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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의 유럽인문여행!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서 ⑱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도시 알제리 수도 알제
입력 : 2020.07.07 10:3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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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는 1832년 1월부터 7월까지 프랑스 외교사절단의 일원으로 참가해 북아프리카의 보석으로 불리는 모로코와 알제리를 방문하였다. 특히 그는 1830년부터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사흘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이슬람 문화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이슬람 여성들만의 공간인 ‘하렘’을 보고, ‘알제의 여인들(1832년)’이라는 작품을 비롯해 침대에 배를 깔고 비스듬히 누운 이슬람 여성을 주제로 한 ‘오달리스크(Odalisque; 오스만 제국 시절 궁전 밀실에서 왕의 시중을 들던 궁녀들을 지칭하는 대명사)’ 등을 그려냈다. 1906년 야수파의 앙리 마티스는 외젠 들라크루아의 영향을 받아 직접 알제리를 찾아왔고, 오스만 제국의 궁정에서 시중을 들던 여자들을 주제로 한 ‘오달리스크’를 수십 점 그렸다. 이처럼 푸른 지중해와 강렬한 태양이 인상적인 알제리는 외젠 들라크루아와 앙리 마티스 이외에도 수많은 화가의 붓을 통해 유럽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알제리를 유럽에 많이 알린 예술가는 프랑스 이민자 3세대 출신인 알베르 카뮈이다. 우리에게도 <이방인(The Stranger·1942년)>, <페스트(The Plague·1947년)>, <전락(The Fall·1956년)> 등으로 잘 알려진 철학자이자 문학가인 카뮈가 바로 알제리 출신이다.
위로는 지중해를 아래로는 사하라 사막을 품고 있는 알제리는, 선사시대 때부터 아프리카 원주민인 베르베르족이 살았던 지역이었다. 기원전 9세기에는 카르타고, 기원전 2세기에는 로마제국이, 7세기에는 아랍의 이슬람이, 16세기에는 오스만 제국이 알제리를 지배하였다. 1830년에는 프랑스가 오스만 튀르크를 물리치고 알제리를 프랑스의 식민지로 삼았고, 카뮈가 죽은 지 2년 후인 1962년 비로소 알제리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다. 한마디로 알제리의 역사는 3000여 년 동안 외세의 침략으로 하루라도 편하지 않았다. 그 결과 로마와 비잔틴 문화, 아랍의 이슬람 문화, 프랑스의 유럽 문화가 혼재돼 알제리만의 이색적이고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졌다. 이런 문화는 외젠 들라크루아, 앙리 마티스, 파울 클레, 알베르 카뮈 등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들의 작품 속에 등장하였다.
세계에서 10번째로 국토 면적이 넓은 알제리, 그 중심의 도시가 바로 수도인 알제이다. 알베르 카뮈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알제리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듯이 이곳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그가 좋아했던 지중해 바람과 뜨거운 태양 그리고 하얀색으로 칠해진 알제의 뒷골목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지중해 연안을 끼고 있는 수도 알제는 아랍어로 ‘작은 섬’이라는 뜻의 ‘알자자이르’에서 유래됐고, ‘하얀 여인’이라는 별칭을 가진 도시이다. 이곳은 1529년 오스만 제국이 알제리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항구를 건설한 것에서 시작됐다. 이미 알제는 카르타고 시대 때 ‘이코심’, 로마 시대 때 ‘이코시움’이라 불렀고, 16세기에 오스만 제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알제리의 행정·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하였다. 1830년 프랑스에 점령된 후 프랑스풍의 근대 도시로 발전하였고, 1962년 알제리의 독립과 함께 프랑스 문화와 북아프리카 이슬람 문화의 접점의 중심지가 되었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8호 (2020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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