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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오이·콩나물·미역·우무 등 전통 여름 냉국이 보양식, 몸속 열 식히는 특급 소방음식의 비밀
입력 : 2020.07.06 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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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예년보다 무더울 것이라는 예보다. 벌써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은데 더위를 이겨내는 음식으로는 이열치열 보양식이 좋다고 하지만 진짜 더울 때는 다 소용없다. 당나라 시인 두보의 절규처럼 허리에 띠를 매고 있으니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束帶發狂慾大叫)인데 뜨거운 음식이 웬 말이냐는 것이다. 이럴 때는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일단 땀부터 식히는 게 우선이니 알맞은 재료에 얼음 동동 띄우고 오이, 파 송송 썰어 고춧가루 솔솔 뿌려 내오는 시원한 냉국 한 사발이 진짜 보양이 된다.
신체 안팎의 열기를 식히고 갈증을 푸는 데는 냉국이 그만이기에 흔히 냉국을 몸속 불을 끄는 특급 소방관이라고 한다. 따져보면 이 말이 당장의 시원함 때문에 입술에 침 바르고 하는 아부의 소리만은 아니다. 거창하지만 음양원리에 바탕을 둔 동양과학의 관점에서나 혹은 역사에 근거한 인문학적 소견으로 봤을 때도 냉국은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더위를 식히는, 안성맞춤의 합리적 보양식이다. 평범하기 그지없어 보이지만 오이, 콩나물, 가지, 미역, 우무 등의 전통 냉국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되는데 올여름 무더위를 식혀줄 냉국의 인문학에 대해 알아본다.
일본 속설에 가을 가지는 며느리한테는 먹이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얼핏 가을이면 가지가 귀해지기 때문에 맛있는 가지를 혼자 먹겠다는 소리 내지는 옛날에 며느리 구박하며 하는 소리로 들리지만 사실은 배경이 있다. 가지는 성질이 차기 때문에 아이를 가져야 하는 여성, 특히 몸을 따뜻하게 유지해야 하는 임신부는 조심해서 먹으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뒤집어보면 여름철 더위를 쫓는 데 가지만한 채소가 없다. 더위를 식힐 수 있기 때문인데 <본초강목>에서는 한랭한 성질로 인해 많이 먹으면 배가 아플 수도 있다며 주의를 환기시켰을 정도다. 무심코 먹는 냉국이지만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만든 냉국에는 이렇게 동양의학 지식과 경험적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덧붙여 여름에 가지냉국이 좋은 이유는 또 있다. 가지는 서역에서 전해진 채소였기에 옛날에는 곤륜과(崑崙瓜)라고 불렀다. 신선이 산다는 곳인 곤륜산에서 자라는 채소라는 뜻이다. 때문에 옛날 중국에서는 가지를 식물성 자라라고 했을 정도로 보약처럼 여겼다. 그러니 지쳐 늘어진 여름에 먹기 좋은 채소다. 한편으로는 가지를 무익한 채소(無益菜)라고도 했다. 무기질과 비타민, 식이섬유는 풍부하지만 단백질과 탄수화물은 함량이 낮고 수분만 95%여서 영양가가 없다는 것인데, 현대인 입장에서는 다이어트에 딱 좋다. 이런 저런 냉국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옛 사람들이 최고로 꼽았던 음식은 시원한 콩국에 우무를 말아 먹는 우무냉국이 아니었을까 싶다. 젤리처럼 맑고 투명한 우무를 넣은 콩국도 맛이 특별하지만 채친 오이와 함께 매콤 새콤하게 비빈 우무냉채 한 입에도 더위를 싹 날려 버릴 수 있다. 우무냉국의 경우 요즘은 주로 재래시장을 찾아야 맛볼 수 있기에 전형적인 서민음식이었을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옛날에는 달랐다. 임금님이 여름철에 별미로 드셨던 남해안의 특별 진상품이었다. 예전 우무는 남해에서만 나는 특산물이어서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름철 궁궐에서는 남쪽 바다에서 올려 보내 온 우무로 묵을 만든 후 썰어서 초장으로 냉탕을 만들어 임금님께 올렸는데 마시면 상쾌하고 갈증이 싹 가시기에 궁중의 여름 별식으로 꼽았다. 특히 정조가 우무냉국을 많이 먹었다고 한다. <일성록>에는 내의원에서 “우무는 성질이 매우 차기 때문에 많이 드시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 과식을 말렸지만 정조가 “나는 원래 더운 체질이니 찬 성질의 음식을 먹어도 해가 될 것이 없다”며 말을 듣지 않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여름에 냉국이 좋은 이유는 그 자체로 시원하게 먹는 음식인 데다 들어가는 재료가 열을 식혀주기 때문만이 아니다. 냉국을 만들 때 빼놓으면 안 되는 것이 식초인데, 이 식초가 냉국에서는 화룡점정의 역할을 한다. 먼저 식초는 시고 상큼한 맛이 일단 청량감을 주는 데다 새콤한 맛이 소화액을 자극시켜 소화를 돕는다. 그리고 성질이 따뜻해 찬 성질의 냉국 재료와 어울려 중화 작용을 한다. 게다가 상하기 쉬운 여름철 음식을 소독시켜 주는 역할까지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 사람들이 식초를 만병통치약으로까지 여겼던 이유일 것이다.
올여름 날씨도 더울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뭐에 이래저래 열 받는 일 많을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정도로 더워지면 시원한 냉국 한 사발 들이켜며 몸도 그리고 마음도 식혀 보는 것이 좋겠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8호 (2020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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