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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골짜기에서 시작된 ‘글로컬 K-아트 실험실’ 브레라, 비엔날레, 작가학교 한 손에 쥔 김성수 학장
입력 : 2025.12.17 12: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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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 is
김성수 한국조형예술원 지리산아트팜캠퍼스 학장은 조형예술가이자 지리산국제환경비엔날레 집행위원장으로, 자연과 동시대 예술을 잇는 국내 대표 ‘환경미술’ 기획자다. 파슨스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공공미술·환경설치 분야에서 100여 회 이상의 전시에 참여했다. 지리산아트팜을 거점으로 이탈리아 브레라 국립미술원 예비과정과 비학위 작가학교를 운영하며, 로컬의 원형문화와 글로벌 아트 시스템을 연결하는 ‘글로컬 K-아트’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경남 하동군 적량면, 지리산 자락의 작은 마을 삼화실. 늦가을 안개가 들판을 감싸는 이 골짜기에서 다음 달 또 한 번 국제 규모의 전시가 열린다. ‘2025 지리산국제환경비엔날레’. 주제는 ‘로컬 르네상스: 태초는 자연, 태초는 첨단’. 기후위기와 AI 시대의 한복판에서 자연과 첨단 기술을 함께 묻는 이 비엔날레의 집행위원장이자, 현장에서 직접 땅을 일구고 학교를 세운 사람이 있다. 한국조형예술원(KIAD) 지리산아트팜캠퍼스 김성수 학장이다.
김 학장은 자신을 “조용히 한 길을 파 온 자연주의 예술가”라고 소개한다. 파슨스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뒤 100여 회의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고, 국립수목원과 통영국제음악제 등 수많은 공공 프로젝트를 디렉팅했다. 그가 지난 10여 년간 몰두해 온 프로젝트는 다소 엉뚱해 보인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벗어나, 지리산 골짜기에 예술학교와 미술관, 야외극장과 숲속 미술관, 예술마을을 통째로 짓는 일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데, 하필 제가 걸린 것뿐이죠.”
그는 웃으며 말했지만, 7만2,000㎡ 대지에 흙 한 삽, 벽돌 한 장씩 올려 만든 ‘지리산아트팜’은 이제 한국 자연주의 현대예술의 거점이 됐다. 올해로 10회를 맞는 지리산국제환경비엔날레, 이탈리아 브레라 국립미술원(Accademia di Belle Arti di Brera) 예비과정, 그리고 새로 문을 여는 ‘아트@네이처 작가학교’까지. 지리산아트팜은 로컬과 글로벌을 잇는 K-아트의 실험실로 진화하고 있다.
“유화 그리던 손바닥이 갈라지던 날, 저는 자연으로 돌아갔습니다”
김성수 학장이 자연으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의외로 사소했다. 젊은 시절 그는 유화와 수채화를 즐겨 그렸다. 어느 날부터인가 손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독한 유화 물감과 용제 탓이었다.
“그림의 보존만 생각하고, 사람 몸에는 좋지 않은 재료를 쓰면서 즐거워하던 저 자신에게 배신감을 느꼈어요. 그때부터 재료와 방식을 통째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는 붓을 내려놓고 자연 재료와 오브제로 눈을 돌렸다. 산골 출신인 그에게 자연은 “늘 그 자리에 있던 품”이었다. 지리산의 원시 신앙과 산신제, 꽃상여 같은 원형문화를 현대 조형 언어로 다시 읽어내는 작업을 시작했고, 광릉숲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기념 조형물, 세계유교문화축전 환경설치 프로젝트, 통영국제음악제 환경디자인 프로젝트 등 굵직한 공공미술을 이끌었다.
이 흐름이 결국 지리산아트팜 설립으로 이어졌다. 2010년, 한국조형예술원과 하동군이 함께 지리산 자락의 옛 과수원과 농지를 매입했다. 예술학교, 미술관, 노천극장, 아트스테이, 숲속 미술관, 예술마을을 묶은 ‘자연주의 융복합 예술공동체’를 만들겠다는 발상이었다.
2016년부터는 세계적 대지미술가들을 초청하는 ‘지리산국제환경예술제(JIIAF)’를 열었다. 영국의 크리스 드루리, 프랑스 에릭 사마크, 미국 제임스 설리번, 호주의 케비나조 스미스, 중국 첸웬링 등 자연주의 거장들이 50일간 레지던시에 머물며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들이 지금의 ‘숲속 미술관’을 채우고 있다.
