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틀그라운드’ 이을 대작 찾는다, 크래프톤의 광폭 M&A 행보, 전망은

    입력 : 2025.09.15 18:01:23

  • 게임 ‘PUBG 배틀그라운드(이하 배틀그라운드)’
    게임 ‘PUBG 배틀그라운드(이하 배틀그라운드)’

    게임 ‘PUBG: 배틀그라운드(이하 배틀그라운드)’로 전세계에 이름을 알린 크래프톤이 배틀그라운드를 이을 다음 먹거리 확보를 위해 외부 투자에 사활을 걸었다.

    국경을 가리지 않는 크래프톤의 투자는 게임사부터 콘텐츠 기업까지 그 범위와 투자 규모도 공격적이다. 올 한해 크래프톤이 외부 투자나 기업 인수에 쓴 금액만 해도 1조원을 넘는다.

    지난 6월에는 크래프톤의 역대 인수합병(M&A) 중 최대

    규모인 7103억원을 들여 일본의 3대 종합광고기업으로 불리는 ADK의 모회사를 사들였고, 7월에는 미국의 게임사인 일레븐스 아워 게임즈에 1000억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했다.

    크래프톤의 외부 투자 방향성은 게임사의 코어를 담당하는 게임 IP(지식재산권) 확보를 중심으로 하되, 외연을 확장하고 매출 활로를 다변화할 수 있는 비게임 분야 투자다.

    장기간 흥행할 IP 확보 목표

    크래프톤의 이러한 행보에는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 크래프톤을 이끌고 있는 장병규 의장의 적극적인 의지가 있다. 장 의장은 올해 초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강연에 연사로 나와 “2023년부터 사업 다각화를 위한 M&A에 집중하고 있다”라면서 “조 단위 규모의 M&A 건까지 검토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2007년 블루홀 스튜디오로 출발했던 크래프톤은 2017년 출시한 ‘PUBG: 배틀그라운드’가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며 단숨에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사로 올라선 기업이다. 배틀그라운드의 인기가 출시 5년이 훌쩍 넘은 현재까지도 꾸준히 이어지면서, 지난해 연간 매출 2조 7098억원, 영업이익 1조 1825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매출 규모로 보면 지난해 4조원 매출을 돌파한 넥슨에 이어 국내 게임사 중 2위다.

    외형적인 성장을 이어가는 크래프톤이지만, 오랫동안 이어져 온 고민거리가 있다. 아직 ‘배틀그라운드’의 뒤를 잇는 히트작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20년 야심차게 선보였던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대작인 ‘엘리온’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2023년에 서비스를 종료했고, 크래프톤이 인수했던 북미 개발 스튜디오가 제작한 ‘칼리스토 프로토콜’도 2022년 등장했으나 혹평을 받으며 이용자의 선택을 받는 데 실패했다. ‘NK’로 불리며 함께 국내 게임사 선두권으로 꼽히는 넥슨이 ‘던전앤파이터’ ‘메이플스토리’ ‘FC’ ‘마비노기 등 다양한 장수 프랜차이즈 IP를 갖고 있는 것에 비하면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에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다.

    사진설명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인도 최대 e스포츠 대회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인도 시리즈’ 현장에서 인도 프로게이머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게임 경기를 하고 있다.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인도 최대 e스포츠 대회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인도 시리즈’ 현장에서 인도 프로게이머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게임 경기를 하고 있다.

    7월 진행된 크래프톤의 2025년 2분기 실적발표에서 오진호 크래프톤 최고글로벌 퍼블리싱책임자(CGPO)는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 이후 다음 대표 IP는 무엇이 될지 지속해서 고민했다”라며 “좋은 게임을 만드는 것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자리잡고 꾸준히 사랑받는 것이 중요한 역량이 되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크래프톤이 프랜차이즈 IP를 확보하기 위해 주요 글로벌 게임사들 인수에 거액을 투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2021년에는 미국의 게임 제작사 언노운 월즈의 지분 100%를 5억달러(약 5800억원)에 인수하는 빅딜을 진행했다.

