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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덕의 탈각의 순간들] 성수동 | ③ 패션 신데렐라 무신사, 성수에 둥지를 틀다
입력 : 2026.02.02 15: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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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말. 성수동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패션계의 신데렐라가 등장한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가 그 주인공.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이라는 의미로 회사명을 정했다. 2002년, 신발 사진 많이 모아놓은 조만호란 나이 스무살이 안 된 청년이 컴퓨터 한 대 놓고 사업을 시작한다.
여름이면 옆방에서 새어 나오는 에어컨 바람으로 더위를 식혀가며 일하던 젊은 창업자. 그는 대한민국 패션을 흔드는 거목으로 성장한다. 그가 성수동에 둥지를 튼 건 창업 후 20년이 지나서였고, 강남구 압구정동에 법인을 설립한 지는 꼭 10년 후였다. 그러나 같은 성수동이라고 해도 아틀리에길이 아닌 지금 가장 핫(hot)한 성수인 연무장길로 온다. 지하철로 치면 뚝섬역에서 성수역 쪽으로 한 클릭 이동.
조만호 의장의 말.
“압구정을 떠나 성수로 온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이 미쳤다고들 했습니다. 패션을 한다면서 어떻게 강남을 버리고 강북으로 가냐고들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성수가 변화하는 모습을 눈여겨보았던 거죠. 수제화, 피혁, 차량 정비소 등이 즐비했던 준공업 지역에서 브랜드, 콘텐츠 등이 어우러져 상권이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패션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다는 확신이 섰습니다.”
조 의장은 “무신사가 성장의 모멘텀을 찾고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게 된 것은 성수동으로의 이전”이라면서 “이는 무신사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확장하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무신사 스토어 성수 대림창고 성수동에 ‘무신사 성수 N1’이란 이름으로 본사를 둔 무신사는 2023년 ‘무신사 스탠다드 성수점’, 2024년 ‘무신사 뷰티 스페이스 1’, ‘무신사 스토어 성수’ 등을 출점했다. 이제 이곳에 4개의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무신사 엠프티 성수, 무신사 성수 S1 오피스, 무신사 뷰티 스페이스1, 무신사 성수 E2 오피스가 그것. 스토어와 팝업 공간은 모두 17개다. 사무실은 올해 초에 오픈하는 것까지 합치면 모두 5개다. 그야말로 성수 일대를 ‘무신사 타운’으로 조성해 왔다. 그게 2022년부터 4년간 무신사의 역사다. 이제는 성수동 입주 기업 대표주자. 85개의 패션 브랜드가 입주한 무신사 스토어의 한달 매출은 30억원 정도다. 오는 4월경 문을 열 무신사 메가스토어에는 400개의 브랜드를 입점시킬 계획이고 숍인숍 형태로 무신사의 자사 상품도 집어넣을 거라고 한다.
지하철 2호선, 뚝섬역과 건대입구역 사이에 있는 성수역에 무신사란 이름이 붙었다. 서울교통공사가 작년 9월 실시한 역명 병기 유상 판매 공개 입찰에서 무신사가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다. 계약 기간은 3년. 1회에 한해 3년 추가 연장이 가능하다. 성수역 내·외부 역명판을 비롯해 대합실 방향 유도 표지판, 승강장 역명판, 안전문 역명판, 지하철 노선도, 안내방송 등에서 성수역 다음에 무신사가 함께 안내된다. 무신사 관계자는 매일경제신문 취재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역명 병기는 성수동이 한국 대표 패션 상권으로 발돋움하는 데 무신사가 기여한 노력을 평가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 3번 출구 표지판에 무신사가 병기되어 있다. 매일경제 기사에 따르면 “무신사가 성수동 일대에 영역을 지속적으로 넓히면서 일본·중국인 젊은 여성들 사이에 무신사 오프라인 매장은 필수 관광 코스가 됐다”며 “현재 ‘무신사 스토어 성수’ 월 매출의 60% 이상이 해외 관광객 등 외국인으로부터 창출되고 있다”라고 한다.
