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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틈새 ‘생활형 숙박시설·주거용 오피스텔·도시형 생활주택’ 날개 달았다
입력 : 2021.10.07 17: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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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묶인 주택 규제와 세금 때문에 아파트로 대표되는 주택 시장이 투자매력을 급속히 상실하고 있다. 그런데도 부동산에 투자하려는 심리는 여전해 틈새시장을 노린 비(非)아파트 상품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
다만 지금 이런 상품을 사면 추후 부동산 경기가 꺾인 뒤에 제값을 받고 팔고 나오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투자에 주의가 요구된다.
아파트가 아닌 상품이 각광받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공급 부족이다. 신규로 집을 지을 땅이 부족한 수도권 일대에서 새로운 아파트가 나오려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서울시는 박원순 전 시장 시절 여러 규제를 만들어 사업 속도를 늦춘 측면이 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정권 초기부터 “공급은 충분하다”고 말하며 정비사업 활성화에 난색을 표했다. 이런 시간들이 쌓여 청약할 만한 아파트는 부족해졌고, 풍선효과에 의해 소비자들이 비아파트 상품까지 눈여겨보게 된 것이다.
다른 하나의 원인은 수요 측면이다. 청약경쟁이 워낙 치열하다보니 바늘구멍을 뚫는 것보다 더 힘들어졌다. 수도권 웬만한 아파트는 만점에 가까운 청약가점으로도 넘보기 힘들어졌다. 반면 비아파트 상품은 거의 추첨제여서 가점이 높지 않더라도 운만 좋으면 당첨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게다가 부동산 시장이 뜨거워서 비아파트 상품도 당첨만 되면 웃돈을 받고 팔 수 있는 길이 열려 수요자들이 시장에 강한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최근 아파트 대체재로 주거용 오피스텔과 도시형 생활주택이 각광받고 있다. 사진은 삼송역 인근 주거용 오피스텔 단지.
SK에코플랜트가 9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 대장지구 B1블록에서 분양한 ‘판교 SK뷰 테라스’도 화제를 끌었다. 단지형 연립주택으로 지하 1층~지상 4층, 전용면적 75~84㎡, 16개동, 총 292가구 규모였다. 만 19세 이상이면 청약통장과 주택 소유, 거주지 등 자격 제한 없이 청약이 가능하고 청약통장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재당첨 제한이 없다. 터널을 통과하면 곧바로 서판교로 이어진다. 판교 생활권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는 입지로 주목을 끌었다. 서울에서 ‘하이엔드 라이프 오피스’를 내걸고 나온 강동구 ‘고덕 아이파크 디어반’의 경우 4군(전용 204∼296㎡) 분양가격이 39억7200만∼67억6200만원이지만, 청약 경쟁률이 410.5 대 1에 달했다.
9월 나온 정부 대책을 보면 이 같은 심리가 읽힌다. 정부는 9월 15일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및 아파트 공급 속도 제고 방안’을 발표하고 오피스텔의 바닥 난방을 전용면적 120㎡까지 확대하고 도시형 생활주택을 좀 더 넓게 지을 수 있게 건축 기준을 완화하기로 했다. 기존 오피스텔의 바닥 난방 허용 면적은 전용 85㎡가 기준이었다. 그런데 빗발치는 민원을 파악한 정부가 이걸 120㎡로 확대하기로 했다.
통상 오피스텔은 같은 전용면적 기준으로 아파트보다 조금 좁게 설계된다. 평면을 확장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용 120㎡ 정도 되면 일반아파트 30평대와 어슷비슷한 면적이 나온다. 한마디로 주거용 오피스텔로 30평대 아파트를 공급하는 효과를 낼 수 있게 제도를 바꾼 것이다. 온돌 문화인 한국에서 바닥 난방은 겨울을 날 수 있는 핵심수단이다. 이번에 정부가 제도를 현실에 맞게 바꾸면서 관련 상품이 쏟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게다가 도시형 생활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건축 기준도 완화했다. 도시형 생활주택은 도시지역에 건설하는 85㎡, 300가구 미만의 공동주택으로 크기에 따라 원룸형과 단지형 다세대, 단지형 연립으로 나뉜다. 정부는 이 중에서 원룸형 도시형 생활주택의 건축 기준을 풀어주기로 했다. 아예 ‘원룸형’이란 개념을 ‘소형’으로 개편하기로 했다. 기존까지 도시형 생활주택 원룸형은 전용면적 상한이 50㎡였는데 이를 60㎡로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더 큰 혜택은 공간 분리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원룸형은 전용면적 30㎡ 이상 가구에 한해 침실과 거실 등 2개의 공간으로 나눌 수 있으나 앞으로는 침실을 3개 만들어 4개의 공간으로 나눌 수 있게 했다.
이렇게 되면 방 3개를 갖춘 일반아파트 전용 60㎡ 평면과 비교해 다를 것이 없어진다. 도심 자투리 공간에서 주로 나오는 도시형 생활주택 공급 물량 일부를 아파트처럼 쓸 수 있게 제도를 개편한 것이다. 단 국토교통부는 주차장 등 기반시설 과부하를 막기 위해 공간 구성 완화 가구는 전체의 3분의 1로 제한하기로 했다.
또 정부는 도시형 생활주택과 주거용 오피스텔, 다가구 등 비아파트의 공급을 활성화하기 위해 내년까지 한시적으로 주택도시기금 융자 한도를 높이고 금리를 인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오피스텔은 기금 대출한도가 기존 4000만원에서 6000만원으로 올라가고 금리는 4.5%에서 3.5%로 낮아진다. 도시형 생활주택의 경우 대출한도는 5000만원에서 7000만원으로 오르고 금리는 3.3~3.5%에서 2.3~2.5%로 내려간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특히 최근 틈새시장 물건으로 각광받고 있는 생활형 숙박시설이 문제로 지적된다. 주거용 오피스텔과 도시형 생활주택의 경우 아파트를 대체할 수 있는 ‘주택’이란 큰 틀에서 많은 것을 공유한다.
