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동진의 명화극장] 영화 <주전장> 이 정도로 위안부를 왜곡했나?

    입력 : 2019.07.29 15:51:45

  • 이 글은 무슨 선언문처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1980년대 대학가에 붙었던 격문처럼. 피가 끓는 심정으로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SBS드라마 <녹두꽃>의 마지막회 바로 전 회에서 동학군의 별동대장 백이강(조정석)이 해냈던 군중연설처럼 펑펑 눈물이 나게끔 써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주전장>을 보기 전까지, 이 영화가 아무리 화제를 모아온 작품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더라도(일본 내 극우파들의 영화 상영 반대운동으로) 다소 심드렁했던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역사적 책임을 묻는 운동에 있어 앞장서 있다고 생각해 왔다. 아, 그런데 주여 부끄럽도다.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의 <주전장(主戰場)>을 보고 그런 내 가면이 한꺼풀 벗겨졌음을 깨달았다. 나는 과연 이 위안부 문제를 역사의 전면에 내세우고 일본의 우파들과 한판 전면전을 붙을 태세와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자성하게 됐다. 그만큼 영화 <주전장>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불러 세운다. 일본인들이 이 정도였나. 이 정도로 왜곡을 일삼고 있었나. 우리 모두 일본이란 나라에가고, 일본의 술과 음식·문화에 매혹되는 와중에 어느 새 과거 역사의 정면을 마주하는 일에 게으르다 못해 이제는 망각에 이르지 않았나. 자성을 하게 된다. 더욱이 그렇다면 우리는 이 위안부 문제가 현재의 한·일 외교의 문제뿐만 아니라 두 나라 모두에 존재하는 인종차별과 파시즘, 성차별의 문제까지 얼마나 깊이 연결돼 있는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살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실로 오호 통재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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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주전장>은 스스로를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는 미키 데자키가 어느 날 훅 깨달은 바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위안부를 둘러싼 논쟁에서 일본 우파들 혹은 거기에 영향을 받거나 조종되는 미국인들, 그리고 미국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 상당수가 ‘왜 하나같이 당시 일본의 국가적 성범죄행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걸 주장하는 모든 목소리는 거짓이라고 하는지(심지어 위안부로 끌려갔던 한국 할머니들의 육성 증언까지도)’ 진실로 의문이 들어 마이크를 들고 다니며 직접 취재한 얘기를 담은 것이다. <주전장>은 그래서 역설적으로 후지키 이치, 켄트 길버트, 스키다 미오, 메라 코이치, 후지오카 노부가츠, 카세 히데야키 등 일본 내 극우 인사들의 코멘트를 직접 들을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들 모두는 하나같이 위안부 문제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며 그렇기 때문에 거짓이라고 얘기한다. <주전장>을 통해 이들의 얘기를 보고 듣고 있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저렇게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일까 하는 좌절감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된다. 같은 문제를 가지고, 명확한 팩트를 가지고 어떻게 저런 식으로 왜곡하고 스스로에게 그 잘못이 아니라고 믿게끔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사람을 저렇게 만드는 기제(機制)는 과연 무엇일까 회의를 갖게 만든다. 스키타 미오라는 이름의 일본 자유민주당 소속의 국회의원은 한국인이든 아니든, 양식이 있고 역사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응당 ‘매질을 가하고 싶을 만큼’ 분노 게이지를 촉진시킨다. 그녀는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며 돈을 받은 만큼 매춘부이고 자유시간과 강제성이 없었기 때문에 성노예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국가가 위안소를 운영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이의 발언을 보고 있으면 저런 행태야말로 현 아베 정권의 역사에 대한 현실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혼란스러워진다. 아베 내각이 일제 강제 징용 문제를 가지고 한국에 대해 경제적 보복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뿌리를 깨닫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본의 군국주의와 파쇼적 제국주의의 행태가 계속되고 있고 그것에 대한 향수가 일본의 오피니언 리더들에 의해 조장되고 확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일본의원연맹 카세 히데야키 도쿄 본부장의 발언은 참담하다 못해 코믹할 지경이다. 그는 “구소련처럼 중화인민공화국이 사멸하면 한국은 당장 친일 국가가 될 것이다. 한국은 못된 꼬마처럼 귀여운 구석이 있는 나라다”라며 “위안부 문제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이 무슨 해괴한 사고(思考)인가. 미친 것 아닌가. 그에게 저런 생각을 주입한 일본의 정계는 얼마나 괴물 같은 집단인가.

    그래서 이 다큐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든다. 카세 히데야키. 국가 지도자급의 생각이 이 정도라면 진정 일본이란 나라의 미래는 없는 셈이다. 미키 데자키 감독 역시 이 사람이 얼마나 병적인 인물인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한 마디 덧붙인다. 그는 오노 요코의 사촌이라고. 존 레논의 부인 오노 요코도 솔직히 정상은 아니었던 인물이다. 그 병적인 면이 예술로 나타났으니 다행이었지.

    그밖에도 기억해야 할 기관들이 많다. ‘위안부의 진실을 위한 국민운동’ ‘역사적 사실 보급협회’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등이다. 진실로, 진실로 이들의 이름 역시 기억돼야 한다. 역사의 공적(公敵)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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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키 데자키의 다큐를 보고 있으면 몇 가지의 단상이 떠오른다. 어떻게 이 많은 일을 혼자 다 해냈을까 하는 것이 제일 먼저다. 그는 이 영화의 제작, 연출, 구성, 촬영, 편집을 모두 다 해냈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찾아내고 쫓아다니며 인터뷰를 해냈다. 이건 명철한 두뇌와 올바른 역사의식만으로는 부족하다. 끈질긴 신념이 있어야 한다. 무릇 다큐는 의지로 만드는 것이다. <주전장>은 바로 그 점을 보여준다. 두 번째로는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다 참고 만났을까, 인터뷰 도중 논쟁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당신의 다큐가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묻고 답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알고 있는지 되묻고 싶을 정도다. 이 다큐는 진실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큐가 추구하는 정통 기법이다. 다큐를 만드는 사람은 있는 사실만 보여주고 판단은 보는 사람이 하는 것인데 <주전장>만큼 이에 충실한 작품도 없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위안부 문제의 실체를 알게 되고 그 답을 찾게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다큐야말로 사람들로 하여금 역사 문제에 대해 실천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어쩌면 영화가 갖는 궁극의 파워일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의외로 가슴에 한방을 먹이는 사람과 그의 스피치가 있다. 미국의 보수 정객인 로널드 레이건이다. 그는 진주만 침공 이후 미국이 일본계 미국인 12만 명을 강제로 끌고 가 수용한 사실에 대해 이렇게 공식 사과한다.

    “지금 서명하는 이 법안에 따라 아직 생존해 있는 6만 명의 미국 내 일본인들에게 배상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보상도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번 배상은 돈이 아니라 명예회복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을 인정합니다. 법에 의해 평등한 정의를 지키는 국가로서 도리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매카시가 만든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서 레이건은 동료 작가, 감독들을 공산주의자라고 고발하고 혼자 살아남았던 전력의 소유자다. 레이건은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숱한 사건을 일으켰는데 이란-콘트라 반군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레이건이 저럴진대 아베와 한·일의 극우주의자들은 깨달음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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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전장>은 과거 얘기만 하는 작품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신(新)일본 제국주의의 시대에 우리가 그들에 맞서 어떤 전투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주전장>은 지금 당장, 한국과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적 문제에 대해 그 답을 요구하는 작품이다. 주전장은 바로 여기, 지금인 것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7호 (2019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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