 14:5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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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에서 30억원짜리 오피스텔 청약을 했는데 231명이 몰렸다. 30억원이라는 가격도 충격적인데, 231명이 몰려서 더 놀랍다. 지금까지 부동산 시장에서 파주의 위치는 일산의 대체재 정도였던 게 현실이다. 비슷한 생활권을 공유하지만 일산보다 좀 더 외져 있어 일산 대비 같은 가격으로 좀 더 넓은 집을 찾는 사람들이 주로 파주를 찾았다. 그런 파주에서 30억원짜리 오피스텔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니 이게 어찌된 일일까.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현대건설이 지은 ‘파주 힐스테이트 더 운정’은 파주 운정신도시 P1·P2 구역 연면적 약 82만8000㎡에 지하 5층~지상 49층, 13개 동 규모로 아파트 744가구와 주거형 오피스텔 2669실을 짓는 사업이다. 이 중 오피스텔 분양은 2021년 완료했고 아파트 744가구는 2023년 분양할 예정이다. 놀라운 것은 분양가가 29억9520만원에 달하는 1단지 전용면적 147㎡ 펜트하우스 ‘아파텔’ 4가구 청약에 231명이 몰렸다는 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분양가 24억9400만원짜리 2단지 전용면적 147㎡ 펜트하우스 6가구 청약에도 292명이 몰렸다. 경쟁률은 각각 58 대 1, 49 대 1로 평균치를 훨씬 웃돌았다.
이번 현상은 파주라는 입지가 과거와 다른 평가를 받고 있는 점이 한몫했다. 파주운정신도시에 대한 개발호재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부동산 시장의 몸값도 덩달아 높아지는 추세다. 서울과 파주를 20분대로 관통하는 GTX-A노선의 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다. GTX-A노선 운정역이 2025년 개통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제4차 국가철도망 일산 대화~파주 운정~금릉을 잇는 3호선 연장선 사업이 포함됐다.
계획 중인 운정테크노밸리 개발 사업이 본격 추진되면 파주의 수도권 접근성과 일자리 창출 능력은 확 올라가게 된다. 운정테크노밸리 사업은 파주시 연다산동 일원 약 47만3000㎡ 규모의 부지를 개발해 2026년까지 첨단·지식기반산업 중심인 차세대 산업 환경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파주운정3지구 인근에서는 총 1조6000억원을 투입해 국립암센터, 미래혁신센터, 바이오융합복합단지, 아주대병원 등을 조성하는 ‘운정 메디컬클러스터’도 2024년 조성 완료를 목표로 사업이 추진 중이다. 이들 사업이 모두 완료되면 파주는 경기 북부권의 새로운 산업 거점지로 올라설 전망이다.
이 같은 호재가 반영돼 2020년 입주한 운정신도시 아이파크는 지난 7월, 전용 84㎡가 9억7000만원에 거래돼 10억원 고지를 목전에 두고 있다.
오피스텔 시장에 대한 관심이 전례 없이 커진 것도 청약 흥행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부동산 리서치업체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전용 84㎡타입 평면은 최근 오피스텔 시장에서도 완판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리얼투데이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초부터 10월까지 주거형 오피스텔의 거래는 총 8641건에 달해 이는 2021년 같은 기간 7390건(1~10월)보다 16.9% 늘어났다. 오피스텔 전용 84㎡타입도 같은 기간 거래량이 1618건에서 1849건으로 14.3%나 늘었다.
오피스텔의 경우 가점을 따지지 않는 100% 추첨제로 청약을 접수한다. 청약통장, 주택 소유 여부, 거주지 제한 규정 등도 따지지 않는다. 자금조달계획서가 필요 없고 주택으로 분류되지 않아 취득세 중과 대상에서도 제외다. 주택 담보인정비율(LTV)도 최대 70%까지 적용된다.