“지금까지 쌓인 작품만으로도 이곳은 현대 자연주의 예술의 성지라 불릴 만큼 축적이 됐어요. 중요한 건, 이 모든 게 지역 주민과 함께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설치를 돕고, 논과 밭이 전시장이 되죠. 예술이 지역 경제의 대체재가 아니라, 삶과 일상에 스며드는 인프라가 되는 겁니다.”
‘브레라 예비과정’이 연 지리산–밀라노 직항로지리산아트팜이 단지 ‘힐링형 예술촌’에서 그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곳은 이탈리아 브레라 국립미술원과 직결된, 말 그대로 글로컬 아트스쿨이다.
1776년 설립된 브레라 국립미술원은 루치오 폰타나, 카를로 카라 등 세계적 작가를 배출한 이탈리아 명문 미술원이다. 밀라노 중심부의 국립미술관과 건물을 함께 쓰며, 유럽 현대미술사의 거대한 축을 이뤄왔다. 김성수 학장이 이 학교와 인연을 맺은 건 약 10여 년 전. 지리산국제환경예술제에 브레라 교수진이 참여하면서다.
“마시모 펠레그리네티, 마리아 만치니 같은 브레라 교수들이 지리산에 와서 전시를 하고 가면서, ‘이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특수학교 캠퍼스’라고 하더군요. 자연과 예술교육, 레지던시가 이렇게 긴밀하게 붙어 있는 곳이 없다는 거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협력이 시작됐습니다.”
그 결실이 2025년 개강한 브레라 국립미술원 예비과정이다. 지리산아트팜캠퍼스에서 4개월간 실시간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론·실기·미술사를 수업하고, 7월부터는 밀라노 본교에서 전공·어학·면접 대비 수업받는 구조다. 첫해 두 명의 석사과정 지원자가 이 과정을 거쳐 모두 브레라 가을학기에 합격했다.
여기에는 중요한 ‘경제적 구조’가 있다. 브레라를 비롯한 이탈리아 국립미술원은 학비가 사실상 무료다. 학생이 부담하는 건 연간 수십만 원 수준의 건강보험료와 소액의 등록세, 그리고 생활비 정도다. 김 학장은 “한국에서 유학 준비에 쓰는 비용의 상당 부분이 입시 학원과 포트폴리오 제작에 들어가는데, 이탈리아 시스템을 잘 활용하면 전체 비용 구조를 완전히 다르게 설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비과정에서 충분히 준비해 놓으면 현지에서는 체재비와 생활자금만 고민하면 됩니다. 한국에서 자취하는 비용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룸메이트를 구하면 더 줄일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 국립미술원 학생 신분이 되면, 현지 예술 관련 파트타임 일자리도 찾을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학자금 빚’ 대신 ‘글로컬 커리어’를 쌓는 투자에 가깝죠.”
“맨해튼도 로컬, 지리산도 로컬입니다”김성수 학장이 자주 쓰는 단어는 ‘글로컬(glocal)’이다. 그는 이렇게 정의한다.
“맨해튼도 로컬이고, 지리산 밑 삼화실 마을도 로컬입니다. 서로 완전히 다른 로컬 둘이 만나면 글로컬이 되는 거죠. 중요한 건 국경이 아니라, 어떤 로컬과 연결되느냐입니다.”
그에게 브레라 예비과정은 단순한 유학 통로가 아니라, ‘로컬 간 직항로’를 여는 프로젝트다. 지리산에서 자란 작가가 밀라노에서 데뷔전을 하고, 다시 지리산 비엔날레에 역수입되는 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 반대로, 노르웨이처럼 북유럽 국가의 청년들이 지리산에서 몇 달간 한국어와 예술을 배우고 한국 예술대학으로 진학하는 역방향 루트를 만들려는 시도도 진행 중이다.
“노르웨이에는 고등학교 졸업 후 1~2년 동안 진로를 탐색하는 독특한 학교 시스템이 있더군요. 그중 몇몇 학교가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그 학생들을 지리산으로 데려와 3~4개월간 예술과 언어를 함께 경험하게 하고, 한국 예술대학 진학을 돕자는 제안을 받고 준비 중입니다. 브레라로 나가는 길만 여는 게 아니라, 북유럽에서 지리산으로 들어오는 길도 같이 여는 셈이죠.”
