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곤 교수의 사진교실] (8) ‘오늘’이라고 하는 시간은…

    입력 : 2015.08.07 10:35:21

  • 김승곤(사진평론가, 국립순천대학교 석좌교수)
    김승곤(사진평론가, 국립순천대학교 석좌교수)
    “세 명의 신사가 쇼윈도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열심히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는데요. 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제 출근하던 자동차 안에서 아내에게 받은 질문이었습니다. 웃자고 하는 난센스 퀴즈였습니다만, 뜬금없는 질문에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 제가 답답했던지, “카메라!” 라고 먼저 대답을 해버립니다. 실은 하마터면 ‘빨간색 란제리를 입힌 마네킹!’이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 했습니다만, 이상하게도 쉽게 수긍이 갔습니다. 은퇴자들에게 취미를 물으면 독서나 바둑, 등산, 골프, 해외여행 등 취향이나 건강, 경제적인 여유 같은 것에 따라서 제각각 대답이 다릅니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학구파도 있고, 개중에는 ‘시간은 남아돌지만 할 일이 없어서…’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손주와 놀아주는 것도 물론 훌륭한 일이긴 하지만, 할아버지와 노는 것을 손주도 좋아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수십 년 해오던 일을 갑자기 손에서 놓게 되면 새로운 생활환경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부터 좀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하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집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점차 세상 돌아가는 일에 흥미를 잃게 되고, 화젯거리가 없어져서 가족과의 대화도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활동량이 적어지니까 건강에도 좋을 리가 없지요. 그런 분들에게 꼭 권해드리고 싶은 것이 바로 사진입니다.

    천경송(CEO과정 제7기 前대법관)
    천경송(CEO과정 제7기 前대법관)
    카메라를 선택해야 하는 몇 가지 이유

    카메라를 만지고 사진을 찍는 일은 몸과 마음에 활기를 주고 단조로운 일상생활을 생기 있게 만듭니다. 지금까지 눈에 띄지도 않던 사소한 것들이 보이게 되고, 이 장면은 이런 구도로 정리해서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물을 보면 감성이 길러지고 발상과 사고의 힘도 커집니다. 사진은 뇌와 감각 활동을 활성화시켜서 현실을 섬세하고 명확하게 파악하는 힘을 길러줍니다. 비가 그친 뒤의 하늘에 떠 있는 구름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거나, 자신이 본 석양 노을을 아내에게 사진으로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느슨한 생활 속에서 몰두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삶에 대한 의욕을 높이고 자신감과 보람을 느끼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 어디론가 떠난다는 생각만으로도 감정이 고양됩니다. ‘슈팅(shooting)’이라는 용어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사진을 찍는 일은 예민한 관찰과 집중과 판단력이 요구되는 스포츠입니다. 최근 은퇴자들이 선택하는 취미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이 사진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사진은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이점 이외에, 머리와 신체의 모든 부위를 고르게 움직여주어야 하고, 촬영 과정에서는 적당한 심신의 긴장감과 예술적인 표현력이 요구됩니다. 좋은 사진을 얻었을 때의 보람과 성취감도 그만큼 커지지요.

    사람들이 왜 그처럼 사진에 열중하는지 이유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정작 ‘사진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대답할 사람은 없습니다. ‘2차원의 시각 상(像)’, ‘진실의 전도자’, ‘현실 대상의 외관을 기록하는 장치’, ‘생계를 위한 수단’, ‘프로파간다의 도구’, ‘예술 표현의 매체’, ‘역사의 자료’…. 목적이나 용도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정의가 내려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마추어의 취미사진이라고 하면 얘기가 다릅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도록 만드는 동기가 새로운 만남과 발견, 놀라움, 아름다움, 감동, 그리고 자신의 그런 체험들을 누군가와 함께 공유하고 싶은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각박한 세상’이라고 말합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다른 사람과 감동을 누린다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한종(CEO과정 제9기 Probasi 대표이사)
    이한종(CEO과정 제9기 Probasi 대표이사)
    감동을 나눈다는 것 누구나 살아가면서 몇 차례인가의 ‘감동의 순간’을 맛봅니다. 그것은 오감을 통해서 들어온 자극 가운데에서 마음 깊은 곳으로 직결되는 특별하게 강렬한 물결 같은 것으로, 아마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인생의 참다운 묘미이자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석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동은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라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것에서도 느껴지는 것으로, 마음속 깊이 새겨져서 잊혀지지 않고 그 이후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칼 융이라는 심리학자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어떤 감정이나 사고의 패턴이 무의식의 가장 깊은 층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집합 무의식’, 또는 ‘원형’이라고 불렀습니다. 말하자면 그런 공통의 신화적인 이미지가 자연에 대한 감각에서도 작용한다는 것이지요. 또 감동을 느끼는 것은 선천적이고 본능적인 요인과 후천적이고 학습적인 요인에 따라 다르다고 합니다. 미의식은 개인이 속한 자연과 문화, 역사, 생활환경 등으로부터 받는 영향이 크고, 개체에 따라서도 기준과 정도가 달라진다는 얘기입니다.

    임향자(사진가, SPC사진클럽 CEO과정 원장)
    임향자(사진가, SPC사진클럽 CEO과정 원장)
    우리는 겹겹이 이어진 새벽 산골짜기를 가득 메운 운해나 석양으로 물든 하늘과 바다 풍경을 보며 감동을 느끼지만, 어떤 이에게는 틀에 박힌 그런 사진을 진부한 것으로 여길지도 모릅니다. 또 아침이슬을 머금은 풋풋한 꽃봉오리보다도 수명이 다해서 ‘추하게’ 말라비틀어진 꽃을 보고 감동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기에는 인생의 덧없음이나 상식과 규범에 대한 부정,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긍정 같은, 단지 아름다운 것보다 훨씬 순도가 높은 요소들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개인적인 감동을 다른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기적처럼 멋지고 행복한 일이 될 것입니다. 감동을 주는 사진이란 어떤 것일까요? 우선 주제의 선택에서부터 광선의 상태나 구도, 노출, 셔터 타이밍 등 ‘기술적인 숙련’이 요구됩니다. 누구나 행운의 순간에 조우하지만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장면에서 초점이 맞지 않거나 흔들리지 않은 사진을 찍으려면 가능한 한 자주 그리고 많이 찍어야 합니다. 실패의 경험은 몸이 기억하기 때문에, 같은 잘못을 거듭하는 일이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무엇에 대해서 감동을 느끼는가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고, 감동을 표현하는 방법도,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저마다 다릅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는 사진을 찍으려면, 자신이 먼저 감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하고 망설이거나, ‘이제 와서 무슨 사진…’ 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에게 들려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Today is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your life.” 존 덴버의 노랫말에도, <어메리칸 뷰티>라고 하는 영화에서도 나오는 명대사입니다. “오늘은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이 그토록 간절하게 살고 싶어 했던 바로 그날이다.” 우리 인생에 ‘오늘’은 두 번 다시 맞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김승곤 교수 고려대 국문학과를 나온 뒤 일본대와 쓰쿠바대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이명동 사진상, 일본사진협회 국제상 등을 수상했다. 전 일본사진연맹 심사위원, 동강사진마을 운영위원장, 서울사진축제 운영위원장을 역임했다. <사진에 있어서의 몇 가지 논점>, <한국현대사진의 장면>, <잔인한 사진의 정치학> 등 200여 편의 논문을 썼으며 현재 국립순천대 사진예술학과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spc@iphos.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9호 (2015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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