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도 막지 못한 아파트 경매 열풍

    입력 : 2021.09.06 14:50:43

  •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청담동양파라곤은 2006년 입주가 이뤄진 소규모 단지(전체 92가구)다. 전용면적 197㎡ 매매 최고가는 37억3000만원이다. 그러나 매매가 아닌 경매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법원경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7월 이뤄진 청담동양파라곤 197㎡ 경매에서 낙찰가는 39억5399만9000원을 기록했다. 매매 최고가보다 6%(약 2억2399만원) 높은 금액에 낙찰됐다. 감정가 34억4000만원 대비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 114.9%를 기록하며 7월 서울 경매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낙찰가로 남았다.

    전국 부동산 시장에 유례없는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경매 시장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7월 중순 이후 코로나19가 재확산되면서 관련 수치는 다소 하락세를 보였지만, 경매 시장에서 주거시설에 대한 열기는 식지 않는 모양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전국 아파트 가격은 8월 둘째 주(9일 기준)까지 8.40% 상승했다. 전년 동기 상승률 3.56% 대비 4.84%포인트 높다.

    수요가 가장 많이 몰리는 수도권을 기준으로 하면 상승률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올해 수도권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10.23%로 전년 동기 5.05% 대비 두 배 넘게 올랐다. 서울 역시 3.40% 상승하며 전년 동기 상승률 0.45%를 훨씬 웃돌았다.

    전세 가격 역시 요동치고 있다. 전국 아파트 전세 가격 상승률은 5.76%로 전년 동기 2.92% 대비 3%포인트 가까이 상승했다. 서울의 경우 상승률 2.69%로 전년 동기 상승률 2.12% 대비 0.5%포인트가량 올랐다.

    전년 대비 서울 전세 가격 상승폭이 전국 상승폭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부동산업계에서는 서울 아파트 가격을 언젠가는 터질 ‘시한폭탄’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지난해 7월 말 시행된 임대차3법으로 아파트 전세 가격 상승폭이 5% 이내로 묶여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계약갱신청구권을 한 차례 사용한 세입자들의 2년 계약이 끝나가는 내년 상반기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중앙지법 경매법정
    서울중앙지법 경매법정
    ▶‘내 집 마련’ 꿈 멀어지며 경매 시장으로 이처럼 ‘내 집 마련’의 꿈이 멀어지면서 수요자들이 자연스럽게 경매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모양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6월 전국 아파트 낙찰가율은 104.4%로 전달 대비 0.8%포인트 상승했다. 지지옥션은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01년 이후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지난 1월 100.2%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100%를 넘긴 전국 아파트 낙찰가율은 지난 6월까지 6개월 연속 100%를 웃돌고 있다.

    수도권 아파트 낙찰가율도 지난 6월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낙찰가율 112.9%로 전달 111% 대비 1.9%포인트 상승했다. 평균 응찰자도 7.3명에서 9.1명으로 늘었다.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지난 6월 119%를 기록하며 3월부터 4개월 동안 계속해서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특히 서울 아파트 경매의 경우 지난 6월 진행된 법원경매 45건 가운데 단 1건을 제외하고 모두 감정가 100%를 넘겨 낙찰됐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전국적인 집값 급등 현상으로 좀 더 저렴한 매수 기회가 있는 경매 시장에 수요가 몰리고 있다”고 밝혔다.

    7월의 경우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인해 수도권 대부분 법원이 휴정에 들어가면서 전국 경매 건수가 1만 건 밑으로 떨어졌다. 서울 경매진행률(전체 건수 대비 진행 건수)은 52%로 6월 75% 대비 23%포인트 감소했다.