글로컬 시대, 예술 인력은 더 이상 한 국가의 ‘인재 풀’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에서 과잉 공급된 미술 전공자가 유럽에서 새로운 수요를 만나고, 반대로 북유럽 청년이 한국의 예술교육과 문화산업에 편입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이는 단순한 문화 교류를 넘어 ‘인적 자본의 국제 분산 투자’에 가깝다. 경제 전문지 관점에서 보면, 지리산아트팜은 소규모이지만 꽤 정교한 글로벌 교육·문화 플랫폼인 셈이다.
“입시 미술 대신, ‘너는 누구냐’를 묻는 작가학교”
브레라 예비과정이 ‘진학의 통로’라면, 김 학장이 올가을부터 본격적으로 열려고 준비 중인 ‘아트@네이처 워크샵 스튜디오’는 좀 더 근본적인 실험이다. 그는 이것을 “비학위 작가학교”라고 부른다.
지리산아트팜이 발행한 프로그램 안내서를 보면, 아트@네이처 워크샵 스튜디오는 3학기(1.5년) 과정으로, 자연융합 예술, AI 아트·메타버스, 글로컬 크리에이션을 통합한 글로벌 아티스트 워크숍이다. 수업은 주중 온라인 플랫폼 강의와, 주말 혹은 1박 2일 집중 레지던시 워크숍으로 구성된다. 세계 각국의 초청 작가와 이탈리아 국립미술원 교수, 국내 전·현직 예술대 교수들이 함께 지도한다.
입학 자격은 파격적이다. 전공 제한이 없다. 이미 활동 중인 기성 작가, 스튜디오 창업을 꿈꾸는 예비 창업자, 해외 유학을 고민하는 학생, 심지어 미술을 한 번도 본격적으로 배워본 적 없는 직장인도 지원할 수 있다.
“경험상, 미술 전공자와 완전 비전공자를 섞어 놓으면 처음에는 전공자가 앞서는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갈수록 차이가 줄어듭니다. 비전공자는 선입견이 없거든요. ‘석고 데생’과 입시 구조에 익숙한 친구들보다 오히려 자유로운 상상력을 보여줄 때가 많습니다.”
김 학장이 보기에 한국 예술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암기와 기술 중심’이다. 일본을 거쳐 들어온 ‘미술(美術)’이라는 단어와 석고상 위주의 입시 시스템은 학생들을 “시각적 암기의 달인”으로 만들었지만, 정작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 “너는 누구냐?”에는 답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스킬은 3개월만 집중하면 어느 정도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습니다. AI가 곧 대부분의 묘사력을 대신할 수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예술가로 살아남는 건 결국 ‘너답게 잘하는 것’, 다시 말해 자아와 사유의 깊이입니다. 우리는 시험 점수로 사람을 가르는 데 익숙하다 보니, ‘생각하는 힘’과 ‘자기 서사’를 키우는 교육은 뒷전이었죠.”
아트@네이처 워크샵 스튜디오는 이 대목을 정면으로 치고 들어간다. 3학기 동안 참가자는 자연미학 세미나, 글쓰기와 비평 훈련, AI 아트·메타버스 실습, 스튜디오 창업 세미나를 병행한다. 마지막 학기에는 ‘아티스트 스튜디오’ 단계로, 한국과 이탈리아에서 각각 데뷔전에 해당하는 전시를 여는 것이 필수다. 일종의 ‘이중 졸업전’이다.
“졸업 요건이 아니라, 자기 자존감을 건 데뷔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리산과 밀라노, 두 곳에서 작품을 보여줘야 한다면, 누구라도 작업을 대충 할 수는 없겠죠. 그 목표 지점이 학생들에게 굉장한 동력이 됩니다.”
자연과 AI의 동행
지리산 비엔날레가 던지는 질문김성수 학장의 교육 실험은 비엔날레 현장에서 이미 테스트 되고 있다. 지리산국제환경비엔날레는 첫 회부터 ‘다시 자연으로’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지리산 산신제, 꽃상여, 당산나무 같은 원형문화의 복원과 현대적 재해석이 주요 축이었다.
“산신제 같은 제의 행위는 예술의 태동과 맞닿아 있습니다. 집단적 놀이와 춤, 노래, 설치가 모두 결합한 종합예술이었죠. 새마을운동과 근대화 과정에서 이런 것들이 미신으로 치부되며 싹 지워졌습니다. 기록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지금은 사진 한 장 찾기도 어렵습니다.”