또 주거용 오피스텔 한 채만 보유하고 있으면 청약 시 무주택자로 간주되어 추후 아파트 청약도 노려볼 수 있다. 또 100실 미만 오피스텔의 경우 전매까지 할 수 있어 프리미엄을 붙여 팔고 빠지려는 ‘단타 매매 수요’도 함께 들어온다.
건설사나 시행사 입장에서도 오피스텔 분양을 할 충분한 유인이 있다. 오피스텔 분양 때는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분양 수익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아파트를 지어 팔 때보다 높은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요즘 청약자들은 높게 형성된 아파텔 분양가를 받아들인다.
실제 2021년 분양한 과천시 ‘힐스테이트 과천청사역’은 전용면적 84㎡형이 16억~22억원 선의 높은 분양가를 보였지만 89가구 모집에 12만4426명이 몰려 평균 경쟁률 1398 대 1을 보였다. 신길 AK 푸르지오도 1312 대 1의 평균 경쟁률이 나왔다. 지방에서도 대구 서구 두류역 인근의 ‘두류역 자이’가 평균 677.5 대 1의 경쟁률로 청약을 마감했다.
지난 9월 인천 미추홀구에 분양한 ‘시티오씨엘 4단지’는 336실 모집에 2만5241건이 접수돼 75.1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전용면적은 75㎡타입과 84㎡타입 2가지 평면으로 각각 168실씩 공급됐다. 75㎡타입은 2811건의 접수가 이뤄져 16.7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84㎡타입에는 무려 2만2430명이 몰려 133.5 대 1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오산에서는 ‘세마역 롯데캐슬 트라움’ 오피스텔 전용면적 79~84㎡ 펜트하우스가 분양가 약 10억원에 공급됐지만 경쟁률 32 대 1로 흥행에 성공했다. 7가구 모집에 222명이 몰렸다. 12월 청약접수를 받은 ‘대전 도안 센트럴 아이파크’ 역시 373실 모집에 10만318건 신청이 접수돼 268.9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 오피스텔은 전용 84㎡ 단일형으로 구성됐다.
힐스테이트 더 운정 견본주택에서 방문객들이 모형도를 살펴보고 있다.
또 주택 공급을 장려하기 위해 2021년 정부는 주거용 오피스텔의 바닥 난방 허용 기준을 기존 전용면적 85㎡ 이하에서 120㎡까지 확대했다. 넓은 평면 오피스텔도 아파트처럼 바닥 난방을 할 수 있게 문을 열어준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평면이 진화하고 바닥 난방까지 할 수 있게 되면서 아파텔과 아파트의 차이는 급격히 좁혀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아파텔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서 파주에서 나온 30억원 아파텔의 완판랠리는 아파텔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의미한다. 아파텔을 고급 주상복합처럼 인식하려는 시장 심리가 반영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아파텔이니까 아파트에 비해 훨씬 낮은 가격에 거래되어야 한다는 인식도 바뀔 것으로 보인다.
경제만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통계시스템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부산 해운대구 우동에 위치한 ‘센텀리더스마크’ 오피스텔 전용면적 103㎡는 2020년 11월 4억6500만원에 거래됐지만 2021년 11월에는 8억6000만원에 거래됐다. 1년 동안 3억9500만원(84.9%)이나 올랐다.
대전 유성구 도룡동에 위치한 ‘도룡KCC웰츠타워’ 오피스텔 전용면적 62㎡도 2020년 11월 3억5000만원에 거래됐지만 2021년 11월 26일에는 5억원에 계약서가 오가 1년간 매매가가 1억5000만원 올랐다. 42.9%의 상승률을 보였다.