    지난해 8월에는 일본의 제작사 탱고 게임웍스를 인수했으며 이어 올해 6월에는 국내 인디 게임사 조프소프트를 인수, 바로 다음 달인 7월에는 미국의 일레븐스 아워 게임즈를 약 9597만달러(약 1324억원)에 달하는 금액에 사들였다.

    크래프톤 산하의 스튜디오가 된 이 게임사들은 대부분 글로벌에서 흥행 가능성을 증명했던 인기 게임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5000억원이 넘는 거액을 투자한 언노운월즈의 경우 지난 2014년 첫선을 보인 이래 꾸준히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대표작 ‘서브노티카’ 게임 IP를 보유하고 있다. 시리즈의 전 세계 누적 판매량만 1800만 장에 달한다. 크래프톤 인수 후 차기작인 ‘서브노티카2’ 출시를 준비하는 단계다. 기존 경영진과의 마찰, 개발 지연 등의 이슈에 발목이 잡히기도 했지만 크래프톤이 최근 컨퍼런스콜에서 내년 기대작으로 ‘서브노티카2’를 꼽는 등 기대감이 큰 기업이다.

    일본에서 인수한 탱고 게임웍스의 경우 지난 2021년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인수됐던 기업으로, 지난해 5월 폐업하며 사라질 뻔했으나 크래프톤이 탱고 게임웍스의 인기 게임이었던 ‘하이파이 러시’ IP 확보 차원에서 해당 IP와 함께 잔여 개발 인력을 모두 흡수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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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지분 100%를 인수한 북미 개발사 ‘일레븐스 아워 게임즈’의 경우 2018년 설립된 스튜디오로, 액션 역할수행게임(RPG) ‘라스트 에포크’를 지난해 정식 출시해 누적 300만 장 이상을 판매한 기업이다.

    크래프톤에 없던 장르의 작품을 확보해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프랜차이즈 IP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에 대한 투자로 풀이된다.

    크래프톤은 기업을 통째로 인수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게임사들에 투자하면서 퍼블리싱 계약을 맺고 각 게임사와 제작하고 있는 게임의 판권을 확보하고 있다. 퍼블리싱은 외부 개발사의 작품 출시 등 유통 전반을 담당하는 것을 말한다. 자체 제작은 아니지만 외부 작품까지 자사 게임 라인업으로 품으면서 단일 작품 의존도를 낮추고, 게임 성공 확률을 높이며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지난 2023년 423억원을 투자해 크래프톤이 지분 10%를 인수한 폴란드 게임사 피플캔플라이가 대표적이다. 투자를 통해 크래프톤은 피플캔플라이가 제작하고 있는 신작의 퍼블리싱 권한을 확보했다. ‘배틀그라운드’ 외에도 롱런할 수 있는 글로벌 게임들로 IP 파이프라인을 강화함으로써 ‘게임 명가’로서의 크래프톤을 완성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게임사의 핵심은 게임 IP인 만큼 코어를 더 단단하게 다지고 규모 확장과 안정성을 동시에 가져가는 것이 크래프톤의 방향성이다.

    숏폼, 애니메이션 등 비게임 투자도 활발

    크래프톤의 M&A 흐름에서 눈에 띄는 것은 수많은 게임사뿐만 아니라 비게임 분야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9월 크래프톤은 오디오 플랫폼 ‘스푼’과 숏폼 드라마 플랫폼 ‘비글루’를 운영하는 스푼랩스에 120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전 세계적으로 숏폼이 차세대 콘텐츠로 각광받는 가운데 스푼랩스가 지난해 7월 출시한 숏폼 플랫폼 ‘비글루’에서 잠재력을 본 것이다.

    이용자들이 유튜브, 틱톡에서 접하는 숏폼 콘텐츠와 다르게 비글루는 퀄리티 있는 숏폼 드라마로 특화해 유료구매 모델로 승부를 보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장병규 의장은 스푼랩스 투자에 대해 “숏폼의 경우 지금은 무료로 많이 제공되면서 콘텐츠 관리가 덜 되고 있는데, 양질의 콘텐츠가 제공되기 시작하면 다른 시장이 열릴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라며 스푼랩스 투자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숏폼 드라마가 차츰 대중화되면서 인기 IP가 탄생할 경우 이를 게임으로 제작하는 방식의 장기 시너지도 기대해볼 수 있다.

