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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판매량 TOP3 현대차그룹 회장 취임 5주년, 정의선 매직에 위상 우뚝
입력 : 2025.11.17 10: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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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정의선 회장이 현대차그룹의 회장에 취임했을 때 단순히 세계적인 자동차기업의 최고 경영자에 오른 것이 아니라 정주영 창업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이 수십 년에 걸쳐 일궈온 원대한 비전, 불굴의 의지, 끊임없는 혁신의 유산을 이어받았다 … 정의선 회장은 과거 ‘패스트 팔로어’에서 이젠 디자인, 품질, 기술 측면의 진정한 리더로 변모시키는 등 현대차그룹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이제는 아무도 현대차를 평범하다고 하지 않는다. 기아는 현대적이고 개성 넘치는 브랜드가 되었고, 제네시스는 G90, GV70 같은 세련된 모델로 품격과 완성도를 인정받으며 판매를 증대시키고 있다.”
미국의 자동차 전문 매체 ‘오토모티브 뉴스’가 창간 100주년을 맞아 조명한 현대차그룹 관련 기사(8월 18일자) 중 한 대목이다.
해외서 먼저 주목한 5년, 파격적인 인재 수혈지난 10월 14일 취임 5주년을 맞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리더십은 해외에서 먼저 주목했다. 정 회장은 취임 이듬해인 2021년 부터 매년 ‘뉴스위크’ ‘오토카’ ‘모터트렌드’ ‘오토모티브 뉴스’ 등 글로벌 매체로부터 연이어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 2020년 10월, 팬데믹 시기에 그룹 회장에 취임한 정 회장은 우선 그룹의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 주목했다. 내부 변화와 외적 성장의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는 그의 판단은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조직문화와 집요하게 도전하는 일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양복정장의 직원들 복장은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달라졌고 핵심 기술 내재화, 경쟁사와의 전략적 협업, 글로벌 인재 영입 등 내외부 역량의 조화를 통해 역동적인 조직으로 변모해 갔다. 특히 정의선 회장 체제에서 현대차그룹은 파격적인 인재 수혈로 기술 경영에 나선다. 이른바 ‘순혈주의’가 강했던 그룹의 토양을 완전히 바꿨다는 평가다. 정 회장은 수석부회장이던 2019년부터 현대차·기아 대졸 신입 공개 채용 폐지를 결정했다. 자율주행차기술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네이버, KT 등 외부 전문가들을 공격적으로 영입했고, 회장 취임 이후엔 첨단 기술과 성과주의를 인재 경영의 양대 축으로 내걸었다. 실제로 2021년 항공우주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벤 다이어천을 그룹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앉히며 도심항공교통 기술 확장에 나선 게 첨단 기술 인사의 시발점이다. 다이어천에 이어 2023년까지 현대차 CTO를 지낸 김용화 고문도 2015년 미국 포드에서 영입한 인재다. 송창현 현대차·기아 첨단차플랫폼(AVP) 본부장(사장)은 네이버 출신 소프트웨어 전문가다. 네이버랩스 CEO, 네이버 CTO를 거쳐 2019년 모빌리티 소프트웨어 업체 포티투닷을 설립했다. 송 사장은 현대차그룹이 2022년 포티투닷을 통째로 인수한 후 현재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기술 전략을 이끌고 있다. 2021년부터 최근까지 첨단항공모빌리티 본부장(사장)으로 일한 신재원 고문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30년간 근무한 우주항공 전문가다. 실적을 내면 출신을 가리지 않는 성과주의 인사는 일본 닛산 출신으로 2019년 합류한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현대차 글로벌최고운영책임자(COO)를 지내다 지난해 대표로 발탁돼 그룹 내 첫 외국인 CEO로 이름을 올렸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지낸 성 김 전 주한미국대사도 지난해 현대차 전략기획 담당 사장으로 발탁됐다. 정 회장은 당시 “국적, 성별, 학력, 연차와 관계없이 오로지 실력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일하는 사람이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2022년부터 매년 최대 매출 영업이익 경신이러한 기술경영을 바탕으로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빅3로 도약했다. 2019년 163조 8924억원에 그쳤던 현대차·기아 합산 매출액은 지난해 282조 6800억원으로 72.5%나 껑충 뛰었고 영업이익은 5조 6152억원에서 26조 9067억원으로 무려 5배나 늘었다. 이 기간 글로벌 판매 순위는 글로벌 5위에서 지난해 토요타, 폭스바겐에 이어 3위로 발돋움했다. 업계선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을 하이브리드로 승부했고, 여기에 비교적 가격대가 높은 SUV와 제네시스의 판매 비중을 60% 이상 끌어올려 성장을 이끌었다”고 평가한다. 미국의 관세 부과 등 경영 환경이 불확실했던 올 상반기엔 13조 86억원의 합산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폭스바겐마저 제쳤다. 반기 기준 사상 처음으로 글로벌 완성차 2위가 됐고, 영업이익률은 8.7%로 폭스바겐(4.2%)을 비롯한 경쟁 업체들보다 2배 이상 높아졌다. 글로벌 판매량 증가의 원동력은 품질 경쟁력에서 비롯됐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미국 시장조사업체 JD파워 신차품질조사에서 2년 연속 자동차그룹 1위를 차지했다. 