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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기술주 강세 계속” 페이팔·ASML·TSMC 1조弗 클럽 후보
입력 : 2021.12.02 11: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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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공급 대란 인플레이션 압박 속 ‘가을 위기론’에 휘청였던 미국 뉴욕증시에서 연일 낙관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월가 대형은행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에 이어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 블랙록의 투자 책임자(CIO)가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뉴욕증시는 지난 10월부터 본격적인 ‘어닝 시즌’을 맞았고 기업들의 호실적 발표가 잇따르면서 산타랠리에 접어들었다. 뉴욕증시에선 통상 해당 연도 10월 말에서 다음 연도 1월이 이른바 ‘산타랠리’로 통한다. 산타가 주는 선물처럼 주가가 올라 투자자들이 반긴다는 의미에서다.
▶“연말 S&P500지수 5~10% 더 오를 것” 블랙록의 릭 라이더 글로벌 채권·자산배분 부문 CIO는 뉴욕증시 대표 주가 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가 올해 연말 최대 10%까지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최근 CNBC 인터뷰를 통해 “미국 주식 시장에 상승 여력이 남아 있다”면서 “S&P500지수가 5~8% 정도 더 오를 것이라고 보지 않을 이유가 없으며 어쩌면 10%도 오를 수 있다”고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라이더 CIO는 주식을 추가로 사들일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면 여전히 사야 할 고평가되지 않은 주식이 많다”면서 “사실 요즘은 매수를 위해 시장을 분석 중이며 자동차 기업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물 측면에서 물류난뿐 아니라 원자재 가격과 노동 임금 인상 압력 탓에 물가 상승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금융 측면에서는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다음 달 이후 테이퍼링(연준이 국채 등 자산 매입 규모를 줄임으로써 시중 유동성 증가세를 잡는 정책)에 들어갈 것이라는 시그널링을 주기 시작한 점이 증시 하방 압력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더 CIO가 상승론을 펼친 배경은 시중 유동성과 내수 소비 여력이다. 유동성과 관련해 그는 “연준이 테이퍼링을 하는 것은 유동성 투입 속도를 늦추는 것이며 대차대조표 규모(유동성 규모) 자체가 줄어드는 게 아니다”라면서 “이런 점을 감안해도 여전히 연기금과 기부 기금 자금 등 단기 현금 유동성이 많다”고 언급했다. 또 라이더 CIO는 내수 소비 여력이 인플레이션 압박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최근 몇 달간 인플레이션이 화제였는데, 사람들은 시장이 물가 상승 압박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면서 “기업들이 비용 상승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함으로써 이익을 꾸준히 낼 수 있고, 소비자들도 (경기 부양책 등으로) 여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테이퍼링이란 연준이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 매수 규모를 줄임으로써 시중 유동성 증가세를 늦추려는 정책을 말한다. 연준은 코로나19가 대유행하기 시작한 지난해 상반기 매달 국채와 MBS를 합쳐 총 1200억달러어치를 사들임으로써 시중에 유동성을 풀어왔다. 국채와 MBS는 연준 입장에서는 자산으로 통한다.
피터 가린리 삭소뱅크 주식 부문 수석전략가는 엔비디아 외에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 첨단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는 ASML에 대해서도 수년 내 시총이 1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자와 TSMC는 물론 인텔까지 앞다퉈 EUV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등 향후 수년간 매출 성장이 확실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린리 수석전략가는 이 밖에 텐센트는 중국 내 정보기술(IT) 대기업 반(反)독점·사이버보안 규제에도 중국이 디지털 경제를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 페이팔은 블록체인을 비롯한 핀테크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이라는 점, TSMC는 중장기적으로 첨단 산업 발전에 따른 시스템 반도체 수요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이들이 시총 1조달러를 넘을 만한 종목이라고 분류했다.
다만 이런 분석은 가격 결정력이 있는 기업인 경우에 한해 호실적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앞서 지난 10월 현지 매체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사비타 수브라마니안 미국 주식·계량전략 부문 책임자는 고객 메모를 통해 “올해 3분기(7~9월) 들어 공급차질 문제로 인해 기업 순이익 흐름이 둔화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놓는 기업이 적지 않다”면서 “가격 결정력이 있는 애플(IT 부문·AAPL)과 넷플릭스(콘텐츠·NFLX), 코노코필립스(에너지·COP),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시스(팹리스 반도체·AMD) 등이 유리하다”고 언급했다. 골드만삭스도 태피스트리(의류·TPR)와 어도비(소프트웨어·ADBE), 오라클(소프트웨어·ORCL) 등을 가격 방어력 있는 종목으로 보고 매수를 추천한 바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제조업체 엔비디아의 목표주가가 40% 이상 급등했다.
