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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금리차 확대 위기 ‘환율 폭풍’ 한국 경제 덮칠까?
입력 : 2025.04.01 18: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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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금리차가 다시 한번 크게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은행이 경기 하방 압력을 부양하기 위해 추가 금리 인하를 검토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물가와 고용 지표가 비교적 탄탄하다는 이유로 섣불리 금리 인하에 나서지 않거나, 심지어 추가 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2.75%)과 미국(4.25~4.5%) 간 기준금리 격차는 상단 기준 약 1.75%포인트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3월 통화 정책회의(금통위)와 이어질 추가 회의에서 금리를 더 낮출 경우, 한·미 금리차가 2%포인트까지 벌어질 수 있다고 내다본다. 한국은행 3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한·미 금리차가 역대 최대 폭으로 벌어졌을 때도 채권자금이 대규모로 이탈한 사례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보고서는 “내외금리차가 확대되면 환율이 과민하게 반응해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라며 금융·외환 시장 안정에 대한 경계심을 거두지 않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금리차가 2%포인트로 벌어져도 자본 이탈이 심화하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위원은 “외국인 채권투자 자금은 장기투자 성향이 70% 수준이라 단순 금리차만으로 단기투자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일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한·미 금리차가 확연하게 벌어지면 원화 가치가 추가로 떨어질 수 있고, 환율이 조금만 출렁여도 시장 심리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3월 FOMC 파월 입에 주목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1월 백악관에서 파월 연준의장이 연설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한·미 금리차를 좌우할 핵심 변수는 단연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다. FOMC는 3월 18일부터 이틀간 열릴 예정인데, 시장에서는 이번 회의에서 연준이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하지만 단순 금리 결정보다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입과 점도표에 관심이 더욱 쏠리고 있다.
이번 FOMC에서는 점도표(금리 전망표)와 경제전망이 함께 발표될 예정이다. 지난해 후반부터 “올해 안에 연준이 최대 세 차례 정도 금리를 낮출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돼 왔지만, 연준 주요 인사들은 “인플레이션이 확실히 꺾였다는 신호가 보이기 전까지는 공격적인 금리 인하를 진행하기 어렵다”라는 메시지를 고수하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미국의 점도표상 올해 하반기에 연준이 한두 번 정도 금리를 내릴 것으로 전망했지만, 미국이 관세 정책 위험과 경기 흐름을 복합적으로 본다면 되레 ‘인상’ 한 번을 추가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까지 열어놔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연준이 매파적 관점을 유지할 경우,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운신 폭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미 1.75%포인트까지 벌어진 금리차가 2%포인트로 확대된다면, 환율과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가 커지는 것은 물론 시장 심리도 위축될 수 있다.
반면 FOMC에서 파월 의장이 “미국 경제가 둔화 신호를 보이고 있으니 연내 금리를 세 차례 이상 내릴 수 있다”는, 시장 기대보다 훨씬 비둘기파(통화 완화 성향)적인 언급을 내놓는다면 상황이 급반전할 가능성도 있다.
환율·금 시세 ‘동반 강세’ 가능성한·미 금리차가 지금보다 벌어지면원·달러 환율이 민감하게 움직일 확률이 높아진다. 이미 지난해부터 ‘1400원대 중반’ 고환율이 이어져왔고, 올해 들어서도 1350~1450원 사이에서 등락하며 좀처럼 안정세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환율이 큰 폭 오르면 수입 물가를 자극해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덩달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환율은 원자재·에너지 관련 가격과 직결된다.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뛰면 곧바로 국내 기업들이 내야 할 원자재 수입 비용이 급등하고, 이는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까지 자극해 ‘체감 인플레이션’을 높일 수 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환율이 1450원대 부근에서 추가로 상승 압력을 받을 경우, 한국의 장바구니 물가가 빠른 속도로 오를 위험이 있다”라며 “오히려 물가가 올라 연준이 금리 인하를 더 미루는 악순환이 올 수도 있다”라고 진단했다.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 시세 역시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보통 달러와 금은 반대로 움직인다고 알려졌지만, 전 세계가 경기침체와 지정학적 리스크를 동시에 우려하는 시기에는 ‘금과 달러가 함께 오르는 현상’도 적지 않게 나타난다.
국제금융센터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관세 정책이 세계 경기를 불안하게 만들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면 금과 달러가 동시에 강세를 보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최근 국내 금값(원·트로이온스 환산)도 국제 금값과 환율이 동시에 출렁이면서 역대 최고 수준 부근을 오르내리고 있다.
