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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장’ 오피스텔, 업무용 전환 가능성 따져봐야
입력 : 2021.12.03 16: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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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가 아파트 매매 시장을 강타하자 ‘재테크족’들의 발길이 오피스텔 시장으로 옮겨 붙고 있다. 양도·보유세 세금 중과에 이어 금융권의 대출 조이기로 아파트 매수심리가 주춤한 가운데 규제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오피스텔로 주택 실수요자들의 발길이 몰리면서 오피스텔 분양·거래 시장에 이상 과열조짐이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전매가 가능한 일부 오피스텔 단지에는 최근 수천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단지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100실 미만의 오피스텔은 계약 전 분양권 전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웃돈’을 붙여 팔려는 투자자들이 대거 몰린 탓이다. 현장 공인중개사들은 “산꼭대기에 분양을 해도 요즘은 청약 당첨 이후 웃돈을 붙여 팔겠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평촌신도시에서 인기 많은 주거용 오피스텔 힐스테이트 에코 평촌 전경.
▶22억 과천 오피스텔 청약 5761 대 1 사상 최고치 기록 오피스텔 청약 시장은 그야말로 광풍이다. 지난 11월 2일 청약을 진행한 힐스테이트 과천청사역은 89실 모집에 12만4426명의 청약자가 몰렸다. 평균 청약 경쟁률은 1398 대 1 로 ‘역대급’ 경쟁률이 나왔다. 이는 역대 아파트 최고 청약경쟁률 809.08 대 1을 기록했던 지난 4월 동탄역 디에트르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해 파악하고 있는 역대 오피스텔 청약경쟁률(무순위 청약은 제외) 중에서도 최고치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역 2번 출구 앞, 옛 삼성SDS 부지에 들어서는 이 오피스텔 단지는 전용 84㎡ 기준(펜트하우스) 최고 분양가가 22억원으로 책정되며 고분양가 논란을 낳았다. 하지만 청약자들의 발길이 몰리면서 청약 대박을 쳤다. 일부 유형별은 최고 5761 대 1을 기록하며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역대 오피스텔 경쟁률 가운데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지인 투자자들은 청약 열기를 뒷받침했다. 이 단지 청약자 12만 명 중 거주자 우선(과천시 거주) 청약자는 4804명으로 전체 청약자의 3.9%다. 11만 9622명(96.1%)에 달하는 청약자가 외지인이었다는 얘기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에도 실거주를 위한 매수 의사보다는 당첨 이후 ‘웃돈’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외지인들의 문의가 집중됐다.
청약 신청 희망자들이 몰려들면서 자체 청약 홈페이지가 일시 마비된 것이다. 이에 시행사 측은 신청 마감 시각을 이날 오후 5시에서 밤 12시까지로 연장하는 해프닝도 빚어졌다. 이 단지는 96실 모집에 모두 12만5919명이 접수해 평균 경쟁률 1312 대 1로 청약을 마감했다.
오피스텔 분양은 곳곳에서 역대 최고 경쟁률을 기록하며 완판 행진을 벌이고 있다.
앞서 경기도에서 분양한 동탄역 디에트르 퍼스티지 오피스텔은 평균 82.92 대 1의 경장률을 기록했고, 같은 단지 아파트 분양가보다 2억원 이상 높은 10억원에 분양했던(전용 84㎡ 기준) 성남 판교밸리자이(오피스텔)도 232 대 1의 경쟁률로 완판됐다. 대구 두류역 자이와 대구역 자이 더 스타 등 지방에서도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보이는 오피스텔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낮은 청약 문턱은 오피스텔 청약 광풍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청약 때 청약통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투기과열지구나 조정대상지역이 아닌 경우에는 당첨 후 명의 이전도 가능하다. 투기과열지구라도 100실 미만의 오피스텔은 전매제한에 걸리지 않는다. 청약 포기에 따른 불이익도 없다. 웃돈을 노리고 청약한 후 예상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당첨을 포기하면 그만이다.
오피스텔 분양권 거래로 한탕을 노리는 ‘2030세대’ 투자자들도 등장하고 있다. 전매가 가능해 웃돈을 붙여 팔 수 있는 물건만 골라 집중 청약하는 것이다. 어차피 잔금을 치를 의사가 없으니 ‘대출 한파’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30대 윤 모 씨는 “나중에 내 집 한 칸 마련하려면 이렇게라도 시드머니(종잣돈)를 마련해야 한다”며 “월급을 모아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나버렸고, 당첨만 되면 1년 치 연봉이 나올 수 있으니 안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11일 기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전국 오피스텔 매매 건수는 전날까지 5만1402건으로 집계됐다. 매매량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미 연간 기준으로 역대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2018년 3만3249건이었던 전국 오피스텔 매매량은 2019년 3만5557건으로 반등했고, 지난해 4만8605건으로 폭증했다. 올해는 역대 최다였던 지난해 기록을 일찌감치 뛰어 넘었다.