    경기도 역시 경매 진행률 24%로 전월 79% 대비 56%포인트 감소해 전국에서 가장 낮은 진행률을 보였다. 이로 인해 전국 경매 진행 건수는 8750건에 머물며 전년 동기 1만2801건 대비 31.6% 감소했다. 낙찰률과 낙찰가율은 각각 39.4%, 75.9%를 기록했다. 이는 전월 대비 1.0%포인트, 4.1%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다만 경매 시장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듯 전국 평균 응찰자 수는 전월과 동일한 4명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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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거시설 경매도 전월보다 줄었다. 7월 전국 주거시설 경매 진행 건수는 3641건으로 전월 4416건 대비 17.5% 감소했다. 주거시설 물건이 가장 많은 수도권 소재 법정이 7월 중순부터 휴정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 같은 수치만 놓고 보면 코로나19로 인해 경매 시장에도 불황이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거시설에 대한 인기는 여전히 뜨겁다는 분석이다. 물건이 감소했음에도 낙찰률과 평균 응찰자 수는 43.1%, 5.0명으로 전월 수준을 유지하며 열기를 이어가는 데 성공했다.

    특히 서울 아파트 경매는 코로나19 재확산 속에서도 낙찰가율 107.0%를 기록하며 5개월 연속 100%를 웃도는 낙찰가율을 기록했다. 서울 경매 열기가 뜨거운 것은 서울 아파트 매물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8월 17일 서울 아파트 매매 매물은 3만8322건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5만6451건 대비 32.1%(1만8129건) 감소한 수치다.

    전세 매물 역시 크게 줄었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2만8822건에서 2만552건으로 28.7%(8270건) 줄었다. 매물은 줄고, 매수심리는 여전히 강해 수요자들은 좀처럼 살 집을 마련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8월 둘째 주 전국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108.0으로 전주 107.8 대비 0.2포인트 상승했다.

    매매수급지수는 한국부동산원의 회원 중개업소 설문, 인터넷 매물 건수 등을 분석해 수요와 공급 비중을 지수화한 수치다. ‘0’에 가까울수록 공급이 수요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200’에 가까울수록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것을 뜻한다. 기준선 100을 넘어 높아질수록 매수심리가 강하다는 의미다.

    매매수급지수 108.0은 7월 첫째 주(108.0) 이후 5주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7월 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부동산 시장의 하향조정 내지 가격조정이 이뤄진다면 시장의 예측보다는 좀 더 큰 폭으로 나타날 수도 있겠다는 예상을 한다”고 경고했지만 시장의 흐름은 이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실제로 ‘부동산 불패’의 상징인 서울 강남구마저도 조기분양전환이 진행 중인 LH강남아이파크 매매를 제외하면 8월 중순까지 하루에 한 건의 거래도 신고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거래 절벽’에 시달리고 있지만 강남구 일대 아파트는 8월에도 신고가 행진을 이어가면서 수요자들의 ‘진입 장벽’만 높아지고 있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본부장은 “부동산 시장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르면서 수요자들이 안 좋은 매물이나 저층 아파트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강남권이나 지역별 ‘대장아파트’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아 호가는 올라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낙찰가율 114.9%를 기록한 청담동양파라곤 197㎡도 지난해 10월 신고가 거래 이후 매매가 멈춘 상황이다. 강남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매물이 원체 적어 신고가로 거래되고, 이 가격이 기준점이 되고 있다”며 “가격 하락 요인이 보이지 않으니 집주인들도 급하게 매물을 내놓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 일대 아파트 전경
    서울 강남 일대 아파트 전경
    ▶경매 열기 수도권으로 번져 인천에서는 아파트 경매 낙찰가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호재에 서울을 벗어난 지역에서 집을 마련한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인천의 8월 둘째 주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0.43%로 4주 연속 최고 상승률을 기록한 수도권 상승률 0.39%보다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7월 인천 아파트 낙찰가율은 118.5%다. 지지옥션이 집계를 시작한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평균 응찰자 수도 10명으로 전월 8.4명보다 늘었다.

