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권사 리서치 센터장 5인의 2026년 증시 진단 “코스피 7500 가능성 vs 피크아웃 이미 시작”

    입력 : 2025.12.08 14:54:56

  • 한국거래소 홍보관 한쪽 벽엔 새 정부가 내건 ‘코스피 5000’이란 상징적인 캠페인과 이재명 대통령의 방명록이 나란히 걸려 있다. 코스피가 4000 고지를 돌파한 이후 조정과 재상승을 거듭하며 사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5인이 모여 코스피 5000 시대를 위한 과제를 주제로 의미있는 세미나를 가졌다. 지난 11월 11일 열린 이 세미나에는 2026년 코스피 5000 달성과 2028년 7500 도달 가능성을 제시해 화제가 된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이 기조발언을 맡았고, 유종우(한국투자증권)·윤창용(신한투자증권)·이승우(유진투자증권)·황승택(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이 패널로 나섰다.

    토론의 결론은 단순한 낙관도, 단순한 경계도 아니었다. “5000은 간다”는 자신감과 “그 길은 생각보다 험하다”는 경고가 동시에 쌓였다. 다섯 명의 발언을 투자자 관점에서 다시 엮으면, ‘코스피 5000’은 숫자가 아니라 시장 체질을 바꾸는 로드맵이라는 사실이 더 선명해진다.

    “7500까지 열린 시장 vs 피크아웃 가능성”

    세미나의 가장 강렬한 대비는 김동원 KB증권 본부장의 ‘장기 강세장 확신’과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의 ‘피크아웃 경계’에서 나왔다.

    김 본부장은 한국 증시가 ‘40년 만의 대세 상승장’에 진입했다고 못박았다. 한국 시장의 50년 역사에서 대다수는 박스권이었지만, 평균 3년 이상 지속된 장기 상승장이 세 번 있었고 지금이 ‘세 번째 상승장’이라는 진단이다. 그가 제시한 시나리오는 더 과감하다. 2026년 코스피 5000, 2028년 이후 7500까지도 가능하다는 장기 전망이다. 그 배경은 AI 인프라 투자 확산과 이에 따른 반도체 이익의 장기 사이클이다. PC·모바일 혁명이 10~15년간 시장을 밀어 올렸듯, AI 역시 이제 겨우 3년 차일 뿐 ‘정점론’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이다. AI가 에이전트 단계를 넘어 휴머노이드·자율주행 같은 피지컬 AI로 확장되면, 머리(반도체)·심장(전력)·팔다리(자율주행) 산업이 동반 성장하고 한국 기업이 그 인프라의 핵심 공급자라는 논리까지 곁들였다. 황승택 센터장도 “이익 추정치가 10주 연속 상향되는 현재 흐름은 건강하다”며 내년 시장을 낙관했다. 하지만 그의 낙관은 ‘시간표’가 붙은 낙관이었다.

    황 센터장은 “지금 주가는 반도체 대장주들의 이익증가를 선반영 중”이라며, 반도체 이익이 2027년을 향해 피크에 접근하는 동안 다른 업종의 이익이 뒤따르지 못하면 내년부터 시장이 실망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지금의 속도는 맞지만 ‘반도체만의 엔진’으로는 2~3년 뒤 고원을 넘기 어렵다는 경고였다.

    같은 AI·반도체 강세장을 바라보면서도, 김 본부장은 ‘사이클이 길다 → 지수 레벨이 더 열린다’를, 황 센터장은 “사이클이 길어도 분산이 필요하며 피크아웃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라고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한 셈이다.

    투자자 입장에서 이 대비가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과연 코스피가 5000 달성 이후에도 ‘지속 가능한 이익 구조’를 만들 수 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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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당 25%의 마법?” 정책 변화가 대세 상승 모멘텀

    코스피 5000을 위한 과제 중 두 번째 축은 밸류에이션(리레이팅)이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이 정면으로 꺼낸 화두다.