2006년 2만여 건 수준이었던 오피스텔 매매는 임대 수익 창출 수단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2007~2011년 3만3000~3만6000건 수준으로 늘었지만, 저조한 수익성과 부동산 경기 침체가 맞물리면서 2012~2014년 3만 건 아래로 줄었다. 이후 2015~2016년 4만1000여 건으로 증가했다가 2017~2018년 3만 건대로 다시 감소하는 등 증감을 반복했다.
올해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경기(1만 6110건), 인천(6537건), 강원(673건), 울산(536건), 세종(350건), 전북(211건) 등 6곳에서는 오피스텔 매매량이 역대 연간 최대치를 넘어섰다. 서울(1만5631건)도 종전 역대 최고치였던 지난 2008년(1만5964건)을 올해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오피스텔 시장 과열은 일반 아파트 거래 ‘빙하기’와 맞물려 주목받고 있다. 올해 1~9월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아파트 매매거래량(계약일 기준)이 같은 기간 28만9025건에서 20만3022건으로 29.8%가량 줄었고,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40.3% 급감했다. 반면 수도권 오피스텔 거래량은 총 3만492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만3278건 대비 50% 증가했다.
오피스텔 89실 모집에 12만4426명이 청약한 ‘힐스테이트 과천청사역’ 공사 현장.
반면 오피스텔은 대출 담보 인정 비율이 1금융권은 70~80%, 2금융권의 경우 90%까지 가능하다. 또 규제지역 내 유주택자가 주택을 추가 취득하면 2주택 시 취득세가 8%, 3주택 시 12%로 올라가지만, 오피스텔은 주택 보유수와 무관하게 4.6%가 적용된다.
오피스텔에 수요가 몰리면서 가격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KB국민은행 부동산리브온에 따르면 경기 지역 오피스텔 시세는 10월 기준 평균 2억7623만원으로 지난해 연말 2억3415만원 대비 4207만원(18%) 올랐다. 인천(2887만원)과 서울(2207만원) 등도 같은 기간 2000만원 이상 시세가 올랐다. 올해 수도권 오피스텔 가격 상승폭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 치의 상승 폭을 웃돈다.
특히 시장에서 아파트 대체재로 여겨지는 중대형 오피스텔의 가격 상승률이 돋보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용 40㎡ 이하 오피스텔은 올해 평균 매매가격이 98만원(1억4308만→1억4406만원) 올라 0.7% 상승했다. 반면 올해 전용 85㎡ 초과 오피스텔은 지난해 연말 6억8526만원 대비 5633만원(8.2%) 올랐다. 중대형 오피스텔이 소형 오피스텔의 10배가 넘는 매매가 상승률을 보인 셈이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주거용 오피스텔의 바닥난방 허용 기준을 기존 전용면적 85㎡ 이하에서 120㎡까지 확대하기로 하는 등 오피스텔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있어 앞으로 인기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9월 15일 발표한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방안’의 후속 조치로 바닥난방 규제 완화 내용이 담긴 새 오피스텔 건축기준을 11월 12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최근 오피스텔의 인기는 정부 규제가 아파트에 집중되면서 비롯된 반사이익으로 보인다”며 “앞으로도 정부가 도심 주거기능 강화를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할 방침인 만큼 도심권 내 오피스텔의 인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 앞에 오피스텔 매매를 안내하는 광고가 붙어 있다.
최근 시세가 급등하면서 오피스텔 투자 수익률은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KB국민은행 부동산리브온에 따르면 지난 10월 서울 오피스텔 임대수익률은 4.32%로 떨어졌다. 경기와 인천의 오피스텔 임대수익률도 각각 4.67%, 5.52%까지 하락했다. KB국민은행이 오피스텔 임대수익률을 조사해 발표한 2010년 7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2010년만 해도 서울과 경기는 6%대, 인천은 7%대였다. 경기는 지난해 연초 6%대가 깨졌고, 인천도 5%대로 내려왔다.
임대수익률은 매매가격에서 월세 보증금을 제한 금액을 연간 임대 수익으로 나눈 값이다. 현 시점에서 오피스텔을 매입하고 임대할 경우 기대되는 수익률을 말한다. 임대수익률이 하락한 이유는 오피스텔 매매가격이 상승하면서 초기 투자금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올해 연초 이후 9개월간 서울(2207만원)과 경기(4207만원), 인천(2887만원) 지역의 오피스텔은 몸값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오피스텔 역시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향후 매도가 용이한 물건을 골라내야 한다는 얘기다. 함영진 직방빅데이터 랩장은 “오피스텔 가격이 많이 올라 있는 데다, 받을 수 있는 월세는 제약이 있기 때문에 여유자금이 아닌 돈으로 투자하는 투자자들이라면 향후 몇 년 안에 투자금을 회수하는 게 곤란해질 수 있다”며 “단지 규모가 크고, 아파트와 세대가 섞여 있다든지, 단지 브랜드 등을 고려해 향후 매각에 유리한 방향으로 투자 결정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오피스텔은 양도세와 종합부동산세 중과 대상이기 때문에 절세 전략을 세워야 할 필요가 생긴다”며 “도심이나 주요 업무지구 내 오피스텔은 주거용에서 업무용으로 전환이 용이하기 때문에 향후 세금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유리하다”고 말했다.
[유준호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5호 (2021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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