올 상반기 글로벌 누적 판매 200만 대를 돌파한 전기차와 반기 기준 처음으로 60만 대를 넘어선 하이브리드차량(PHEV 포함)은 이미 글로벌 친환경차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가 됐다. 정의선 회장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고객 우선주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친환경차 중심으로 완성차 사업 재편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올 상반기 글로벌 전기차(PHEV 포함) 인도량 순위에서 7위를 차지했다. 자국 브랜드 판매 비중이 높은 중국 시장을 제외하면 폭스바겐, 테슬라에 이어 3위에 해당한다. 같은 기간 글로벌 수소전기차 판매량은 1300여 대로 1위에 오르며 2위 토요타의 판매량(700여 대)을 약 2배나 앞질렀다.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수소전기차, 하이브리드차 등 파워트레인별 친환경차 판매량이 일제히 상위권에 오른 완성차기업으로는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
*친환경차 전기차(BEV), 하이브리드차(HEV), 플러그드인 하이브리드차(PHEV), 수소전기차(FCEV) 서울 기준, 중대형 상용 및 현지 전략 모델 제외 2019년 현대차그룹의 친환경차 판매량은 37만여 대에 그쳤지만 지난해에는 약 4배나 오른 141만여 대로 집계 됐다. 2022년 이후 연간 100만 대 이상 판매가 이어지면서 2019년 138만여 대에 머물렀던 친환경차 누적 판매 대수는 올 상반기 700만 대를 돌파했다. 전체 판매량에서 친환경차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19년 5.1%에서 지난해 19.4%로 급등했다. 글로벌시장에서 판매된 현대차그룹 차량 10대 중 2대는 친환경차였던 셈이다. 현재 운용 중인 친환경차 모델은 총 45종. 현대차그룹은 향후 글로벌 친환경차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해 ‘2030년 친환경차 563.3만 대 판매’ ‘2030년 하이브리드 모델 28종 확대’ ‘2027년 EREV(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 출시’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 도입’ ‘아이오닉 3 등 현지 전략형 전기차 출시 지속’ 등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로보틱스, 수소, PBV, SDV, AAM…현대차그룹은 현재 자동차를 넘어 로보틱스, SDV, 자율주행, AAM(미래항공모빌리티) 등 미래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영토를 넓히고 있다. 특히 로보틱스 분야가 주목받고 있다. 정 회장은 “로봇을 현실 속 동반자로 구현하고 모빌리티의 경계를 확장해 궁극적으로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지난 2018년 로보틱스랩을 신설한 현대차그룹은 2021년 세계적인 로봇 전문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다. 이를 통해 자동차 생산공정에만 머물지 않고, 휴머노이드 로봇을 비롯해 물류 로봇, 서비스로봇, 웨어러블로봇 등 다양한 제품 라인업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에 3만 대 규모의 로봇 공장도 신설할 예정이다. 로보틱스랩은 근골격계 부담이 큰 공장 근로자와 농민의 안전과 작업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착용 로봇 ‘엑스블 숄더(X-ble Shoulder)’ 상용화에 성공했다. 올 연말에는 소형 모빌리티 로봇 플랫폼 ‘모베드(MobED)’의 양산형 모델을 공개하고, 딜리버리 로봇과 전기차 충전 로봇 등 상용화 제품군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그런가 하면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스마트 제조 환경 구현도 선도하고 있다. 첨단 제조시설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혁신센터(HMGICS)를 테스트베드로 활용해 미국 조지아주의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와 현대차 울산 EV 전용공장, 기아 화성 EVO Plant 등 주요 생산 거점에 로보틱스와 인공지능(AI) 기술을 융합, 근로자와 로봇이 협업하는 근무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미국 관세 등 과제도…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당장 눈앞의 장벽은 25%에 달하는 고율의 미국 관세 부과 조치다.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일본과 유럽의 완성차 관세가 15%인 데 비춰보면 가격 경쟁력에서 크게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현대차·기아는 올 3분기에 미국에서 48만 175대를 판매하며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경신했지만 업계에선 올 3분기에 부담한 관세 비용만 2조 48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대로라면 관세로 인한 손실액만 연간 7조원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대차는 최근 기업설명회(IR)에서 전년 대비 연결 매출액 성장률 목표를 올 초 제시했던 3~4%에서 5~6%로 높였다. 반면 영업이익률 목표는 관세 영향을 반영해 기존 7~8%에서 6~7%로 낮췄다. 업계에선 “당장 이익은 줄더라도 고객 저변을 넓히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고 평가한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가격을 낮춰 판매량을 늘리면서 버티다 조지아주의 HMGMA 공장을 통해 현지 생산량을 늘리면 손실분을 채울 수 있다”고 전했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2호 (2025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