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훈의 유럽인문여행!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서 ⑭ 영국 바스와 초턴에서 찾은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의 흔적
입력 : 2020.03.05 14:18:04
몇 년 전 영국 BBC 방송에서 ‘지난 1000년 동안 가장 위대한 문학가’를 뽑는 설문조사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에 이어 당당히 2위를 차지한 소설가가 제인 오스틴이다. 우리에게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분별과 다감> <맨스필드 공원> <에마> 등으로 잘 알려진 오스틴은 ‘여자 셰익스피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닐 만큼 영국 문학사에서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19세기 영국 중산층의 삶과 사랑을 그린 그녀의 작품들은 200년이나 지난 지금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
영국 최초의 여성 소설가 오스틴은, 1775년 12월 16일 런던 남서쪽에 있는 스티븐턴에서 6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고, 마흔두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쳤다. 고전문학에 정통한 아버지는 스티븐턴 교구의 목사였으며, 어머니는 연극을 비롯해 문학과 예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오스틴이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열두 살. 이때부터 스무 살까지 희곡, 시, 단편소설, 수필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썼다. 또한 스물한 살이 되던 해부터 소설의 주인공처럼 아일랜드 출신의 톰 러프로이, 새뮤얼 블래컬 등 잘생긴 청년들과 짧은 사랑을 나눴다. 하지만 그녀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처럼 사랑의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현재 그녀의 흔적은 <설득>의 배경이 된 바스(Bath)와 1809년 오빠가 마련해 준 초턴(Chawton)의 살림집에서 찾을 수 있는데, 두 곳 모두 오스틴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이 중에서 로마 시대 때 온천장으로 잘 알려진 바스는, 20대 중반의 오스틴이 가족과 함께 이주한 도시이다. 사실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바스로 이사한다는 말을 듣고 기절할 정도로 바스를 싫어했다고 한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8남매가 오순도순 살았던 고향을 훨씬 좋아했기 때문이다.
5세기 이후 귀족들이 온천욕을 즐기러 오면서 세련된 살롱 문화가 자연스럽게 전해진 바스는 소박하고 수줍음이 많았던 시골 소녀 오스틴에게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신세계였다. 사치스러운 귀족들의 모습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오스틴에게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었다. 이런 생각들은 그녀의 작품 속에서 여과 없이 드러난다.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도도한 태도로 귀족들의 호화로운 생활이 동경의 대상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오스틴은 귀족문화가 발달한 바스에서의 경험을 작품에 고스란히 담았다.
하늘빛부터 런던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바스는 가파른 경사를 따라 들어선 예쁜 집과 도시를 유유히 감싸고 흐르는 에이번강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구시가지로 다가갈수록 점점 더 중세의 숨결이 느껴지고, 고색창연한 건물에서는 중세의 고풍스러움과 세월의 무상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오스틴을 좋아하는 팬들은 그녀가 즐겨 찾던 에이번강 주변이나 대성당, 크레센트, 구절양장의 골목길 등을 둘러보며 오스틴의 흔적을 더듬는다. <설득>의 주인공 앤과 그녀의 사랑을 차지한 웬트워스 대령이 데이트를 즐겼던 장소가 어디인지를 상상하며 중세의 도시 바스를 탐험한다. 무엇보다 오스틴과 가족이 함께 살았던 집은 그녀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장소이다. 일명 ‘제인 오스틴 센터’라고 부르는 이 집은, 오스틴이 머물렀던 곳이자 고뇌하고 방황한 젊은 문학가의 상상 공간이었다. 제인 오스틴 센터는 초라하지만, 오스틴과 문학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성지 같은 장소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오만과 편견>의 영화 포스터와 그녀의 책들이 낯선 이방인들을 맞이한다. 내부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오스틴이 살았던 중세 시대의 옷가지와 그녀와 관련된 신문기사, 액세서리 등이 전시돼 있다. 그러나 이곳은 생각보다 그녀의 작품 세계나 성격 등을 느낄 수 있는 유물이 많지 않다. 오스틴의 삶의 향기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 마지막 삶의 불꽃을 태웠던 초턴으로 가야 하는 이유이다.
바스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초턴은 오스틴의 문학적 세계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아담한 시골 마을이다. 나무 향기가 은은하게 스민 초턴의 집은 셋째 오빠 에드워드가 마련해준 것으로, 오스틴이 8년간의 바스 생활을 접고 병든 어머니와 친언니 카산드라와 함께 머물렀던 곳이다.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 그리고 얕은 바람이 일 년 내내 살랑거리는 초턴은, 화려하고 귀족적인 분위기의 바스와는 정반대되는 마을로 오스틴이 글쓰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을 것이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앙증맞은 풍금 한 대와 악보가 눈에 들어온다. 오스틴이 사용한 풍금은 아니지만, 관리인의 말에 따르면 “오스틴은 글뿐만 아니라 풍금을 치며 노래하는 것을 즐겼다”라고 한다. 그녀의 가족은 아마추어 가족 극단을 만들어 목사관에서 종종 노래하며 춤을 추었는데, 이런 가풍 덕분에 오스틴은 연주와 창작에 모두 뛰어난 소질을 갖게 됐다.
나무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좁은 통로 벽면에 1894년 출간된 <오만과 편견>의 삽화들이 액자 형태로 장식되어 있다. 중세 시대의 옷을 입은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그리고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의 스케치가 오스틴의 감성을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예술가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며 몸부림쳤던 그 현장에서 함께 숨을 쉬고, 공감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감동이다.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큰딸 제인과 엘리자베스가 빙리와 다아시를 두고 사랑의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는 모습이 한 편의 영화처럼 지나간다. 복도에 걸린 그림을 한 장씩 천천히 바라보노라면 오스틴과 교감이 절정에 이른다.
2층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곳은 역시 그녀의 작품 세계를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집필실이다. 아담하게 꾸며진 오스틴의 방에 들어서면 그녀의 순수한 마음과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중세 시대의 여성 옷가지와 책상, 그리고 친언니 카산드라가 그린 오스틴의 초상화 몇 점. 더 바랄 게 없다. 그림 속의 그녀는 레이스가 달린 모자를 쓰고 소박한 드레스를 입었으며, 오똑한 코에 얇은 입술, 감수성이 풍부한 눈망울, 섬세한 시선 등 마치 오스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이다. 그리 큰 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문학적 열정으로 꽉 찬 방은 숨을 제대로 쉴 수조차 없을 만큼 감동의 도가니다. 1시간 남짓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고 나면 오스틴이 남긴 삶의 흔적과 그녀의 문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들고,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이 글귀는 그녀의 작품 중 가장 인기 있는 <오만과 편견>의 한 부분이다. 유머와 풍자를 통해 그 시대의 가치를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오스틴. 영국인을 비롯해 많은 사람으로부터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가 아닐까?
[이태훈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