조 의장은 “성수동의 오늘은 지역과 기업이 함께 빚어낸 결과”라면서 구청장이 발간한 <성수동>이라는 책 추천사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무신사가 성수를 새로운 터전으로 선택한 것은 단순한 업무 공간의 이전을 넘어 지역의 고유한 감각과 패션 산업을 융합한 의미 있는 실험이었습니다. (중략) <성수동>이란 이 책은 이러한 변화를 차분하게 기록하며, 도시와 기업이 어떻게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성수동의 이 경험은 앞으로 대한민국 도시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향해 나아가는 데 귀중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무신사가 작년 11월 26일 성동구 상호협력 주민협의체와 맺은 상생협약은 그 대표적 사례다. 이 협약은 서울숲길 일대 상권의 활력 회복과 재도약을 요구하는 지역사회와 주민들의 목소리를 무신사가 적극 수용하면서 맺어졌다. 무신사는 지역공동체 상생발전을 위한 사회공헌 사업을 추진하고, 지역공동체 생태계 보호 활동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주민협의체는 상권 및 지역공동체 보호와 관련한 의견을 수렴하고, 필요시 무신사와 협의하여 개선 방안을 제안하는 역할을 맡는다.
지역 주민과 상권 관계자가 참여하는 이 주민협의체는 성동구의 소위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해 지난 2016년 2월 구성된 것으로 그해 9월 서울숲길을 포함한 성수동 일대를 ‘지속가능발전구역’으로 지정하는 등 지역공동체 보호를 위한 선제적 정책을 이어왔다. 구청장은 이 협약의 의미를 높게 평가하며 “서울숲길 일대가 지역공동체와 조화를 이루며 지속 가능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박장선 센터장이 사례를 하나 든다.
“오늘의 성수동을 만든 건 붉은 벽돌의 아틀리에길이지요. 그런데 투어하면서 봤듯이 이제 그 중심이 연무장 길로 옮겨왔습니다. 유동인구가 비교가 안 됩니다. 이제 아틀리에길에 있는 가게들이 몇몇 문을 닫는 케이스가 나옵니다.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 의장이 제안을 하더라고요. 무신사에 입점한 브랜드들 중 유망한 것을 아틀리에길에 로드숍을 내주면 어떻겠냐고요. 무신사, 아틀리에길 모두 윈윈(WINWIN)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임대료야, 젠트리피케이션을 해결하라구청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한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조연”이라고. “진정한 주연은 성수동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성공의 희망을 안고 성수동으로 들어온 청년들, 미래를 보고 성수동에 터를 잡은 기업들”이라고. 정 구청장은 “제가 이들을 억지로 붙잡고 끌어들인 게 아니라 이들 스스로의 선택으로 성수동을 찾은 것”이라고 강조한다.
물론 성수동이 어찌 보면 지리적으로 입지도 좋은 편이다. 서울 강북 중심부와 강남을 연결하는 한강 축 선상에 위치했고 서울숲이라는 쾌적한 자연환경이 있다. 걷기에 좋은 평지기도 하다. 그러나 본질적인 매력은 청년들을 끌어들이는 성수의 정체성, 창조와 감각이 응축되는 역동적인 분위기일 것이다. 정 구청장은 “새로움을 갈망하는 청년들의 눈빛을 보았다”라고 말한다.
문제는 그들은 어떻게 붙잡아 두느냐다.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임대료. 그는 행정은 자신있었다. 입주하려는 청년 기업가들이 묻는다. “허가는 얼마나 빨리 내줄 수 있는가?”, “계획이 도중에 틀어질 가능성은 없는가?” 정 구청장은 허가와 민원을 전담하는 조직을 만들고 본인의 휴대폰 번호를 공개했다. ‘010-9103-8388’. 누구든 이 번호로 문자를 보내면 답을 해준다. 정 구청장은 “하루에 평균 30~40개 정도 오는 편이며 원칙적으로 48시간 이내 답변”이라고 말한다. 누구든 그런 생각을 한다. “쇼일 것이다. 그건 본인이 하는 게 아니라 비서 조직이 할 것”이라고. 그런데 정 구청장은 진심이다. 어느 하나 본인이 읽지 않는 메일은 없다. 물론 ‘send’ 버튼은 본인이 누르지 않는다. 실수가 있을 수 있어서다. 답장 초안을 직접 쓰거나 구술로 전달하면 그걸 비서팀이 정리하고 본인이 최종 점검한 다음 보낸다.
2018년 성수를 찾아온 첫 금융회사가 있는데 그게 트러스톤 자산운용이다. 대부분 투자금융회사들이 그렇듯이 트러스톤 자산운용도 여의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이 회사 창업자인 황성택 대표는 뭔가 다름을 추구했다. 자산을 운용하는 데 창의성을 높이고 남들 따라가지 않는 자신만의 투자를 해야만 수익률을 높일 수 있겠다는 판단하에 적합한 장소를 물색했는데 그게 바로 성수였다.