韓銀 딜레마 “인하” vs “동결”한국은행의 입장도 쉽지 않다. 한쪽에서는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고 건설·제조업 전반에서 경기 하방 압력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금리 인하로 숨통을 틔워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반면 이미 미국과의 금리 차이가 1.75%포인트로 벌어진 마당에, 추가 인하로 격차를 2.0%포인트까지 키우는 건 원화 가치와 외국인 투자자 신뢰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반대 의견도 상당하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은 2분기까지는 일단 통화 완화 기조를 이어가면서 경기부양을 위한 대응을 할 가능성이 크다”라면서도 “미국이 과연 올해 안에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금리를 내리느냐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한국은행 보고서에도 “미국이 올해 안에 2회 이상 인하한다는 시장 전제가 유지돼야 한국은행도 비교적 부담 없이 금리 인하를 추진할 수 있다”는 식의 뉘앙스가 담겨 있다. 하지만 미국이 인하 시점을 늦추거나, 금리 인상을 한 번 더 단행한다면 한·미 금리차는 사상 최대 폭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도 “금리 인하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와 환율 변동성이 커졌을 때 올 수 있는 신인도 하락 및 자본 유출 가능성을 함께 살펴야 한다”라고 밝혔다.
수출·내수 동시 타격 가능성정책금리 차이가 외국인 채권자금을 빠져나가게 만드는 직접 요인으로 작용할지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환율이 급등락을 반복하면 기업들의 수출 전략은 물론 국내 소비심리까지 모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수출 업계에서는 “1400원대 중반 환율이 유지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수익성 확보가 유리할 수 있지만 불안정성이 커지면 오히려 대외 신뢰도에 타격이 생길 수 있다”고 호소한다. 특히 미국 관세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과 중국 경기 둔화 우려가 겹치면서,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와 자동차, 석유제품 등은 이미 기존보다 판매 환경이 악화했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미국 내 전기차 보조금 축소와 각종 규제, 추가 관세 논란이 겹치면서 수익성을 전망하기 어려워졌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환율이 단기 급등락을 보이면 ‘원가 관리와 판매 가격 책정’ 모두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내수 시장도 환율이 오르면 소비자 물가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환율 변동 후 9개월 정도가 지나면 소비자물가 전가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난다”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하반기쯤 되면 최근 환율 상승분이 본격적으로 반영돼 수입 물가 부담을 체감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금리 인하 후폭풍 ‘가계부채’ 경고등금리를 낮추면 국내 경기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가계부채의 재확대와 부동산 시장 과열 가능성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4년부터 정부가 거시건전성 정책을 강화하면서 가계대출 증가 폭이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초저금리’ 시대가 다시 도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면 ‘영끌’이나 ‘빚투’(빚을 내 투자)로 대표되는 대출 수요가 되살아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통화신용정책보고서는 이에 대해 “기준금리를 추가로 낮추면 주택 수요가 예상보다 빨리 반등해 가계대출 증가세가 다시 가팔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서울 등 일부 지역에서는 최근 몇 주 새 아파트 매매가격 오름폭이 미미하게나마 확대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아직 부동산 경기침체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단정하기엔 이르다”라는 태도를 고수하지만, 한국은행이 경기 방어 차원에서 금리 인하를 가속하면 정책 목표가 엇갈릴 가능성도 있다. 한편, 글로벌 무역 환경의 불확실성은 한·미 금리차 문제와 맞물리면서 시장 변동성을 한층 키울 것으로 보인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본격화된 이후 미국 내에서 관세가 미국 물가를 끌어올리고 금리 상승을 유발할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오히려 관세 충격이 경기침체 공포(R의 공포)를 자극해 총 수요가 떨어지고 디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지금으로서는 관세 정책이 미국 물가와 경기 어느 쪽으로 작용할지 누구도 확실히 예단하기 어렵다”라면서 “불확실성이 극도로 커진 상황에서 금리 전망이 한쪽으로 쏠리면, 오히려 반대 시나리오가 급작스럽게 현실화해 금융시장을 뒤흔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시장에서는 “하반기로 갈수록 환율 상승분이 에너지·원자재 가격을 통해 물가를 끌어올리고, 반면 경기는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해 최악의 ‘체감 스태그플레이션’이 펼쳐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전통적인 스태그플레이션과 다소 다른 양상을 띠겠지만, 이미 가공식품 등 생활필수품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어 체감 물가는 상당히 높은 편”이라며 “이 같은 ‘체감적 스태그플레이션’이 가계에 큰 압박을 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금리정책의 명확한 시나리오가 나오기 어렵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만약 FOMC 직후 파월 의장이 “올해 내 금리 인하가 어렵다”라는 언급을 내놓으면, 한국은행이 굳이 무리해서 금리 인하를 밀어붙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국내 성장 둔화가 예상보다 심각해진다면 한국은행이 “환율 및 자금 유출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인하를 서둘러야 한다”라는 결정을 내릴 여지도 있다. 이 경우 한·미 금리차가 2%포인트까지 벌어져도 한국은행은 경기 방어를 우선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3월 FOMC 결과가 나오더라도, 올 상반기 내내 경제주체들이 고도의 불확실성 속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5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