    유 센터장은 “지수가 오르려면 기업 이익이 늘고, 동시에 밸류에이션이 올라야 한다”며 올해 상승의 상당 부분이 밸류에이션 확장에서 왔다고 진단했다. 리레이팅의 핵심 촉매로 그는 배당소득 분리과세 25%안을 지목했다. 세율이 25%로 정해지면 대주주에게 배당 확대가 ‘합리적 선택’이 되고, 그 결과 소액주주에게도 배당 증가가 돌아가며 시장 전체의 가치평가가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유 센터장의 방점은 ‘제도 설계가 아니라 실제 배당 확대’에 찍혔다. 기대는 이미 가격에 반영됐고, 이제 기업이 응답하지 않으면 리레이팅은 둔화될 수 밖에 없다는 경고다. 황승택 센터장도 같은 방향에서 “정책들이 늦어도 내년 상반기 안에는 속도감 있게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배당·주주환원·투자 결정을 미루지 않도록 정책 타이밍이 이익 사이클과 맞물려야 한다는 뜻이다. 두 전문가 모두 “밸류업은 방향이 아니라 ‘실행 속도’의 싸움”이라 강조한 셈이다. 배당과 주주환원은 ‘권고’가 아니라 기업이 스스로 프리미엄을 얻는 방법이다. 즉, 배당 분리과세가 ‘마중물’이라면, 시장이 진짜 원하는 건 “그 물이 실제 배당과 자사주 소각으로 흘러나오는 장면”이다.

    “공장과 연구소가 해외로 가면 지수도 해외로 간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기업들의 해외설비 투자는 국내증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란 경계의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투자자들이 코스피 5000을 ‘정책 지표’가 아니라 ‘국가 성장 지표’로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유종우·윤창용 센터장의 발언이 교차한다.

    유 센터장은 관세 협상과 미·중 갈등 속에서 국내 기업의 해외 설비투자 가속을 강하게 우려했다. 이미 트럼프 1기부터 해외 직접투자가 급증했는데, 이번 관세 협상이 그 흐름을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생산기지가 해외로 옮겨가면 잠재성장률이 낮아지고, 성장률이 낮아지면 주가와 지수도 구조적으로 눌릴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기업들이 한국에서 돈을 벌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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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창용 센터장은 이를 더 거시적인 프레임으로 정리했다. 지금은 미국·중국·한국 모두 국가가 산업과 금융을 전략적으로 끌고 가는 ‘국가 자본주의’ 시대로, 국가 전략이 시장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중국이 거의 모든 밸류체인에서 한국을 따라잡았다는 현장의 위기감”을 전했고, 반도체조차도 수직계열화·전공정 국내 투자 확대 없이는 우위를 잃을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그는 세제 혜택, 네거티브 규제 도입처럼 빠른 정책 지원을 주문했다. 김동원 본부장의 AI 인프라 낙관론도 이 대목에서 현실성을 얻는다. 글로벌 빅테크가 연간 70조~100조원 규모로 AI 설비투자를 늘리는 장기판에서, 한국이 반도체·전력·AI 밸류체인을 국내에 붙잡아 두지 못하면 그 이익 사이클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세 사람의 결론은 사실 하나다.

    “코스피 5000은 AI 붐의 ‘수혜자’가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AI 시대 생산기지와 핵심 기술이 한국에 남아 있어야 한다.”

    주주와 소통하지 않는 경영진이 신뢰를 흔든다

    이승우 센터장은 코스피 5000의 조건을 ‘좋은 기업을 더 많이 만드는 것’과 ‘그 기업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 두 축으로 요약했다. 투자자 입장에서 가장 체감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실체’를 정면으로 겨눈 대목이다.

    첫째는 R&D 자율성이다. 이 센터장은 “첨단산업의 R&D는 아이디어·속도·인력 경쟁인데, 한국 규제는 혁신을 따라가기보다 혁신을 막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했다.

    미국·중국은 프로젝트 단위 인력 운용, 유연 근로 등으로 R&D의 속도를 살리는데, 한국은 일률적 기준으로 관리하려 해 현장의 불만이 크다는 지적이다.

    윤창용 센터장의 “네거티브 규제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과 정확히 포개지는 지점이다. 혁신 속도를 늦추는 규제는 결국 이익 사이클을 늦추고, 이익이 늦어지면 지수의 미래도 늦어진다.