문제가 하나 있었다. 건물 앞 도로가 2차선인데 한 개 차선은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이어서 차량 교행이 불가능했다. 사고의 위험성이 커 이대로는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해 정 구청장에게 민원을 제기했다. 정 구청장의 답변이 나온 건 그 다음날. “충분히 이해한다. 살펴보겠다”라는 답. 그리고는 며칠 뒤 추가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거주자 주차 공간은 계약 기간이 있다. 만기가 되면 그 다음엔 연장이나 추가 신청을 받지 않겠다. 그러면 1년 정도 지나면 쌍방향 교행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정 구청장은 약속을 지켰다.
구청장 3연임을 하는 동안 입주 기업 수는 2만여 개에서 3만2381개(2023년 기준)로 늘어났는데 정 구청장의 이런 기업 친화적 행정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식산업센터는 32개로 증가했다. 단순한 양적 증가를 넘어서는 산업 생태계의 질적 변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가 있었으니 그게 임대료였다. 바로 젠트리피케이션. 임대료가 낮은 낙후지역에 청년 사업가들이 들어가 상권을 살려놓으면 임대료가 폭등해 오히려 동네를 살린 주역들이 쫓겨나는 역설적 현상. 강남 압구정이 대표적 사례. 사실 성수로 온 젊은 사업가들 중에는 신촌 등지에서 임대료 문제로 쫓겨난 경우가 많았다. 나중에 발생하면 손을 쓸 수가 없는 게 젠트리피케이션. 정 구청장은 미리 움직였다.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대책을 동시에 추진한 거죠. 성수동으로 유입된 상인, 창업가 등 이른바 뉴커머들이 또다시 둥지 내몰림되는 것을 막고, 성수동을 지속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게 우선이었습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서는 안 된다’고 임대인을 설득했습니다. 건물주는 임대료를 급격하게 올리지 않겠다고 서약하고, 상인들은 열심히 노력해서 상권을 활성화하겠다, 우리 구청은 상권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 조성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자율적인 신사협정이었죠.”
대기업들이나 프랜차이즈들 대신 중소 자영업자들의 독창적 가게가 들어오고 그것이 상권 활성화로 이어진 것도 이런 상생협약 때문이었다. 그러나 핵심은 상가임대차법의 보호 대상을 제한하는 환산보증금 기준을 폐지하는 것이었다. 현행법은 임대료 인상률을 5%로 제한하고 있으나 환산보증금(서울 9억원) 초과 상가는 적용 대상에서 빠진다. 그러면 초고가 임대료가 나오고 주변 상권의 임대료 상승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정 구청장은 “이 기준을 초기에 폐지하지 못한 것이 한계이자 현재의 난관”이라며 “환산보증금 초과 상가가 초기엔 5%였으나 지금은 20.5%까지 비중이 상승했다”라고 걱정하면서 환산보증금 제도 폐지를 위한 상가임대차법 개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공론화 작업을 계속할 것을 약속했다.
“동네가 발전하다 보면 임대료 상승이 불가피하고 그것은 지역 발전의 바로미터 아니냐”는 질문에 정 구청장은 “임대료 상승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시장을 왜곡시키는 과다한 상승이 문제”라면서 “어느 정도 안전망은 확보했다고 보지만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건 사실”이라고 토로한다.
그게 바로 타운매니지먼트. 작년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정 구청장은 민관 협력으로 지속 성장이 가능한 지역을 만들어가기 위해 ‘성동구 타운매니지먼트 위원회’를 구성했다. 전국 최초로 제정된 ‘서울특별시 성동구 지역통합관리(타운매니지먼트) 조례’에 근거한 조치였다. 성수동 공공 팝업 스토어 1호점에서 개최된 행사에서 정 구청장은 무신사, 아이아이컴바인드, 크래프톤, SM엔터테인먼트, SM타운 플래너, 현대글로비스, 삼표, 트러스톤자산운용 등 성수동을 대표하는 주요 기업 및 지역 관계자와 도시계획·문화예술 전문가, 주민대표 등 총 20명을 위원으로 위촉했다.
정 구청장은 “도시는 늘 문제를 안고 살아가며, 도시의 지속 가능성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라며 “성수는 지난 10여 년간 많은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해 왔고, 앞으로 발생하는 도시의 크고 작은 문제들 또한 성수 타운매니지먼트를 통해 함께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다. 도시 문제는 정책으로만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도시는 살아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지역에 사는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참여하고 책임지는 운영체계가 필요한데 그게 타운매니지먼트였다. 개발사업에서 돌봄사업으로의 한 단계 점프다.
(다음 회차에서 이어집니다.)
[손현덕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