    인천에서도 매매 최고가보다 높은 가격에 낙찰이 이뤄졌다. 감정가 2억8000만원을 기록한 인천 연수구 롯데아파트 전용면적 99㎡는 4억7013만원에 낙찰됐다. 낙찰가율은 167.9%고, 응찰자 수는 34명을 기록했다. 이 단지 같은 전용면적의 매매 최고가는 지난 5월 기록한 4억3500만원이다. 매매 최고가 대비 3513만원 높은 금액에 경매가 이뤄졌다. 이 선임연구원은 “인천은 교통 호재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인식에 최근 집값이 크게 올랐다”며 “감정가는 수개월 전에 매겨져 현재 매매가보다 저렴한 경우가 많아 수요가 경매 시장으로 몰린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오피스텔 낙찰가율도 상승세다. 지난해 월평균 서울 오피스텔 낙찰가율은 72.76%로 매달 70~80%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올해 아파트 매물이 급감하면서 주거 대체제로 오피스텔을 찾는 수요자가 늘어 낙찰가율도 자연스럽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서울 오피스텔 평균 낙찰가율은 지난 3월 80.95%를 시작으로 4월과 5월 각각 91.8%, 92.4%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6월 100%를 찍은 낙찰가율은 7월에는 102.4%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부동산 경매가 열리고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입찰법정
    부동산 경매가 열리고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입찰법정
    7월 인천 오피스텔 낙찰가율 역시 90.5%로 전월 68.0% 대비 22.5%포인트 상승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같은 경매 열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정부의 연이은 공급 대책에도 실수요자들의 불안감이 여전하고, 매매보다는 각종 규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규제가 매매를 틀어막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서울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목동신시가지아파트 14개 단지가 꼽힌다. 2만6600가구 규모 목동신시가지아파트 14개 단지는 지난 4월 말 서울시로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됐다. 올해 1~4월 287건의 매매가 이뤄진 이 단지는 규제 이후 매매가 36건(17일 기준)으로 90% 가까이 거래가 급감했다.

    이 선임연구원은 “매매 시장에서 가격 불안 현상이 지속되는 한 경매 낙찰가율 상승세는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경매는 토지거래허가나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의무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투자자와 실수요층의 진입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수요자들이 경매 시장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경매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권리분석이 잘못됐을 경우 뜻하지 않은 지출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이 부분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이 선임연구원은 “주택은 임차인의 보증금 인수 문제로 인해 낙찰 받은 뒤 잔금을 미납하는 경우가 많다”며 “주택임대차보호법 등 기본적인 법률 내용을 숙지한 후 철저한 권리 분석이 뒷받침됐을 때 도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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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매 시장 열기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입찰가를 산정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입찰장에 많은 사람이 몰려있을 경우 긴장감이나 조바심으로 인해 생각했던 것보다 입찰금액을 높였다가 후회하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경매는 매매가보다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이 목적인 만큼 조사한 시세를 바탕으로 욕심부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실제 입주를 원하는 날짜보다 시간적 여유를 두고 입주계획을 마련한 뒤 경매에 뛰어드는 것도 중요하다. 이 선임연구원은 “경매는 낙찰을 받고 난 뒤 대금납부 기한이 정해지는데 여러 가지 변수로 기한이 연기되거나 낙찰 받은 뒤에도 경매가 취소되는 경우도 간혹 발생한다”며 “매매 시장과 달리 정확히 원하는 날짜에 입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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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실수로 보증금 몰수될 수도 입찰가를 잘못 써낸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숫자 ‘0’을 하나 더 붙여 써내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매수를 포기하는 경우다. 실제로 한 아파트 전용면적 139㎡의 감정가격이 5억6600만원으로 책정됐는데, 이에 7배가 넘는 41억3900만원에 낙찰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해당 물건은 두 차례 유찰되면서 경매 시작 가격이 3억6200만원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황당한 낙찰가격이 나온 이유는 입찰자가 입찰가격을 작성할 때 ‘0’을 하나 더 붙였기 때문이다. 낙찰자는 결국 매수를 포기했고, 보증금 3620만원(최저 입찰가 10%)을 허공에 날렸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이런 일이 실제로 있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매년 숫자를 잘못 적는 등의 사소한 실수로 낙찰된 이후 포기해 몰수되는 보증금 액수가 상당하다”고 밝혔다. 주변 시세를 잘못 조사해 잔금 납부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대출을 구하지 못해 잔금 납부를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경매는 일반적으로 경락잔금대출로 자금을 조달하는데 이 역시 강화된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적용돼 대출 승인이 거절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정석환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2호 (2021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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