    올해 6월에 크래프톤이 750억엔(7103억원)을 투자해 인수한 일본 ADK그룹의 모회사 BCJ-31는 콘텐츠 제작 역량을 갖춘 일본의 3대 종합광고기업 중 한 곳이다. 해당 인수는 크래프톤의 역대 M&A 중 최대 규모이기도 하다.

    ADK그룹의 특징은 광고와 마케팅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제작까지 다양한 사업 영역을 영위하고 있다는 점이다. ADK는 300편 이상의 애니메이션 제작위원회 참여 경험을 포함해 콘텐츠 기획과 제작 역량을 갖추고 있다. ADK그룹이 제작에 참여한 애니메이션 중에는 ‘짱구는 못말려’ ‘도라에몽’ ‘유희왕’처럼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랑을 받은 IP도 다수다.

    크래프톤이 ADK그룹을 품은 것 또한 애니메이션과 게임의 접점을 찾으며 일본 내의 콘텐츠 사업으로도 확장하기 위함이다. ‘배틀그라운드’라는 인기 IP를 중심으로 크래프톤은 자사 IP와 애니메이션 간 협업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외에도 크래프톤은 올해 5월 카카오게임즈로 부터 게임사 넵튠의 지분 42.53%를 1649억원에 확보하며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넵튠은 게임 개발과 퍼블리싱을 진행하는 게임사이기도 하지만 애드테크 플랫폼을 통한 광고와 마케팅 역량을 갖춘 기업이다.

    인도 현지 IT 생태계에 적극 투자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매출의 90% 가까이를 해외에서 거두고 있는 크래프톤이 특별히 집중하고 있는 국가인 인도도 빼놓을 수 없다. 크래프톤은 2021년 인도 시장에 게임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인디아(BGMI)’를 출시한 이후, BGMI를 현지 이용자 2억 명 이상이 즐기는 인도 국민 게임으로 성장시키며 인도에서 성공 신화를 썼다.

    인도는 인구 14억 명의 거대 시장이지만, 평균 소득이 낮고 콘솔 기기나 PC 이용률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어서 게임 시장 규모는 아직 작다. 지난해 기준 인도의 온라인 게임 시장 규모는 한국의 약 절반 수준이다.

    그럼에도 인도 게임 시장은 매년 15~20% 가까이 성장하고 있다보니 크래프톤은 인도 시장의 잠재력에 기대를 걸고 현지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인도에서 크래프톤의 투자도 게임과 비게임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우선 인도에서도 게임 IP 확장 차원에서 2021년부터 인도 게임 스타트업 생태계에 꾸준히 투자해왔으며, 올해 3월에는 인도의 최고 인기 스포츠 중 하나인 크리켓 게임을 개발하는 노틸러스 모바일을 약 203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한국의 ‘당근’ 같은 역할을 하는 인도의 로컬 커뮤니티 플랫폼 ‘슈루’에 약 37억원의 지분 투자를 단행하고, 핀테크 기업인 캐시프리 페이먼츠에는 올해 2월 약 286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게임이나 콘텐츠뿐만 아니라 인도의 IT 산업 전반에서 성장 가능성을 물색하고 있는 것이다.

    크래프톤 관계자는 “인도에서는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생태계라면 업종을 가리지 않고 모두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인도에서 크래프톤은 앞으로 매년 5000만달러(약 700억원) 수준의 투자를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2조 7098억원의 매출을 거둔 크래프톤은 5년내 매출 규모 7조원을 달성하겠다는 중기 목표를 내걸고 있다. 지난해의 2배를 훌쩍 넘는 공격적인 목표다.

    이를 위해 크래프톤은 신작을 개발중인 산하 스튜디오들에 연간 3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이어가는 한편, 회사 밖으로도 눈을 돌려 적극적인 M&A에 나서고 있다. 크래프톤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배틀그라운드’처럼 조 단위의 매출을 거둘 수 있는 IP가 최소 한두 개는 더 탄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크래프톤은 내년 선보일 ‘서브노티카2’를 포함해 이영도 작가의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를 기반으로 하는 게임 등 총 13종의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정호준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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