그는 꽃상여를 재현해 현대 설치작업으로 선보였다. 2016년 예술의전당 전시에서는 “장례식장을 왜 미술관에 가져왔느냐”는 항의를 받았지만, 프랑스 전시에서는 “강렬한 한국적 이미지”로 환영받았다. 이 경험은 그에게 분명한 확신을 줬다. “열려야 자기 것을 찾는다”라는 것. 로컬의 원형문화는 폐쇄적 보존이 아니라, 동시대 언어로 재해석될 때 비로소 글로벌 무대에서 가치가 드러난다는 믿음이다.
한편으로 지리산 비엔날레는 AI와 메타버스를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있다. AI가 각색한 ‘수로부인’과 ‘장보고’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든 ‘오마주 AI 영화’ 섹션,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입장할 수 있는 메타버스 미술관 전시 등이 대표적이다.
“AI와 메타버스를 무조건 배척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AI가 예술가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도구로 머물도록 교육해야죠. 우리 프로그램에서는 참가자들이 직접 AI 영화와 메타버스 전시를 만들어 보게 할 겁니다. 실험을 해봐야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도구인지 구별할 수 있으니까요.”
지리산 비엔날레 현장 이러한 시도는 경제적으로도 간단치 않은 실험이다. 지역 소멸 위기를 겪는 농촌에 비엔날레와 국제학교를 유치한다는 건, 교통·숙박·인프라 등 모든 면에서 불리한 조건과 씨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김 학장은 “도시화의 욕망이 만들어낸 문제를 다시 도시에서만 해결하려 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도시는 인간의 욕망이 만든 실험장이지만, 전인교육이라는 측면에서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예술이 정말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으려면, 실험의 무대를 자연 속에 두는 것이 맞는다고 봅니다. 지리산아트팜과 비엔날레는 그 실험의 프로토타입입니다.”
K-아트 ‘문화 강국’에서 답을 찾다인터뷰 내내 김 학장은 한국 예술의 가능성을 ‘저평가된 자산’에 비유했다. 조선왕조 500년의 회화·공예·건축 유산, 지리산과 한라산으로 이어지는 산악신앙, 굿과 탈놀이, 의궤와 민화까지. “기록된 것만 해도 평생 다 들여다보지 못할 만큼 많다”라는 것이다.
“미국의 역사는 200여 년에 불과하고, 유럽의 현대미술도 상당 부분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의 원시예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습니다. 세네갈, 페루, 나이지리아의 작가들을 초청해보면, 서양 작가들이 그들을 모방한 것인지, 그들이 서양을 따라 한 것인지 헷갈릴 정도예요. 알고 보면 서양이 먼저 영향받은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는 한강의 맨부커상, BTS와 백남준, K-팝과 K-드라마의 성공을 예로 든다. 먼저 튀어 오른 건 정치·경제적 힘이 아니라 문화 코드였다는 점에서다. 문화가 국격을 끌어올리고, 그 다음에 외교와 산업이 뒤따랐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정치적 강대국이 곧 문화 강국인 시대가 아니라, 문화 강국이 정치와 산업을 견인하는 시대가 될 겁니다. K-아트가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우리만의 코드와 오리지널리티를 찾는 교육이 선행돼야 합니다. 지리산아트팜에서 하는 실험은 그 작은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이상적인 K-아트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자아 형성기를 한국에서 보냈다면, 그 사람의 정서는 이미 한국인입니다. 이후 어디서 살든, 무엇을 그리든, 그가 치열하게 생각하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해 자기만의 언어로 작품을 만든다면, 그건 이미 K-아트예요. 저는 학생들에게 ‘너답게, 하지만 세계 어디서도 통할 만큼 깊게 생각하라’라고 말합니다. 그게 우리가 말하는 글로컬 작가의 조건입니다.”
“일상이 예술이다” 지리산 골짜기에서 이어지는 실험지리산아트팜 캠퍼스는 겉으로 보면 ‘아름다운 예술촌’에 가깝다. 그러나 안쪽을 들여다보면, 이곳은 상당히 복잡한 구조의 실험 플랫폼이다. 자연주의 현대미술의 현장 레지던시, 브레라 국립미술원 예비과정, 아트@네이처 작가학교, 지리산국제환경비엔날레, 향후 노르웨이 등 북유럽과의 학생 교류까지. 하나하나 따로 떼어 보면 작은 프로젝트지만, 모두 연결하면 ‘글로컬 예술 생태계’라는 더 큰 그림이 드러난다.
