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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규제에 흔들리는 홍콩증시, 내 ELS는 괜찮나요
입력 : 2021.08.30 16: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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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자국의 IT 기업이 미국에 상장하려는 시도를 무산시키는 등 각종 규제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멀게만 느껴지는 이 같은 중국의 자국 기업 규제가 엉뚱하게도 국내 투자자들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 손실 우려를 키우는 ‘나비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판 ‘우버’로 불리는 디디추싱 같은 데이터 기업을 규제하는 것은 미국과의 경쟁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G2(미국·중국)의 ‘고래싸움’에 국내 투자자들의 ELS가 불안해져야 하는 이유는 뭘까.
홍콩 센트럴 지역에서 행인들이 홍콩 항셍지수의 종가를 알리는 전광판 앞에 서 있다. 전날 중국 정부의 강력한 사교육 규제 발표로 투자심리가 악화되면서 전 거래일보다 4% 이상 급락했다.
ELS는 이 용어를 설명하는 단어들이 모두 어렵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 어떻게 수익이 나는지 살펴보면 이해하기 쉽다.
시중은행에서 판매하는 ELS는 결국 주가가 만기 날에 일정 범위 안에 들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증권사와 투자자가 내기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 내기를 하는 대상, 즉 ELS의 기초 자산은 통상 홍콩 H지수(홍콩항셍지수·HSCEI), 한국의 코스피200, 미국 S&P500, 유럽의 유로스톡스50, 일본 니케이225 등과 같은 전 세계 유명 주가지수들이다. 홍콩 H지수가 홍콩 증시에 상장된 50개 우량기업을 추려서 산출한 지수인 것처럼 다른 나라 지수들도 비슷한 우량주로 구성돼 있어 기초자산은 리스크가 없지는 않지만 안전하다고 평가되는 글로벌 기업들로 구성돼 있다.
게다가 ELS 운용 구조를 보면 원금 보존을 추구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ELS는 투자 자산을 우량채권에 투자해 원금을 보존하고, 일부를 주가지수 옵션 등 금융파생상품에 투자해 고수익을 노리는 구조다.
증권사는 ELS를 발행하면서 투자금 대부분을 국공채 등 안전자산으로 운용하고, 초과수익을 위해 해외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선물과 옵션을 사고파는 방식으로 위험을 방어(헤지)한다. 기초자산 지수가 오를 때 선물옵션을 매도해 차익을 실현하고, 지수가 떨어지면 채권 일부를 팔아 추가 매수하는 방식이다.
다시 기초지수가 반등하면 선물옵션을 매도해 수익을 내고 채권 이자와 선물옵션 차익으로 발생한 수익의 일부를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쿠폰 수익으로 지급한다.
금융상품 중 분산이나 헤지에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운용 기간은 보통 2~3년이다. 그러나 6개월 단위 조기상환형 ELS는 비교가격 결정일의 종가가 조기상환조건을 달성하는 경우 수익상환이 가능하다.
2000년대 초반 ELS는 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주면서, 주식보다는 덜 위험하다는 인식이 강해지며 이후 ‘중위험 중수익’이라는 타이틀을 받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쟁이나 전염병,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 등만 없으면 꾸준히 은행 이자 3~4배의 수익률을 안겨주기 때문에 은행을 주로 이용하는 투자자들의 기호를 딱 맞추는 금융상품”이라며 “과거 수차례의 위기를 겪으며 기초자산의 편입 비중이나 운용 방식이 진화하면서 여전히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이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반도체 국유화나 자국의 IT 기업들이 미국에 상장하는 시도를 막아서는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장기적으로는 자국 기업들을 키우고 싶어 하나 당장은 중국의 다양한 지리적 정보나 상거래 데이터 등이 미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자 한다.
이 때문에 작년에 알리바바를 제재했고, 올해 들어서는 중국판 ‘우버’로 불리는 디디추싱의 미국 상장을 막아섰다. 투자자들이 가장 꺼려하는 것은 규제 리스크인데 최근 중국이 이를 한꺼번에 보여줬고, 중국이나 홍콩 증시의 급락을 가져온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금융권에선 ‘중국의 IT 기업 규제→중국권 기업 투자 매력 감소→중국·홍콩 H지수 하락→ELS 조기상환 실패’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올해 2월 16일 홍콩 H지수는 1만2271.6을 찍으며 올해 최고치였으나 지난 7월 26일 8721까지 하락했다. 이는 최고점 대비 28.9%나 하락한 수치다.
8월 들어 다소 회복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16일 기준 고점 대비 24%가량 떨어진 상태다.
연초 대비해도 H지수는 10% 이상 하락해 조기상환을 어렵게 한다. 상당수 투자자가 3년 만기보다는 조기상환을 선호하기 때문에 H지수의 하락은 ELS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경기 회복 기대감에 지수들이 대거 올랐을 때 운용되기 시작한 ELS 투자자들은 좌불안석이다.
