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동진의 명화극장] 영화 <극한직업> 웃다가 자빠질 만큼 재미있다

    입력 : 2019.02.01 16:03:14

  • 모든 건 다 수원 왕갈비 때문이다. 과격하기만 하고 온갖 말썽과 푼수 짓을 도맡아 하는 마 형사가 수원 출신이라는 게 화근이었다. 어릴 적 그의 어머니가 수원에서 왕갈비 집을 했고 그는 자연스럽게 수원식 갈비양념을 할 줄 알게 됐는데, 이걸 치킨과 섞어 일명 ‘수원 왕갈비 양념치킨’을 만든 것이 결정타가 됐다. 마약반 형사 전원이 잠복근무로 시작한 일인데 이제는 치킨이 대박 나는 바람에 이들 모두 실로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돈 맛, 살맛을 보게 된 것이다.

    얘기가 너무 앞서 나갔다. 오랜만에 만나는 포복절도 코믹 수사영화 <극한직업>을 설명하려면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야 한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 이 영화, 한 마디로 웃다가 거품을 물 만큼 재미가 있다. 근데 이렇게 웃긴 영화는 대개 사람들한테 전달할 때 말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왔다 갔다 하게 된다. 웃긴 장면을 빨리 얘기하고 싶은, 성 마른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영화 <극한직업>은 서울 마포서 마약반 얘기다. 팀장은 고 반장(류승룡)이고 팀원들은 장 형사(이하늬)와 마 형사(진선규), 영호(이동휘), 재훈(공명) 네 명이다. 이들은 번번이 범인 체포에 실패해 왔는데 마약 밀매 조직의 두목 이무배(신하균)와 테드 창(오정세)은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리고 보란 듯이 대규모 거래를 꾸미는 중이다. 고 반장의 마약반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서장(김의성)은 마약반 해체나 팀장 및 팀원의 전원교체를 시사한 지 오래다. 고 반장은 경찰서 내 다른 후배들조차 반장에서 과장으로 승진한 지 오래여서 그것 때문에도 수모를 당하기 일쑤다. 이들은 이무배와 테드 창의 거래 현장을 잡기 위해 일생일대 마지막 잠복근무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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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 잠복 장소가 다 쓰러져 가는 치킨 집이다. 반장은 퇴직금을 미리 꺼내 보증금을 치렀다. 그로서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는 셈이 된다. 팀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더 이상 뭘 어쩌겠는가. 근데 이 치킨 집, 손님이 하나도 없으니 처음엔 안성맞춤이라고 생각들 했다. 문제는 치킨 집으로 위장한 이상 음식을 안 팔 수 없는 노릇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가뭄에 가랑비 내리듯 들어 온 손님에게 치킨을 만들어 내 준 것이 엉뚱한 결과를 가져 오게 된다. 하필 주문이 양념치킨이었다. 주문이 들어오자 부지불식간에 마 형사 입에서 나온 것이 ‘수원 왕갈비 양념’ 얘기다. 마 형사는 어깨너머 배운 조리 실력으로 양념치킨을 만들고 사람들은 이 맛에 열광하기 시작한다. 치킨 집은 대박이 난다. 고 반장과 팀원들의 각자 맡은 바 임무가 마약 조직 탐지 및 추적, 범인 체포 등에서 각각 주방과 홀 서비스, 배달 등등으로 바뀌는, 촌극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하루 매상이 어마어마해진다. 치킨 집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연일 맛집으로 퍼져 나간다. 자, 그렇다면 ‘수사를 계속 해 나갈 것이냐, 아니면 치킨장사를 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가 마약반의 절체절명의 과제로 떠오른다. 자꾸 이 햄릿 대사 아닌 햄릿 대사 같은 얘기가, 고 반장이 주문 전화를 받을 때마다 되뇌는 홍보 문구와 뒤섞인다. 고 반장은 이런 멘트를 달고 산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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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가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지점은 바로 그 오버랩의 경계선에서 벌어지는 촌철살인의 대사와 슬랩스틱 때문이다.

