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 | Fiscal Policy] 확장재정 시대 본격화 증세, 정말 불가피하나

    입력 : 2025.10.20 16:45:55

  • 9월 22일부터 전 국민의 90%에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1인당 10만원씩 지급 된다. <사진 연합뉴스>
    9월 22일부터 전 국민의 90%에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1인당 10만원씩 지급 된다. <사진 연합뉴스>

    이재명정부가 출범하며 던진 화두는 ‘성장’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선서에서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밝혔다. 재정을 풀어 경기를 살리는,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펼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공언대로 현 정부는 숨가쁘게 ‘확장 재정’ 정책을 펼쳐왔다.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내년도 예산도 대폭 늘렸다. 최근 2년간 2%대에 그쳤던 총 지출 증가율을 8.1%로 단숨에 끌어올려 재정정책 방향을 ‘긴축’에서 ‘확장’으로 튼 것이다.

    ‘확장 재정’이 적절하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정부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나라 곳간을 풀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낸다. 반면 돈 들어올 곳은 없는데 ‘슈퍼 예산’을 앞세우면 그 짐이 미래세대로 넘어간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여당은 확장 재정을 ‘회복의 불씨를 지펴낼 마중물’(구윤철 경제부 총리)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반면 야당과 학계 일부에선 상반된 시각으로 맞서고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를 ‘미래세대를 갉아먹는 재정 패륜’으로 규정하며, 내일을 짊어진 세대에게 빚의 굴레를 씌우는 길이라고 경고한다.

    돈 풀어 경제에 활기

    적극적인 재정정책은 현 상황에서 수긍가는 측면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 전쟁은 수출 의존 국가인 한국에 큰 위협이다. 게다가 한국이 주도했던 반도체, 자동차, 가전, 조선 등에서 중국 추격이 만만치 않다. 내수경제는 더 이상 나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크게 위축됐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풀어 경제에 활기를 넣겠다는 정부 방침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만한 근거는 적지 않다.

    정부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이 0%대에 그치고 여러 기관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한국은행 추정 잠재성장률(1.8%)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확장 재정은 당연한 수순이다. 다행히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도 2% 수준에서 안정되며 재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토대도 마련됐다. 경기침체에도 인플레이션 우려로 긴축이 불가피했던 지난 3년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재정확장을 통해 내수진작으로 금융 부실 확산을 막을 수 있다. 확장 재정은 내수를 회복시켜 서민들과 중소상공인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으며 금융 부실의 확산도 막을 수 있다. 미국 관세 충격을 완화할 수도 있다. 확장 재정정책은 내수를 진작시켜 수출감소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금리정책 사용이 어렵다는 점도 확장 재정의 필요성을 높인다. 신산업 육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디지털화와 신산업의 등장으로 산업구조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 성장률과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신산업 육성이 필요하며 전문인력 양성과 신기술개발에 있어 정부 재정지원 확대가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재정 건전성 지표가 아직은 크게 위험하지 않다는 것도 배경이다. 현재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대로 기준치인 3%를 넘어서지만 선진국과 비교할 때 위험한 수준은 아니다. 국가부채 역시 50%대로 국제기준인 60%에 미달한다. 국채이자 지급 30조원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대로 기준치인 3%보다 낮으며 국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대로 선진국보다 낮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올해보다 8.1% 늘어난 확장 재정으로 편성했다. 저성장으로 세수가 늘지 않아 확장 재정이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증가시켜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확장 재정의 긍정적 효과 또한 고려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사진설명

    미래세대 부담증가 우려

    반면 확장재정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 4월 국제통화기금(IMF)의 재정점검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부채비율(54.5%)은 선진국이며 비기축통화국인 11개 나라 평균(54.3%)을 처음 넘어섰다. IMF 등 국제기관들이 국제 비교에 사용하는 국가채무비율(D2)은 비영리 공공기관의 부채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국내에서 사용하는 부채비율(D1)보다 2~4%포인트 높게 나타난다.

    속도도 문제다. 우리나라 국가채무비율이 20%에서 40%에 도달하기까지 18년이 걸렸다. 불과 10년 만에 채무비율이 40%에서 60%에 도달하는 현재 속도라면 일본이 먼 얘기가 아닐 수 있다. 1980년 일본 국가부채비율은 51%였다. 거품 경제가 극에 달한 1988년에도 116%로 지금 처럼 심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무리한 확장 재정 정책을 거듭하며 2020년 부채비율은 258%까지 치솟았다.

