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크닉·브런치 그리고 와인

    입력 : 2015.08.07 10:31:06

  • 꽉 짜여진 도심을 벗어나 잠시 숨 고르는 행위는 도시인에게 일종의 통과의례다.

    그게 피크닉이어도 좋고 브런치여도 좋다. 어울리는 와인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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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쩍 떠나길 고대했으나 나선 길의 종착역은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혜화역이다. 마로니에공원 뒤 소극장 골목에 피자와 파스타로 유명한 집이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1박을 결심한 캠핑이 아니라면 피크닉엔 간단한 핑거 푸드가 제격이다. 직접 손으로 먹는 음식 중 피자나 김밥보다 편한 음식이 또 있을까. 단숨에 달려간 곳은 <핏제리아’오>. 낙산공원 가는 길목에 자리한 나폴리 피자집인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커다란 불화덕이 인상적이었다. 유광열 점장의 말을 빌면 “새벽 5시부터 주방에서 피자 도우를 만드는데, 화덕 온도를 정확히 485도에 맞춰 구워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폴리 피자의 특징은 뭘까. 이탈리아 농무부가 제시한 내용을 살펴보면 ‘쉽게 접을 수 있어야’하고 ‘전기화덕은 금지’다. ‘장작화덕에 구워야’ 하고 ‘화덕 온도는 485℃’에 맞춘다. ‘모양은 둥글게’, ‘반죽은 반드시 손으로’, ‘두께는 2㎝ 이하’로 만들어야 한다. 그게 다가 아니다. 피자의 ‘가운데 부분 두께가 0.3㎝ 이하’여야 하고 ‘토핑은 토마토소스와 치즈만’ 사용한다. 종류도 단 3가지, ‘마리나라(마늘과 오레가노)’, ‘마르게리타(모차렐라치즈와 토마토소스)’, ‘엑스트라 마르게리타’가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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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르뜨와 도멘 생 미셸의 시원한 그 맛 아… 서론이 길었다. 자리에 앉으니 미리 부탁한 ‘두르뜨 뉘메로 엥 로제(Dourthe, Numero 1 Rose’와 ‘도멘 생 미셸 브뤼(Domaine Ste. Michelle Brut)’가 준비됐다.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로제와인과 스파클링와인이다. 우선 뉘메로 엥 로제를 열었다. 레드와 화이트의 중간쯤인 선홍빛의 로제와인은 일반적으로 포도의 과육과 껍질을 같이 넣고 발효시키다 색이 우러나면 껍질은 빼고 과즙만으로 제조한다. 빛깔이 특이하고 화이트와인처럼 시원하게 즐기기 때문에 일명 ‘바캉스와인’이라 불린다. 두르뜨는 총 생산량의 65%를 전 세계 85개국에 수출하는 프랑스 보르도의 와인메이커. 두르뜨 뉘메로 엥은 ‘보르도 와인의 기준’으로 알려질 만큼 맛을 인정받고 있다. 우선 한 모금…. 혀끝에 퍼지는 사과 맛에 코끝을 흔드는 살구 향까지, 전혀 달지 않은 달콤함에 탄닌의 여운이 마지막을 장식했다. 에피타이저로도 어울리고 테이블와인으로도 손색없는 풍미다. 어떻게 알았는지, 시간에 맞춰 핏제리아오의 대표 메뉴들이 테이블에 올랐다. 준비된 음식은 ‘마르게리따 엑스트라’와 ‘스텔라’ 피자, 수란을 올린 ‘까르보나라’, 리조또와 치즈, 감자, 한치, 새우 등을 튀겨낸 이탈리아 전통 모둠 튀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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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을 들고 들어온 육경희 대표는 “식재료를 이탈리아에서 공수해오는 건 물론이고 셰프를 비롯해 스태프들 모두가 이탈리아 연수를 다녀왔다”며 “정통 피자와 파스타의 맛을 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수란의 노른자를 터뜨려 비벼먹는 까르보나라는 그 자체로 반가웠다. 사실 한국의 까르보나라는 알프레도 소스 파스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탈리아에선 소스가 훨씬 적고 달걀노른자에 비벼 고소하고 담백한 맛을 즐긴다. 이 고소한 맛과 뉘메로 엥 로제의 적절한 산미가 꽤나 잘 어울렸다. 이번엔 미셸 브뤼를 열었다. 병 모양만 보면 샴페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 그래서인지 비싼 샴페인 대용으로 최근 인기가 높아진 와인이다. 미국 워싱턴 주의 콜롬비아 벨리에서 생산된 포도로 제조되는데, 이곳은 프랑스 샹파뉴 지역과 위도가 비슷해 기후와 일조시간이 길고 풍부하다. 전통적인 샴페인 제조방식으로 숙성된 미셸 브뤼는 드라이한 풍미에 입안 가득 퍼지는 과일 향과 산도가 적절했다. 그래서 이번엔 신선한 버팔로 치즈와 토마토소스, 바질이 어우러진 ‘마르게리따 엑스트라’를 한입 베어 물었다. 고소한 치즈와 와인의 과일 향, 특히 톡톡 튀는 시트러스 향이 제대로 맞물렸다.

    알코올이 함유된 음료는 한 잔이 두 잔을 부르고 두 잔이 세 잔을 부른다 했던가. 처음 본 이들과 허물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용기가 자신감으로 둔갑하기 전에 다음을 기약했다. 어쨌거나 와인은 오늘만 만나야 하는 친구가 아니므로….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9호 (2015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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