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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원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이재명 시대 韓·美관계 관세·방위비 압박에 ‘대북’ 지렛대 활용할까
입력 : 2025.07.02 15: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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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 일정을 단축, 조기 귀국하는 미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한·미 동맹은 철통같다.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치렀지만, 미국은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에 대해 우려하고 반대한다.”
지난 6월 3일, 제 21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가 이재명 대통령의 승리로 끝난 직후 백악관이 내놓은 성명서다. 한 나라의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메시지로는 다소 이례적이다.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을 우려한다는 흔치 않은 문구를 함께 넣었다. 이 짧은 성명서 한 줄로 향후 펼쳐질 한·미관계 난이도를 예상해볼 수 있다. 이재명 행정부는 한·미동맹을 유지하고 계승하면서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갈등과 난관을 헤쳐나가야 할 것으로 예측된다. 실제 이 대통령 당선 직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를 ‘한국이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는 것을 경고한 좌파 정치인’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또 이재명 대통령이 한때 자신을 미국 진보 정치의 상징 중 하나인 버니 샌더스에 비유했다는 점을 거론하며
“이 대통령이 대미 관계를 위해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배제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이는 미국 주류가 가진 이 대통령에 대한 선입견이 작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재명 정부 출범이 한·미 관계 전반에 새로운 국면을 예고하는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은 실용외교를 표방한다. 한·미 간 포괄적 전략동맹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 동시에 미국과 대척점에 있는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관계도 균형있게 관리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한·미 간 국익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의견 차이와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이재명 정부의 주요 외교 현안이 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한국이 ‘안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까지 거론한 바 있다. 이런 흐름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려는 태도를 문제 삼아, 방위비 증액을 지렛대로 압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재명 대통령은 방위비 문제를 통상·관세 현안과 함께 패키지 협상으로 연계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관세, 통상, 방위비를 하나의 협상 테이블에 올려 일괄적으로 재설정하는 전략이다.
과정에서 한·미 연합훈련 규모 조정이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속도 조절 같은 안보 이슈들도 협상 지렛대로 활용될 수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용 절감 기조에 부합하며, 동시에 북한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모양새를 만들 수 있어 미국과 북한 양측에 모두 먹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
북핵 문제에 대한 한·미 공조 역시 핵심 축이다. 트럼프는 과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파격적인 정상외교를 시도한 경험이 있다. 지난 2019년 열렸던 베트남 하노이 2차 미·북정상회담 때는 김 위원장이 ‘영변 핵시설 폐기‘카드를 들고 나오기도 했다. 그만큼 북한 입장에서는 협상에 진지하게 임했다는 뜻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이것으로는 부족하다’며 판을 뒤엎어 가시적 성과로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비슷한 방식의 정상외교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단계적 비핵화와 남북 대화에 무게를 두고 있어 두 정상 외교 노선에는 접점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집권 직후 전방지역에 설치된 대북확성기의 방송 중지를 지시했다. 대통령실 측은 남북 간 군사적 대치 상황을 완화하고 상호 신뢰 회복의 물꼬를 트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정부 입장에서는 개선된 대북관계를 기반으로 미·북 정상회담의 물꼬를 트며 이를 트럼프 행정부 협상 카드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 재임 내 굵직한 업적을 남기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맛과 맞아떨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대통령은 과거 대선 후보시절 인터뷰에서 “통상 문제가 지금 닥칠 가장 큰 현안이 될 것”이라며 “독립된 주권을 가진 국가끼리 외교는 쌍방에게 모두 득이 되는 길이 있다. 우리는 카드를 꽤나 가지고 있다. 서로 주고받을게 꽤 있다. 그걸 잘해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시장 일각에서 이 대통령이 가진 핵심 카드 중 하나가 ‘북한’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과 미국의 경제 협력 역시 외교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 한국은 2023년 미국 내 외국인 직접투자 1위를 기록하며 경제 기여도를 인정받았다. 특히 반도체와 첨단 기술은 경제안보 동맹의 핵심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기존 기조를 계승해 한·미 간 기술 동맹을 한층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한·미 경제 협력은 실리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점을 맞고 있다. 양국 간 경제 협상 역시 보다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수준에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관세를 축으로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패권 경쟁도 한국 입장에서는 복잡한 과제가 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실리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대통령이 주요 동맹국인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을 조율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대통령의 균형 외교 행보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한국이 미국 주도의 반도체 수출 통제나 안보 이니셔티브(쿼드 워킹그룹 등)에 소극적일 경우, 워싱턴 정가에서는 한국의 동맹 의지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는 “이 대통령은 미국과 철통같은 동맹을 유지하되 누구와도 적이 되지 않으려고 하겠지만 그건 매우 어려운 줄타기다. 미국의 긴밀한 동맹이 되면 중국, 러시아와 멀어지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빠른 시간 안에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굵직한 사안에 대한 의견 일치를 보는 게 중요하다. 이 대통령은 6월 16∼17일 캐나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할 예정이었으나 중동 사태 확산에 따른 트럼프 대통령의 귀국으로 만남이 무산된 바 있다. 양국은 ‘가장 근접한 시기’에 회담을 재추진하기로 했다.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방위비 협상 등 현안에 대한 얘기가 긍정적으로 흘러가면 이 대통령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는 미국의 일부 우려를 한 번에 불식시킬 수 있다. 현실적으로 중국을 배제할 수 없는 한국의 입장을 이해시키고 트럼프 대통령의 설득을 받아내는게 중요하다.
한편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당선 확정 이후 이틀 만인 지난 6일 밤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를 한 바 있다. 강 대변인은 “두 대통령은 서로의 리더십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앞으로 한·미 동맹의 발전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강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 대통령을 방미 초청했고, 이 대통령은 한국과 미국이 자주 만나 합의하기를 바란다고 화답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두 대통령은 각자 골프 실력을 소개하고 가능한 시간에 동맹을 위한 라운딩을 갖기로 했다. 서로가 겪은 암살 위험과 정치적 어려움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고 어려움을 이겨내며 강력한 리더십이 나온다는 데 공감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홍장원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