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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가 윤덕노의 음食經제] 견과에 담긴 행복과 장수만세의 역사
입력 : 2019.02.14 14: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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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중에서도 1, 2월에는 이래저래 견과류를 먹을 일이 많이 생긴다. 정월 대보름에는 부럼으로 땅콩을 비롯해 호두, 잣 한두 개쯤은 깨먹기 마련이고 설날 음식에도 알게 모르게 견과가 심심치 않게 들어 있다. 수정과, 식혜에 동동 띄워 마시는 잣을 비롯해 차례 상에 올리는 강정에도 다양한 견과가 박혀 있다.
사람들은 견과류에 왜 이런 환상을 품게 됐을까? 우리가 언제 어떻게 호두와 잣, 땅콩과 아몬드 등의 견과를 먹게 됐는지를 알아보면 그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견과류를 많이 먹는 달에 간단하게 견과의 역사를 들여다보자.
먼저 땅콩은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 몸에 좋은 필수 지방산 등이 풍부해 장수열매라는 뜻에서 장생과(長生果)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땅콩이 우리 입에 들어오기까지 참으로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남미가 원산지인 땅콩은 노예의 음식이었다. 지금은 맛있는 영양 간식으로, 맥주 안주나 요리 재료로 인기가 높지만 예전에는 노예들이 주로 먹었다. 땅콩이 세계로 퍼진 과정부터 철저하게 노예와 관련이 있다.
아메리카 대륙 발견 초기, 남미에서도 땅콩은 브라질에서 많이 자랐다. 원주민이 땅콩 먹는 모습을 본 포르투갈 상인이 종자를 아프리카에 가져가 심었다. 노예사냥으로 잡은 흑인에게 줄 식량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미에서 아프리카로 전해졌던 땅콩이 18세기에 지구 한 바퀴를 돌아 이번에는 북미로 전해졌다. 미국 남부의 백인 농장주가 돼지를 비롯한 가축사료, 그리고 노예에게 먹일 음식으로 땅콩을 심으면서 미국에서 땅콩의 대량 재배가 시작됐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땅콩은 인기 식품이 아니었다. 주로 흑인이 먹던 싸구려 음식이었을 뿐이다. 뉴욕의 거리 포장마차에 볶은 땅콩이 등장한 것도 20세기 이후부터다.
땅콩과 아몬드, 쌍벽을 이루는 인기 견과류인데 둘 중 우리나라에는 어느 것이 먼저 전해졌을까? 대부분 땅콩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아몬드가 훨씬 빨랐다. 땅콩은 원산지가 남미인 반면 아몬드는 옛날 서역이라고 불렀던 페르시아다. 아몬드의 전래시기가 땅콩보다 빠른 것이 어떤 면에서는 당연했다.
땅콩은 18세기 말 조선 정조 때 사신을 따라 중국에 갔던 실학자 이덕무가 처음 구경했다. 조선에서 실제 땅콩을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00년 후인 19세기 말이다. 반면 아몬드는 정조 때 이미 한양에 있었다. 실학자 이덕무가 역시 아몬드 관련 기록을 <청장관전서>에 남겼다. 남산 입구의 어떤 복숭아나무에 납작한 열매가 열렸는데 사람들이 감복숭아라고 일컬을 뿐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진품으로 여기는 줄 알지 못한다고 적었다. 여기서 감복숭아가 아몬드다. 참고로 아몬드는 정확하게는 견과류가 아니라 복숭아처럼 생긴 열매의 씨앗이다. 요약하면 이덕무가 북경에서 처음 땅콩을 보고 신기해할 때 한양에는 이미 아몬드 나무가 있었던 것인데 다만 당시 조선 사람들은 용도를 제대로 몰랐을 뿐이다. 그런데 서역에서 아몬드를 얼마나 보배로 여겼기에 멀리 조선에까지 소문이 났을까? 서양에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예컨대 서양 결혼식에 참석하면 답례품으로 작은 상자에 아몬드 사탕 다섯 알을 담아주기도 한다. 유럽 귀족사회에서 이어진 풍속이다. 중세에는 설탕이 최고 사치품이었던 데다 아몬드 역시 아랍에서 수입한 값비싼 견과류였기에 고급 선물이 됐다. 특히 다섯 알의 아몬드는 각각 행복, 건강, 재산, 장수, 다산을 의미했다. 이렇듯 아랍과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아몬드가 생명력과 행복의 상징으로 쓰였다.
