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르도네의 계절… 감동 한 입, 싱그러움 한 모금

    입력 : 2015.06.25 10:5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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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골 주점의 주인 겸 바텐더 겸 소믈리에가 퉁명스레 던진 우문에 미소 띤 현답을 내놨다. “계절에 어울리는 와인이요? 글쎄요. 전 그냥 입에 딱 맞는 날이 있던데요. 그렇더라도 샤르도네처럼 과일향이 풍부한 화이트 와인은 이 시기가 딱 어울릴 거예요. 차가운 과일을 한 입 가득 베어 문 것처럼 싱그러운 풍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갑자기 무척 샤르도네가 고팠다.



    평일 오후의 서울 삼청동 길은 더 이상 한적하지 않다. 산과 물, 인심이 맑아 삼청(三淸)인 이 동네는 십수 년 전 소박하다 못해 투박했던 첫인상을 잊은 지 오래다. 길은 그때 그 길이지만 호위하듯 감싸 안은 풍경은 전혀 다르다. 입고 먹고 마시는 곳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브랜드가 줄지어 늘어섰고, 그래서인지(아니면 소문 때문인지)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요우커의 물결이 넘실댄다. 다만 다행스러운 건 간간이 눈에 띄는 젊은 셰프들의 등장이다. 새롭게 단장한 ‘PRIVATE 133’도 그중 하나다. 김치말이국수로 유명한 ‘눈나무집’ 맞은편에 자리한 이곳은 30대 중반의 장경원 셰프와 올해 서른이 된 주우석 수셰프가 손님을 맞는다. 말로만 맞는 게 아니라 조리 후 직접 음식을 올리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와인 전문가로 동행한 길진인터내셔널의 홍지원 대리가 설명을 덧붙였다.

    “청담동에 있는 정식당이나 밍글스가 핫한 비즈니스 미팅 장소로 떠올랐다면 성북동이나 삼청동에는 프라이빗 133이 문을 열었다고나 할까요. 아직은 가오픈 기간인데 벌써 이름이 나고 있어요.”

    듣고 있던 장 셰프가 수줍게 한마디 거들었다.

    “6월 1일부터 정식 오픈하는데, 손님들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해서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가꿀 생각입니다. 모든 음식은 주방장인 제가 직접 서브하는데,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디에 좋은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손님과 대화하려고요. 이곳은 그렇게 서로 대화하는 공간입니다.”

    아차, 준비해 간 와인 소개가 늦었다. 6월의 와인은 ‘샤또 생 미셸 콜드크릭 빈야드 샤르도네 ’ 2011년산과 ‘플라네타 샤르도네’ 2012년산이다. 드디어, 샤르도네다.

    (위부터) 오리 요리, 닭 요리. 실제 메뉴명이다.
    (위부터) 오리 요리, 닭 요리. 실제 메뉴명이다.
    셰프의 정성에 만개한 샤르도네 프라이빗133의 1층이 단품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면 2층과 3층에선 여럿이 코스요리를 즐길 수 있다. 2층 창가의 긴 탁자에 앉아 밖을 바라보니 작은 창 속에 푸릇한 초여름 기운이 그득했다. 음식이 오르기 전에 먼저 두 샤르도네를 열었다. 먼저 콜드크릭 빈야드가 반응했다. 공간에 퍼진 향이 어찌나 은은한지, 미국 워싱턴 주 최초의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신대륙 와인의 기품이 새롭게 다가왔다.

    “두 화이트와인 모두 손꼽히는 고급 샤르도네예요. 보통 화이트 와인을 차게 해서 마시는데 이건 그보다 온도를 조금 높게 하면 더 풍부한 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홍 대리가 전한 고급 샤르도네 음주법이다.

    반면 이탈리아 시칠리아 출신 플라네타 샤르도네는 첫인상이 수줍었다. 아직은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는 듯, 코르크를 연 지 한참만에야 공간에 몸을 맡겼다. 한동안 병에 담기지 않은 싸구려 벌크와인 생산지로 여겨졌던 시칠리아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건 전적으로 플라네타(PLANETA) 와이너리 덕분이다. ‘시칠리아 고유의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고’, ‘시칠리아의 기후와 풍토에 맞게 세계적인 포도 품종들을 개량하며’, ‘전통적인 시칠리아 DOC(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 이탈리아 와인등급. 원산지 내에서 생산된 와인) 와인을 복원하는 것’이 플라네타의 목표였다. 물론 그 목표는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다.

    앞서 소개한 콜드크릭 빈야드가 살짝 부드럽다면 플라네타 샤르도네는 조금 무거웠다. 두 와인을 비교하며 한 모금 마시자 눈앞에 요리가 올라왔다. 직접 접시를 들고 온 이는 장 셰프와 주 수셰프였다.

    “어제 두 와인을 먼저 보내주셔서 저희도 직접 마셔보고 재료를 정했습니다. 마셔보니 제대로 알겠더군요.(웃음) 왼쪽이 닭 요리고 오른쪽이 오리 요린데 닭은 콜드크릭 빈야드와 어울리고 오리는 플라네타 샤르도네와 어울립니다.”

    셰프의 설명을 좀 더 부연하면 그의 지인이 제주도에서 방사해 키운 닭을 볏짚에 훈연한 요리는 모양부터 여느 닭과는 달라 보였다. 여기에 갓 구운 잣을 절구로 빻아 버터처럼 만든 소스에 살짝 찍어보니 확실히 감칠맛이 달랐다. 특히 장 셰프가 버터라 부르는 잣 소스는 그 자체로 훌륭한 요리였다. 콜드크릭 빈야드를 한 잔 곁들이니 샤도네이 향이 코를 너머 입안으로 퍼져나갔다. 이번엔 구운 오렌지, 직접 발효시킨 요거트, 통메밀을 팝콘처럼 튀겨낸 강냉이와 어우러진 오리 요리다. 부드러운 오리바비큐의 눅진한 맛이 바삭한 강냉이 덕분에 경쾌했다. 플라네타 샤르도네를 한 모금 마시니 공기와 반응한 과일향이 만개하며 오리 요리를 더 차지게 했다. 이건 개인적인 느낌인데 오리 껍질의 식감과 샤르도네의 향이 꽤나 잘 어울렸다.

    장 셰프가 말했다.

    “다음에 오실 땐 단골주점 오시듯 물 좋은 메뉴를 찾아주세요. 이렇게 좋은 와인을 놓고 두런두런 대화 나누는 장소가 프라이빗133입니다.”

    그의 말마따나 요리도 요리지만 주거니 받거니 와인을 나누며 한참동안 대화가 이어졌다. 시간이 아쉬웠다.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장소 PRIVATE 133 (02)722-0160]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7호(2015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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