    사진설명

    통상 재정 준칙(재정 운용 목표 등) 논의에서 비기축통화국은 정부부채비율을 60% 이하로 관리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60%’ 자체는 경제학적 근거는 아니지만, 국제 사회에서 비기축통화국 건전재정 벤치마크로 인용된다. 60%는 경험적으로 국채 금리 급등·외환위기 위험이 자주 발생한 임계치로 관찰됐다는 게 학계 진단이다.

    추세는 정반대다. IMF에 따르면, GDP 대비 한국 국가부채비율은 2018년 말 37.9%에서 2019년 말 39.7%로 40%에 근접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말에는 45.9%까지 올랐다. 2020년 말 기준으로는 비기축통화 선진국 11개국 가운데 7위 수준이었다. 자영업자 손실보상 등 지출 확대 여파로 2021년 말 5위로 올라섰고 2022년 말부터 4위를 유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한국의 의무지출은 본예산 기준 올해 365조원에서 2029년 465조 7000억원으로 연평균 6.3%씩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저출생·고령화로 각종 연금 등 복지 지출이 증가하고 덩달아 국채 이자 부담도 커지는 영향이다. 내년에만 국채 이자로 36조원을 내야 한다. 의무지출은 한번 늘리면 줄이기 어려워 장기적으로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확장 재정 기조인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고 민생회복 소비쿠폰, 아동·농어촌 수당 등 각종 현금성 정책이 쏟아지면서 국채 발행 규모가 더 커졌다. ‘숨은 나랏빚’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5∼2029년 국가보증채무관리계획’에 따르면, 정부보증채무는 올해 16조 7000억원에서 2029년 80조 5000억원으로 4년 만에 약 63조 8000억원 증가할 전망이다. 국가보증채무는 정부가 직접 지출하는 ‘국가채무’는 아니지만, 차후 상환 실패 시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해 ‘잠재적 재정 부담’으로 분류된다. 정부는 중기 계획인 국가재정 운용계획(2025~2029년)이 끝나는 2029년 국가채무비율을 50% 후반 수준(58%)으로 관리하겠다는 얘기에도 의문부호가 붙는다.

    ‘2025~2065년 장기재정전망’에서 정부는 GDP 대비 총 수입이 2025년 24.2%에서 2065년 24.1%로 제자리걸음할 것으로 봤다. 반면, 같은 기간 GDP 대비 총지출 비중은 26.5%에서 34.7%로 오른다. 이에 따라, 2025년 2.3%포인트인 총지출과 총 수입 차이가 2065년 10.6%포인트까지 벌어진다. 이마저도 2065년 합계출산율이 1.08명까지 회복돼 생산연령인구가 1864만명을 유지하고 2025~2065년 연평균 실질 경제성장률이 0.3%를 이어갈 것이란 가정이 깔려 있다. 지난해 출산율이 0.68명이고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40년대 잠재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할 것으로 봤다.

    ‘퍼주기식’ 포퓰리즘 정책이 취임 때 내세운 성장과 무관하게 흘러간다는 비판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돈을 풀어 적자가 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복지성 현금 살포 등으로 민주당 집권기 확장재정 기조가 나랏빚을 악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기 국채 금리가 수십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며, 주요 선진국도 부채 위기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 역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프랑스 사태는 국가채무와 더불어 정치적 불안전성이 굉장히 컸기 때문에 이번 신용등급 평가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며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고령화로 의무지출이 늘어나는 속도가 특히 빠른 만큼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랏빚’ 증가가 미래세대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달리 말해, ‘우리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안일한 대응으로 다음 세대에 자칫 ‘재정 폭탄’이 되물림될 수 있단 지적이다.

    결국 예산의 효율적 사용을 위한 성과평가 체계가 필수적이다. 확장 재정이 경제 성장의 마중물이 되려면 ‘얼마나’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유혜미 한양대 교수는 “급격한 고령화 진전과 경제활동인구 감소로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 필요 최소한의 확장 재정으로 최대 효율을 내는 예산 배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특히 잠재성장률이 계속 하락하고 있어 단기적 경기 회복뿐만 아니라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예산 배분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1호 (2025년 10월) 기사입니다]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