물론 언젠가 부동산 시장 불황이 닥칠 때 상대적으로 더 저평가 받을 위험은 있지만, 아파트를 대체할 수 있는 상품으로 충분한 매력이 있다. 주거 목적으로 활용되는 공간이라는 관념을 사회에서 인정받았다. 하지만 생활형 숙박시설은 좀 다르다. 이걸 주택으로 활용하는 게 제도적으로 사실상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택이 아니니까 주택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건축법을 적용받는 상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매제한 규정이 없고, 청약도 자유롭다. 갈 곳 없는 자금이 생활형 숙박시설 분양 때마다 한꺼번에 몰린다. 그래서 최근 유독 분양 물량이 많다. 강원도 양양에서는 생활형 숙박시설 양양 죽도 서프리조트 제이디가 나올 예정이다. 지하 2층~지상 20층, 366실의 규모의 A·B·C 타입으로 짓는다. 바다 전망과 클럽 문화를 누리는 스카이라운지 특화를 핵심 시설로 내세웠다. 강원도 속초에서는 연면적 12만560㎡, 높이 99m, 지하 2층~지상 26층 총 717실의 대규모로 조성되는 ‘카시아 속초’가 분양 중이다. 최근 생활형 숙박시설 규제를 강화하는 정부의 속내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 정부는 지난 4월 생활형 숙박시설을 주거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법을 개정했다. 레지던스를 주거용으로 사용할 경우 매년 시세의 10%를 이행강제금으로 내도록 했다.
생활형 숙박시설을 취득하면 무조건 숙박업 등록 신청을 해야 한다. 등록 없이 소유자가 실거주 또는 주거용으로 임차할 경우 불법이다. 숙박업으로 등록하더라도 실거주를 할 수 없다. 주택이 아니라 숙박시설이기 때문이다. 장기 거주자들의 전입신고도 원칙상으로는 할 수 없다.
그런데 실무적으로 좀 더 들여다보면 문제가 있다. 숙박업으로 등록하려면 객실 수가 30개 이상이거나 영업장의 면적이 해당 건물 연면적의 3분의 1 이상이어야 한다. 그래서 객실 하나를 분양받은 사람들은 거의 위탁경영업체를 통해 숙박업을 등록한다. 생활형 숙박시설을 분양하는 업체들은 저마다 ‘양질의 위탁업체와 협력하고 있다’는 점을 홍보 포인트로 내세운다.
그런데 이 위탁업체들이 임차인을 구한 뒤 임대차 계약이 아니라 ‘장기 숙박 계약’을 맺게 되면 상황이 애매해진다. 사실상 얼마든지 오랫동안 개인이 실거주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한시적으로 생활형 숙박시설을 오피스텔로 전용할 수 있는 규정을 믿고 투자하는 사람도 있다. 정부는 오는 10월부터 20 23년 10월 2일까지 2년간은 생활형 숙박시설을 주거용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할 수 있게 조치했다. 그동안 생활형 숙박시설이 제도 사각지대에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법이 시행되기 이전에 분양된 숙박시설에 대해서만 해당되는 혜택이다. 하지만 용도 전환 기한이 한시적인 데다 생활형 숙박시설은 오피스텔에 비해 주차 대수가 현저하게 부족하다. 법적으로는 주거용 오피스텔로 옷을 갈아입을 수 있다 해도 실제로 그에 준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또 생활형 숙박시설 분양 계약 때 주택용이 아니라는 것을 안내하고 확인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내용의 건축물 분양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도 추진 중이다.
국회 차원에서도 규제 칼날을 갈고 있다. 7월 말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생활형 숙박시설을 분양 대상 건축물에서 아예 제외하고 콘도처럼 회원권 형태로만 분양할 수 있게 하는 ‘건축물의 분양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민주당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선 후보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생활형 숙박시설 불법용도 변경을 방지하는 법안을 마련해달라고 건의한 서한이 시발점이 됐다. 법안 통과로 분양이 실제 금지될 경우 생활형 숙박시설은 건물을 통매각하지 않는 한 회원권 형식으로 거래될 수 있다. 리조트처럼 바뀌는 것이다. 물론 법안 통과 이전에 분양된 생활형 숙박시설의 경우 규제 칼날을 피해갈 공산이 크지만, 법안이 통과되면 생활형 숙박시설은 사실상 명맥이 끊길 가능성이 커진다. 이 과정에서 분양자들은 예상치 못한 피해를 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나오는 생활형 숙박시설은 암묵적으로 ‘주거용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분양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예 회원권만 거래할 수 있게 법안이 실제 통과된다면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생활형 숙박시설이 관광지에 자리 잡고 있어 ‘숙박시설’ 본래 목적으로 활용할 용도로 분양받는다면 해당 지역에 경쟁할 만한 숙박시설이 얼마나 있는지, 주변에 관광 콘텐츠가 뭐가 있는지 등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인근 호텔이나 생활형 숙박시설과 비교해 내가 청약할 상품이 얼마나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다수 생활형 숙박시설이 위탁운영업체를 쓰기 때문에 어떤 업체가 위탁을 맡는지도 미리 알아봐야 한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생활형 숙박시설은 철저히 ‘숙박시설’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투자해야 뒤탈이 없다”며 “자꾸 편법으로 주거시설로 이용하려고 애쓰다보면 스텝이 꼬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홍장원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3호 (2021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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