월가에서는 중소형주가 내년 이후에도 대형주보다 나은 실적을 낼 것으로 보고 당분간 중소형 기업 주식을 사라는 투자 조언을 내고 있다. 금융데이터업체 레피니티브의 IBES 데이터를 보면 올해 3분기(7~9월) 러셀2000 상장 기업들 수익은 1년 전보다 475% 급증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해당 분기 S&P500 상장 기업들(42%)보다 눈에 띄는 증가세다. 미국 트루이스트 자문의 키스 러너 공동 투자책임자(CIO)는 “중소형주가 최근 7개월 동안 횡보하면서 대형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데다 올해 중소형 기업 순이익 추정치가 S&P500지수에 속한 대기업들보다 더 강력하기 때문에 매수를 권고한다”고 밝혔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질 케리 홀 중소형주 투자 전략 책임자도 “그간 주가 흐름을 고려할 때 앞으로 10년간 중소형 기업 수익률이 대기업을 추월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둘째로는 미국 중소기업은 민주당이 연방 의회에서 주도적으로 논의 중인 법인세 증세 압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이다. 현지 매체 배런스는 민주당이 제안한 법인세 최소 15% 증세안은 연간 실적이 10억달러 이상인 기업에만 해당되기 때문에 중소기업은 사실상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지난 11월 12일 분석했다. 러셀20 00지수와 유사하게 중소형주를 모아놓은 S&P600지수만 보더라도 민주당 증세안에 해당되는 기업은 젠워스 파이낸셜 한 곳뿐이라는 이유에서다.
한국 투자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미국 신발 제조업체 크록스 주가가 최근 한 달 새 24.00% 뛰었고 이 밖에 1020세대 대상 패션 의류업체 애버크롬비&피치(17.46%), 유명 프랜차이즈 쉐이크쉑(11.62%), 공동 업무용 소프트웨어업체 아사나(15.69%), 미국 백화점 체인 메이시스(9.91%) 등의 주가도 가파르게 올랐다. 중소형주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도 러셀2000지수나 S&P600지수를 따라 시세가 올랐다. 최근 한 달 새 중소형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인베스코S&P스몰캡 퀄리티(XSHQ·7.79%)와 아이셰어즈 러셀2000(IWM·6.01%), 뱅가드 러셀2000(VTWO·5.96%) 상승률이 대형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SPDR S&P 500 트러스트(SPY·4.53%)와 뱅가드 500 인덱스펀드(VOO·4.52%)를 앞질렀다. ETF는 익숙하지 않은 개별 종목보다는 관련 부문 대표 기업 혹은 지수를 추종해 투자하는 상품이다.
최근 주가가 눈에 띄는 급등세를 보인 밈 주식이 고어스 구겐하임이다. 회사가 스웨덴 고급 전기차 폴스타를 인수한다는 예비 대리 문서를 하루 전날 저녁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영향이다. 고어스 구겐하임은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다. 폴스타는 중국 지리자동차 계열사로 지리자동차는 2010년 볼보자동차를 인수한 후 볼보를 통해 폴스타 전기차 사업을 키워왔다.
뉴욕증시에선 대마초도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주제다. 미국 민주당이 주도하는 연방의회가 대마초를 연방정부에서도 합법화하려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최근 전해지면서 관련주가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캐노피 그로스와 선다이얼 그로워스, 오로라 캐너비스, 틸레이가 대표적인 종목이다.
다만 지난 10월 8일 연준은 반기별로 발행하는 ‘금융안정 보고서’를 통해 “몇 가지 추세를 더 지켜봐야 하며 특히 개인투자자들이 소액으로 콜옵션 거래를 통해 투자하는 만큼 주가 급등락 가능성이 커 단기에 큰 손실을 볼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에서는 밈 주식에 대한 투자 열풍이 새로운 시장 흐름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긍정론도 나온다.
[김인오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5호 (2021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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