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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의 인문학산책 ④ 톨스토이즘과 기독교의 내밀한 관계
입력 : 2019.05.08 17:2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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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은 살인혐의를 받고 있는 창녀 카투샤가 법정에 출정하기 위해 교도소 감방을 나서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카투샤는 어머니가 죽자 지주에게 맡겨져 자란다. 그는 18세가 되던 해 지주의 조카인 네흘루도프 공작과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공작이 떠나버리자 카투사는 주인집을 나와 아이를 키우며 어렵게 살다 창녀로 전락한다. 그러던 중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쓴 채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법정에 배심원으로 나온 사람 중에는 카투샤의 운명을 나락으로 빠뜨린 장본인 네흘루도프가 있었다. 법정에서 카투샤를 본 네흘루도프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괴로워하다 감옥으로 그녀를 찾아가 용서를 빈다. 하지만 카투샤는 그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네흘루도프는 카투샤의 구명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그녀는 결국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게 된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네흘루도프는 카투샤를 따라 열차에 올라 시베리아로 간다. 하지만 카투샤는 수용소에서 만난 폐병을 앓는 정치범 시몬스에게서 청혼을 받게 되고 이것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사실 카투샤는 시몬스를 사랑했다기보다는 자기로 인해 네흘루도프의 인생이 망가지는 걸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네흘루도프를 사랑하고 있었다.
카투샤는 의지대로 폐병으로 죽어가는 정치범 시몬스를 돌보는 생을 선택한다. 이 모습을 지켜본 네흘루도프는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곧 전 인류를 구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카투샤를 시몬스에게 떠나 보낸 네흘루도프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데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줄거리에서 대충 짐작이 가듯이 <부활>은 기독교적 가치관 위에 세워진 작품이다. 유럽과 러시아, 미국과 남미 작가들에게 기독교가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서구문명이라는 것이 결국 그리스 로마 문명과 기독교 문명 양대 축을 바탕으로 성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구의 유명 문학작품들에는 대부분 기독교적 가치관과 상상력이 녹아있게 마련이다. 물론 나라나 지역에 따라 로마 가톨릭으로, 혹은 개신교로, 아니면 정교회나 성공회로 형식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결국 서구 정신문명의 뿌리에는 기독교라는 세계관과 가치관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산상수훈(山上垂訓)’이라고 부르는 연설은 예수의 말씀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부분이다. 신약성서 <마태복음서> 5~7장에 기록되어 있는 설교를 기록한 부분인데 ‘산상설교’라고 불리기도 한다. 도덕적인 삶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을 대변하고 있는 부분이다. “누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는 유명한 구절도 여기에 나온다. 참된 신앙의 본질에 관한 가르침이 짤막한 비유로 제시되고 있는 산상수훈은 오랫동안 수도생활의 전형적 규범으로 자리잡아왔다. 레프 톨스토이는 이 산상수훈을 기본 골격으로 자신의 철학적 토대를 완성했다. 도덕적 무소유, 무저항주의 등으로 대변되는 톨스토이즘은 인간 톨스토이의 삶을 보여주는 단서이면서 그의 문학을 분석할 때 꼭 필요한 핵심 키워드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톨스토이는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쾌락주의자였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등을 펴내며 인기를 누리던 무렵까지 톨스토이는 부족한 것이 없는 작가였다. 그러나 40대 중반부터 불현듯 찾아온 삶에 대한 회의는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1880년 이후 그는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기독교적 인간애를 근간으로 하는 톨스토이즘을 체계화한다. 1899년 발표된 <부활>은 기독교 윤리에 바탕을 둔 톨스토이즘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주인공 네흘루도프는 이렇게 독백한다. “비록 이로 인하여 무슨 뜻밖의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나를 구속하고 있는 이 허위를 깨뜨려 버리자.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하자. 비열한 사나이로 지금까지 거짓으로 살아 왔다고 고백을 하자. 유산도 진실에 따라 처분하자. 그리고 그녀 카투샤에게 나는 비열한 남자고, 당신에게 죄 지은 인간이라고 말하자. 앞으로 당신이 짊어질 운명을 덜어주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하자. 그렇다. 그녀를 만나 용서를 구하자. 어린애가 잘못을 빌듯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자.”
“주여 저를 도와주소서. 제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제 마음 속에 깃들어 저의 온갖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 주십시오.”
로맹 롤랑은 <부활>을 ‘예술적 성경’이라 말했다. 소설 <부활>의 핵심을 가장 예리하게 상징하는 말이다. 톨스토이가 <부활>을 완성하기까지는 십 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톨스토이는 두 남녀 주인공의 문제뿐만 아니라 당대 러시아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까지 작품 속에 흡수시키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주인공 네흘루도프는 당대의 대중들에게 기독교 정신으로 각성할 것을 촉구한다. 도덕적 결단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주인공을 등장시킨 것도 계몽을 염두에 둔 것이라 볼 수 있다. <부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자신이 목격한 그 모든 참상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그것을 척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제야 분명하게 깨달았다. 그가 여태껏 찾지 못한 해답은 바로 예수가 베드로에게 준 해답과 같은 것이었다. 항상 모든 이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 타인을 벌하고 교정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용서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기독교 코드로 서구문학을 들여다보면 문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생긴다.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교와 불교 토속신앙을 알아야 하듯 말이다.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4호 (2019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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