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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명화극장] 영화 `해피 댄싱` 춤추고 왁자지껄 하지만 서럽고도 서운한…
입력 : 2018.12.04 15: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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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피 댄싱>은 제목과는 달리, 밝고 즐거우며 발랄하면서도 마음껏 춤을 추거나 혹은 춤을 추고 싶게 만드는 내용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마냥 우울하고 어둡다는 것은 아니다. 의도된 가벼움과 명랑함이 있다. 주된 흐름은 서글픔과 그것을 이겨내는 용기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여성판 <풀 몬티>(철광산업 남자 노동자들이 전 영국수상 대처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실업자가 된 후 스트립쇼로 생계를 유지하려고 춤을 배우는 이야기. 1997년 작)라고 부르지만 그건 편의상 붙인 광고성 수식어 같다. <해피 댄싱>은 <풀 몬티>와 상당히 다른 지점에 서있다. <풀 몬티>가 노동의 권리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면 <해피 댄싱>은 노년의 권리와 그에 대한 삶을 말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아니 의식적으로 변절해서 경찰이 됐고 게다가 그 조직 안에서 승승장구한 인물이 됐다. 이를 두고 오랜만에 만난 자매는, 중국식 레스토랑에 가서 설전을 벌인다. 동생은 자신이 보수주의로 돌아선 이유에 대해 “그럼 이 나라에 애들을 누가 낳고 키울 수 있게 했냐”며 짜증을 부리고 언니 비프는 비프대로 “어쩜 그러던 인간이 경찰이 될 수 있었냐”며 쏘아 붙인다. 결국 이날의 싸움은 동생인 산드라가 중국 음식점의 지배인에게 만두를 집어 던지다 경찰에 끌려가는 해프닝으로 끝난다. 산드라는 경찰차를 타면서까지 내 남편이 남부 경찰청장이라며 패악을 부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등장인물들 대개가 곧 언니 비프의 오랜 친구인 찰리(티모시 스폴, 영국 영화의 빛나는 신 스틸러인 이 배우는 이번 영화에서 엄청나게 감량을 한 상태로 나오는데 그만큼 늙고 병들어 보인다.)와 재키(조안나 럼리) 등은 모두 자존심 있게 늙어 가려고 애쓴다. 자존심을 지켜 가면서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산드라처럼 때 늦은 버림을 받거나, 찰리처럼 아내가 중증 알츠하이머에 걸려 남편인 자신도 못 알아 본 채 행패를 부리는 신세가 될 수 있다. 항상 진한 아이섀도를 바르며 자신의 늙은 얼굴을 감춘다 한들 재키 역시 결혼을 다섯 번이나 해치우며 인생살이를 나름 굴곡 있게 살아왔다. 언니인 비프 역시 언젠가 로마에서 만나 지독한 사랑에 빠진 ‘잘생긴’ 남자가 마치 영화에서나 있는 일인 양 결혼 2주 전에 교통사고로 죽은 후에는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며 살아 온 여자다. 모두들 각자의 뼈아픈 사정을 안고 살아가는 법이다. 그걸 내세우지 않고, 안절부절하지 않으며, 요란 떨지 않고, 평정심으로 자존심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해피 댄싱>의 늙은이들, 노인들은 그러려고 노력한다. 이들이 웃고 떠들고 가능하면 연애하고 섹스하고 살아가려 하는 것은 결국 각자가 지닌 상처를 잊기 위해서다. 세상에서 잊히는 것을 받아들이되 그들 자신도 세상을 ‘주체적으로’ 잊기 위해서다. <해피 댄싱>은 그런 당당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 말에 언니 비프는 이렇게 답한다.
“적어도 그 남자, 웃고 즐기면서 떠났잖니.”
우리들의 죽음에는 웃음의 주단이 깔려 있는가. 과연 그걸 잘 준비하고 있는가. <해피 댄싱>은 의외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9호 (2018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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