김 학장은 “예술은 결국 일상에서 실천될 때 힘을 가진다”고 말한다.
“지리산아트팜에서 하는 교육과 비엔날레는,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자연과 예술을 매개로 삶의 방향을 바꾸고, 누군가는 밀라노에서, 또 누군가는 하동의 작은 마을에서 자신의 작업을 이어가겠죠. 중요한 건 그들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울의 갤러리와 해외 아트페어, NFT 마켓과 미술품 경매시장만 바라보며 “K-아트의 미래”를 논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 미래를 떠받칠 토양은 어쩌면 지리산 아랫마을의 한 예술학교 같은 곳에서 조용히 다져지고 있을지 모른다. 자연과 첨단, 로컬과 글로벌, 전통과 AI를 동시에 붙들고 씨름하는 사람. 김성수 학장은 오늘도 지리산 골짜기에서 그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김성수 학장 인터뷰 Q&AQ. 지리산아트팜 캠퍼스는 어떤 곳인가요?
A. 2010년 KIAD와 하동군이 지리산 자락 적량면에 조성한 7만2000㎡ 규모의 자연주의 융복합 예술공동체다. 예술학교, 미술관, 노천극장, 아트스테이, 숲속 미술관, 예술마을이 한데 모여 교육·창작·발표가 한 공간에서 이뤄진다. 세계적인 대지미술가들이 레지던시에 머물며 남긴 작품들 덕분에 ‘현대 자연주의 예술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Q. 브레라 국립미술원 예비과정은 어떤 프로그램입니까?
A. 지리산아트팜캠퍼스에서 4개월간 실시간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론·실기·미술사를 수업하고, 7월부터 밀라노 브레라 본교에서 전공·어학·면접 대비 수업을 받는 하이브리드 과정이다. 첫해 두 명의 석사 지원자가 모두 합격했다. 이탈리아 국립미술원 특성상 학비는 사실상 무료이고, 학생은 건강보험료와 생활비만 부담하면 된다.
Q. 아트@네이처 워크샵 스튜디오는 기존 미술대학과 무엇이 다릅니까?
A. 학위보다 ‘작가 데뷔’에 초점을 맞춘 3학기(1.5년) 비학위 작가학교다. 자연·인문·예술·AI·메타버스를 융합한 워크숍 중심 수업으로, 온라인 강의와 지리산 레지던시 워크숍을 병행한다. 전공 제한이 없고, 기성 작가·예비 작가·비전공자 모두 지원 가능하다. 마지막 학기에는 한국과 이탈리아에서 데뷔전 성격의 전시를 열어야 수료할 수 있다.
Q. 왜 굳이 지리산 같은 ‘촌구석’에 학교를 지으셨나요?
A. “다시 자연으로”가 김 학장이 생각하는 예술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도시화와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원형문화와 생태를 다시 성찰해야 예술의 역할이 보인다고 믿는다. 지리산은 산신제와 꽃상여, 마을 제의가 남아 있던 마지막 원형문화권이자, 기후위기 시대의 예술 실험하기에 최적의 무대라는 판단이다.
Q. 한국 예술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A. 석고 데생과 입시 위주의 ‘암기형 교육’이다. 잘 그리는 기술은 키워 주지만,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에는 대답을 못 하게 한다. 그는 “스킬은 AI도 할 수 있는 시대”라며, 앞으로의 예술교육은 자아와 사유, 정체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Q. 김 학장이 말하는 ‘글로컬 작가’란 어떤 사람입니까?
A. 자아 형성기를 한국에서 보내 한국적 정서를 가진 사람이, 다양한 문화와 환경을 경험하며 자기만의 언어로 작품을 만드는 것. 맨해튼이든 지리산이든 어느 로컬에 있든, ‘한국적 오리지널리티’와 ‘세계 어디서도 통할 사유의 깊이’를 동시에 가진 작가를 뜻한다.
Q. 지리산국제환경비엔날레의 경제·사회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A.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대지예술과 환경 프로젝트, 국제 레지던시, 교육 프로그램이 결합된 ‘로컬 르네상스’ 모델이다. 농촌 지역이 예술·교육·관광·환경 산업을 한데 엮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드는 실험장이자, K-아트의 글로컬 거점이다.
Q. 앞으로의 목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A. 김 학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지리산에서 시작된 작은 학교가, 세계 곳곳의 로컬들과 연결되는 길을 여는 것. 그 길을 걷는 작가들이 곧 K-아트의 미래라고 믿습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3호 (2025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