    <극한직업>을 보고 있으면 제목이 참으로 경쾌하고 발칙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마약반 형사는 극한 직업이 맞다. 허구한 날 잠복에 뭐에 한 달 동안 집에 제대로 들어가는 날이 며칠밖에 안될 정도다. 고 반장이 집에 들어 갈 때 처음 하는 일이라곤 밖에서 갈아입은 속옷과 양말을 쇼핑백에 담아 아내(김지영)에게 주는 것이다. 아내는 ‘그놈의’ 쇼핑백에 늘 격분을 한다. 종이 백만큼은 구찌(GUCCI)이기 때문이다. 형사라면 늘 현장에서는 ‘개’고생하고, 경찰 조직 안에서는 칼 같은 수직 계급 문화에 주눅 들어 살아야 하며, 집에서는 또 박봉의 일상 때문에 대접다운 대접을 받고 살기 힘든 직업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얘기하는 ‘극한의’ 직업은 단순히 형사의 업무만 겨냥한 것이 아니다.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직업, 치킨 집 역시 극한 직업의 하나라는 것을 애기하고 있음을, 영화를 보다 보면 슬슬 알게 해 준다. 형사든 치킨 집 사장이든 모두가 이 엄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굽신굽신 살아가야 하는’ 소시민인 건 매한가지이다. 한편으로는 대박 인생을 꿈꾸지만 그건 실로 예기치 못한 곳에서 갑자기 날아들어오는 행운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마약 조직 두목 신하균은 끈덕지게 따라 붙는 고 반장과 피 터지는 싸움 도중 이렇게 묻는다. 고 반장은 고 반장대로 이렇게 외친다. 근데 그 의미가 심장하다.

    “그냥 치킨이나 팔고 있지, 왜 이렇게 목숨 걸고 그러냐아~.” “자영업자들도 모두 목숨 걸고 장사하는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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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위무(慰撫) 방식 중 하나가 사람들을 웃게 하고 즐겁게 만드는 것이라면 이 영화 <극한직업>은 그 역할과 기능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다. 지난 2~3년간 한국영화를 보면서 마음 툭 열고 속 시원하게 웃은 적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반추하면 이 영화는 사람들에게 뒤늦게 찾아 온 산타의 선물 같은 느낌을 준다. 코미디 영화가 사람들을 웃기려면 아주 적절하게 비벼진 비빔밥처럼 촌철살인의 대사와 그 대사가 이어지는 리듬, 엇박자의 액션들, 슬랩스틱과 표정 연기, 아이러니한 상황 등등을 한 시퀀스에 담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나리오와 연출, 배우들의 연기 하나하나가 진정으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 코미디 영화가 완성도를 이뤄 내기 어렵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영화 <극한직업>은 코미디 영화의 본질을 제대로 간파한 젊은 감독 이병헌의 성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병헌 감독은 독립영화 <힘내세요 병헌씨>로 두각을 나타낸 후 <스물>과 <바람바람바람>을 연출한 것 외에도 다른 상업영화 감독의 각본과 각색을 맡아(<오늘의 연애> <타짜-신의 손> <써니> <레슬러> 등등) 자신의 기량을 폭넓게 인정받아 왔다. 그는 <극한직업>으로 명실공히 흥행 감독 대열에 당당히 올라가게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극한직업>의 빅 히트 예감은 어쩌면 ‘우리사회가 조금씩 웃음을 되찾아가는 시그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우리는 지난 10여 년간 웃음을 잃은 사회에서 살아왔다. 정치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너무나 해결할 일이 산적해 있는 사회였다. 그걸 간신히 바꿔내니 이제는 경제가 발목을 잡는다. 그걸 고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한숨만 푹푹 쉬어 왔던 터다. <극한직업>과 같은 코미디 영화의 재등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체된 사회 분위기가 서서히 바닥을 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는 늘 사회를 앞서 읽어 낸다. 이번에도 그랬으면 좋겠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1호 (2019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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