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세장의 민낯 드러난 ETF 시장…반도체, 레버리지, 그리고 파킹자금까지…

    입력 : 2025.12.08 10: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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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국내 ETF 시장의 위상은 더 이상 주식시장의 ‘옆 자리’가 아니다. 연말로 갈수록 ETF는 주식시장의 또 하나의 중심축으로 커졌고, 시장을 읽는 가장 빠른 언어가 됐다. 순자산총액은 2024년 말 170조원대에서 2025년 들어 가파르게 늘어 9월 말 250조원, 11월 중순엔 279조원 수준까지 확장됐다. 불과 1년 새 거의 100조원이 불어난 셈이다. 종목 수도 7월에 1000개를 넘어섰고 11월에는 1040개대를 기록했다. 숫자만 보면 ‘ETF가 커졌다’라는 말로 끝날 수 있지만, 2025년의 핵심은 ‘성장 속도’보다 ‘역할의 변화’다. ETF 거래대금은 월평균 4조원대 중반까지 치솟아 코스피 거래대금의 약 40%에 육박했고, 지수 방향과 투자심리가 ETF에서 먼저 드러나는 구조가 굳어졌다. 투자자로선 특정 섹터나 전략에 가장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이 ETF가 됐고, 시장 전체로 보면 ETF가 유동성의 흐름을 재편하는 단계로 들어선 것이다.

    “반도체·IT + 레버리지” 올 한해 ETF 주도

    연초 이후 수익률 상위 ETF를 보면 2025년 주식시장의 주도 섹떤 방식으로 ‘수익률 지도’를 만들었지 한눈에 드러난다. 상승률 Top10은 사실상 “반도체·IT + 레버리지”로 요약된다. 1위 TIGER200IT 레버리지는 연초 이후 244% 넘게 올랐고, 2위 KODEX 반도체레버리지와 3위 TIGER 반도체TOP10레버리지도 나란히 238%대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 뒤를 ACE 레버리지, TIGER 레버리지, HANARO·RISE·KIWOOM· TIGER 200선물레버리지 같은 코스피200·선물 레버리지 계열이 200% 안팎으로 채웠다. 즉, 올해 시장에서 가장 ‘확실한 강세’는 AI 반도체와 대형 IT였고, 투자자들은 그 확신을 2배 레버리지로 압축해 수익률 상위권을 만들었다.

    이 흐름은 코스피 자체의 강세와 맞물려 있다. 2025년 코스피는 연초 이후 60%대 후반의 기록적 상승률을 보였고, 상승의 엔진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AI 메모리와 반도체 가치사슬이었다. 지수가 크게 오르는 해에는 레버리지 ETF가 상위를 장악하는 일이 흔하지만, 올해는 특히 ‘반도체 레버리지’가 ‘지수 레버리지’보다 먼저 치고 나왔다는 점이 중요하다. 시장의 주도권이 단순한 지수 전반이 아니라 특정 산업의 구조적 사이클에 있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Top50으로 범위를 넓혀도 반도체·AI 인프라, 원자력·전력설비, 방산, 조선·해운처럼 ‘AI 반도체 → 실물 인프라와 산업재 확산’으로 이어지는 강세의 결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ETF 수익률 상위권이 곧 2025년 한국 주식시장의 섹터 내러티브를 압축한 셈이다.

    국채·인버스 ETF의 부진 : 강세장의 그늘

    반대로 하락률 상위권은 2025년 강세장의 ‘그늘’을 그대로 비춘다. 하락률 Top10은 전부 코스피200 인버스·인버스2X로 채워졌다. PLUS·RISE·TIGER· KODEX·KOSEF 등 운용사를 가리지 않고 200선물인버스2X가 -69%대 손실을 기록했고, 1배 인버스도 -42% 안팎의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올해 같은 불장에서 매도 포지션이 얼마나 빠르게 청산되는지, 인버스 상품이 장기 보유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다.

    인버스 계열을 제외하고 Top50을 다시 보면 올해 약세 테마의 실체가 더 흥미롭게 드러난다. 초장기 국채·30년물 관련 ETF는 금리 변동성 재확대의 직격탄을 맞았다. 상반기 이후 장기금리가 흔들리며 장기채 가격이 눌렸고, 장기채 레버리지·스트립형 상품들은 두 자릿수 하락권에 머물렀다. 커버드콜·배당 인컴형 ETF도 뚜렷하게 부진했다. 옵션 매도로 현금 흐름을 만드는 구조는 횡보장에 강하지만, 시장이 위로 크게 열릴 때는 상방이 막히면서 상승장에서 소외되기 쉽다. 원유선물 ETF의 하락 역시 올해 글로벌 유가가 공급 부담과 수요 둔화 속에 약세였던 흐름을 반영한다. 요컨대 2025년 하락 ETF는 단순히 ‘틀린 베팅’이 아니라 ‘강세장이 선택한 승자 구조 밖에 있던 자산군’의 목록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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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버리지·인버스 ETF에 몰리는 자금 과도기일까?

    올해 ETF 시장의 진짜 얼굴은 거래대금 상위권에서 더 적나라하게 보인다. 연초 이후 거래대금 Top10을 보면 1위 KODEX 레버리지, 2위 KODEX 200, 3위 KODEX 200선물인버스2X가 나란히 상위를 차지했고, KODEX 코스닥150레버리지, KODEX 인버스도 상단에 자리했다. 여기에 TIGER 200, KODEX·TIGER 미국 S&P500 같은 대표지수 ETF가 함께 올라 있다. 이 조합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국내 ETF 시장은 ‘자산 배분의 플랫폼’인 동시에 ‘단기 방향성 트레이딩의 전장’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거래대금 상위 10개 중 레버리지·인버스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파생형 ETF의 순자산비중은 크지 않지만, 회전율은 압도적이다. 시장이 오르는 날엔 레버리지로, 흔들리는 날엔 인버스로 몰리면서 ETF 거래가 곧 바로 시장의 감정 곡선을 만든다. 올해는 여기에 또 하나의 축이 더해졌다. 거래대금 4위에 오른 CD금리 액티브 같은 단기자금형 ETF다. 공격적으로 레버리지·인버스를 돌리는 자금이 시장의 ‘앞선 체온’을 만들었다면, 금리형 ETF로 파킹되는 자금은 시장의 ‘뒤쪽 체력’을 키웠다. 위험자산에 집중하는 돈과 현금성 자산에 대기하는 돈이 동시에 커지는 이중 구조가 2025년 ETF 시장의 특징이다. 결국 2025년 ETF 시장은 ‘크기’ 보다 ‘기능’이 달라진 해였다. ETF는 이제 지수 추종의 도구를 넘어, 특정 섹터의 사이클에 즉시 올라타는 레버리지 금리와 변동성에 대응하는 현금 관리, 해외자산을 기본 포트폴리오로 끌어오는 통로 역할을 한꺼번에 수행한다. 주식시장을 이해하려면 먼저 ETF를 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3호 (2025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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