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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값만 있어도 황제주 살 수 있다고? 주식 소수점 매매의 비밀
입력 : 2021.10.29 14: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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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3일 금융위원회는 국내·해외주식 소수 단위 매매(소수점 거래)를 전면 허용키로 했다. 그동안 소수점 거래는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돼 신한금융투자와 한국투자증권 등 2곳이 해외주식에 대해서만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올 6월 말 기준으로 누적거래는 신금투 14만 명·2억7000만달러, 한투 51만 명·7억5000만달러 등으로 합치면 10억달러가 넘는 규모다.
금융당국이 제한된 형태의 소수점 거래만 허용해온 이유는 상법상 주식불가분의 원칙과 온주(온전한 주식 1주) 단위로 설계된 증권거래·예탁결제 시스템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소수점 거래에 대한 투자자들의 수요가 계속 늘어나자 증권사별로 규제특례를 인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예탁결제원에 소수점 거래를 위한 별도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하고 희망하는 증권사가 모두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많은 증권사들은 해외주식부터 먼저 소수점 거래 서비스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기왕에 신금투, 한투 2곳이 해외주식에 대해 소수점 거래 서비스를 제공해와 국내주식보다 준비가 덜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은 내년 3분기 중 소수점 거래가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
커피 한 잔 값만 있어도 우리 돈으로 100만원이 넘는 ‘황제주’를 소수점 단위로 매수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리게 됐다. 황제주는 비싼 주가 때문에 액면분할을 하지 않는 이상 소액 투자자들의 접근성이 떨어졌다. 아마존, 알파벳, 테슬라 등 미국 주식은 물론 LG생활건강, 삼성바이오로직스, LG화학 등 고가의 주식을 소수점 단위로 거래하는 길이 열리면 MZ세대는 여유자금이 생길 때마다 좋은 주식을 차곡차곡 사 모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소수점 거래 활성화는 국내·해외주식 투자 저변을 크게 확대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해외주식뿐만 아니라 국내주식도 소수 단위로 거래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다.
2017년 이후 미국과 영국의 일부 증권사가 소수점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국내에서도 소수점 거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에 금융당국은 2019년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으로 2개 증권사가 해외주식에 대해 소수점 거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허용했다. 하지만 국내주식에 대해서는 법률상 원칙과 증권 인프라와의 충돌 문제 등으로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하지 못했다.
예탁결제원은 예탁자계좌부(투자자분)에 ‘소수 단위 전용계좌’를 신설해 해당 주식을 온주 단위로 총량관리한다. 예탁결제원의 소수 단위 전용계좌 수량과 증권사의 소수 단위 보유잔고 합계는 일치해야 한다. 배당금 등 주요 경제적 권리는 예탁결제원이 전부 수령한 후 투자자별 보유 비율에 따라 비례해서 지급한다. 소수 단위 주식 투자는 원칙적으로 의결권이 없다.
위탁자인 증권사는 고객의 소수점 거래 주문을 취합해 자신의 명의로 온주를 취득하고, 예탁결제원에 신탁재산(주식)으로 이전한다. 수탁자인 예탁결제원은 신탁재산인 온주의 법률상 소유자로서 수익증권을 발행하고 신탁재산을 관리한다. 수익자인 고객과 증권사는 소수점 주식의 권리를 직접 보유하지 않고, 신탁재산에 관한 권리(수익권)만 보유하게 된다.
이에 따라 우선 증권사는 고객의 소수점 주문을 취합해 자신의 명의로 한국거래소에 호가를 제출한다. 취합한 주문이 온주에 미달하면 해외주식처럼 국내주식도 부족분을 증권사가 자기재산으로 채워 온주로 만들어 호가를 제출한다. 증권사의 주문 취합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일반 증권거래처럼 실시간 거래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주식 소수점 거래 역시 실시간 거래는 불가능하고 하루 한 차례 정해진 시간에만 거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는 호가를 제출해 매수한 주식에 대해 예탁결제원에 신탁설정을 청구하게 된다.
예탁결제원은 수탁자로서 증권사와의 신탁계약에 따라 수익증권을 전자증권 형태로 발행한다. 그 전에 예탁결제원과 증권사는 소수점 거래가 가능한 종목을 미리 정하게 된다. 예탁결제원은 수익증권을 전자등록의 방법으로 증권사에 발행하고, 증권사는 수익증권을 다시 고객계좌부(소수 단위 투자지분)에 계좌 간 대체해 전자등록을 마친다. 투자자는 매매 시점(T일)이 아닌 결제 시점(T+2일)에 수익증권을 취득하게 된다.
금융위원회는 10~11월 중 한국예탁결제원에 소수점 거래 서비스 제공을 희망한 증권사에 대해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할 계획이다. 사진은 고승범 금융위원장.
이에 따라 소수 단위 주식 투자자에게는 원칙적으로 의결권이 없고, 예탁결제원이 자본시장법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게 된다. 다만 소수 단위 주식을 다량 보유한 투자자는 증권사와의 계약에 따라 온주 단위로 전환해 의결권 행사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소수 단위 주식 0.6주, 0.8주, 0.7주를 매수해 총 2.1주를 보유하게 된 투자자는 2주에 대해서는 온주 단위로 전환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국내주식도 배당은 보유 주식 비율에 따라 지금처럼 똑같이 지급받을 수 있다.
소액으로 고가의 우량기업 주식에 분산투자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을 동일 비중으로 투자할 경우 S&P500의 경우 약 10만달러, 코스피200은 약 3000만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0.01주 단위로 거래가 가능할 경우 S&P500 1000달러, 코스피 200 30만원으로 투자가 가능하다.
주식도 펀드처럼 매달 일정 금액에 맞춰 투자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주가가 요동치면 매달 고정적으로 10주를 사려고 해도 투입해야 할 자금 규모가 달라진다. 하지만 소수점 거래가 열리면 매달 10만원씩 삼성전자를 살 수 있다. 적립식 펀드 투자와 비슷하다.
증권사가 투자자들이 금액 단위로 지정하는 포트폴리오에 대응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투자자가 주식투자 상한을 1000만원으로 설정하고 매달 50만원씩 미국 기술주에 투자하되, 상한 초과 시 금액 단위로 매도하는 상품 등을 내는 것도 가능하다.
[문지웅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4호 (2021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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