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동진의 명화극장]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모두가 한 번쯤 경험해본 듯한 첫사랑

    입력 : 2019.09.26 11:12:31

  • 사랑은 늘 배가 고프다. 사랑이란 항상 모자란 것이기 때문이다. 받아도 받아도 조금 더, 조금만 더를 요구하게 되는 게 사랑이기 때문이다. 특히 청춘일 때 그렇다. 사랑을 하면 완벽한 일체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싸우고, 갈등하고, 의심하고, 넘겨짚고, 헤어졌다 만나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상처를 받고, 나이를 먹으면, 사랑이 완전하지도, 영원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이 모자라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사랑은 채워진다. 역설이다. 사랑이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사랑은 영원해진다. 한국에서 가장 섬세한 표현에 능하다고 알려진 중견 정지우 감독의 신작 <유열의 음악앨범>은 청춘의 시절, 그 찬란한 찰나의 시기를 지나는 한 남녀의 열병, 그 사랑을 기록한 작품이다. 영화는 위태위태하게 이어지는 ‘어린 아이들=20대 초중반의 남녀’가 벌이는 사랑의 시소게임을 그려 나간다. 모두가 한 번씩 경험해 봤음직한 이야기다. 대부분 실패로 끝난 첫사랑의 기억 같은 것. 그래서 오직 자신의 가슴 속에만 깊이 숨겨 놓은 채 홀로 그 기억을 소환해내기를 즐기는 에피소드들. 영화는 처음부터 개개인의 특별한 과거를 불러내 결합시켜서는 한 시대의 공통된 기억으로 묶어 내는 데 성공한다. 사람들을 금세 훈훈한 감상의 골짜기로 밀어 넣으며 시대의 근거리를 오가는 타임머신을 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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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은 제목 자체에서 텍스트 분석의 키워드가 발견되는 작품이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1994년부터 약 10년간 KBS FM라디오에서 진행된 인기음악프로그램이다. 발라드 가수 유열이 DJ를 맡았으며 인기 장수 프로로 지금까지 방송계의 전설로 남아 있다. 그러나 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정작 가수 유열이라든가 음악 프로그램 자체는 아니다. 그건 일종의 맥거핀이다. 영화내용과는 사실상 그리 관계가 없다. 물론 모티프의 성격은 강하다. 주인공인 현우(정해인)가 미수(김고은)를 처음 만난 날도 운명처럼 ‘유열의 음악앨범’의 시그널이 시작된 날인데, 그는 그걸 자신의 삶이 변할 수 있는 신호로 여긴다. 미수와의 사랑을 필연으로 여기게 된다. 미수는 미수대로 그의 잘생긴 외모에 첫눈에 반하고 만다. 이후에도 ‘유열의 음악앨범’은 둘의 관계가 위기에 빠지거나 혹은 그 반대로 꽃피울 때마다 중요한 계기가 된다. 이 음악프로와 여기서 나오는 팝음악 혹은 가요는 영화의 페이지를 넘기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그 이상의 역할은 없다. 그보다는 ‘유열의 음악앨범’이 인기를 모았던 1994년부터 약 10년간의 시대, 그 아우라가 정작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진짜 모티프는 1990년대이며 지금부터 20년 전의 과거라는 것을 보여준다. 정지우 감독은 왜 20년 전으로 돌아갔을까. 그에게 1990년대는 과연 무엇일까. 조금 다른 얘기이지만 최근 개봉된 김보라 감독의 <벌새>를 비롯해 일련의 영화들이 요즘 들어 1990년대를 지금의 현실로 불러내는 경향성을 보인다. IMF 때의 얘기를 그린 <국가부도의 날>도 그렇다. 1990년대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1990년대는 지금의 40대, 그러니까 현 시대의 사회경제적 중심 세대이자 막 기성화하기 시작한 세대에게 있어, 자신들의 청춘이 통과했던 시기이다. 그건 마치 586세대에게 있어서 1980년대와 같은 것일 수 있다. 영화에서 1990년대가 주인공으로 그려진다는 것은 바야흐로, 시대의 고삐를 쥔 한 세대의 손이 다른 세대의 손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또 마침내, 사람들이 1980년대의 상흔, 곧 광주의 처절한 기억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제는 정녕 다른 사회과학적 기준점들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광주=1980년대=군부독재=민주화 운동’과 같은, 그와 같은 구시대의 감상 포인트로는 더 이상 타인과의 공감대를 확보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시대의 기준점이 적어도 1994년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얘기이다. 늘 그렇지만 세상은 40대가 주인공이고 지금 역시 그들의 뜻에 따라 시대가 운행될 것임을, 무엇보다 이미 그렇게 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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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는 한 마디로 경계의 시대였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무한대로 발전하기 직전이었다. 인생의,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에피소드는 사실 정형화되고 균질화된 무엇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매우 불균형하고 정돈되지 않은 환경에서 샘솟는다. 남녀가 만나 대화하고,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몸을 섞고 그럼으로써 영혼을 이어가기까지는 어긋나는 일이 너무 많고, 속도가 너무 더디며, 이루기보다는 그렇지 못하는 것이 더 많은 법이다. 거기서 음악 프로의 사연이 나오고 소설이 나오고 영화가 나온다.