유럽에서 아몬드가 꿈의 견과였다면 옛날 동양인이 환상을 품었던 대표 견과류는 호두였다. 호두나무에 신성한 힘이 있어 나쁜 귀신을 쫓는다고 믿었고 열매인 호두 역시 재앙을 막아주고 좋은 기운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현대에 이어지고 있는 믿음의 흔적이 정월 대보름 부럼이다.
호두를 깨먹고 모양 좋은 호두를 골라 손에 올려놓고 굴리는데, 이렇게 하면 물리적으로 손바닥 기혈의 순환을 도와 건강에도 좋고 나쁜 기운을 쫓아 1년 동안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런 만큼 호두의 별칭도 다양해 오래 사는 열매인 장수과, 만년을 살 수 있는 씨앗으로 불렸다.
그까짓 호두 하나를 놓고 왜 이런 환상을 품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옛날에는 호두가 멀리서 전해진 귀한 열매였기 때문일 것이다.
호두(胡桃)는 한자로 서역 오랑캐 땅에서 전해진 복숭아라는 뜻이다. 아몬드처럼 호두는 씨앗이고 열매는 복숭아 모양이어서 생긴 이름이다. 기원전 2세기에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일대인 안식국에서 석류, 포도와 함께 전해졌다고 하는데, 실크로드 초기에 들어 온 서역의 열매인 만큼 당시에는 엄청나게 귀해 황제의 정원에 심었다.
하지만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호두가 좋다며 호두에 빠져 지내다 나라를 말아 먹은 임금도 있었다. 중국 명 희종 주유교가 그 주인공이다. 호두를 얼마나 애지중지 여겼는지 하루 종일 손에서 호두를 떼어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라 일을 잊은 채 껍질에 조각을 하며 놀았다고 한다. 그렇게 명나라 쇠약에 일조를 했다.
호두에 버금가는 장수식품이 잣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다. 조선 최고 의학서인 <동의보감>과 명나라 대표 의서인 <본초강목>에 나오는 잣에 대한 평가에 차이가 있다. <동의보감>에는 “잣을 먹으면 피부에 윤기가 돌고 오장이 살찌며 허한 기운이 채워진다”면서 담담하게 사실적으로 잣을 평가한 반면 <본초강목>은 “장기간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오래 살 수 있으며 늙지도 않는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얼핏 중국 특유의 과장법이 아닌가 싶지만 이렇게 표현의 차이가 생긴 데는 이유가 있다. 잣의 차이 때문으로 보이는데 지금도 국산 잣과 중국산 잣은 품질을 다르게 평가하지만 옛날부터 잣은 우리나라 잣을 최고로 여겼다.
10세기 무렵의 <해약본초>라는 문헌에는 신라의 잣은 맛이 달고 성질이 따뜻하며 맛이 향기롭다고 극찬을 해 놓았고 <청이록>에는 신라에서 사신이 올 때마다 매번 잣을 가져 오는데 사람들이 이를 보배로 여긴다고 했으니, 때문에 <본초강목>에서는 우리나라 잣을 신라 잣이라고 부르며 특별 취급했고 불로초처럼 여겼다. 반면 <동의보감>에서는 우리나라에는 곳곳에 질 좋은 잣이 많이 나온다고 담담하게 기술했으니 결국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의 평가는 희소가치가 만들어낸 차이가 아닌가 싶다.
동서양 모두 견과류를 건강식품, 행복의 열매로 여겼지만 그중에서도 피스타치오는 특별한 견과다. 영양 면에서 다른 견과에 비해 특별히 더 나을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성경에는 귀한 사람에게 바치는 예물, 이슬람 전설에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갖고 나온 천상의 열매라고 나온다. 그런데 이렇게 각별하게 여겼던 이유가 재미있다.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피스타치오를 해피너트, 행복의 견과라고 했다. 껍질이 반쯤 열린 상태에서 열매가 크기 때문에 그 모습이 마치 열매가 웃고 있는 것 같아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그 때문인지 연인들이 달밤에 피스타치오 나무 아래서 만나 열매껍질 벌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행복과 행운이 깃든다고 믿었다는데, 좋아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 복이 오는 것처럼 옛날부터 견과류를 장수식품으로 여긴 것 역시 영양가도 높지만 귀했기 때문이건 아니면 그 자체로 맛있었기 때문이건, 먹으면 웃음이 나오는 열매였기에 장수의 상징이 된 것이 아닐까?
심심풀이 땅콩이 됐건 식혜에 띄운 잣 한 알이 됐건 즐겁게 먹으며 웃음으로 행복한 하루를 열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장수의 비결이 아닐까 싶다.
[윤덕노 음식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1호 (2019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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