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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명화극장] 기생충의 이중 가치, 계급이 갖는 무거운 의미
입력 : 2020.03.02 16:5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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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생충>은 양가(兩價)적이다. 이중 가치가 있다는 얘기인데 매우 계급적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反계급적이어서 그렇다. 계급적 분노를 유발시키는 측면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을 순화시킨다는 의미의 얘기이다. 절대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7~8년 전에 인기를 모았던 청소년급 영화 <헝거게임>이나 <메이즈 러너> 등을 생각하면 된다. 2011년에 미국 월가(Wall Street)에서는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대규모 시위가 계속됐었는데, 이른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가 그것이었고 미국 국내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혁명 세대의 출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금융권의 세습 자본주의적 행태에 대해 젊은 세대들의 저항이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의 사태를 정작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이 바로 할리우드 제작자들이다. 필름 메이커들은 ‘젊은 피’를 먹고 산다. 관객의 주도층이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의 ‘영 제너레이션’이라는 얘기다. 제작자들은 영화계에서 ‘혁명’이 상품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직감했다. <헝거게임>과 <메이즈 러너>는 청소년 주인공(들)이 ‘지배세력=기득권 계층’과 싸워 혁명을 성공시키는 이야기다. 할리우드의 거부(巨富)들은 이런 영화를 만듦으로써 혁명(상품)으로 돈을 벌고 한편으로는 사회 내 ‘불온한’ 기운을 오락으로 상쇄시키는 효과를 가져 왔다. (젊은)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계급적 분노를 해소시켰다. 결국 영화가 사회 (자본) 개혁의 에너지가 순치(順治)되는 과정을 조성(혹은 조장)한 셈이다. 계급 문제가 상품화됐을 때 나타나는 이중적인 결과물이다. 그래서 교양 있는 자본가들, 혹은 그들 체제를 옹호하는 노련한 권력자들은 탄압보다 이러한 우회로를 선택한다. 이른바 합리적 보수주의의 정치체제를 경험하고 유지시켜 본 경험이 오랜 서구 국가일수록 이런 문화적 상품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 <기생충>같은 영화는 검열이 횡행하는 지금의 중국에서는 나올 수 없는 이야기이며 비정상적 정치 행태가 이어지고 있는 아베 하(下)의 일본에서는 불가능한 작품인 셈이다. 그렇다고 <기생충>이 꼭 저 두 작품과 같은 조류(潮流)의 영화라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봉준호가 자본가 편에 서서, 그 맥락을 다 내다보고 저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 역시 더더군다나 결코 아니다. 다만, 어찌 보면 저토록 ‘불순한’ 영화를 한국사회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사회 모두가 왜 이렇게까지 열광하게끔 허용하고 있느냐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하층 계급, 그리고 그 계급에 의한 사회적 전복(顚覆)을 그리고 있는 <기생충>이 어떻게 전 세계적인 아이콘으로 등극했는가에 대한 답으로서 생각해볼 만한 ‘꺼리’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그것은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국제영화상, 각본상 등 주요 4개 부문을 싹쓸이한 직후 세계 곳곳의 미디어에서 일제히 쏟아냈던 질문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과연 어떤 요인이 <기생충>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몰아주게 했느냐 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생충>은 지금 시대의 양가적 이중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주목 거리다. 한국의 극단적 양극화 상황을 고발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영화를 자본주의적 투자 제작 마케팅의 과정을 통해 대중 한가운데로 착지(着地)시켰다는 점에서 실로 계급적 아이러니를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카데미는 왜 <기생충>을 선택했는가. 그들 역시 ‘이민자=아웃사이더=미국 외 바깥의 누군가 혹은 무언가’로부터의 ‘침입’을 사실 내심으로는 전혀 반가워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혹시 ‘아카데미=백인 중산층 주류 사회=미국’은 <기생충>을 통해 제한된 혁명을 제안한 것이 아닐까. 그것이야말로 트럼프가 야기한 극단의 사회 불만을 대형 폭발로 이어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기생충> 열풍은 과연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촉구하는 것인가, 아니면 위로부터의 혁명을 유도하려는 것인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4호 (2020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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