    무엇보다 1990년대의 사랑은 지금에 비해서는 턱없이 가난했다. 가난이라고 하는 것이 결코 청춘의 대명사는 아니지만(‘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의 말은 신자본주의 환경에서 나온 특권의식의 발로이다.) 이상하게도 사랑을 하는 젊은이들은 가난할 때가 많다. 가난한 사랑에는 이야깃거리가 많다. 느린 사랑에는 추억이 많다. 바로 당장 통신이 이루어지기보다는 저녁 6시에 전화를 하자며 공중전화와 사무실 전화를 쳐다보면서 이제나 저제나 낮 1시부터 5시간을 기다리게 될 때 비로소 설렘이란 실체를 깨닫게 된다. 그 마음 속 태풍을 알게 될 때 인생을 알게 된다. 그 인지와 인식은 삶을 살면서 그리 쉽게 그리고 자주 경험하는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는다. 스스로 획득하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값진 것이다. 그래서 그 감정을 쉽게 잊지 못한다. 사랑의 정염과 그 기억을 갖게 된 사람은 그 비포와 이후가 현격하게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미수가 그렇고 현우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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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이 둘의 사랑은 결실을 맺을까. 영화를 보면서는 살짝 이 둘의 연애가 실패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솔직히 말하면 그걸 기대하거나 예상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으니까. 진정으로 원했던 여자 혹은 남자와 살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진짜 사랑은 이루지 못한 사랑이다. 미수가 다니는 출판사의 사장 종우(박해준)는 재벌 아들쯤으로 보이는데(전두환의 큰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느끼하게, 좀 흐느적거리며 미수에게 접근한다. 최고급 승용차인 마세라티를 타고 다니는 그는 자신이 가진 부를 그리 악의적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저 편리한 수단으로 이용하려 할 뿐이다. 그는 별로 야비하지 않게 미수를 현우에게서 가로채려한다. 돈이 많은 남자는 가난한 청년에게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

    “너는… 너무 무거워. 미수를…. 가끔은 좀 가볍게 해 줘야 하지 않겠어?”

    그는 미수에게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내가 너를) 자주 웃게 해줄게.”

    정지우 감독의 진심과 영화적 진실은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군사독재를 벗어났고 IMF를 막 겪으면서 시대가 점점 세련된 도시처럼 변모해 갔던 1990년대에 사람들도, 연인들도, 사랑들도, 다 똑같이 변화하고 변질해 갔음을, 우리 모두 그처럼 ‘변절한’ 시대의 공동정범임을 지적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때 우리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고 굴복했듯이 두 주인공이 벌여 놓은 사랑의 결말도 예상 외의 지점으로 치닫게 만든다. 이 영화가 상업적으로는 완성된 듯이 보이지만 미학적으로는 미완성처럼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결말 때문에 호오가 엇갈릴 것이다. 근데 뭐 괜찮다. 사랑은, 사랑이야기는 늘 모자란 법이기 때문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9호 (2019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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