▶아파텔, 아파트 대체재 되나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최근 아파텔 청약 흥행과 실거래가 상승을 보면 아파텔이 아파트의 대체재가 되는 현상이 뚜렷하게 보인다”며 “아파트 공급부족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는 한 아파텔 인기도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리스크도 있다. 30억원짜리 펜트하우스가 완판된 ‘파주 힐스테이트 더 운정’은 국방부와 파주시 간의 법적 공방이 장기화될 수 있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2021년 12월 의정부지방법원은 오는 1월 5일까지 ‘파주시를 상대로 ‘힐스테이트 더 운정’ 사업 승인에 대한 처분 효력을 정지한다’고 결정했다. 국방부가 파주시를 상대로 건 법정싸움에서 법원이 일시적으로 파주시 승인처분 효력을 정지할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힐스테이트 더 운정’ 부지와 1.7㎞ 떨어진 황룡산에는 꼭대기 해발 131m에 진치고 있는 방공 진지가 있다. 그런데 이 단지는 최고 지상 49층, 최고 높이 194m로 설계돼 방공진지보다 훨씬 높다.
파주 힐스테이트 더 운정 위치도
하지만 파주시는 해당 지역이 이미 지난 2008년 군사보호구역에서 해제되었다는 이유 등을 들어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을 내줬다. 또 국방부 주장 타당성을 세부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감사원 사전 컨설팅도 받았지만 문제없다는 유권해석도 받아냈다.
파주시 승인에 따라 지난해 12월 오피스텔 2669실에 대한 청약이 진행됐고 신청에 2만7027건명이 몰려 평균 10.1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후 국방부는 파주시가 협의 중간에 분양승인을 내줬다는 이유로 법원에 집행정지를 걸어 프로젝트 진행을 막았다. 국방부 관계자는 “행정협의조정위원회를 통해 파주시와 협의를 하고 있는 과정에서 파주시가 분양신고수리처분(분양 승인)을 했다”며 “이에 처분에 대한 취소 소송과 집행정지신청을 법원에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식의 공방이 오가면 피해는 파주시 승인에 따라 분양을 진행한 사업주체와 2669명에 달하는 수분양자들이 지게 된다. 시행사 하율디앤씨 관계자는 “지난 10월 파주시와 국방부 시행사가 3자 실무 회담을 열었는데, 당시 국방부가 향후 마련할 대안에 시행사가 적극 자금지원을 하겠다는 내용으로 구두합의도 했다”며 “그러나 국방부가 공식의견으로 층수를 낮추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는 현 사업계획에 입각해 금융권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이 이미 끝난 상황이라 층수 낮추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와서 사업계획을 바꾸는 것은 사업의 원점 재검토를 의미하고 그러면 분양도 없던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이 엎어지면 피해는 2669명에 달하는 수분양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국방부는 “임무수행에 지장이 없으면서 분양 혼란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국방부의 기본적인 입장”이라며 “행정협의조정위원회의 조정과정에 응하면서 파주시와 간격을 좁혀나가고 군에서 할 수 있는 부분도 찾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행사 관계자는 “대한민국 국방 방공 전략에 적극 협조하겠다. 프로젝트가 무산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계약자 보호장치 등 강화 시급 이 단지에는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쇼핑몰 ‘스타필드 빌리지’가 2025년 입점할 뜻을 밝혀 초미의 관심을 끈 바 있다. 사업이 순항할 경우 이 단지는 운정신도시 시세를 이끄는 대장아파트가 될 공산이 크다는 게 업계 진단이다. 오피스텔 전반에 대한 리스크도 감안해야 한다. 오피스텔은 아파트와 달리 분양보증의무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등 제도적으로 계약자를 보호할 장치가 충분치 않다. 분양사기 등 불법 행위나 공실 리스크 등을 실수요자가 떠안아야 하는 부담이 있다.
다만 대형 건설사가 분양하는 상품일 경우 이같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이름 없는 건설사가 소규모로 분양하는 오피스텔은 여러 변수를 꼼꼼히 따져 청약해야 한다. 또 부동산 하락기가 올 경우 오피스텔은 아파트보다 환금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또 정부가 지난 10월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 강화방안’에 따르면 올 1월부터 2억원 이상, 7월부터는 1억원 이상 대출을 받을 경우 차주별 DSR 규제가 적용된다. 오피스텔 등 비주택 담보대출도 해당 규제를 적용받는다.
[홍장원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6호 (2022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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