ELS 투자자들이 반드시 체크해야 할 용어는 ‘녹인(Knock-in)’이다. ELS는 발행일 기준으로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비율 이상 떨어지면 원금 손실이 확정되고 이 구간을 녹인이라고 부르는데, 대부분의 ELS는 50% 하락을 녹인 구간으로 설정한다. 중국권 투자매력 감소로 H지수가 하락했지만 아직 원금 손실까지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돈이 묶인다는 사실이다. ELS는 발행 6개월 이후 시점에 발행일 대비 지수가 80~95% 구간에 있으면 조기상환의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H지수가 두 자릿수 이상 하락하면서 조기상환에 실패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월 ELS 발행 규모는 3조5900억원이었다. 기초자산의 주를 이루는 S&P 500, 유로스톡스50, 코스피200, 니케이225, 홍콩 H지수가 1월 발행 당시 기준가의 95% 수준 위에 있다면 3조5900억원 대부분이 상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조기상환 물량은 1월 발행 금액 대비 8000억원 모자랐다. 유안타증권 보고서와 금융권 분석을 종합하면 조기상환 실패 이유 주범으로 H지수가 지목되고 있다. H지수는 7월 급락으로 인해 1월 말 종가(1만1203.04) 대비 7월 말(9233.22)까지 약 17% 하락했다. 조기상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ELS가 다시 한 번 리스크에 노출된 것은 다른 지수보다 홍콩 H지수 때문”이라며 “올 1월에 발행한 홍콩 H지수 관련 ELS 금액은 약 1조4800억원이었고, 공모 ELS 기준으로 조기상환율이 42%를 기록한 점을 고려하면 ELS 조기 실패는 대부분 H지수 추종 물량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홍콩 H지수는 1월보다 높았다. 당연히 8월부터 돌아오는 H지수 관련 ELS 물량도 조기상환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 중국의 규제 리스크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H지수가 급등할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8월 도래하는 H지수 추종 ELS가 조기상환되려면 이달 19%가량 지수가 올라야 하는데 이렇게 오르는 것보다 더 떨어질까봐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인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지난 1월 20일부터 발행된 ELS의 경우 조기상환율이 4.5%에 그친다”며 “8월 중 홍콩 H지수 관련 ELS는 대부분 조기 상환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당분간 홍콩 H지수 관련 물량은 발행잔고로 잠길 가능성이 높아 시장에 부담이 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예를 들어 H지수 고점인 1만2000을 기준가로 발행된 2년 만기 ELS가 있다고 하자. 이후 6개월마다 조기상환에 성공하려면 그 지수는 첫 6개월 이후 지수가 기준가의 95%인 1만1400이다. 이후 6개월마다 1만800, 1만200, 9600으로 각각 낮아진다. 바꿔 말하면 8월 돌아오는 H지수 관련 ELS는 1만이 넘어야 조기상환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그 가능성은 극도로 낮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만기로 갈수록 상환 가능성은 높아지기 때문에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하다는 것이 은행권의 조언이다.
ELS에서 H지수의 매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그 비중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2015년 홍콩 H지수 사태로 인해 투자자들은 원금 손실의 공포를 겪기도 했다.
당시 중국은 대규모 금융 위기를 걱정해 빚내서 투자하는 것을 금지시킨 가운데 경제 둔화 리스크로 H지수가 9개월 만에 반토막나기도 했다. 조기상환은커녕 ‘원금이 녹아내리는’ 녹인 리스크를 온몸으로 체험한 셈이다. 또 지난해 7월에는 미국의 홍콩 특별지위 박탈로 H지수 변동성 우려가 커지면서 증권사들이 홍콩 H지수가 포함된 ELS 상품 출시를 축소하기도 했다.
2015~2016년 H지수 반토막 사태로 인해 ELS 안정성 이슈가 국내 금융권에 대두되면서 이후 판매사들은 조기상환 가능성이 높은 상품 위주로 공급전략을 강화하고, 손실 발생 가능성을 축소하며 상환 안정성을 강화한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그러나 H지수가 급변동했을 때도 만기일까지 H지수가 회복되면서 원금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극소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H지수가 포함된 ELS의 경우 당장 필요한 돈으로 투자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H지수는 중국 정부의 규제 리스크로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조기상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조기상환 기준이 안 됐더라도 중도 상환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투자자가 자신의 뜻으로 중도상환을 진행하면 판매사(은행이나 증권사)가 책정하는 공정 가치금액에서 5% 내외인 수수료를 빼고 투자금을 돌려주기 때문에 원금보다 적은 돈을 받게 될 수 있다.
금융권에선 향후 H지수 관련 ELS라도 원금은 물론 수익도 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 H지수는 녹인 구간(원금 손실 구간인 지수 대비 50% 이하)까지는 멀었고, 만약 일시적으로 녹인 구간에 진입하더라도 남아있는 기간 동안 조기상환 또는 만기상환 조건을 충족한다면 수익상환이 가능하다”며 “과거에도 만기까지 가져간 사람들 중 ELS 때문에 손실을 본 사람은 극소수였다”고 전했다. ELS에서 H지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도 투자 리스크를 낮추는 요인이다.
한때 ELS 기초자산 중 H지수는 1위였으나 지금은 미국 S&P지수를 추종하는 물량이 가장 많다. 홍콩 H지수는 관련 ELS가 1~7월 중 13조4000억원어치가 발행됐지만 기초자산 중 그 규모는 4번째였다. 금융권 관계자는 “ELS에서 변동성이 큰 H지수 관련 물량을 계속 줄이는 추세이기 때문에 전체 투자자가 느끼는 원금 손실 리스크는 과거보다 확연히 낮아졌다”며 “문의가 오는 투자자들에게 좀 더 기다려보라고 조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자국의 IT 기업이 미국에 상장하려는 시도를 무산시키는 등 각종 규제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멀게만 느껴지는 이같은 중국의 자국 기업 규제가 엉뚱하게도 국내 투자자들의 주가연계증권(ELS)의 투자 손실 우려를 키우는 ‘나비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문일호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2호 (2021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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