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ar My Walking] 강원도 삼척 이사부길 A코스, 상영시간 90분 영화처럼 흐르는 짙푸른 동해바다

    입력 : 2021.03.09 16: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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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척은 강원도 최남단에 위치한 시(市)다. 이게 뭐 그리 의미 있는 사실인가 싶은데,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어감에는 왠지 자연환경의 차이가 느껴진다. 그건 고스란히 강원도가 지닌 고지대 산간지역의 이미지에 기인하는데, 태백산맥의 동쪽에 자리한 삼척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 주산맥의 기세는 바로 이 삼척에서 동해바다로 흘러간다. 덕분에 구불한 해안선 곳곳엔 멋들어진 풍경이 자리했다. 그리고 그 해안선을 따라 차가 드나드는 도로가 뚫리고 보행자를 위한 데크가 놓였다. 이사부광장에서 삼척해변까지 이어지는 약 4.7㎞의 산책로는 걷는 내내 바다를 보며 전진하는 길이다. 아기자기한 조형물과 공원, 카페 등을 놓치지 않고 걷다보면 90분 동안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은 동해바다의 풍광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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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진항
    후진항
    “오전이든 오후든 비나 눈이 심하게 오지 않으면 하루 한 번은 꼭 도는 코스예요. 별로 준비할 것도 없어요. 보행데크로만 걷기 때문에 운동화 하나면 그만이죠.”

    삼척해변에 차를 주차하고 생수 한 병 사기 위해 들른 마트에서 사장님의 이사부길 예찬이 이어졌다.

    “서울에선 강이나 호수 끼고 도는 게 힐링이라던데, 동해바다 해안선을 걷다보면 코로나가 다 뭐야. 몸 속 구석구석이 다 소독되는 기분이에요. 부슬부슬 비나 눈이 내리면 또 얼마나 운치가 있는지. 직접 확인해보세요. 주변에 곰칫국 맛있는 데가 많으니 맛도 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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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변가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니 그의 말 그대로다. 미세먼지 심한 평일 오전, 동해바다 먼 하늘의 기운은 푸르고 싱싱하다. 아직은 차가운 바닷바람 맞으면서 데크에 오르니 이사부광장 방향에서 출발한 이들이 하나둘 걷기를 마무리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길은 이곳에 사는 이들에겐 동네 산책길이자 마실길이다. 코스의 출발점인 이사부광장에서 출발해도 좋고 도착점인 삼척해변에서 출발해도 별반 다를 게 없는데, 차를 주차해야 한다면 삼척해변 주차장이 넓고 편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리조트가 자리한 삼척해변은 깔끔하고 아담하다. 해변 남단에 방파호 축조공사가 한창인데, 공사안내판에 나온 조감도를 보니 올 10월이면 먼 바다까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될 예정이다. 공사구간을 통과해 돌아 나오니 푸른색 물기둥이 일렬로 일어서서 해안으로 밀려든다. 작은 자갈이 달그락 대는 몽돌해변엔 기다란 낚싯대 드리운 이들 두서넛이 그림처럼 파도를 맞고 섰다.

    삼척항
    삼척항
    ▶쉽게 보단 큰코다치는 길 작은 후진해수욕장을 지나 후진항에 들어서면 곳곳에 강태공이다. 시간을 낚는 건지 바람을 잡는 건지 “오전 내내 허탕”이라는 푸념이 멀리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마침 항구에 차를 대고 낚시채비를 하는 이를 보니 별다른 채비도 없이 낚싯대만 달랑 들고 방파제로 향한다. 십중팔구 토박이의 여유다. 이 시간쯤이면 고기가 난다는 경험에 서두르지 않고 꼼꼼히 챙겨 점심거리를 챙겨가는.

    근처의 후진마을은 나루가 있는 작은 마을이다. ‘후진(後津)’은 ‘뒷나루’다. 동헌이 있던 시내에서 볼 때 뒤쪽에 자리한 포구였기 때문에 예부터 ‘뒷나루’라고 불렀다. 그러던 것을 한자로 옮기면서 후진이 됐다.

    비치조각공원
    비치조각공원
    항구를 뒤로 하고 10여 분쯤 걷다보니 오르막이 길어졌다. 코스가 아무리 평범하다 해도 이곳이 강원도란 걸 간과하면 큰코다칠 수도 있는, 꽤 큰 경사다. 그 경사의 정점을 앞둔 시점에 조각공원이 펼쳐지는데,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휴식처다. 화장실과 매점도 있어 유용한데, 무엇보다 조각공원을 등지고 오른쪽에 난 계단으로 내려가면 바다 쪽으로 통창이 난 카페를 만날 수 있다. 아무런 정보 없이 길만 따라 걷다보면 십중팔구 놓치게 되는 장소인데, 차 한 잔 하며 창밖을 바라보노라면 없던 시상(詩想)이 떠오를 만큼 운치 있고 멋스럽다.

    여기서 잠깐, 그런데 왜 이 절경 그득한 길에 신라 장군 이사부의 이름을 붙인 걸까. 카페에 진열된 안내 책자를 넘겨보니 512년 신라가 우산국(현 울릉도와 독도)을 정벌할 당시 신라장군 이사부가 앞장섰고, 그가 출발한 곳이 지금의 삼척항이었단다. 알고 나니 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파편이 이사부가 지휘하는 군선에 맞선 짙푸른 바다를 닮았다. 아, 이보다 기막힌 작명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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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망의 탑
    소망의 탑
    ▶3만3000명의 소원 담은 소망의 탑 조각공원을 뒤로하고 시선을 멀리두면 광진항 풍경이 잡힐 듯 펼쳐진다. 바다는 맑고 푸르다. 햇빛을 반사하는 물결 아래는 바닥이 보일 만큼 투명하다. 다시 가파른 길을 오르다보면 이정표에 ‘소망의 탑’이란 문구가 선명하다. 새천년의 소망을 담아 삼척시가 2000년에 건립한 탑으로 이곳엔 건립 후원자 3만3000명의 이름이 각인돼 있다. 3단 타원형 모양에 가운데 종이 달렸는데, 1단은 신혼부부의 소망석, 2단은 청소년, 3단은 어린이의 소망석으로 구성됐다. 탑신은 소원을 비는 양손의 형태로 표현됐고, 탑 아래 새로운 천년의 시작을 기념하는 타임캡슐을 묻어뒀다. 오가는 이들이 한 번씩 종을 치며 소원을 빌기도 한다. 과연 2100년에 열리게 될 타임캡슐에는 어떤 내용이 기록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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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부길 A코스 2014년 삼척해수욕장과 삼척항을 잇는 약 4.7㎞의 해안 드라이브 코스 ‘새천년 해안도로’를 따라 보행데크가 설치됐다. 2017년 미개통됐던 약 800m 구간의 군경계 철책을 철거하고 보행데크를 완전히 개통한다. 신라장군 이사부의 이름을 따 이사부길이라 명명한 건 우산국(현 울릉도와 독도)을 정벌하기 위해 출발한 곳이 삼척항(512년 당시 정라항)이기 때문이다.

    이사부 광장→소망의 탑→조각공원→두꺼비 바위→후진항 →작은 후진 해수욕장→삼척해변

    [글·사진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6호 (2021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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