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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프로젝트] 새해 초 등반한 덕유산 향적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雪國, 미세먼지가 뭐예요
입력 : 2019.02.14 14: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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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익는 냄새가 그득한 홀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불판 위에 지글대며 익어가는 오겹살 한 덩이를 그냥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품이 심상찮다. 오겹살 입장에선 버얼건 생살이 익다 못해 시커멓게 타들어가니 뒤집어달라고 아우성인데, 옆 좌석에서도 들리는 그 짜글대는 소리를 들었는지 말았는지 초점 없는 눈 4개가 빠알갛게 충혈돼 있었다. ‘둘이 초상집이라도 다녀왔나?’싶어 슬쩍 곁눈질로 바라보니, 깡 소주만 연거푸 두서너 잔째다. 드디어 좀 어리다 싶은, 그럼에도 중년 즈음인 이가 말문을 열었다.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갈 걸, 주변 사람들에게 왜 그리 잘한 건지 원…. 좋은 사람 갔어요.”
(아, 얼추 상가에 다녀온 게 맞나 싶다. 그것도 젊은 사람이 갔구먼.)
“그러게 좀 더 모질게 굴었으면 좋았을 걸, 사람이 나가는데 누구 하나 걱정해주는 이도 없고. 그냥 눈에 안보이면 그만이니….”
(나가? 나가다니, 죽은 게 아니고?)
“데리고 있던 개가 없어져도 주변을 살펴보는데… 모시던 상사가 나가는데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네요… 짐 좀 챙겨달라는 전활 받았을 땐 얼굴이 다 화끈거리더라구요.”
아… 대충 감이 오는 상황이다. 우연찮게 옆자리 앉아 귀동냥하게 된 사연은 이랬다. 국내 굴지의 그룹 계열사에 다니는 두 사람이 오겹살을 등지고 푸념하는 건 지난 1년간 모셨던 상무의 부재 때문이었다. 상무는 지난해 말 인사이동에서 미끄러졌다. 1년 전만 해도 든든한 분이 상무가 됐다며 호들갑 떨던 부서원들은 인사공고가 나자 서로 아무 말 없이 업무에만 몰두했다. 상무의 후임이 누구인지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었다. 그만큼 갑작스러운 인사였고 그를 따르던 이들에겐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불가능한 일을 맡겨놓고 왜 완성하지 못했냐니, 그거 처음부터 나가라고 맡겨 논 거 아닙니까? 그래도 7부 능선까지 왔는데 결과는 내고 내보내든지 해야지.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거 같아서 그게 더….”
“말 마라. 사내 정치란 게 그런 거지…. 상무가 처음부터 군말 없이 그 일을 맡으려고 할 때 말렸어야 했는데…. 그건 그렇고 아니 다른 사람들은 왜 그리 차갑게 굴어? 같이 있을 때 웃고 떠들고 얼마나 분위기 좋았어? 각자도생이라더니 참나.”
인사공고가 난 후 상무는 사내에서 자취를 감췄다. 마주앉은 두 사람이 대충 짐은 정리했지만 두어 달이 지나도록 사무실 한쪽에 놔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며칠 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연락이 왔다.
“별일 없지? 안 그래도 미안한 참인데, 내 짐 좀 챙겨줘. 7시 경에 회사 주차장으로 갈 테니 부탁하네.”
주차장에서 만난 상무는 핼쑥했다. 소아과 의사라는 부인이 상무의 한쪽 팔을 꼭 붙잡고 있었다.
“두어 달 동안 이 산 저 산 정상에 발자국 찍었다는 말… 그게 왜 그리 짠했는지 모르겠어요. 산봉우리에 올라본 게 언젠지도 모르겠네. 아, 술 떨어졌네. 이모 여기 한 병 더!”
푸념이 한숨으로 한숨이 한잔으로 한잔이 한 병을 부를 즈음 불판 위의 오겹살이 까맣게 익었다. 두 사람은 고기 대신 불판을 갈았다.
‘산봉우리에 올라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던 선술집 그이의 말이 머리에 맴돈 탓인지, 이번엔 둘레길보다 산 정상에 마음이 끌렸다. 발걸음을 옮긴 곳은 국내 최고의 눈꽃 산행지로 손꼽히는 덕유산, 그것도 무려 1614m나 되는 향적봉이다.
4000m 봉우리가 널리고 널린 스위스 어느 골짜기와 비교하면 살짝 초라할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4번째로 높은, 그야말로 위풍당당한 봉우리다. 그럼에도 이 향적봉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겨울이면 누구나 정상에 발자국을 찍는다. 아무리 쉽게 오를 수 있는 봉우리라도 만만히 보면 안되는 게 겨울산인 건 분명한데, 이 불변의 법칙에 살짝 방향을 튼 건 무주리조트에서 운행하는 곤돌라 덕분이다. 산악인들 입장에서야 정상까지 이거 뭐 거저먹는 유랑이지만 산이 익숙지 않은 일반인들에겐 이런 꿀맛이 없다.
덕유산은 무주와 장수, 경남 거창과 함양 등 4개 군에 걸쳐 있다. 향적봉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산줄기가 30㎞에 이른다. 이중환의 <택리지>를 보면 “덕유산은 흙산으로 난리를 겪을 때에 숨어들면 적군이 찾지 못한 데서 덕(德)이 큰 산”이라고 했단다. 정상에 서면 첩첩산중이 발밑이다. 높고 낮은 봉우리가 화려하고 엄숙하다.
곤돌라 승강장 반대편에 다다르면 향적봉으로 이르는 길이 나온다. 나무데크로 계단을 만들어 오르기 편하게 해놨지만 이 길도 눈이 쌓이고 얼어 미끄럽다. 아이젠을 준비하거나 빌려(2000~3000원이면 빌릴 수 있다) 착용하는 게 우선이다.
· 대중교통 대중교통은 무주읍을 경유한다. 무주읍에서 무주리조트로 가는 버스는 수시로 운행된다. 스키시즌인 겨울엔 무주리조트에서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서울에서 KTX를 이용한다면 대전역에 내려 대전복합터미널에서 무주터미널로 이동, 무주리조트까지 운행되는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해돋이를 보고 싶다면 무주리조트는 호텔과 콘도, 유스호스텔 등 다양한 숙박시설로 구성돼 있다. 리조트 입구에도 모텔과 민박 등이 곳곳에 자리했다. 향적봉에서 해돋이와 해넘이를 즐기려면 향적봉 대피소(063-322-1614)에서의 1박2일도 좋은 추억이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1호 (2019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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