    둘째는 IR(투자자 소통)이다. 이 센터장은 IR을 “기업 가치의 유통 메커니즘”이라고까지 정의했다.

    “미국 빅테크는 CEO가 직접 나서 장기 비전을 이야기하고 신뢰를 만든다. 한국은 IR이 형식적이고, Q&A가 각본처럼 보이는 순간 시장 신뢰가 무너진다”라는 말은 뼈 아팠다.

    유종우 센터장이 말한 “기업의 자발적 배당 확대가 필요하다”라는 화두도 결국 여기로 돌아온다. 기업이 주주환원을 늘리든 성장 투자를 하든, “왜 그렇게 하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시장이 납득할 만큼 설명하지 못하면 프리미엄은 붙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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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승장 속 숨은 ‘레버리지 덫’ 조정의 기폭제?

    시장이 뜨거울수록 투자자는 위험 신호에 둔감해진다. 세미나에서 그 경고등을 켠 사람은 황승택 센터장이었다. 황 센터장은 신용융자 급증, 레버리지 ETF 확대, 반도체 쏠림을 구체적 수치로 제시하며 “시장 과열이라기 보다 투자자 과열”을 우려했다. 신용과 레버리지 자금이 늘어난 상태에서 조정이 시작되면, 충격의 크기가 예측 불가능해질 수 있다.

    김동원 본부장도 “조정 없는 상승은 없다. 건전한 조정 뒤 추가 상승이 가능하다”라고 말해 속도 조절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유종우 센터장 역시 “밸류에이션 상승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성장이 이어져야 한다”라고 했고, 이는 ‘리레이팅만 믿고 레버리지를 키우는 시장은 오래 못 간다’는 뜻으로 읽힌다. 요지는 명확하다. 코스피 5000의 길은 열려 있지만, 그 길이 ‘직선 고속도로’라는 착각이 가장 위험하다는 것이다.

    다음 돈의 물길 ‘퇴직연금·장기투자 인센티브·모험자본’

    마지막 과제는 시장의 ‘체급’을 키우는 문제다. 황승택 센터장이 가장 구체적인 과제로 제시하며 화두를 열었다. 그는 장기 주식 보유자에 대한 세제 혜택 부재를 지적했다. 부동산엔 장기보유 공제가 있는데 주식엔 사실상 없다는 것. 장기투자가 늘어야 시장이 안정되고 밸류업도 정착되는데, 제도는 오히려 단기 트레이딩 구조를 강화해왔다는 문제의식이다. 또 해외주식 투자에 쏠린 자금이 국내로 돌아오게 하려면, 해외·국내 주식을 함께 오래 보유할 때 세제 인센티브를 주는 식의 설계도 필요하다고 했다.

    여기에 그는 모험자본 생태계의 분산 지원을 덧붙였다. 지금 보험·연기금 자금이 프리IPO에만 몰려 얼리스테이지~그로스 단계가 비어 있는데, 자금이 단계별로 고르게 흘러야 상장할 ‘좋은 기업’이 늘고, 시장 자체의 볼륨도 커진다는 논리다.

    이승우 센터장이 말한 “좋은 상품(기업)을 만들고, 시장에서 신뢰 있게 유통해야 한다”는 구상이 자본시장 차원에서 구체화된 셈이다.

    세미나 내내 다섯 명이 공유한 메시지는 결국 한 줄로 요약된다. 코스피 5000은 지수 목표가 아니라, 한국 경제가 ‘이익-신뢰-성장 인프라’를 같이 세웠다는 증거여야 한다는 것. 김동원 본부장이 열어둔 7500의 상단은 AI·반도체 이익 사이클에 달려 있고, 황승택 센터장이 던진 피크아웃 경고는 그 사이클이 시장 전체로 퍼질 구조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 유종우 센터장이 강조한 배당·밸류업은 그 구조를 만드는 제도적 도구이고, 윤창용·이승우 센터장이 말한 산업경쟁력·규제혁신·IR 신뢰는 그 구조를 움직이는 엔진오일이다. 한쪽만 좋아도 5000은 스쳐 지나간다. 다 같이 좋아져야 5000이 ‘시대’가 된다.

    [박지훈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3호 (2025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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