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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제패 전인지의 즐거운 골프…즐기지 못하는 골프는 노동일 뿐
입력 : 2015.08.07 1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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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한 경쟁이 펼쳐지는 메이저 대회에서도 전인지의 얼굴은 밝다. 이유는 간단하다. ‘새로운 코스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라운드를 하는 것이 무척 재미있고 즐겁다’는 것이다.
생애 첫 출전한 메이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할 때에도 사실 전인지는 샷 감각과 퍼팅이 모두 좋았다. 하지만 전인지는 우승의 비결에 대해 “즐겁게 플레이를 하려고 했는데 우승까지 이어졌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우승을 놓칠 수도 있었던 마지막 18번홀 보기 상황에 대해서도 “미스 샷을 하는 상황까지도 즐겼다”고 말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전인지는 ‘재미있는 골프’로 한국과 일본, 미국의 메이저대회를 모두 정복했다.
스윙·스코어 너무 집착하면 스트레스 전인지가 즐겁게 플레이를 할 수 있는 힘은 ‘생각의 전환’이다. US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곧바로 출전한 BMW레이디스 챔피언십 첫날 전인지는 인터뷰에서 “US여자오픈 최종라운드에서 홀에 큼지막하게 서 있는 리더보드를 안 볼 수가 없었다. 사실 리더보드를 계속 보면서 라운드를 했다”고 밝혔다. 보통 경험이 없는 선수들이 막판에 리더보드를 보며 긴장하는 것과는 다르다. “꼭 버디를 잡아야 한다. 아니면 파를 꼭 잡아야 우승을 할 수 있다고 생각 하면 몸과 마음이 모두 얼어붙는다. 그러면 스윙은 사실상 끝난다”고 말한 전인지는 “하지만 생각을 다르게 해서 ‘내가 지금 잘 치고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이번 홀도 즐겁게 공략을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면 긴장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선배 골퍼들도 전인지의 ‘즐거운 골프’에 푹 빠졌다.
일본 프로골프에서 상금왕을 달리는 이보미가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다. 시즌 초반 4개 대회 연속 준우승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던 도중 이보미는 메이저대회인 살롱파스컵에서 초청 선수로 출전한 전인지와 함께 플레이를 했다. 대회가 끝나고 이보미는 “전인지가 즐겁게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배웠다. 내 자신을 생각해보니 마음만 급하고 자꾸 실망만 하다 보니 자신감도 없어진 것을 알았다. 전인지와 플레이를 한 이후로 즐겁게 골프를 하는 것을 다시 되찾았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이보미는 바로 이어진 호켄노마도구치 레이디스에서 마지막날 6타를 줄여내며 짜릿한 시즌 첫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에 대한 열망과 욕심 때문에 잊고 있던 골프 자체의 즐거움을 깨닫고 나서 자신의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습할 때처럼 자신 있고 편안하게 쳐야 가끔 프로골퍼들이나 싱글골퍼들이 하수들에게 조언할 때 “연습장에서 치는 것처럼 편안하게 쳐라”고 한다. 연습장에서 그저 볼만 치는 그 순간. 스트레스 없는 그 순간이 최고의 샷을 날릴 수 있는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주말 골퍼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가끔 연습장에 가 보면 프로골퍼 이상으로 열심히 샷 연습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팔에는 파스를 붙이고 티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도록 샷 연습을 한다. 그 모습은 사실 ‘골프’가 아니라 ‘체력 단련’으로 느껴질 정도다. 이렇게 골프에 열성인 주말 골퍼들은 골프장에서도 특유의 집중력으로 좋은 스코어를 내고 동반자들의 지갑을 가볍게 만든다. 하지만 골프를 즐기기보다는 너무 자신의 스윙과 스코어만 생각하면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한 예를 보자. 중소기업 사장으로 있는 김 모씨(52)는 주위 사람들도 인정하는 골프 고수다. 45살에 필요를 느껴 골프에 입문한 이후 2년 만에 싱글을 기록했고 아직까지도 종종 70대 타수를 기록한다. 좀 더 잘 치고 싶어 아직도 개인 레슨을 받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인근 골프장에서 9홀 플레이를 할 정도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그의 골프 실력은 인정하면서도 같이 라운드를 하고 싶은 사람으로 손꼽지는 않는다. 미스샷이 나면 버럭 화를 내는가 하면 버디 퍼팅 때에는 그린을 사방으로 다니며 라이를 보느라 슬로플레이를 할 때도 많다. 게다가 동반자들과는 온통 골프 스윙과 기술 얘기뿐이다. 한 지인은 “김 사장이랑 라운드를 하면 너무 심각하고 재미가 없다. 스윙이 잘 안되거나 플레이가 잘 풀리지 않으면 표정이 굳어지고 화를 내니 함께 플레이를 하는 사람도 덩달아 경직이 된다. 너무 골프 자체에만 빠져 있다. 동반자를 무시하는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혹시 이 케이스를 읽고 마음이 조금 찔리는 골퍼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자신과 동반자, 자연을 모두 느껴야 제맛 골프의 매력 중 한 가지는 동반자들과 함께 푸른 잔디를 밟으며 여유 있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물론 자신이 샷을 할 때나 동반자들이 스윙을 할 때에는 관심 있게 지켜봐 주고 집중을 하면 된다. 한 가지 더. 운동 생리학이나 역학적인 측면으로 봐도 ‘즐거운 골프’는 위력적이다. 일단 과도한 긴장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몸에 쓸데없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 만큼 미스 샷을 할 확률이 줄어드는 것. 가끔 멀리건을 받고 급하게 티샷을 했을 때나 짧은 거리에 레이업을 하려고 할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왔던 기억을 떠올리면 된다. 또 스코어에 너무 집착하거나 승부에만 집중하지 않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물론 동반자들과 돈독해지는 관계는 덤이다.
많은 사람들이 골프를 떠올리면 ‘시간 낭비’, ‘돈 낭비’라고 말을 하며 “그런 골프를 왜 하느냐”고 묻는다. 그런 사람들 옆에는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스포츠에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노동일 뿐이다. 여기서 한 가지 꼭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재미있게 플레이 하는 것과 ‘정신없고’, ‘산만하게’ 라운드를 하는 것은 다르다. 라운드와 샷 하나하나에 즐거움을 느끼고 골프 코스를 공략하는 재미를 찾는다면 ‘집중’에는 해가 되지 않는다. 골프는 축구나 야구와는 다르다. 분명 스코어로는 누군가와 경쟁을 하고 비교가 된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자신의 클럽으로 자신의 골프 볼을 치며 경기를 펼친다. 자신을 잘 컨트롤 하면 좋은 스코어와 함께 기분 좋은 하루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골프를 잘 치지만 동반자들이 잘 구해지지 않을 때, 라운드를 마치고 나서 다음 라운드 약속을 잡지 않은 경우가 있다면 한번쯤 돌아봐야 한다. 오늘 한 것이 ‘골프’인지 아니면 ‘노동’이었는지.
[조효성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9호 (2015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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